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나선 동빈 일행은 미팅의 전형적인 형식을 취했다. 파트너를 정하고 따로 헤어진 것이다. 동빈은 혜영과 짝을 이루어 북적이는 번화가를 걷고 있었다.
빙빙빙빙.
동빈은 쓸데없이 핸드폰을 돌리며 걸었다. 급한 전화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신성한 미팅에 임하면서 파워를 끈 상태였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 때문일까? 동빈의 얼굴을 보니, 여자와 나란히 걷는 것조차 어색한 표정이었다.
‘전화번호… 전화번호…….’
동빈의 머릿속에는 연락처에 대한 열망밖에 없었다.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더욱 속이 탔던 것이다.
‘내가 먼저 알려줄까? 아니야. 여자가 주는 게 예의라고 했는데… 혹시 내가 싫은 건가? 그러면 안 되는데!’
동빈은 혜영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기에 전화번호에 대한 집착이 점점 커졌다. 먼저 말은 못 하고 속으로 끙끙 앓는 상태였다.
“동빈아, 뭐가 그리 심각해? 아까부터 말도 없이…….”
“아, 아니야. 우와! 여기는 진짜 사람 많다.”
“주말이니까 당연히 많지.”
“그런가?”
동빈은 괜히 딴청을 피워 어색함을 모면하려 했다. 혜영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던져서 서먹한 분위기를 없애려 노력했다.
“참! 동빈이 너는 외국에서 학교 다녔다며?”
“응…….”
“어디에 있었는데? 생활하기는 괜찮았어?”
“그냥 뭐…….”
동빈은 궁색한 대답으로 일관했다. 외국을 많이 가기는 했지만 대부분 분쟁 지역이었다. 그녀에게 말할 수도 없었고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동빈아, 말해봐. 정말 궁금하다.”
“안 돼. 일급비밀이야.”
“비, 비밀… 그것도 일급씩이나?”
혜영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동빈이 너무 심각하게 말해서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뭘 그리 놀라? 그냥 남들에게 말하고 싶을 만큼 좋은 기억이 아니라는 뜻이야.”
“진작 그렇게 말하지. 동빈이 너는 다 좋은데 말이야, 가끔 사람을 당혹케 만들 때가 있어… 그럴 때는 눈빛이 너무 차갑게 변해.”
“……!”
동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것이 진짜 자신의 본모습인지 스스로도 헷갈릴 때가 많았다. 요즘 들어 그런 증상이 더욱 심해졌다.
“그나저나 여자들만 다니는 학교는 어때? 여자들은 화장실 갈 때도 항상 몰려다닌다며?”
동빈도 질문을 던져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그러나 질문이라 하기엔 조금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뭐야… 너희 학교도 남녀공학이잖아.”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나도 학교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아. 엄청난 비밀이지. 적어도 특급은 될걸?”
“비밀은 나보다 네가 더 많다. 아까는 몸무게가 비밀이라고 해놓고… 아무리 왕따… 미, 미안. 아무리 그래도 학교 다니면서 좋은 기억 하나쯤은 있었을 것 아니야.”
“미안해. 좋은 기억은 모두… 나쁜 기억 속에 파묻혔어.”
“그, 그래… 내가 괜한 것을 물어봤구나.”
아무래도 화제를 잘못 돌린 것 같다. 금방 어두워지는 혜영의 얼굴을 보고는 동빈도 입을 다물었다.
어색한 침묵.
둘은 잠시 아무런 말 없이 길을 걸었다.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동빈에게는 너무나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참! 동빈이 너 차력 잘하더라? 그거 특공 무술 맞지? 공인 5단에 비공인 7단이라며?”
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다운된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특공 무술은 무슨… 그놈들 겁주려고 혼자서 날뛴 거지.”
“그런데 정말 여자 친구 없어? 키도 크고, 얼굴도 괜찮은 편이고… 운동 짱에 성격까지 좋고…….”
“결정적으로 공부를 못하잖아.”
“공부야 뭐…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너만 괜찮다면 혹시 내가…….”
“……!”
그녀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계속 우물쭈물하며 동빈의 기대만 잔뜩 부풀려놓았다.
“마, 말해. 내, 내가 뭐?”
“아, 아니야. 동빈이는 여자 친구 생기면 뭘 하고 싶어?”
“…….”
피장파장인가? 이번에는 혜영이 재빨리 말을 바꿨다. 그와 동시에 동빈의 기대도 한꺼번에 무너졌다.
“동빈아, 여자 친구 생기면 뭘 하고 싶으냐고!”
“그, 글쎄… 우선은 극장에 가고 싶어.”
동빈은 한없이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며 대답했다. 뭔가 사정이 있을 것이다. 조급하게 행동하지 말자며 자신을 위로했다.
“극장? 너무 시시하다. 친구들이랑 가면 되잖아.”
“내가 왕따라 친구가 별로 없잖아. 석진이는 다 봤다 그러고…….”
“걔는 항상 수진이랑 같이 보잖아. 주철이는?”
“남자끼리 가면 추잡하대.”
“추잡씩이나…….”
동빈의 꿈은 소박했다. 너무나 소박하여 친구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쿵짝쿵짝.
스피커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벤트 행사를 벌이는 모양이었다. 빠른 템포의 음악 소리와 함께 도우미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 멀티 전자에서 새로운 기능으로 무장한 다기능 프린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잠시만 발길을 멈추시고 고객 감동을 추구하는 멀티 전자의 신상품을 주목해주십시오. 또한 주말을 맞이하여 다양한 행사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설문만 작성하셔도 푸짐한 경품을 드리니 많은 참여 바랍니다.”
트러스 구조의 현수막 앞에는 여러 대의 프린터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행인들은 제품보다는 도우미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대단히 짧고 화려한 도우미들의 복장은 남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도, 동빈아. 그렇게 열심히 쳐다보면 내가 더 창피하잖아.”
혜영의 얼굴은 약간 붉어진 상태였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도우미를 힐금힐금 쳐다보는데, 동빈은 혜영이 난처할 정도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신제품이 나왔다고 해서 보는 건데?”
“정말이야?”
“물론이지. 프린터를 바꿀 때가 돼서… 제품도 살펴볼 겸, 설문지 쓰고 사은품 받자.”
“싫어. 설문지 쓰면 원치도 않는 메일 오고… 요즘 개인 정보가 얼마나 사회적인 문젠데.”
‘혜영아!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거야! 개인 정보!’
동빈의 전화번호에 대한 집착은 남달랐다. 자연스럽게 연락처를 얻을 수 있는 구실을 마련한 것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도우미 누나, 우리도 설문지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빠짐없이 작성해주세요.”
동빈은 반 강제적으로 혜영을 데려갔다. 도우미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설문지를 전해주자 서둘러 작성에 들어갔다. 거리낌을 보이던 혜영도 어쩔 수 없이 작성해야 하는 처지였다.
스윽스윽.
동빈은 꼼꼼하게 설문지를 작성했다. 거의 완성되기 직전에 이르자 곁눈질로 혜영을 살펴보았다.
‘이런! 뭐가 또 비밀이라고…….’
혜영은 시험을 보는 것처럼 보안을 유지했다. 최대한 몸에 붙여서 글씨를 쓰는 것이다.
“나는 다 썼는데… 혜영이 너는?”
“나도 다 됐어.”
“잘됐네. 이리 줘봐. 내가 도우미 누나 갖다 줄게.”
화악.
동빈은 허락도 떨어지기 전에 혜영의 설문지를 낚아챘다. 너무나 빠른 동작이라 그녀가 거부할 틈도 없었다.
“어라? 왜 이리 빈 공간이 많아?”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동빈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것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동빈이 필요로 하는 정보만 쏙 빠져있었다.
“뭐가 이상해? 필요한 건 다 적었는데?”
“이러면 안 되지. 도우미 누나가 꼼꼼하게 쓰라고 했잖아. 빨리 다시 쓰란 말이야.”
“고객님, 괜찮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니에요, 도우미 누나. 제가 빈 공간 다시 메워서 갖다 드릴게요. 뭐든 확실해야지요.”
도우미가 괜찮다고 말려도 소용없었다. 연락처에 대한 동빈의 집착은 점점 심해졌다.
“혜영아, 요즘 이메일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 나도 있는데 말이야. 빨리 불러.”
“쓰다가 지워버렸어.”
“지웠어……? 그러면 기본적으로 휴대폰! 휴대폰 번호를 써야지. 만약 경품에 당첨되면 연락받을 주소 말이야.”
“동빈아, 이건 경품 행사 아니거든. 그리고 나 휴대폰 없어.”
“정말 답답하네. 그럴 때는 집 전화번호를 쓰는 거야.”
“미안해… 집 전화도 없어.”
“정말 없어?”
“응.”
“전화가 왜 없어!”
뚜루뚜루뚜 뚜루뚜루뚜 뚜루뚜루뚜 따라라.
갑자기 볼륨이 높아졌다. 신나는 댄스곡이 나오면서 행사장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지 내레이션 하는 도우미의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졌다.
“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잠시 뒤부터 ‘선물팡팡’ 행사를 진행하겠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새로운 이벤트로 집중되었다. 행사 열기는 점점 뜨거워졌지만 동빈과 혜영 사이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미안하다. 내 목소리가 너무 컸다.”
“괜찮아. 대책 없이 괴롭히는 애들 때문에…….”
화해의 분위기는 형성되었지만 미묘한 감정은 남아있었다.
“어마어마한 경품이 걸려있는 선물팡팡! 여러분들이 너무 좋아하시는 멀티 전자의 농구팀이 후원합니다. 선물팡팡이 끝나고 특별 사인회도 있으니 절대 놓치지 마십시오.”
행사 공간은 상당히 넓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주차장 전체를 사용했다. 도우미의 내레이션과 함께 비어있던 공간은 특별 행사 준비로 분주해졌다. 무슨 행사인지 몰라도 진짜 농구대까지 등장했다.
“슛만 성공하면 멀티 전자의 마스코트 인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행사에는 모두가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저희 멀티 전자의 제품에 들어있는 응모권을 지참하셔야 합니다.”
진행 요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농구대를 설치하고 몰려드는 구경꾼들을 진정시켰다. 수북하게 싸여있는 곰 인형들이 군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저, 저기요. 설문지는 그냥 주세요.”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도우미가 입을 열었다. 끼어들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설문지는 받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여기 있습니다.”
“작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사은품입니다.”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사은품은 작은 크기의 포스트잇이었다. 썰렁해진 분위기치고는 매우 작은 선물일 수밖에 없었다.
“저희 설문 때문에 두 분 사이가 이상해진 것 같네요. 제가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릴까요?”
도우미가 힘없이 돌아가는 동빈을 불렀다. 행사 때문에 좋은 관계가 서먹해진 것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기회라니요?”
“지금 선물팡팡 이벤트를 하는데 참여해보세요. 원래는 응모권이 있어야 하지만 제가 특별히 부탁해볼게요. 저기 보이는 농구대에 골만 넣으면 돼요.”
“농구? 정말 골만 성공시키면 되는 건가요?”
“맞아요. 성공하면 예쁜 인형을 드립니다. 저희 멀티 농구단의 마스코트예요.”
“어머! 정말 귀여운 인형이다.”
혜영은 곰 인형을 보고는 밝은 표정을 되찾았다. 도우미의 설명처럼 잃었던 점수를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좋아요. 저를 따라오세요. 꼭 성공해야 해요.”
동빈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도우미를 따랐다. 명성고의 운짱이 누구던가! 축구만큼은 아니지만 농구도 동빈의 주 종목 중 하나였다.
선물팡팡 이벤트는 단순히 골만 넣는 것이 아니었다.
슛을 하는 지점에 따라 선물이 달라지는 방식을 취했다. 즉, 멀리서 슛을 쏠수록 더 큰 곰 인형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자, 준비되셨나요?”
“네!”
내레이션 도우미가 사회를 보았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공을 던질 준비를 끝마쳤다. 거리는 3점 라인. 조금은 무리한 도전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했다가 실패의 고배를 마신 장소였다.
“제가 하나, 둘, 셋 하면 선물팡팡을 외치면서 던지는 겁니다.”
“넵!”
흔치 않은 이벤트였기에 몰려든 군중도 꽤나 되었다. 잠시 뜸을 들여 긴장감을 조성시켰던 도우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하나, 둘, 셋!”
“선물팡팡!”
대학생은 힘찬 고함과 함께 공을 던졌다. 농구와는 친하지 않은지 상당히 엉성한 자세였다.
“폼은 이상하지만 어쨌거나 공은 날아갑니다.”
도우미의 설명대로 공이 날아가긴 날아갔다. 방향은 제대로 잡았지만 힘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통통통.
백보드도 맞추지 못하고 말았다. 아쉬운 탄성이 쏟아지는 순간이었다.
“아깝습니다. 너무 욕심을 부렸네요. 다음 도전자 나와 주세요. 와우! 이번 도전자는 상당히 키가 큽니다. 진짜 농구 선수 같네요.”
동빈이 공을 천천히 튀기며 임시 코트로 나섰다. 신장과 균형 잡힌 몸을 보면 진짜 농구 선수 못지않았다.
“이번에는 상당히 특이한 경우네요. 설문지를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여자 친구를 구박한 학생입니다. 저희로서는 매우 고마운 분이라 특별히 기회를 드렸습니다.”
도우미의 멘트는 군중들의 웃음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어디서 던질지 궁금해집니다. 1점 라인에서 안전하게 던질 것이냐…….”
골대 밑에서 넣는 것도 가능했지만 보상이 너무 작았다. 동빈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인형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2점 라인이면 적당한 것 같은데…….”
동빈은 자유투 라인 근처를 지났다. 여기서 성공하면 어른 팔뚝만 한 크기의 인형을 준다.
“아! 욕심을 조금 부리네요.”
3점 라인으로 향하는 동빈. 그러나 동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계속 공을 튕기며 점점 골대와 멀어지는 것이었다.
“너무 욕심을 부립니다. 4점 라인… 아, 아니, 멀티 라인입니다!”
동빈의 목표는 양팔로 안기에도 벅찬 곰 인형이었다. 너무나 먼 거리라 도전하는 사람조차 없던 지점이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여기서 던지겠습니다.”
동빈의 의지는 확고했다. 운만 따라준다면 충분한 거리라 판단한 것이다.
‘정면에서 던지니 힘 조절만 잘하면 된다. 문제는 손인데…….’
무리하게 탁자를 부순 것이 화근이었다. 공을 만질 때마다 시큰한 느낌이 들었다.
“잘 던지세요. 실패하면 여자 친구와 더 벌어집니다.”
“동빈이, 파이팅!”
혜영의 응원 소리가 힘이 되었다. 동빈은 멀리 떨어진 골대를 보며 슛 모션을 취했다.
“제가 하나, 둘, 셋 하면 선물팡팡을 외치며 던지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동빈이, 파이팅! 파이팅!”
“여자 친구의 응원에 힘입어 성공을 하느냐. 하나… 둘… 셋!”
“선물팡팡!”
휘익.
동빈은 매끈한 동작으로 슛을 날렸다. 체육 선생이 감탄에 마지않던 완벽한 자세였다.
“네! 정말 멋진 자세로 던졌습니다. 방향도 정확하고… 거리도 괜찮습니다. 정말 기적이 일어나느냐!”
도우미의 목소리가 격양되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쭉쭉 뻗는 장면은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군중들 또한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결과를 지켜보았다.
‘이런! 소, 손이 삐끗했다! 제발 들어가라. 제발!’
동빈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날아가는 공을 지켜보았다. 손에서 공이 떨어지던 느낌이 불길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아무도 모릅니다. 들어가느냐 마느냐… 기적이 일어날 것도 같은데…….”
퉁-.
어우∼ .
동빈이 던진 공이 링을 맞고 튀자 군중들의 탄성이 일시에 터졌다. 회전을 많이 주었기에 공이 위로 솟았지만 골로 이어질 상황은 아니었다.
“네! 정말 아깝습니다.”
얼마나 아까운지 도우미까지 팔짝 뛰었다. 그러나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역시 동빈이었다.
“이, 이러면 안 되는데…….”
허망한 표정으로 튀어 오르는 공을 바라보았다. 안타까움에 난리를 치는 혜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실패는 했지만 정말 잘 던졌습니다. 방금 공을 던진 학생에게 격려의…….”
“에이… 씨!”
파파파팟.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던 동빈이 뛰기 시작했다. 혜영이를 볼 면목이 없어서 도망치는 것은 아니었다. 튀어 오른 공이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힘차게 내달리는 장면이었다.
“게임 아직 안 끝났습니다.”
부웅.
어느 정도 가속이 붙자 동빈은 점프를 했다. 먹이를 덮치는 맹수처럼 파워가 넘치고 탄력 또한 엄청났다. 상체가 약간 앞으로 쏠린 자세에서 허공을 가르는 모양새가 장관이었다.
“세, 세상에… 저 학생 날았습니다!”
텁.
동빈은 허공에서 떨어지는 공을 한 손으로 낚아채서는 계속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정말 하늘을 난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였다.
“제발 좀 들어가라!”
쿠앙!
동빈의 외침과 함께 농구대 전체가 흔들렸다.
강력한 슬램덩크 작렬!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벌어진 것이었다.
정적.
군중들은 놀라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회자인 도우미도 입만 쩍 벌리고 있었다. 멀쩡한 사람은 오직 덩크를 성공시킨 동빈밖에 없었다.
“도우미 누나! 자유투 라인에서 점프했으니 중간 인형이라도 주세요. 제발요. 내가 운동 잘한다고 얼마나 자랑했는데요.”
“…….”
재빨리 도우미에게 달려와서는 애원조로 매달렸다. 물론, 도우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떤 인형을 줘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