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선택
정류장 근처의 피시방은 하교시간이 대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벽면을 따라 줄줄이 늘어선 20여 개의 자리는 이미 꽉 찬 상태였다. 게임에 열중하는 학생들의 열기로 피시방은 바싹 달아올라 있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동빈은 구석진 자리에 앉아있는 석진을 발견하게 되었다.
“석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
“마침 잘 왔다. 문제가 조금 심각한데… 우선은 이것부터 봐야겠다.”
석진의 모니터에는 인터넷 창이 떠있었다. 격투기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사이트였다. 급히 마우스를 움직여서 자료실로 들어갔고 게시물 하나를 선택했다.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 뭐야? 조폭 잡는 고딩?”
“조용히 하고 보라니까.”
석진은 게시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용은 별로 없었다. 잘 보라는 인사와 화제의 최신 동영상이란 설명이 첨부되어 있었다. 중앙에 위치한 재생기가 돌아가면서 본격적인 화면이 시작되었다.
“……!”
동빈의 눈이 점차 커졌다.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건달하고 붙었을 때가 확실했다. 동빈의 현란한 손기술과 함께 동영상은 시작되었다.
“이, 이거 어디서 났어?”
“어디서 난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아마 3개의 각도에서 찍는 것 같은데, 편집 솜씨 또한 장난이 아니야.”
그때의 현장감을 제대로 살렸다. 건달들이 각목을 들고 설치는 장면과 동빈이 공격을 퍼붓는 순간이 절묘하게 이어졌다. 다시 화면이 바뀌면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건달의 모습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동빈아, 이거 너 맞지. 이렇게 잘 싸웠냐?”
“그, 그게…….”
현실의 동빈은 대답조차 제대로 못하고 머뭇거렸지만 화면 속의 동빈은 달랐다. 건달에게 가차 없이 주먹세례를 퍼부었다. 건달이 쓰러지자 명치 부근을 그대로 밟아버렸다. 거품을 무는 장면을 확인하고는 다음 상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파상적인 공세. 건달은 눈이 뒤집히며 쓰러지려 했지만 동빈이 가만두지 않았다. 중심을 잃은 상대를 붙잡고 어깨관절꺾기를 시도했다.
“정말 뜻밖이야. 잔인한 면도 있고…….”
“…….”
건달들이 허겁지겁 달아나면서 동영상은 마무리로 들어갔다. 담담하게 노려보는 동빈의 모습과 함께 화면이 정지되었다. 그러고는 이상한 자막까지 등장했는데…….
이제부터 고교를 평정한다. 누구라도 덤벼라. 내 이름은 김동빈.
피에스(PS).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친절하게 이름까지 넣어주는 센스를 잊지 않았다. 화면 속 동빈의 얼굴은 카리스마가 무척 넘쳐 보였다.
“동빈아, 누가 찍었는지 짐작하겠냐?”
“모, 몰라.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말이야.”
“하여튼 문제가 많이 커졌다. 인터넷의 위력은 너도 알고 있지?”
“미치겠네.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런 걸 올린 거야?”
참으로 당혹스럽다. 인터넷의 위력은 동빈도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의 사건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어떤 놈이 제일 처음 올렸는지 알아볼게. 다운을 받게 해놨기에 애들이 퍼 가고 난리도 아니야. 논다는 애들의 홈피에 누군가 장난삼아 올리면서 지금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
“장난으로 찍었다면 되지 않을까? 실제가 아니라 연출된 화면이라고 하면…….”
“내가 봐도 연출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그래도 모르니까, 다른 애들의 반응을 살펴보자.”
석진은 ‘댓글 열기’ 아이콘을 클릭했고 동빈은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제발 장난으로 받아들여지길 간절히 원했다. 마침내 화면이 바뀌고 리플이 나타났는데,
앗싸! 1타.
“…….”
첫 리플부터 기운이 쭉 빠졌다. 그러고는 한참이나 순위 놀이가 진행되었다.
“석진아, 계속 내려. 그래! 이건 좀 길다.”
합성이네.
기분이 더욱 다운되었다. 합성? 그렇게 봐주면 고맙겠지만 어째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런 내용밖에 없냐? 쭉쭉 내려봐.”
리플은 꽤나 많았지만 마음에 드는 내용은 별로 없었다.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나라가 어찌될지 고민이다.
이놈 졸라 빠른 고딩이다.
씨발! 지금 쫓아간다.
긴급 속보! 이놈 지금 열라 도망치고 있다.
대부분이 진짜라 믿는 분위기였다. 가끔은 동빈의 개인적인 정보도 심심치 않게 노출되었다. 더 이상 살펴볼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시점이었다.
“자, 잠깐! 석진아. 잠시 위로 올려봐.”
동빈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방금 지난 리플을 보고는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여, 여기?”
“응.”
석진은 서둘러 화면을 올렸고, 동빈이 호기심을 보였던 리플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정말 뜻밖이군요. 여기서 살극무를 보다니.
“저 사람 누군지 알 수 있어?”
살극무를 알아보는 존재의 출현. 동빈이 호기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급조한 아이디야. 누가 썼는지 알 수는 없지.”
“할 수 없지… 누군지 상당히 궁금한데…….”
동빈은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만 뚫어지게 응시했다. 고민이 한 가지 더 늘었다는 뜻이었다. 쫓기는 것도 힘들고 살극무를 알아보는 존재도 껄끄러웠다. 무엇부터 해결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는 상황이었다.
전화 왔어요, 전화 받으세요.
“네, 교관님.”
휴대폰 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오늘은 웬일인지 송 교관이 전화를 다했다.
어딘데 그렇게 시끄럽네?
“피시방입니다.”
장군님이 보자고 하신다.
“네, 곧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아니야. 집으로 올 필요는 없서야. 특별히 전할 말이 있으신지 공원으로 오라 하셨어.”
“고, 공원요?”
어딘지 모르네? 집 근처에 작은 공원이 있지 않네.”
“아, 알고는 있지만…….”
대화하기에 적당한 장소는 아니었다. 불량 학생들이 점거한 공원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알면 됐지 뭐가 문제네? 이런… 빠떼리가 또 다됐구만기래. 날래날래 공원으로 가라우. 끊는다.”
“교, 교관님! 여보세요? 여보세요? 미치겠네…….”
오늘따라 되는 일이 없다. 하필이면 그 공원이란 말인가! 동빈의 고민이 또 한 가지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석진아, 미안한데 나 먼저 가야겠다.”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라.”
동빈은 서둘러 피시방을 나왔다. 가장 급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이상한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장군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했다.
파파팍.
동빈은 폐허가 된 공사장을 지났다. 공원에서 도망쳤던 길을 거꾸로 오르는 것이다. 줄줄이 따라오는 놈들을 따돌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큰일이다. 공원에 있는 놈들은 개념 없는 중딩들인데…….’
동빈의 경험상 그들은 어른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항하는 것을 자랑이라 느끼는 놈들이었다.
‘장군님이 약속 장소를 바꿀 리 없고… 민간인에게 폭력은 더더욱 쓸 리가 없으니…….’
불안한 상상이 계속 들었다. 히히거리면 날치는 중딩들 사이에서 진중하게 앉아있을 장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와! 미치겠다!”
동빈은 더욱 속력을 높였다. 땀에 범벅이 되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는 것이 장군을 위한 길임을 잘 알고 있었다.
‘다, 다 왔다. 저기만 넘으면…….’
공원 담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덕길이었지만 동빈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능력. 국가의 비밀 병기로 키워진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자, 장군님……!”
파파팟.
높은 담장을 그대로 뛰어넘었다. 시야가 탁 트이면서 펼쳐지는 공원의 풍경. 그토록 염려했던 사태가 벌어진 것인가? 동빈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