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요상하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데 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이것이 동빈의 마음을 나타내는 가장 적당한 말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동빈과 혜영은 나란히 길을 걸었다. 혜영이 고맙다는 의미로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주기로 했다. 동빈에게는 기쁜 일이었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이 동네에는 이상한 아이가 살기 때문이었다.
“혜영아, 이쪽 길로 돌아가자.”
“왜? 이쪽으로 가는 게 더 빠른데? 그쪽은 가로등도 없어…….”
혜영이 꺼려하는 것도 당연했다. 동빈이 넓고 좋은 길을 놔두고 으슥한 길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너하고 조금 더 걷고 싶어서…….”
“그래? 그러면 이쪽으로 가지 뭐.”
혜영은 별 의심 없이 방향을 바꾸었다. 동빈으로서는 매우 다행인 일이었다.
터벅터벅.
사각사각.
골목길이 음침하긴 음침하다. 발소리까지 크게 울릴 정도로 한산한 길이었다. 너무나 조용했기 때문인지 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동빈아, 너는 나에게 바라는 거 없어?”
“바라긴 뭘 바라?”
대화를 하니 삭막했던 분위기가 조금 나아졌다. 손을 잡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가깝게 붙어서 걸었다.
“학교에 안 나가는 것도 그렇고… 너무 소심한 성격도 불편했지?”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조금만 기다려줘. 나도 노력하고 있거든.”
“나 때문에 조급해하지는 마. 차근차근 자신의 생활을 찾았으면 좋겠다. 참! 내가 혜영이에게 바라는 것이 있긴 있다.”
“뭔데? 고칠 수 없는 것은 아니지?”
혜영은 불안한 마음으로 물었다. 동빈이는 너무 정직해서 탈이다. 너무 엉뚱한 부탁이 아니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고칠 수는 있지만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야.”
“시간이 걸려? 어떤 건데? 말해봐.”
“별건 아니고 머리를 좀 길러봐. 내 머리도 짧고 네 머리도 짧잖아? 내가 보기에는 말이야, 혜영이 네 얼굴에는 긴 생머리가 어울려. 정말이야.”
“정말 어려운 부탁은 아니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혜영은 단발머리치고 짧은 편이었다.
“다 온 것 같다. 혜영이 너는 들어가. 이번에는 큰길로 올라가도 상관없어.”
어느새 버스 정류장 근처에 도착했다. 동빈은 성큼성큼 걸으며 혼자 가도 무방하다는 행동을 보였다.
“버스 타는 것 보고 들어가도 괜찮아.”
“아니야, 아니야. 내가 불안해서 그래. 얼른 들어가, 얼른.”
동빈이가 혜영을 보내려는 노력은 가상했다. 누구는 보내고 싶겠는가. 요상한 불청객이 출현할까 봐 이런 꼼수를 쓰는 것이었다.
“먼저 갈게. 극장 앞에서 보자.”
“잘 가. 늦지 말고. 예쁘게 하고 나와.”
“…….”
혜영은 직접적인 대답은 하지 않았다.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주며 동빈이를 배웅했다.
‘참! 혜영이가 어떤 극장인지 아나? 게다가 시간은?’
중요한 것을 깜박했다. 동빈은 시간과 장소를 말하지 않았다. 예매권을 제대로 보기는 봤는가? 혜영이 너무 멀어졌기에 다시 묻기도 뭐한 상황이었다.
끼이익.
때마침 버스가 도착했기에 동빈은 어쩔 수 없이 차에 올랐다. 창가 자리에 앉으니 갑자기 불안감이 몰려왔다.
‘부처님, 이번에도 그러시면 저 진짜 삐칩니다.’
모든 것을 부처님 탓으로 돌리기로 작정했다. 그만큼 동빈의 기대가 크다는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