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악.
조용한 공원에는 머리를 내리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손 빠작 들라우!”
“아야, 퍼…….”
동빈이 우려했던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송 교관이 아이들을 기합 주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엉망이 된 아이들의 몰골을 보니 단단히 당한 모양이었다.
‘맞다. 교관님이 계셨지…….’
송 교관은 예의가 없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공원의 아이들이 제대로 임자 만난 셈이었다.
“오느라고 수고했다. 땀을 많이 흘렸구나.”
“네…….”
장군은 무사했다. 진중하게 앉은 상태에서 동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빈은 괜히 기운이 빠지고 허탈한 느낌까지 들었다.
“이 시간에 운동이라도 한 것이냐?”
“그냥 조금…….”
“우선은 이쪽으로 앉아라.”
장군은 자신의 옆 자리를 가리켰다. 언제나 차분한 표정이 장군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동빈은 머쓱한 표정으로 장군의 옆 자리에 앉았다. 일부러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려는 것이 분명했다.
“동빈아, 오늘 선생님께 전화를 받았다.”
“저기… 죄송합니다. 어제 식당 사건은…….”
“식당?”
“아, 아닙니다.”
동빈은 서둘러 말을 바꿨다. 학교 식당에서 사고를 친 것을 언급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냥 조용히 장군의 말을 경청하기로 결정했다.
“운동이 그렇게 좋으면 체대에 가거라. 나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소리다.”
“네?”
어째 대화가 자꾸 빗나갔다. 동빈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반문하는 상황이었다.
“체육 선생님이 직접 전화하셨다. 운동을 너무 좋아하는데 가정 문제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냐는 전화였다. 나 때문에 음대를 가기로 결정했다면 마음을 바꿔도 상관없다.”
“장군님! 저는 진짜로 음대에 가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이 시간까지 열심히 운동을 하기에 물어본 말이다. 사실, 먼저 떠난 아들 때문에 네가 음대를 결정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장군의 아들은 음대 지망생이었다. 장군보다는 그의 아내를 더 닮았던 모양이었다. 장군은 동빈이 아들로서 인정을 받기 위해 음대를 선택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제가 피아노를 좋아했던 것은 장군님이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랬지. 너도 그놈만치나 음악을 좋아했지.”
동빈이 군에서 피아노를 칠 수 있던 것은 장군의 배려였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보답일 수도 있었고, 아들과 비슷한 나이였기에 도와주고 싶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다.
“잠시 말이 빗나갔구나. 이 문제는 차차 해결하기로 하고… 지금부터 너를 부른 진짜 이유를 설명하겠다.”
장군은 여기까지 불러낸 이유를 설명하려 했다. 동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장군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축하한다. 너는 이제 완전한 민간인이 되었다. 서류나 법적 절차상의 모든 문제가 마무리되었다.”
“최 원장님이 언질을 주셔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동빈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최종 판단의 열쇠를 쥐고 있던 최 원장이 긍정적으로 말했던 것을 기억한 것이다.
“그런데 최 원장의 소견이 참으로 재미있더구나. 군인이기에는 너무 위험해서 민간인이 되어야 한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
동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매우 아이러니한 표현이라 어떻게 해석할지 조금은 난감했던 것이다.
“국가의 정책은 말이다, 한번 결정되면 끝이다. 이젠 학생이라는 신분이 너를 지켜줄 것이다. 군인이기에 불리하게 작용되었던 문제점은 완전히 사라졌다.”
“네…….”
동빈의 목소리는 작았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동안 학생으로 지냈기에 별로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리고 오늘 최 원장과 통화를 했다. 네가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하더구나. 군인도 아니고 학생도 아닌, 어중간한 심리 상태를 보인다고 했다.”
“네, 조금…….”
“이제 혼란은 없다. 네가 무슨 짓을 하든 학생이란 신분은 변치 않을 것이다. 소신대로 행동해라. 학생들과 싸우지 말라는 제약은 사라졌다.”
“……!”
이제야 동빈은 무엇이 달라졌는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장군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했다. 자신의 판단에 후회를 하지 않겠다는 행동이 분명했다.
잠시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장군과 동빈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대신, 수많은 불청객들이 출현하여 주위를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존나 빠른 새끼가 이쪽으로 온 거 확실하지.”
“그렇다니까. 꾸물대지 말고 빨리 넘어.”
동빈의 뒤를 따라온 놈들이 도착한 것이다. 하나 둘 당장을 넘어와서는 동빈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씨발… 웬 꼰대와 같이 있잖아.”
“내 저놈은 반드시 버릇을 고쳐준다.”
장군과 함께 있기에 함부로 건들지는 않았다. 공원 한쪽에 자리를 잡고 담배를 피우며 사태를 파악했다.
“친구는 아닌 것 같구나.”
“그렇습니다.”
장군도 험악한 분위기를 파악했다. 그들이 동빈을 노린다는 사실도 짐작한 발언이었다.
“마지막으로 당부할 것은… 아니, 새로운 명령이라 해도 상관없다. 절대로 저런 놈들에게 맞고 다니지 말거라. 송 교관, 이젠 갑시다.”
장군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버릇없는 아이들을 기합 주던 송 교관도 떠나야 할 시점이었다. 물론, 마지막으로 한대 쥐어 박는 행동을 잊지 않았다.
“까불지 말고 똑바로 살라우.”
빠악.
“우씨! 왜 나만 때려요!”
가까이 있기에 본보기가 되었던 학생이 반항했다. 그러나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말대꾸하지 말라우!”
빠악.
“크악……!”
제대로 맞았는지 얼굴을 땅에 처박으며 고꾸라졌다. 나머지 학생들은 겁먹은 얼굴로 바싹 손을 치켜들었다.
“장군님, 대화는 잘 끝났습니까?”
“그렇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장군과 송 교관은 동빈만 남겨두고 공원을 떠났다.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학생들 사이를 여유롭게 걸었다.
“어린놈들이 어디서 담배를 피우네?”
“뭐, 뭐야!”
송 교관이 지나치자 학생들의 입은 허전하게 변했다. 뭐가 왔다 갔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담배가 모두 땅에 떨어진 것이다.
“누, 누구야 저 노인네? 순간적으로 쫄았잖아.”
“조용히 해라. 포스가 엄청난 늙은이다.”
송 교관과 장군은 학생들의 놀라움을 뒤로하고 걸었다. 산책이라도 나온 듯한 걸음걸이로 공원을 빠져나갔다.
송 교관과 장군이 떠난 공원.
이제 남은 것은 학생들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송 교관에게 기합을 받은 중학생들이었다.
“존나… 팔 떨어지는지 알았네.”
“뭔 늙은이가 저렇게 거칠어…….”
뻐근한 어깨를 주물럭거리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괜히 건드렸다는 후회가 막심한 눈빛이었다.
“저 고딩, 아까 그 늙은이와 뭔가 있는 거 같은데?”
“씨발,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가 당한 만큼 복수해야 하는 거 아니야.”
만만한 게 동빈이었다. 중학생들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복수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저 사람들도 존나 빠른 고딩 노리는 거 아니야?”
“씨발, 그런 게 어디 있어. 먼저 잡으면 되는 거지.”
여전히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애들이었다. 송 교관에게 심하게 당했던 놈이 건들거리며 동빈에게 다가섰다. 그러고는 위협적인 표정으로 입을 여는데…….
“야! 씨발 고딩.”
퍼억.
동빈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 발차기 한방으로 기절시켜버렸다.
“뭐야 이 새끼… 우리가 누군지…….”
“겁대가리를 상실한…….”
퍽. 퍽.
놀라서 뛰쳐나온 두 놈은 말도 마치지 못했다.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른 채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이제야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나머지 놈들이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우르르.
놈들은 동빈이 슬쩍 쳐다보자 몸을 사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예전에 봤던 멍청한 이미지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아니, 너무나 차가운 눈빛이라 심정이 멎을 정도였다.
뚜벅뚜벅.
불량 중학생들을 정리한 동빈은 공원 중앙으로 걸었다. 자신의 뒤를 따라온 놈들에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나 잡으러 왔냐?”
적당한 거리에 멈춰서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수적으로 불리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행동이었다.
“어쭈? 아까와는 다른 모습일세?”
“씨발… 그런다고 우리가 쫄 것 같아?”
군중심리가 작용했다. 뭔가 수상한 분위기를 눈치 챘으나 물러나지 않았다. 더욱 가까이 다가서면서 동빈을 위협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귀찮게 하지 말고 한꺼번에 덤벼.”
“……!”
동빈이 자세를 잡자 학생들의 표정이 변했다. 동영상에서 봤던 바로 그 모습. 혹시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함부로 덤벼들지 못했다.
“피에스.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고 했지!”
파파팟.
동빈은 먼저 몸을 날렸다. 수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
수십 대 일의 전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