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이익.
연구소에서 돌아온 동빈은 옷장부터 열어젖혔다. 미팅에 입고 나갈 옷을 골라야 했다.
“흠… 무얼 입어야 하나?”
오늘이 어떤 날인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옷을 고르려고 옷장 문을 열었지만 입을 것이 마땅치 않았다.
뒤적뒤적.
“웬놈의 군복이 이리도 많아…….”
평상시에는 옷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교복을 빼놓고는 대부분 군복이었다. 미팅에 어울리는 옷이 없는지, 옷장을 뒤지는 손길만 분주해졌다.
“안되겠다. 시간도 남는데 한 벌 살까?”
약속 시간은 5시.
여유 시간은 충분했다. 용돈 또한 부족한 편은 아니다. 쓸 줄을 몰랐기에 통장에는 상당한 금액이 쌓여있었다.
“학생은 학생답게 입어야 하는데… 아니야, 오늘은 다르지. 뭔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야.”
동빈의 마음은 시시때때로 변했다. 그만큼 초초하고 긴장했다는 뜻이었다.
“참! 주철이한테 전화해야지.”
동빈의 행동은 분주했다. 옷장 문을 열어놓은 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여보세요. 주, 주철이냐? 우리 몇 시에 만날 거야?”
이번 미팅은 주철도 함께하기로 했다. 소개팅에서 이 대 이 미팅으로 바뀐 것이다. 동빈으로서는 엄청난 지원군을 얻은 셈이었다.
“싫어! 만나서 같이 가자. 부탁이다∼.”
동빈의 목소리가 애처롭다.
주철과 미리 만나서 미팅 장소로 가고 싶었다. 혼자서 약속 장소에 가기는 껄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래, 3번 출구에서 기다릴게. 뭐? 4시 50분? 그럼 너무 늦지! 4시 30분까지 와. 그래그래, 너는 택시 타고 와라. 늦지 말고!”
딸깍.
우선은 한고비 넘겼다. 마땅한 옷을 골라야 하는데… 거울 앞으로 다가섰다. 무엇이 중요한지 점점 헛갈리는 행동이었다.
“머리가 짧아… 무스를 바를까?”
오늘따라 외모에 대한 불평도 많았다. 늦지 않고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상황이었다.
취이잉.
지하철 문이 열리자 누군가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파다닥.
육상 선수인가? 눈 깜박할 사이에 계단을 차고 올랐다. 재빨리 개찰구를 지나서는 3번 출구 쪽으로 사라졌다.
“다행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동빈은 밖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며 시계를 보았다.
4시 25분.
약속을 생명처럼 생각하는 동빈이 절대 늦을 리 없었다. 조금 여유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주철이 놈은 왔나 모르겠네. 안 오면 먼저 가야 하나? 아니면 기다려야 하나?”
갑자기 불안한 느낌이 엄습했다. 귀찮게 대답하던 주철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했다.
계단을 거의 다 올라온 상태라 불안감은 점점 증폭되었다. 그러고는 마지막 계단까지 올라섰는데…….
“동빈아, 여기! 시간은 정확하구나.”
“……!”
다행이 주철이 늦지 않고 나왔다. 기뻐해야 할 상황이지만 동빈의 얼굴은 바싹 굳어있었다.
“뭘 그리 놀라? 내가 안 늦은 게 그리도 희한하냐?”
“그, 그게 아니라… 군인도 아닌 놈이 왜 군복을 입고…….”
주철은 위장복 하의에 국방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물론 신발도 전투화를 착용한 상태였다.
“오늘은 밀리터리룩으로 꾸몄다. 어때? 남성의 강인한 느낌이 팍팍 풍기지 않냐?
‘아뿔싸! 길은 가까운 곳에 있었구나!’
동빈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자신은 군복이 몇 벌인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주철과 군복이 매우 잘 어울린다는 사실이었다.
“동빈아, 너는 옷에 신경 좀 써라. 그거 어디서 샀냐?”
“…….”
동빈은 빳빳한 곤색 면바지에 하얀 티셔츠 차림이었다. 어디서 샀는지 모르지만 상당히 어색해 보였다.
“그래, 너는 단정을 목표로 삼으니까. 시간 없으니 빨리 가자.”
“그, 그래…….”
주철이 앞장서자 동빈도 뒤를 따랐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지 계속 주철의 군복을 힐끗힐끗 살펴보았다.
“내 옷이 이상하냐? 왜 자꾸 쳐다봐?”
“아, 아니… 네 군복에 줄을 잡으면 좋겠다고.”
“군복에도 줄을 잡아? 촌스럽지 않냐?”
“아니다. 그냥 그런 게 있다.”
동빈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어차피 지나간 일이다. 미팅에만 전념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