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
선아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동빈을 바라보았다. 아니, 거의 노려보는 수준이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내 눈은 원래 이래요.”
“선천적이라면 할 수 없지… 그런데 너는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공격이 최상의 방어라 했던가. 약한 모습을 보이던 동빈은 정색을 하며 물었다.
“여긴 내가 사는 동네예요. 오빠가 여기에 있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에요? 오빠 집은 명성고 후문 쪽이잖아요.”
“내 집은 어떻게 알고 있어?”
“다 아는 수가 있지요. 오빠는 내 안테나를 벗어날 수 없어요.”
“허! 기가 막혀서…….”
동빈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곰곰이 생각하니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는 판단까지 들었다. 미행을 당한 것인가!
“너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어?”
“오빠가 커다란 인형 메고 버스에서 내리는 것부터요.”
“그리고 계속 나를 미행했단 말이야?”
“물론이지요. 오빠가 곰 인형 메고 있던 게 얼마나 웃겼는지 모르죠? 여자와 있는 게 그렇게 좋아요? 남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도 모르고 실실 쪼개기나 하고.”
“야! 왜 남의 뒤를 함부로 밟아!”
“내가 여자 친구 사귀지 말라고 충고했잖아요. 분명히 골치 아프게 될 거라고 경고했어요.”
스토커가 따로 없었다. 이런 수준이라면 혜영의 안전도 장담을 못 하는 형국이었다.
“너 미쳤니? 내가 여자를 사귀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이게 다 오빠를 위한 일이에요. 오빠와 같이 있던 여자 많이 이상한 거 알아요?”
“설마 너 보다 더 이상할까!”
“그 언니 정신병원에 다닌다는 소문도 있어요.”
“야! 정신병원은 나도 다녀.”
“구라 까지 마요!”
“거기서 구라가 왜 나와?”
“좋아요. 다음부터 구라라는 말 안 할 테니… 오빠도 그 여자 만나지 마요.”
“싫어. 그냥 구라 까!”
가로등 아래서 펼쳐지는 말싸움은 계속 이어졌다. 겉보기에는 체격이 큰 동빈이 유리해 보였지만 실제는 정반대였다. 선아가 막무가내로 나오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오빠가 정 이렇게 나오면 나도 생각이 있어요.”
“뭐야? 설마 착한 혜영이를 괴롭힐 생각은 아니겠지?”
“미쳤어요? 내가 그렇게 유치한 행동을 하게. 괜히 그 언니 괴롭히면 오빠가 다시는 날 안 볼 거 아니에요?”
“다행이네. 잘 알고 있어서 말이야.”
“내가 중딩이라고 무시하지 마요. 얼마나 고단수인지 똑똑히 보여줄게요.”
“피곤해서 더 이상 말싸움하기 싫거든. 나 먼저 갈 테니, 맘대로 하세요!”
동빈은 기권을 선언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혜영에게 피해가 없다면 무슨 걱정이란 말인가? 신성한 미팅으로 좋아진 기분을 선아 때문에 망칠 수는 없었다. 최대한 무시한다는 태도로 성큼성큼 걸었는데…….
“오빠, 조심해서 들어가요.”
‘얼레? 이건 또 무슨 수작이야?’
불량스런 욕이 나올지 알았는데 웬 나긋한 인사? 동빈은 뜻밖이란 표정을 지었다.
‘그냥 무시하고 가야 하나? 작별 인사 정도는 해야 하나?’
동빈의 마음이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 끝까지 골치 아프게 만드는 아이였다. 그리고 잠시 고민에 빠졌던 동빈의 선택은…….
스윽.
간단하게 손만 흔들어주었다. 걸음을 주춤하거나 고개를 돌리는 행동은 없었다. 관심과 무시의 중간적 행태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