다음 날 아침.
동빈은 평상시와 똑같이 등교를 했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하려 했지만 확 달라진 주변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슬금슬금 쳐다보는 학생들이 유난히 많다. 몰래 손가락질하며 자기들끼리 속삭이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문제야. 동영상이 퍼진 것 같은데…….’
무슨 이유인지 짐작은 할 수 있었다. 동빈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순간이었다.
“동빈아, 잠시만.”
교실 건물로 들어서기 직전 석진이 불렀다. 쓸데없이 주변을 살펴보면서 요상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무슨 일인데? 네가 그러니까 내가 더 이상해지잖아.”
“하여튼, 잠시 이쪽으로 와봐.”
“어디 가자는 거야?”
석진은 동빈을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멀지는 않은 곳이다. 1층 끝 부분에 위치한 컴퓨터실이었다.
딸깍.
석진은 컴퓨터실로 들어서자 곧바로 문을 잠갔다. 수업 시작 전이라 다른 학생들은 없었다.
“무슨 일인데 여기까지 오고 그래? 같이 청소하자고?”
동빈은 석진이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컴퓨터실 담당 선생이 석진에게 열쇠를 맡기는 경우가 있었다. 몇 번 청소하는 것도 도왔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
“컴퓨터는 왜 켜? 수업 시간 외에는 사용하지 못하잖아.”
청소는 아닌 것이 확실했다.
석진은 제일 가까이 있는 자리에 앉더니 컴퓨터를 켰다. 부팅을 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동빈아, 어제 저녁에 공원에 간다고 했었지?”
“…….”
모니터만 지켜보던 석진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동빈은 아무런 대꾸도 못 하는 형편이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 들었다. 확실히 공원에 간다고 했어.”
“그, 그럴 일이 좀 있어서…….”
피시방에서 전화 내용을 엿들은 것 같다. 동빈은 어쩔 수 없이 시인하고 말았는데…….
“설마 했는데… 진짜였구나.”
“……!”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석진.
그제야 동빈은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석진이 너, 뭐냐? 친구를 속이면…….”
“속인 게 아니라 확인한 거다. 너 이번에도 인터넷에 올랐다.”
“……!”
억울함을 따지려 했던 동빈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절대 그럴 리 없다. 싸우는 도중에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공원을 떠나면서 몇 번이나 확인을 했건만 또 사건이 터진 것이다.
‘젠장!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동빈의 시선은 모니터에 집중되었다.
화면에는 인터넷 창이 떠있었다. 저번과 똑같이 격투기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사이트였다.
석진은 급히 마우스를 움직여서 자료실로 들어갔고 게시물 하나를 선택했다.
“조폭 잡는 고딩 2…….”
이번에도 역시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 후편까지 제작된 것이다.
“내가 싸우는 동영상이냐?”
“동영상은 아니야. 사진 몇 장인데…….”
“사진?”
동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카메라 불빛이 터졌다면 자신이 모를 리 없었다. 누군가 합성 사진이라도 만들었단 말인가?
동빈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이건 왜 이리 느려?”
게시물을 클릭했지만 뜨는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초초한 동빈에게는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마침내 로딩 화면이 지나고 게시물 안으로 들어갔다.
조폭 잡는 고딩 2. 이번에는 시체 놀이입니다. 즐감!
“시, 시체 놀이…….”
커다란 글씨가 먼저 보였고 사진은 천천히 나타났다.
사진은 중간까지 나타났는데 공원 배경밖에 보이지 않았다. 진짜 내용은 바로 그다음부터였다.
“동빈아, 몇 명이나 쓰러뜨린 거냐?”
“…….”
전쟁이 끝난 뒤의 처참한 풍경?
피를 흘린 채 널려있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시체 놀이.
한마디로 말하면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었다.
시체들이 워낙 넓게 퍼져있어서 한 장의 사진으론 잡지 못할 정도였다. 그 뒤로 이어지는 사진들은 여러 각도에서 시체 놀이를 표현했다.
“아무래도 네가 떠난 다음 찍은 것 같다.”
“그러게…….”
동빈이 사진을 찍는 장면을 인식하지 못한 게 당연했다. 누군가 동빈이 떠난 다음에 사진을 찍은 것이 분명했다.
“리플 확인해볼래?”
“아니, 괜히 기운만 빠질 것 같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졌다.
이러다 몇 편까지 더 이어질지… 동빈은 인터넷의 유명 인사가 되었음을 절감했다.
동빈은 하루 종일 고달픈 시간을 보냈다.
컴퓨터실을 나오면서 어느 정도 예상을 했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
동빈의 처지가 꼭 그러했다. 동빈은 무슨 일을 해도 주목을 받았다.
조용히 공부를 하고 있어도 뒤통수가 따갑게 느껴졌다. 하도 이상하여 고개를 돌리면…….
우르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괜히 딴청을 피우는 동기들을 볼 수 있었다.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제는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껄끄러운 상황이었다.
딩동댕동.
마지막 수업이 끝나는 소리가 울렸다.
정말 피곤했던 하루였다.
동빈은 책을 덮으면서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기구한 내 팔자야…….”
고달픈 하루가 끝났다는 안도의 한숨은 아니었다. 또 다른 걱정거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오늘도 수많은 불량 학생들이 교문 밖에서 진을 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동빈아, 나 좀 잠깐 보자.”
“무, 무슨 일인데…….”
주철이 먼저 일어나자 동빈은 흠칫했다. 동빈이 주목을 받으면서 주철이도 많은 피해를 보았다. 친구라 말은 못 하고, 하루 종일 한숨만 푹푹 쉬었음을 기억했다.
“일은 무슨 일, 친구끼리 대화 좀 하자는데.”
“아, 알았어.”
동빈은 서둘러 가방을 챙기며 일어섰다. 주철의 비위를 최대한 맞춰주려는 행동이었다.
창고가 있는 건물 뒤편.
학생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라 조용한 대화를 하기에는 적합한 장소였다.
부슥.
한창 앞서 걸어가던 주철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려 동빈을 바라보았다. 꽤나 분위기 잡는 행동이었다.
“동빈아, 이 장소 기억나냐?”
“글쎄…….”
“그러면 말이야… 너랑 나랑 처음으로 진지하게 대화를 했을 때는 기억하고 있냐?”
“물론이지. 외롭던 나에게 친구하자고 먼저 말했잖아. 아!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우린 친구가 됐구나.”
동빈은 괜히 자기의 머리까지 치며 무안함을 달랬다. 주철이 전학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곳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주철과 동빈이 친하게 된 계기였다.
“친구하자고 했던 거 말고… 그 전에 내가 물었던 내용 말이다.”
“미안한데… 뭐라고 했지?”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는 친구가 생겼다는 기쁨밖에 없었다. 다른 내용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던 것이었다.
“정말 답답해죽겠네. 동빈이 네가 이곳 짱이냐고 물었잖아.”
“그, 그런가? 왜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동빈은 머리만 긁적거릴 뿐이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질문이나 진배없다. 그 당시 동빈은 쫓겨 다니기 급급했었다.
“정말 기운 빠지네. 그럼, 내가 조용히 살고 싶다고 말했던 것도 기억 못 하냐?”
“그건 내가 먼저 했던 소리 아닌가?”
“야! 내가 조용히 살고 싶다고 하니까 너도 그렇다고 한 거잖아.”
사연인즉 이러했다.
명성고로 전학 온 주철은 며칠 동안 학교를 관찰했다. 주철의 목표는 오직 조용히 지내는 것이었다. 학교 짱은 정한수가 맡고 있었지만 주철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걸림돌이 될 인물을 찾았고 바로 동빈이 선택되었다. 둘 다 조용히 살고 싶다는 뜻이 맞았기에 친구가 된 것이었다.
“동빈아, 조용히 살고 싶다는 놈이 그런 사고를 치면 어떻게 하냐? 나도 가끔 사고를 치지만 너처럼 대형 사고는 아니다. 조용히 수습될 일만 벌인단 말이다.”
“나도 진짜 억울하다. 어떤 놈이 이상한 동영상을 올려서 이 고생을 하고 있다고. 정말이야!”
“이제 와서 누구의 잘못을 따지면 뭐 하냐? 이왕 일이 터졌으니 수습이나 잘해야지. 시비 거는 놈이 계속 늘어날 것 같은데 대체 어쩔 거냐?”
“이젠 도망칠 수도 없어. 오는 족족 모두 상대해줘야지.”
“정말 미치겠네…….”
주철의 입장에서는 동빈이 도망치던 시절이 훨씬 나았다. 동빈의 엄청난 실력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사태가 점점 커질 것은 불 보듯 훤한 일이었다.
“미안하다, 주철아. 너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게 할께.”
“야, 나한테 불똥이 튈까 봐 이러는 게 아니야. 네가 걱정이 돼서 충고를 하는 거다. 싸움 잘한다는 소문 나면 얼마나 골치 아픈지 알아? 주변에서 널 가만두지 않아. 누가 센지 붙어보자는 놈부터, 너에게 빌붙어 먹으려는 놈들까지. 네가 원하던 학창 생활은 종쳤다는 소리야.”
“어쩔 수 없지 뭐…….”
“뭐가 어쩔 수 없어? 예전처럼 그냥 도망쳐라. 응?”
“미안하다. 작전이 바뀌었다. 도전하는 놈들은 철저히 박살 낼 거야. 상대가 누구든 말이야.”
“…….”
주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어느 정도 동빈의 성격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동빈은 한번 결정한 사항은 누가 뭐래도 지켜냈다. 엄청난 실력을 갖고도 열심히 도망만 쳤던 사실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젠 그 반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주철아. 또 할 말 있냐?”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동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주철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할 말은 다 했으니 집에나 가야겠다. 뭐 하냐? 안 따라오고?”
“먼저 가라. 난 조금 있다 갈게.”
동빈은 주철을 먼저 보내려 했다. 주철은 석진과 달랐다. 워낙 대책이 없기에 무슨 사고를 칠지 걱정이 앞섰다.
“네가 하는 일에 방해는 되지 않을 거다. 옛 명성이 조금 있어서 어느 정도까지는 막아줄 수 있을 거야. 물론, 말로 해서 안 되면 소용없는 일이지. 아직은 싸움을 할 수 없는 몸이라…….”
“세상에 그런 몸도 있냐?”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단다. 뭐 해? 진짜 안 갈 거야?”
“간다, 가.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일만 더 크게 만들지 마라.”
동빈은 재빨리 주철을 따랐다. 대책 없이 큰소리만 치는 주철을 믿어야 하는가? 다른 건 몰라도 둘이 있으니 든든하긴 했다.
학생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지던 하교 시간은 지났다. 동빈과 주철은 대화를 하느라 시간을 많이 소비했다. 둘은 띄엄띄엄 지나가는 학생들 사이를 평상시와 똑같이 걸었다.
“뭐야… 아무도 없잖아?”
“그러게…….”
교문을 막 벗어나는 시점. 건들거리는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용감한 수위 아저씨 덕분인가? 그러나 정문 아래로 보이는 골목길도 마찬가지였다.
“동빈아, 괜히 우리만 심각했던 거냐?”
“그러게…….”
너무나 썰렁하여 무안해지는 순간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던지 동빈은 그렇게만 반복했다.
“에이, 기운 빠져… 이놈들이 겁먹고 사라진 거야, 아니면……!”
“아니면 뭐?”
갑자기 주철이 말을 끊자 동빈이 반문했다. 뭔가에 놀라서 보이는 반응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젠장… 차라리 싸우러 오는 양아치들이 좋았는데…….”
“그, 그러게…….”
무엇을 본 것인가? 동빈의 표정도 순간적으로 어두워졌다. 싸우러 온 놈들보다 훨씬 껄끄러운 존재가 출현했다는 뜻이었다.
“김동빈 학생?”
“네…….”
동빈에게 다가온 사람은 경찰이었다. 양쪽에서 동빈을 가로막고는 신분을 확인했다. 그렇게 많던 양아치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같이 가줘야겠어.”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있습니까?”
동빈은 차분하게 대처했다. 그도 한때 공무원(?)의 신분일 때가 있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신을 찾아올 리 없었다.
“학원 폭력으로 신고가 들어왔어.”
“포, 폭력…….”
“자세한 것은 경찰서에서 확인하면 될 거야. 다른 학생들 이목도 있으니 조용히 따라왔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경찰서에서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동빈은 반항하지 않았다. 경찰의 뜻을 따르겠다는 자세를 보이자 주철이 충고를 전했다.
“동빈아,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하지 마. 내가 변호사 불러서 도와 줄 테니까 기다려.”
경찰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었다. 이런 경험을 많이 했는지 변호사부터 찾았다.
“괜찮아. 내 걱정 하지 말고 어서 집에나 들어가.”
동빈은 쓴웃음을 지은 채 주철을 보냈다. 학원 폭력의 가해자로 끌려가는 것이 기분 좋을 리 없었다.
애에에엥.
경찰이 무전을 보내자 골목길에서 경찰차 한 대가 튀어나왔다. 동빈을 태운 경찰차는 빠르게 학교 주변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