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5/224)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

20명이 넘는 숫자로도 동빈을 제압하지 못했다. 이제는 절반도 남지 않은 인원이 동빈을 상대해야 했다. 역부족이란 사실은 놈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헉헉… 저 새끼는… 지치지도 않아… 헉헉…….”

“히, 힘들어… 마, 말 시키지 마…….”

학생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동빈을 주시했다.

승패는 확실해졌다. 치열한 접전을 벌였지만 전혀 소득이 없었다. 자신들은 그냥 서있는 것도 힘에 부치는 상황인데 동빈의 모습은 너무나 멀쩡했다. 기운이 쭉 빠지는 현실이었다.

뚝… 뚝… 뚝.

동빈은 여전히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꽉 움켜쥔 주먹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처참하게 누워있는 학생들을 보면 누구의 피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그만 하자… 어차피 끝난 싸움이다.”

지친 학생들은 이 정도에서 물러나고 싶었다.

만만한 놈을 상대로 스트레스나 풀려고 했는데 그 반대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싸울 의욕을 상실한 것이다.

“이제 그만 하자고. 너도 싸우기 싫어했잖아.”

“상황이 바뀌었다. 그러게 일찍 좀 정신 차리지 그랬어.”

“씨발! 언제까지 싸우자는 거야? 계속 이러면 너도 무사하지 못해. 우린 아직도 반이나 남았어!”

동빈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짜증 섞인 말투가 튀어나왔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무너져야 끝나는 게임. 그러나 누가 먼저 무너질지 뻔한 상황이었다.

“떠들지 말고 덤벼. 내가 보기엔 반밖에 안 남았거든.”

“우리도 엄청 피해 봤잖아. 병원에 가지 않으면 진짜 병신 될 수도 있단 말이다.”

“그건 네놈들 사정이고… 난 이제부터 시작이야!”

“조, 존나!”

동빈이 다시 뛰어들자 학생들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맞붙어 싸울 용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저런 괴물에게 등을 보이는 것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이도 저도 못 하고 픽픽 쓰러지는 상황이었다.

빠각.

동빈의 발차기에 또 한 명이 날아갔다. 말 그대로 날아갔다. 축 늘어진 몸으로 허공으로 떠오르는 장면이 신기할 정도였다.

싸움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었다. 모든 것이 동빈의 의지대로 진행됐다는 뜻이었다.

퍼억.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또 한 놈이 무너졌다. 동빈은 몸을 한껏 비튼 상태에서 결정타를 날렸다.

남아있는 학생들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동빈의 동작은 점점 커졌다. 타격의 파워가 증가하면서 그만큼 충격도 강해진 것이다.

“야… 그, 그냥 튀자. 저 고딩… 성격이 지랄 같다.”

“그러게…….”

중학생들의 얼굴은 거의 사색이 되었다. 동빈의 응징이 너무나 철저했기 때문이다. 도망치거나 대충 맞고 쓰러지는 상대를 용서하지 않았다. 다시는 반격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밟아버리는 치밀함을 보였다.

동빈에게 자비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

“서,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잘못했다고 졸라 늘어지는 거야.”

“저 주먹에 한 대 맞으면 진짜 죽을 것 같은데…….”

“아, 씨발. 재수 없는 소리 좀 그만 해! 그나저나 몇 놈이나 쓰러트린 거야? 대충 20명까지는 확인했는데…….”

대책이 없다는 것이 때로는 좋을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숫자 놀음에 열중이었다. 불안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수단인지도 몰랐다.

“열나게 도망친 놈들 빼면 24명?”

“지금 남아있는 세 놈까지 쓰러트리면… 27… 거기에 우리까지 합치면 30이 넘네… 장난하나…….”

자신이 계산해놓고도 믿을 수 없었다. 전설적인 십칠 대 일의 싸움을 훨씬 능가하는 수치였다.

“야… 긴장해야겠다. 거의 끝나 간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세 명 중 또 한 명이 쓰러졌다.

이제 남은 인원은 두 명. 척 봐도 오래갈 상황은 아니었다.

아무리 대책이 없는 놈들이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걱정스런 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씨발… 그냥 죽은 척할까?”

“저 고딩한테 통할까?”

“…….”

기껏 머리를 굴렸지만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그냥 동빈의 처분을 달게 받는 것이 가장 무난한 해법이었다.

부웅.

동빈은 간단한 도움닫기만으로 공중에 치솟았다.

날아차기로 나머지 2명을 쓰러트리려는 의도였다. 갑작스런 공격은 아니었지만 놈들은 꼼짝을 못 했다. 너무 지쳐서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퍼억.

동빈의 환상적인 돌려차기가 작렬했다. 반항조차 못하는 놈이기에 샌드백을 차는 것과 진배없었다.

주르르.

이마가 깨졌는지 진한 핏물이 줄기 되어 흘러내렸다.

시간이 지나도 동빈의 파괴력은 여전했다. 마지막 놈은 기가 질렸는지 줄행랑을 놓으려 했다. 죽기 살기로 도망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모양새였다.

꽈악.

“어딜 가?”

“……!”

결국 동빈에게 뒷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놈은 바싹 겁에 질린 표정으로 동빈을 쳐다보았다.

“헉헉… 헉헉…….”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숨이 차서 문제였다. 가쁜 숨소리만 내면서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뻐억.

용서는 없었다. 동빈은 가차 없이 주먹을 뻗었고, 마지막 놈은 안면이 함몰되면서 무너졌다.

싸움은 끝이 났다. 시끌벅적했던 공원에서는 괴로운 신음밖에 들리지 않았다.

“크억… 다, 다리가 부러졌어…….”

“헉헉… 수, 숨을 못 쉬겠어…….”

기절한 놈은 그래도 나았다. 정신이 멀쩡한 놈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언제라도 덤벼. 이제는 절대 피하지 않는다.”

동빈은 나직하게 충고하고는 공원 입구로 걸어갔다.

중학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짓다가 굳어버렸다. 이대로 조용히 넘어가나 했지만 수상쩍은 불빛이 나타난 것이다. 경찰은 아니었고 주변에서 유명한 양아치들이 출현한 것이다.

부릉부릉-.

끼이익.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면서 한 떼의 깡패들이 등장했다. 연락을 뒤늦게 받고 온 놈들이 확실했다.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고 설치기 시작했다.

“요상한 새끼 혼내준다고 하더니 지네끼리 패싸움 벌인 모양이네? 좋은 구경 놓쳤잖아.”

“씨발아, 내가 일찍 오자고 했잖아!”

“일하는 중이었잖아. 한참 삥 뜯고 있는데 말이야.”

공원 곳곳에 널려있는 학생들…….

새로 등장한 놈들은 자기들 방식대로 해석했다. 그러지 않으면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너흰 또 뭐야?”

발걸음을 멈춘 동빈이 물었다.

물론 그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씨발, 그러는 너는 뭔데?”

새로 등장한 놈들은 10명 정도. 공원 입구를 막은 상태에서 히죽거리며 동빈을 노려봤다.

“너희들이 찾는 그 요상한 새끼가 바로 나거든.”

“……!”

놈들의 웃음은 대번에 사라졌다.

그렇다면 저 많은 인원을 혼자서 쓰러뜨렸단 말인가!

잠시 놀라기는 했으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 판단한 것이다.

“이 새끼가 어디서 구라를 까고 난리야.”

“저런 놈은 버릇을 고쳐야지. 뭐 해? 연장 들고 밟아!”

놀란 것이 억울했는지 곧바로 분풀이 모드로 돌아섰다.

각자의 오토바이에서 무기가 될 만한 것을 꺼내서 동빈에게 달려들었다.

“쯧쯧쯧… 운이 없군. 조금만 더 늦게 올 것이지.”

동빈은 상대를 불쌍히 여기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무기를 들고 설치는 놈들은 처참히 무너트릴 생각이었다.

파파팟!

동빈이 먼저 뛰어들자 놈들은 기겁했다. 빠른 움직임을 보고는 큰소리만 치는 놈은 아니라고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조금 늦게 깨달은 것이 그들의 실수였다.

비참한 비명과 함께 양아치들은 줄줄이 쓰러졌다. 무기를 든 놈에게는 더욱 큰 형벌이 쏟아졌다.

그들이 전부 쓰러지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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