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태클
점심시간이면 더욱 복잡해지는 학교 식당. 밥을 먹으러 왔는지, 수다를 떨러 왔는지 모를 정도로 소란스럽다. 옆에서 말하는 소리조차 버겁게 들렸지만 침묵을 강요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은 공부에 찌든 학생들이 유일하게 해방감을 느끼는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깨작깨작.
식사를 하는 동빈의 행동이 수상하다. 굉장한 먹성을 자랑했던 동빈이 아니었다. 세상 살기 귀찮은 사람처럼 마지못해 밥을 먹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같이 식사를 하는 석진과 주철까지 어색한 분위기에 휩싸일 정도였다.
“미안하다, 동빈아. 내가 대신 사과할게…….”
석진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빈이 왜 이런 현상을 보이는지 석진은 잘 알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을 제공한 셈이었기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식사를 제대로 끝내지도 못하고 위로의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혜영이가 왜 떠났지… 무엇이 혜영이를 떠나게 만들었지……?’
동빈의 심리 상태가 많이 심각하다. 친구가 말을 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기다리던 주철도 포기했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동빈아, 그만 좀 해라. 사내자식이 그런 거 가지고 말이야. 남들이 보면 한 십 년 사귀다 헤어진 줄 알겠다. 계속 궁상떨지 말고 빨리 먹고 나와.”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기에 떠난 거야. 나한테 말이나 하지… 젠장! 나도 괴롭힘을 당하는 입장이잖아. 그래서 말 안 한 거야.’
생각보다 이별의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친구들이 모두 떠나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염세적인 증상으로 발전하는 기미까지 보이는 상황이었다.
“동빈아, 괜찮아? 나 여기 앉아도 되지?”
끄덕끄덕.
부반장인 유나가 묻자 고개만 끄덕였다. 앉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반응이었다.
“먹성 좋은 동빈이가 웬일이니? 이럴 때일수록 더 잘 먹어야 하는 거야. 그래야 기운내지.”
“나도 먹고 싶은데… 속에서 밥을 거부해.”
“억지로라도 먹어. 여자한테 차였다고 광고할 일 있니?”
“그래… 노력은 해볼게.”
유나는 참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동빈은 억지로 밥을 넘기려 노력했다.
유나의 위로가 큰 도움이 되었는지 처음보다 훨씬 나아졌다. 실연의 상처가 빠르게 회복될 수 있는 기회였건만 뜻밖의 복병이 나타나고 말았다.
타앙.
오른팔에 깁스를 한 정한수가 등장했다. 동빈이 앉은 식탁에 식판을 내던지며 삭막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시팔! 오늘 반찬은 왜 이 모양이야!”
음식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었다. 식판을 보니 이미 상당한 양을 먹은 상태였다. 동빈에게 괜히 시비를 거는 행동이 분명했다.
“야, 김동빈. 그동안 나 없어서 존나 편했지?”
“…….”
정한수는 작정을 하고 왔는지 동빈의 맞은편에 앉았다. 물론, 동빈은 아무런 대꾸 없이 식사만 계속했다.
“이런, 씹새이가! 사람 말이 말 같지 않냐?”
“정한수, 너 왜 이러니? 지금 동빈이는 식사 중이잖아.”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지 않던가. 옆 자리에 있던 유나가 대신 나서서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부반장 넌 빠져. 이건 남자들만의 일이거든.”
“빠지긴 뭘 빠져. 하루라도 좋으니까 제발 동빈이 좀 냅둬라. 그 정도로 괴롭혔으면 됐잖아.”
“부반장이 뭘 모르는구나. 개새끼는 존나 머리가 나빠. 며칠 안 보면 분수도 모르고 기어오르지. 김동빈, 오랜만에 봤으니 한 따까리 해야지?”
“…….”
정한수는 실실 웃는 모습으로 동빈을 쳐다보았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바라보는 아이처럼 매우 순수(?)한 표정이었다.
“정한수, 내가 한 가지만 물어보자.”
“어쭈? 오늘도 그냥 토낄 줄 알았는데, 웬일이야?”
동빈의 반응은 평소와 달랐다. 도망칠 기회만 엿보는 것이 아니라 노려보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무슨 이유로 날 괴롭히는 거야?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네가 존나 재수 없거든! 죽도록 패고 싶을 정도로 말이야.”
“단지 그거뿐이야?”
“시팔! 그런 이유면 됐지, 뭘 더 바라? 아니면 내가 너를 존나 사랑해서 패겠냐? 이 개념 없는 자식아.”
“아니다, 됐다. 내가 뭘 더 바라겠냐.”
동빈은 쓴웃음만 지었다.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선은 남은 식사를 마저 하려고 했건만 정한수의 방해는 점점 심해졌다.
“뭐야, 반찬이 별로 없잖아? 내가 도와줄게. 카아악∼ 퉤!”
“……!”
정한수가 뱉은 이물질은 정확히 동빈의 밥 위에 떨어졌다. 이쯤 되면 장난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동빈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봤건만 정한수는 한술 더 뜨는 행동을 보였다.
“뭘 노려봐? 먹어. 어서 먹으라고 이 개새끼야.”
“야, 정한수! 동빈이한테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유나의 분노가 먼저 폭발했다. 이물질을 뱉은 것도 모라자서 먹으라니? 너무나 추잡한 행동이라 대신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부반장도 겁대가리를 상실했네. 나 정한수야, 정한수.”
“누가 네 이름 모른대?”
“알면 꺼져, 이 씨발년아!”
정한수의 행동은 점점 거칠어졌다. 오랜만에 학교에 나왔기에 자신의 존재감을 심어줄 모양이었다.
“뭐, 뭐야? 씨발 뭐? 그게 여자한테 할 욕이니?”
“니가 낄 데 안 낄 데 구분 못 하니까 그러지, 이년아.”
정한수가 본보기의 제물로 삼은 것은 동빈이었다. 유나의 반발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짜증스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다른 애들이 널 무서워서 피하는 줄 알아? 더럽고 치사해서 상종을 안 하는 거야.”
“이거 상당히 재미있게 돌아가는데? 나 없는 동안 둘이 썸씽이라도 있었어? 시팔, 존나 웃기네. 네년이 뭔데 상관이야. 좋게 봐줬더니 눈에 보이는 게 없지?”
“내가 틀린 말 했어? 사람 괴롭히는 게 당연한 행동이야?”
“시팔! 이년을 그냥…….”
정한수는 욱해서 손을 들어 올렸다가 멈칫했다. 여자를 때려 이득 볼 것은 없었다. 최대한의 자제력을 발휘했지만 유나가 꿈쩍도 안 하니 문제였다.
“허! 치려고?”
“미치겠네… 내가 못 때릴 줄 알아?”
“그래, 명성 일진이라는 놈이 여자나 때리고, 참 잘하는 짓이다. 그러니까 다른 학교 일진들이 너를 취급도 안 하는 거야!”
“시팔, 이런 썅년을 그냥!”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정한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가차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단순한 위협인가? 진짜로 치려는 것인가? 커다란 주먹이 날아오자 유나는 기겁을 했는데…….
“엄마야∼!”
와장창창.
유나의 비명과 함께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탁자까지 쓰러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식기가 떨어지고 음식물이 튀면서, 모든 것이 엉망으로 변해버렸다.
“무, 무슨 일이야?”
학생들의 시선이 요란한 소리의 근원지로 이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결과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놈은 정한수잖아? 또 동빈이를 괴롭히는 건가?”
“한두 번 있는 일이냐? 그런데 유나는 왜 끼어있는 거야?”
놀란 표정의 유나는 잔뜩 겁먹은 눈치였고, 동빈과 정한수가 노려보며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오늘은 분위기가 조금 다른데? 동빈이가 대들 모양인가?”
“괜한 짓이지. 정한수 얼굴 좀 봐라.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이잖아. 뭔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싸움 직전의 상황으로 파악했다. 잔뜩 일그러진 정한수의 얼굴을 보고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는데, 바로 그때였다.
“크억…….”
풀썩.
갑자기 정한수가 고통스런 신음을 내며 무릎을 꿇는 장면이 펼쳐졌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학생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정한수가 왜 저래?”
“나도 모르지.”
“서, 설마, 동빈이한테 맞고 쓰러진 거야?”
“그, 그건 아니겠지. 동빈이는 움직이지도 않았잖아.”
학생들은 동빈이 정한수를 때렸다고 믿지 않았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에 다른 측면에서 이유를 찾았다.
“한수, 저놈… 음식 잘못 먹은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겠다. 어째, 한수의 표정이……!”
우엑.
학생들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정한수의 입에서 온갖 이물질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방금 식사를 했기에 소화가 되지 않은 재료들도 많았다.
“어머, 더러워!”
“젠장! 밥맛 떨어지게…….”
정한수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코를 막고 외면하는 학생들이 속출했고,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놓는 경우도 있었다.
“정한수, 괜찮으냐?”
“헉… 헉… 헉…….”
동빈이 조용히 물었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정한수는 숨만 계속 헐떡이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네 거니까… 도로 처먹어.”
동빈은 발을 들어 올려 정한수의 머리를 찍어 짓눌렀다.
철퍼덕.
“크악…….”
정한수의 얼굴은 자기가 쏟아낸 이물질에 처박히고 말았다. 너무나 역겨운 장면이라 학생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우억! 나도 넘어올 것 같아.”
“밥은 다 먹었다.”
식사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학생들이 줄을 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음식을 남겼다. 아니, 더 이상 먹을 수 없던 것이었다.
운동장 뒤편의 그늘진 벤치.
동빈이 식사를 끝내고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는 장소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조용히 생각할 게 있는지 동빈이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젠장…….”
식당을 난장판으로 만든 죄책감 때문인가? 동빈은 자책성이 강한 한탄부터 내뱉었다.
“결국, 장군님의 명령을 어긴 셈인데…….”
동빈의 고민! 식당 사건과 연관은 있지만 정확한 본질은 달랐다.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보다는 장군의 명령을 어긴 것이 더욱 신경 쓰였다.
“정한수는 유나를 때릴 의도가 없었다. 그냥 때리는 시늉만 했을 뿐인데… 내가 왜 그랬지?”
동빈은 결국 학생에게 폭력을 쓰고 말았다. 정한수의 명치를 가격한 것이다. 유나를 구한다는 구실이 있었지만 속마음은 착잡했다.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리다니… 우와! 미치겠다.”
동빈은 머리까지 쥐어뜯으며 자책했다. 장군의 명령을 어긴 자기 자신이 싫었다.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면 똑같은 행동을 할까 봐 걱정이었다.
“동빈아, 괜찮아?”
“……!”
혼자서 난리를 쳤던 동빈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유나의 목소리가 확실했다. 머리를 쥐어뜯던 손을 조심스럽게 내리며 상황 수습에 들어갔다.
“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괜히 멋쩍어서 뒤돌아볼 수도 없었다. 묵묵히 정면만 응시하며 유나의 시선을 외면했다.
“동빈아, 배고프지?”
“배는 무슨…….”
“내가 맛있는 거 사왔는데 같이 먹을까?”
“정말 괜찮다니까…….”
지금은 명성 학생들 모두가 배고프다. 사건의 장본인이 어떻게 배고프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동빈도 염치가 있으니 머리만 긁적이는 상황이었다.
“그러지 말고 같이 먹자. 네가 좋아하는 거 사 왔어. 봐봐.”
‘헉! 초, 초코파이…….’
유나가 가져온 음식은 너무나 큰 유혹이었다. 동빈은 저절로 군침이 넘어갔지만 지은 죄가 크기에 선뜻 받지 못했다.
“정말 힘들게 사왔어. 지금 매점은 난리도 아니다.”
“…….”
학생들이 매점으로 몰리는 현상은 당연한 결과였다. 유나의 정성을 봐서라도 먹어줘야 마땅했다.
“고, 고마워…….”
“고맙긴, 나 때문에 생긴 일이잖아.”
유나는 음식이 든 봉지를 전해주고는 옆 자리에 앉았다. 물론, 동빈은 허겁지겁 초코파이 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적우적.
“천천히 먹어라. 그러다 체하겠다.”
“괘차아…….”
동빈은 음식을 가득 문 채로 대답했다.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미안하다. 너를 도우려 했는데 일이 어긋났어.”
“꺼억∼ 잘 먹었다. 그런데 뭐가 어긋나?”
음료수까지 모두 마신 동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꾸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너는 조용히 살려고 노력했는데… 나 때문에 다시 폭력을 쓰게 됐잖아.”
“유, 유나야! 그게 무슨 소리야?”
동빈은 뜨끔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듯한 발언이 분명했다.
“사실은 너희 아저씨가 우리 엄마한테 하는 말을 들었어.”
“……!”
송 교관이 일급비밀을 누설했다는 것인가! 원장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송 교관의 최근 행동을 보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다.
“아저씨가 그랬는데, 너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일반 학생과 똑같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미안해. 내가 일부러 들으려 했던 것은 아니야.”
‘우와! 미치겠네. 교관님은 어디까지 말씀하신 거야?’
문제가 매우 심각하게 돌아갔다. 만약, 신분이 들통 나면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유나가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누가 또 비밀을 알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유나야,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 원장님하고 너만 알고 있는 거지? 그렇지?”
“그럼, 내가 얼마나 입이 무거운데.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일단은 안심이다. 장군님과 상의하기 전에 사태가 번지지 않게 막아야 했다. 동빈은 정색까지 하면서 유나를 바라보았다.
“유나야, 부탁인데… 절대,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마. 알겠지?”
“물론이지. 니가 소년원 출신이란 비밀은 꼭 지켜줄게.”
“뭐? 소, 소년원?”
“미안, 미안. 내 목소리가 너무 컸나 보다.”
소년원은, 소년법 및 소년원법에 따라 가정법원 및 지방법원 소년부의 보호 처분에 의해 송치된 소년을 수용하여 교정교육을 행할 목적으로 설립된 법무부 산하 특수 교육기관이었다.
지금 유나의 말은, 많은 사람들이 미성년 범죄자의 수용 시설로 알고 있는 그 소년원을 언급하는 것이 분명했다.
“동빈아,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야. 중요한 것은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거야. 다시는 어둠의 길로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둠의 길… 특수 교육기관은 맞지만 이건 아닌데…….’
동빈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그토록 희생을 했건만…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 없으니 더욱 답답했다.
“나는 지금처럼 열심히 살려는 동빈이가 좋아. 내가 많이 도와줄 테니까 어려운 일 있으면 부탁해. 응?”
“…….”
여전히 동빈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장군님과 상의를 해야 하는지도 현재로써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