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6/224)

“참! 혜영아. 오늘이 며칠이지?”

“오, 오늘… 아마 17일…….”

갑자기 날짜를 물어보는 동빈.

혜영은 얼떨결에 대답했지만 물어본 이유에 대해서는 짐작조차 못 했다.

“신성한 미팅이 17일이라… 아주 좋아!”

동빈은 쇠 젓가락을 코로 가져가는 척하다가 벽면에 던져버렸다.

슈융.

얼마나 신속한 동작이었는지 주변 사람들이 놀랄 시간도 주지 않았다.

카페 벽면에서 울리는 자그만 소리를 듣고야 뭔가 일어났음을 감지했다.

“저, 젓가락이 달력에 꽂혔어…….”

“세상에 17일!”

동빈이 던진 젓가락은 달력의 17이란 숫자에 정확히 꽂혀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달력과 가장 가까이 있던 서일여고 일진들이 확인차 다가가는 모습이었다.

“세상에… 달력 뒤는 엄청 딱딱한 나무잖아.”

“어, 얼마나 깊게 박힌 거야?”

카페 벽면은 두꺼운 원목이었다. 쇠 젓가락이 뚫고 들어간 것 자체가 불가사의였다. 정확히 17이란 숫자에 박힌 것 또한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연주는 어떤 숫자가 좋아? 달력에 있는 숫자로 말이야.”

동빈은 다시 쇠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운이 아닌지 의심하는 눈초리를 불식시키려는 의도였다.

“나, 나는 7…….”

“좋아, 행운의 숫자라…….”

동빈은 젓가락을 빙빙 돌리며 긴장감을 조성했다. 다시 성공할 수 있을까? 주변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상황이었다.

“나에게도 행운이 찾아올지 모르겠네. 따이, 따이, 따이!”

슈융.

동빈의 손을 빠져나간 젓가락은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회전을 그리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일직선으로 쫙 뻗어 갔다.

딱.

정확히 7이라는 숫자에 명중했다. 동빈의 기술이 운만은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모두가 놀라서 기겁을 하는 상황이었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다. 비로 달력을 가까이서 살펴보던 서일여고의 방은실이었다.

“너, 너, 너 미쳤어!”

그녀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동빈은 은실이 피하기도 전에 쇠 젓가락을 던진 것이다. 7이라는 숫자는 방은실과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주철이 넌 뭐가 좋아.”

동빈은 은실의 반응을 철저히 무시했다. 이번에는 바로 옆에 있는 주철에게 숫자를 선택하라고 주문했다.

“난 좋아하는 숫자 없다.”

“맞다. 너는 염세주의자였지. 그럼 뭘 원하는데?”

주철은 숫자 고르기를 거부했다. 다른 것을 바라는 표정이라 동빈이 반문하는 것이다.

“나는 천박한 파마머리의 눈깔에 박고 싶은데, 괜찮겠냐?”

“별로 어려운 부탁도 아니네.”

팅. 팅.

속전속결!

동빈은 또다시 탁자에 있던 젓가락을 발로 찍어 내렸다. 두 개의 젓가락이 동시에 튀어 오르자 각각의 손으로 잡아챘다.

“저 애는 눈이 커서 무척 쉽겠다. 따이, 따이…….”

“어머, 어머. 미, 미쳤어!”

동빈이 양팔을 들어 올리자 은실은 기겁을 했다. 사색이 된 얼굴로 고함을 치기 바빴다. 몸이 얼었는지 도망칠 행동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자, 장난하는 거지… 그, 그렇지…….”

이제 동빈은 팔을 완전히 뒤로 젖힌 상태였다. 차력의 주문도 거의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괜히 손으로 막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마. 어차피 뚫고 들어가니까… 따이!”

“끼악!”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동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향해 젓가락을 날렸다. 카페가 떠나가라 소리치는 은실의 비명에 모두가 경악했다.

“뭐, 뭐야! 저 새끼 진짜 던졌어!”

“군복보다 더 미친 새끼 아니야!”

창석고 학생들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이미 주사위는 아니, 젓가락은 던져졌다. 방은실이 무사한지가 관건이었다.

텅텅.

무언가 벽에 박히는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그만큼 동빈이 젓가락을 날리는 기술이 빠르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 카페에 있던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 다행이다. 은실아 괜찮은 거지?”

부들부들.

동빈이 실수한 것인가? 아니면 일부러 만든 것인가? 결과적으로 은실은 무사했다.

나란히 박힌 젓가락 밑에서 온몸을 바들바들 떠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충격이 컸는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상태에서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이, 일어나 은실아. 아무렇지도 않거든.”

다른 여학생이 달려가 은실을 부축하려 했다. 그러나 자존심이 있는지 은실은 혼자 일어서려 안간힘을 썼다.

“괘, 괜찮아… 쪽팔리게시리…….”

그녀는 간신히 일어나기는 했지만 후들거리는 다리는 여전했다. 이를 바라보던 창석고는 입에 거품을 물었다.

“미친 새끼… 어디서 구라를 까고!”

“그렇게 폼 잡으면 우리가 쫄 것 같아!”

창석고 학생들이 분을 참지 못하고 달려들 셈이었다. 동빈에게 속은 것이 억울하다는 반응이지만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 챈 학생도 있었다.

“미, 민우야. 자, 잠시만…….”

“뭐가 잠시만이야. 저 새끼를 그냥 두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시팔! 흥분하지 말고 저기를 보라고!”

“뭘 보라는……!”

고개를 돌린 민우의 표정은 대번에 변했다. 무엇을 본 것인가?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서있는 은실이었다. 도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것인지 궁금해지는 상황이었다.

“왜, 왜… 날보고 그러는 거야? 지, 진짜 쪽팔리게…….”

힘들게 몸을 일으킨 은실은 어쩔 줄 몰랐다. 호들갑을 떨며 몸을 사린 것이 문제였던가? 얼굴이 두꺼운 편이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만만치 않음을 깨달았다.

스윽.

무안한 표정을 접고 자리로 돌아가려 했는데, 뭔가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

방은실의 눈높이에 딱 맞게 꽂힌 젓가락이었다.

그녀의 커다란 눈은 점점 더 커졌다.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조금만 늦게 엎드렸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 순간이었다.

“민우야, 저 새끼는 진짜 미친놈 아니면 엄청난 괴물이야.”

“시팔… 진짜 뭣 같네…….”

창석고 학생들이 정면으로 바라보는 상황이었다. 젓가락의 높이만이 아니라 꽂혀있는 간격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개의 젓가락은 은실의 미간과 똑같이 벌어져 있었다.

“정민우, 내가 실수한 것 같으냐?”

동빈이 말하는 의도는 분명했다. 너희들은 상대가 안 되니 알아서 물러나라는 뜻이었다.

“이 새끼가 누굴 호구로 아나. 그런 속임수에 내가 넘어갈 것 같아! 젓가락 잘 던진다고 싸움 잘해!”

“정말 미치겠네. 왜 물러서지 않는 거냐?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진짜로 척 보면 몰라? 너희들은 그 정도로 둔해?”

“시끄러, 이 새끼야. 내가 나이트에서 차력하는 놈들하고 붙은 게 몇 번인데 꼴값을 떨어.”

“이놈들은 도대체…….”

동빈은 답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혼자서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동빈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다 죽여버려. 괜히 네 입만 아프다니까.”

“주철이 너도 그만 해.”

동빈은 단호하게 주철의 간섭을 끊었다. 얼토당토않은 말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로 그렇게 느껴지기에 말을 자른 것이었다.

“동빈아, 친구로서 충고하는 거다. 이런 새끼들은 내가 잘 알지. 존나게 맞아야 정신 차려. 아니, 죽도록 맞아도 정신 못 차리는 경우가 많다.”

“주철아, 그만 하라고 했다.”

“뭘 망설이는 거야? 이건 정당방위야. 진짜 몇 놈 병신 만들어도 상관없다고!”

“주철아…….”

“사고 치면 내가 다 해결해줄게. 너도 알잖아. 우리 집이 좀 살아서 전화 한 통이면…….”

“제발 그만 하라고 했잖아!”

쿠앙.

동빈은 치솟는 분을 참을 수 없는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찍었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탁자는 요동쳤다. 그러나 강한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박살 나지는 않았다.

“동빈아, 손 괜찮으냐?”

“지, 진짜 아프다. 이건 뭐로 만든 거야…….”

동빈은 주먹을 어루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한 번에 박살을 내지 못하면 돌아오는 충격이 엄청났다.

“엄한 탁자 부수지 말고 그냥 저놈들 치라니까.”

“젠장, 뭐가 이리 단단해!”

주철이 계속 부추기자 동빈의 주먹질이 시작되었다. 한번 실패했던 탁자를 용서할 수 없던 모양이었다.

꽝꽝꽝꽝.

탁자가 부서지나 주먹이 부서지나 시험하는 것처럼 보였다. 동빈은 사정없이 탁자를 내리쳤다.

엄청난 소음이 카페 전체에 울려 퍼졌고 주변 사람들은 움찔하는 모습이었다. 동빈이 내리치는 동작이나 파워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쯧쯧쯧… 죄 없는 탁자만 불쌍하구만.”

주철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괜히 답답한지 서일여고 학생들이 있던 자리에서 맥주병을 무작정 집어 들었다.

“어라? 따지도 않을 맥주는 왜 시킨 거야?”

입에 가까이 대고서야 병마개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병따개를 찾으려고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와장창창.

엄청난 소음이 카페 전체에 올렸다. 그토록 단단했던 탁자가 부서진 것이다. 진짜 차력보다 훨씬 무서운 광경이었다.

“우와! 진짜 괴물이네.”

주철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반응이었다. 그렇게 단단한 탁자가 깨질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주철아, 꽉 잡고 있어. 내가 따줄게!”

“뭘?”

동빈의 목소리에 주철은 고개를 갸웃했다. 뭘 잡으라는 것인가? 주철이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동빈의 하얀 운동화만 보였다.

후웅.

틱.

파공음은 요란했으나 타격 소리는 미약했다. 동빈은 돌려차기로 맥주병의 목을 날린 것이었다. 칼로 벤 것처럼 목 부분만 매끈하게 잘렸다. 병을 들고 있던 주철보다 청석고 학생들이 더욱 기겁했다. 실제로 맞았다가는 목숨을 장담하기 힘들 만큼 날카로운 발차기였다.

“이봐, 얼마나 더 부숴야 보내줄 거야!”

동빈의 목소리는 약간 흥분된 상태였다. 그러나 창석고 학생들은 서로 눈치만 살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에이 씨… 좀 보내주라!”

꾸앙.

동빈은 손가락을 약간 구부린 상태에서 벽면을 강타했다. 손등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쭉 뻗는 동작이었다.

쩌억.

카페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충격과 함께 벽에 균열이 생겼다. 인테리어를 한 곳이 아니라 콘크리트 벽면이었기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시팔… 그, 그만! 제발 카페 좀 그만 부수고 당장 꺼져.”

민우는 마침내 항복을 선언했다. 대부분의 동기들이 싸울 의욕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밖으로 통하는 길을 비켜주며 조용히 한숨지었다.

“민우야, 카페 망가진 건 어떻게 하냐?”

“노가다라도 뛰어야지. 시팔…….”

난장판으로 변한 카페를 보니 대책이 서지 않았다. 진작 비켜줘야 했다는 후회의 빛이 역력했다.

“연주하고 혜영이는 먼저 가서 기다려. 너무 멀리 가지는 말고.”

“동빈아, 함께 가자.”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알았어. 먼저 나갈게. 빨리 와.”

동빈은 여학생들부터 밖으로 피신시켰다. 창석고 학생들이 뒤따라올 것을 염려한 행동이었다.

“뭐 하냐? 주철이 너도 어서 따라가.”

“나는 저놈들하고 잠시 볼일이 있는데?”

주철은 카페 밖으로 나갈 생각은 않고 빈둥거렸다. 당연히 동빈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또 사고 치려고 그래? 대책 없이 큰소리만 치고 말이야.”

“무슨 소리야? 대책 없이 큰소리만 치다니! 예전에는 강남의 양주철 하면 덤비는 놈이 없었는데 말이야. 대책이 없는 것은 바로 저놈들이지.”

“잘났다, 잘났어. 나 먼저 내려갈 테니 맘대로 해라.”

동빈은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여학생들을 보호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제 혼자만 남은 주철. 그러나 카페 분위기는 더욱 조용하게 변했다.

“가, 강남의 양주철… 혹시 그놈 아니야?”

“그놈이라니?”

카페에 남아있던 학생들은 주철에게 덤비지 않았다. 뭔가 수상한 느낌의 대화만 오고 가는 상황이었다.

“있잖아, 그거. 성격 더럽기로 소문난…….”

“서울 연합을 단번에 공중분해 시킨 그놈?”

“빙고!”

주철은 손까지 치켜들며 빙고를 외쳤다. 물론, 창석고와 서일여고 학생들의 얼굴은 동시에 굳어졌다.

“강남의 양주철이 왜 명성고에…….”

“많이 알면 다치거든? 나도 조용히 살고 싶으니까 복잡하게 일 만들지 말자. 응?”

“주철아! 빨리 안 내려와! 진짜 그냥 간다.”

“알았어. 지금 내려간다.”

주철은 계단을 향해 외치고는 카페 안의 학생들을 노려보았다. 실없는 웃음은 사라진 상태였다.

“천박한 파마머리 잘 들어. 다시 한 번 내 앞에 나타나면 머리털 다 뽑힐 줄 알아.”

“아, 알았어. 며, 명심할게…….”

“괜히 소문내지 말고 이번 일은 조용히 마무리 지어. 나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진짜 가만히 두지 않는다.”

“무, 물론이지.”

주철은 확실한 대답을 듣고서야 카페를 벗어났다. 카페에 남은 학생들에게 주철은 어떤 존재일까? 주철이 나간 지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움직일 생각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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