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직까지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동빈은 무사히 수업을 끝내고 교문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번 관문만 통과하면 염려했던 상황은 벗어나는 셈이었다.
“석진아. 확실히 정한수하고는 관계없어?”
“그런 것 같아. 애들한테 물어보니 한수 놈도 꼬리 내리고 피해갔다 하더라.”
“주철이 놈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놈은 꼭 필요하면 없어.”
이런 일에 대해서는 주철이 일가견이 있었다. 가끔 학교에 빠져서 도움이 안 되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정한수도 피할 정도라면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어라? 아무도 없잖아.”
교문 밖을 나섰지만 불량스런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동빈은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석진의 생각은 달랐다.
“어제도 저놈들 수위 아저씨 때문에 쫓겨났어. 아마도 저기 보이는 골목만 내려가도 장난이 아닐 거야.”
‘고맙습니다. 아저씨.’
동빈은 용감한 수위 아저씨께 감사를 드렸다. 조금은 깐깐한 성격이지만 불량배들이 얼씬도 못하는 이유였다. 기분이 조금 나아지려는 찰나, 석진의 한마디가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동빈아, 여기서부터 뛸 거냐?”
“…….”
괜히 기운 빠지는 느낌이었다. 언제 도망칠 것이냐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었다.
“왜 말이 없어? 여기서부터 뛸 거냐고!”
“아니, 뛸 때 뛰더라도… 날 찾는 이유는 물어봐야지.”
“글쎄…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괜찮아, 괜찮아. 내가 어디 한두 번 쫓기냐?”
“맞다. 그건 그래.”
동빈과 석진은 당당하게 경사로를 내려갔다. 상당히 용감한 모습이지만 결국은 도망친다는 소리 아닌가? 예전과 차이가 있다면 물어보고 도망친다는 것에 불과했다.
“숫자가 너무 많은데… 그냥 경찰을 부르는 게 좋겠다.”
“경찰이 오면 나도 귀찮아져.”
옆으로 빠지는 골목길이 보이자 예정된 결과가 벌어졌다. 동빈을 노리는 무리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동빈아, 아무래도 작전을 바꿔야겠다. 여기서부터 뛰어서 가속도를 높이는 거야.”
“나를 믿으라니까. 그리고 가방 좀 부탁한다. 이제부터는 나 혼자 가는 게 낫겠다.”
“그래, 너무 많이 묻지는 말고 웬만하면 빨리 도망쳐라.”
석진이 빠져나가자 동빈은 홀가분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뛰면 그만이었다. 동빈은 험한 표정으로 몰려오는 놈들을 보고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네가 명성고의 김동빈이냐?”
첫 번째 골목에서 나온 학생이 물었다. 째진 눈을 가진 험악한 인상. 동빈도 낯이 익은 놈이다. 어제 버스 정류장에서 지나쳤던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지 동빈을 처음 본다는 말투였다.
“내가 김동빈 맞는데, 무슨 일이지?”
“난 강진고 부짱인데 할 말이 있으니까, 잠시만 따라와라.”
“무작정 따라오라면 곤란하잖아. 무슨 일인지 먼저 말해봐.”
동빈은 최대한 거드름을 피우며 반문했다. 호전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왜 이런 놈들이 몰려왔는지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여기는 잡것들이 많아서 복잡하잖아. 순순히 따라오는 게 너한테도 이로울 거다. 다른 놈들이 노리는 거 안 보이냐?”
“뭐야… 언제부터 내 인기가 이렇게 좋았지?”
동빈은 완전히 포위된 상태나 다름없었다. 살벌한 눈으로 노려보는 무리는 점점 늘어났다. 다행히 강진고 부짱이 나서자 함부로 나서는 놈은 없었다.
“어쩔 거야? 조용히 따라올래 아니면…….”
“할 수 없지. 어디로 가면 되는데?”
“잘 생각했다. 이쪽으로 와라.”
순순히 따라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동빈은 강진고 부짱을 따라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섰다. 역시나 다른 놈들은 지켜만 보는 상황이었다. 여기 모인 놈들은 자신들만의 순서를 정한 모양이었다.
골목길 초입.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강진고 짱이 반응을 보였다. 동빈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체 근육이 장난 아니다. 떡 벌어진 어깨는 보통 학생의 두 배에 달할 정도였다.
“김동빈? 생각보다 체격이 크네?”
“너도 만만치 않은데? 운동 열심히 했나 보구나.”
동빈과 어깨는 서로 마주 보는 상황을 연출했다. 키는 비슷했고 덩치는 어깨가 앞섰다. 물론, 전체적인 균형에서는 동빈이 훨씬 뛰어났다.
“인사는 해야겠지. 난 강진고 박준혁이다.”
“난 따로 소개가 필요 없잖아? 용건만 간단히 하자.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했는데?”
“상당히 섭섭하네. 김동빈, 네가 불러서 여기까지 왔잖아?”
완전히 적반하장이다. 동빈이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너희들이 갑자기 쳐들어왔잖아!”
“아무나 한판 붙자고 광고했잖아! 나도 싸움이 싫은데 억지로 끌려왔단 말이다.”
뭔가 수상하다. 불량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든 것도 그렇고, 강진고 준혁의 반응도 이상했다. 동빈은 사태가 단단히 꼬였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저기, 미안한데… 난 싸우자고 광고한 적 없거든? 너희들이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우, 우리가 오해를 했다고?”
문제가 생겼으니 풀어야 마땅했다. 동빈은 정색을 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오해가 아니면 착각이겠지. 학생이면 당연히 공부를 해야지. 내가 싸우자고 광고까지 할 이유가 없잖아?”
“미치겠네. 이젠 착각까지… 그래, 관두자. 나도 귀찮다.”
예상 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준혁이 순순히 물러날 행동을 보인 것이다. 동빈의 결백이 통했다기보다는 정말 귀찮아서 외면하는 모습이었다.
‘다행이다. 이놈은 말이 통하네.’
“주, 준혁아, 그냥 가면 어떻게 하냐?”
동빈은 한숨 돌렸지만 다른 학생들이 문제였다. 강진고 부짱이 준혁을 막아선 것이다.
“저놈이 착각이라고 하잖아. 게다가 싸울 의욕도 없어 보이잖아.”
“착각은 무슨 착각이야? 이상한 동영상까지 만들어서 도전을 했다니까. 네가 무서우니까 발뺌하는 거라고.”
“너도 잘한 거 없다. 장난일 거라고 말했지. 우리가 안 오면 저놈이 쳐들어온다고 난리까지 피우냐?”
“준혁아, 저런 놈은 단단히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니까? 네가 괜히 사람 패는 거 싫어하는 거 아는데, 장난도 정도가 있는 법이잖아.”
“우리가 양아치냐? 쓸데없는 싸움은 하지 말자. 응?”
강진고 부짱은 목청을 높이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화풀이라도 하자 했지만 준혁은 관심 밖의 일로만 취급했다. 동빈에게는 다행이었지만 문제는 역시 부짱이었다.
“준혁아, 그러면 내가 나설 테니 말리지나 마라.”
목청까지 높이며 순순히 물러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괜히 말썽 부리지 말랬지? 잔말 말고 그냥가자.”
‘준혁이 잘한다. 너는 진짜 말이 통하는 놈이었구나!’
동빈은 속으로 열심히 준혁을 응원했다. 상대가 순순히 물러가니 도망칠 필요도 없었다. 복잡한 문제가 단숨에 해결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준혁아, 난 그냥 못 간다. 저놈 버릇을 고쳐줘야 다신 쓸데없는 장난 안 한단 말이다. 여기까지 온 게 아깝지도 않냐?”
“우린 그냥 빠진다. 버릇은… 딴 놈들이 알아서 하겠지.”
“……!”
동빈은 마냥 기뻐해야 할 상황이 아님을 깨달았다. 다른 놈들이 가만히 있었던 이유! 바로 준혁이란 존재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다.
“야, 박준혁. 강진고는 상관하지 않을 거지?”
“귀찮게 묻지 말고 니들 맘대로 하세요.”
준혁이 물러날 기색을 보이자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가만히 보고만 있던 다른 학교 놈들이 나선 것이다. 이젠 급한 쪽은 동빈이었다.
주춤주춤.
동빈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뒤로 물러났다. 험악한 놈들은 떼거지로 몰려왔고 준혁은 유유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또 꼬였네… 이놈들은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은데…….’
힘을 쓰기도 뭐한 상황이다. 오해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조용히 해결하고 싶지만 말귀를 못 알아먹을 것 같으니 문제였다.
“개념 없는 새끼… 니 말대로 왔으니 함 붙어보자.”
“씨발, 장난할 것이 따로 있지… 완전히 미친놈 아니야?”
골목 입구로 들어오는 숫자는 점점 많아졌다. 단단히 버릇을 고쳐주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저놈 잡아!”
우르르.
살벌하게 노려보는 놈들은 개떼처럼 밀려왔다. 누군가의 외침이 기폭제가 된 것이다.
“에이… 씨!”
이것도 팔자인가. 결국 동빈은 뛸 수밖에 없었다. 굽이굽이 휜 골목길을 엄청난 속도로 내달렸다.
“저놈 졸라 빠르다!”
“시팔! 밀지 마!”
쫓고 쫓기는 치열한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동빈이 워낙 빨랐기에 잡는 것이 수월치 않았다. 비좁은 골목길을 여러 사람이 뛰는 것도 문제였다.
“다행이다. 골목이면 내가 유리하다.”
동빈은 쫓아오는 무리와의 간격을 더욱 벌렸다. 이대로 가면 쉽게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빈의 뜀박질은 직각으로 휘어지는 지점을 통과하면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저 새끼 그놈 아니야?”
“벌써 우리 차례까지 온 거야?”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던 놈들이 놀라서 쳐다보고 있었다. 먹이가 스스로 뛰어든 꼴 아닌가? 기쁘면서도 당황스런 표정이었다.
“진짜 많이도 몰려왔네.”
동빈은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 여기까지 학생들이 진을 치고 있을 줄을 전혀 예상을 못 했다. 뒤를 쫓아오는 무리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버티고 있었다.
“이를 어쩐다.”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앞에서 버티고 있는 무리들도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면초가에 몰린 동빈의 선택은!
“에이… 씨!”
다시 반대쪽을 향해서 내달렸다. 숫자상으로 볼 때 지금 뒤따라오는 쪽이 훨씬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휘어진 골목을 벗어나서는 더욱 속력을 높였다.
“뭐, 뭐야! 저 새끼가 다시 온다.”
뒤에서 쫓아오는 무리와 금방 마주치게 되었다.
“미친 새끼! 그냥 부딪치려는 거 아니야?
“피, 피하지 마. 놓치면 알아서 해!”
동빈은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 신나게 따라오던 놈들이 오히려 주춤하는 상황이었다.
“시팔! 자, 잡아… 크엑!”
동빈은 민첩한 동작으로 학생들 사이를 통과했다. 멋모르고 막았던 놈들은 힘에서 밀려 뒤로 나자빠지는 상황이었다.
“막아! 길을 막으란 말이야!”
우르르.
거의 다 빠져나온 시점. 후미에 있던 학생들은 몸을 밀착시켜 길을 봉쇄했다. 아무리 힘이 좋아도 뚫고 가기는 불가능했다.
“아! 진짜 미치겠네…….”
이번에는 다시 뒤로 도망칠 수도 없는 상태였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골목길을 벗어나야 했고, 동빈이 가속도를 더욱 높이는 순간이었다.
“좀 지나가자!”
“……!”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동빈이 벽면을 타고 달리는 것이다. 직각의 벽면을 평지처럼… 그것도 엄청난 속도를 내면서 꽉 막힌 골목길을 벗어났다. 학생들은 멍하니 바라보는 상황. 그러나 황당한 광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파팟!
“저, 저놈 날아다닌다!”
동빈은 골목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한 번 더 솟구쳐 올랐다. 벽면이 끝나면서 생기는 모서리를 밟고서 튀어 오른 것이었다.
한편, 강진고의 준혁은 패거리와 함께 골목을 나섰다.
골목 안에서 어떠한 일이 펼쳐져도 신경 쓰지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기적어기적 걸었다.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밖에 없는 행동이었다.
“준혁아, 미안하다. 뭔가 있는 놈인가 했더니… 졸라 빠르기만 할 줄 누가 알았겠냐?”
“됐다, 그만 해라. 네 변명 받아줄 기분 아니다.”
부짱은 준혁의 기분을 맞추느라 고심했다. 모든 사건의 죄를 동빈의 몫으로 전가시키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근데, 너도 그 동영상 한번 보면 말이야…….”
“그만! 이제 진짜 그만 하자. 내 기분 영 아니거든. 나도 그놈 체격을 봐서는 뭔가 있는 놈인가 했는데 말이야.”
준혁은 두 번 실망했다는 눈치였다. 한 번은 괜히 시간만 낭비한 것이고 나머지는 동빈의 어수룩한 태도 때문이었다.
“준혁아, 골목 안에서 뭔 일 난 것 같은데?”
“신경 쓰지 말자니까.”
골목 안이 점점 시끄러워졌다. 부짱은 호기심에 돌아봤으나 준혁은 여전히 관심 없었다.
“아무래도 수상하다. 저건 뭔가에 놀랐다는 반응……!”
시끌벅적했던 골목에서 엄청난 함성이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부짱의 얼굴도 경악으로 물들었다.
“주, 준혁아… 저, 저놈 날아다녀…….”
“귀찮게 뭐가 날아다닌다고……!”
부짱이 성화를 부려서 준혁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렸는데…….
후앙.
골목길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허공을 난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속도와 높이를 보였다.
“……!”
준혁은 부릅뜬 눈으로 사건의 주인공을 살펴보았다. 어벙하게 보였던 동빈이 확실했다. 저런 몸놀림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촤아악.
땅에 내리는 동작 또한 대단했다. 중심에 전혀 흩어짐이 없는 완벽한 착지였다. 곧바로 자세를 잡고 일어나더니, 다시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저, 저런 놈이 왜 도망만 치는 거야?”
준혁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동빈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수십 명의 학생들을 달고 쫓기는 장관을 연출했다. 차라리 싸우는 것이 훨씬 낫다고 판단되는 상황이었다.
“저기… 너희 강진고 맞지?”
“그런데? 넌 누구야? 나는 범생과는 친하지 않은데?”
어정쩡한 자세로 말을 붙인 범생은 석진이었다. 누가 봐도 석진은 공부만 하는 학생처럼 느껴졌다. 물론, 공부도 잘했다.
“혹시… 이 중에 박준혁이라고 있냐?”
“내가 박준혁인데? 무슨 일이냐고?”
“저기… 내 친구가 전화 좀 받으라고 하네.”
“…….”
석진은 주춤주춤 휴대폰을 내밀었고, 강진고 학생들은 기도 안 찬다는 반응이었다.
“야? 너 공부만 하다 미쳤니? 니 친구랑 내가 왜 통화를 해야 하는데?”
“그, 그냥…….”
석진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게 노려보는 강진고 학생들의 눈빛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난 범생하고는 안 놀거든? 그냥 가라.”
“가, 강남의 양주철이라고 하면 안다던데…….”
“뭐라고? 가, 강남의 양주철!”
석진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준혁의 반응은 엄청났다. 당혹한 표정으로 서둘러 선진의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그, 그래…….”
주철이 통화를 시작하자 석진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몰매를 맞는 최악의 상태는 넘겼다. 또한, 이 근방 최고의 일진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전혀 뜻밖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래… 일을 크게 만들면 안 되지. 아니야. 난 진짜로 몰랐어.”
빚쟁이에게 독촉을 당하는 모습과 흡사했다. 주변에 있던 강진고 학생들이 당혹할 정도였다.
부르릉.
낡은 스쿠터가 지나가자 동빈은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엔진 소리가 서서히 멀어지자, 그제야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었다.
“뭔 놈들이 떼거지로 몰려왔어?”
동빈의 도주는 한편의 영화를 방불케 했다. 정말, 별의별 놈들이 다양하게 모였다. 인근 학교는 물론이고 멀리 지방에서도 몰려왔다. 게다가 인근 양아치들까지 모이면서 난리도 아니게 변했다. 피자 배달 스쿠터까지 동원하면서 동빈을 압박했다.
“할 수 없네. 이쪽 길로 돌아가야겠다.”
동빈은 방금 들어선 골목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장 골목이 오히려 안전할 수 있었다. 구경을 하는 척하며 여유로운 행보를 보였는데…….
전화 왔어요. 전화 받으세요.
“어이! 깜짝이야.”
동빈은 화들짝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 주변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일은 가급적 피하려는 눈치였다.
“여, 여보세요. 그래! 석진아.”
동빈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졌다. 자신의 안부를 묻는 전화가 확실했다. 힘찬 목소리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싶었다.
“사실이야? 내가 쫓기는 이유를 찾았다고!”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근처 양아치들까지 합세할 정도라면 분면 뭔가가 있다는 소리였다.
“알았어. 거기 어디야. 정류장 근처 피시방… 아니, 갈 수 있어.”
마음이 급했다. 안전한 장소로 다시 약속을 잡기는 싫었다. 몰래 숨어 가면 충분히 가능한 거리였다.
“그래, 지금 곧바로 갈께. 알았어!”
전화를 끊은 동빈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복잡한 시장 골목을 벗어나서는 곧바로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