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2/224)

생활의 활력소

시험이 끝난 주말.

동빈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괴롭히려는 학생들을 피해서가 아니라, 요상한 러닝머신 위에서 열심히 달렸다. 러닝머신은 특별히 제작한 것인지 일반 기계보다 폭도 넓고 길이도 배나 되었다. 움직이는 속도 또한 장난이 아니게 빨랐다.

“허억… 허억…….”

동빈은 산소마스크를 얼굴에 쓰고 달렸다. 얼마나 오래 달렸는지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고 러닝머신의 속도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추추추추.

한편에 마련된 계기판에는 여러 그래프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동빈이 빨리 달릴수록 그 진동 폭은 더욱 커졌다. 동빈의 몸 상태를 체크하는 모양이었다.

철컹.

요상한 기계음과 함께 러닝머신이 멈추었다. 돌발적인 상황인지라 동빈의 중심이 잠시 흐트러졌다. 그러나 훈련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창창창창.

러닝머신 주위에서 이상한 물체들이 튀어나왔다. 사람의 형상을 닮은 인형이었고 크기 또한 비슷했다. 동빈은 흩어진 중심을 잡자마자 주먹을 뻗기 시작했다.

쾅쾅.

측면에서 튀어나온 인형을 먼저 쓰러트렸다. 조금 멀리 떨어진 인형은 발차기로 해결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상태였지만 빠른 움직임과 강력한 파워는 여전했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철컹. 철컹. 철컹.

인형들은 차례대로 뒤로 넘어갔다.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오뚝이처럼 곧바로 튀어 올랐다. 동빈은 닥치는 대로 휘둘렀고 계기판의 점수는 계속 올라갔다.

“볼 때마다 신기하네. 저게 진짜 사람이야?”

컴퓨터를 살펴보던 연구원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석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동빈이 움직이는 순간마다 그래프의 진폭도 심하게 요동쳤다.

“인간 병기가 따로 없지. 그동안 공들여 키웠는데 말이야.”

“저런 군인만 있으면 세상 무서울 게 없겠다.”

기업이나 대학 연구원은 아니었다. 군복 위에 하얀 가운을 입은 모습이었다.

“그만 하라우. 비싼 기계 다 부숴지겠서야.”

노인의 음성이 들리자 연구원들은 기계를 정지시켰다. 북한 사투리와 서울 말씨가 어색하게 섞인 목소리. 장군을 보필하는 송 교관이 확실했다.

“헉헉… 헉헉…….”

동빈은 공격 자세를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사람을 닮은 인형들은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처음과 똑같이 러닝머신 주위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수고했어. 이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

“헉헉… 감사합니다, 교관님.”

송 교관은 뒷짐을 지고 나타났다. 그런데 모습이 조금 특이하다. 하얀 가운에 뿔테 안경? 희끗희끗한 머리와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무술 교관이 아니라 연구에만 몰두하는 대학 교수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없으니 곧바로 다음 단계로 가자우.”

이곳은 국방부에서 운영하는 인체 연구소였다. 동빈은 의무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점검을 받아야 했다.

마스크를 벗은 동빈은 송 교관을 따랐다.

아직 테스트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테스트를 위해 자리를 옮기는 것이었다.

동빈과 송 교관이 들어선 곳은 자그만 방이었다. 역시나 복잡한 기계들이 가득한 곳이었고 중앙에는 작은 구조물이 놓여있었다. 사방이 유리로 막혀있었고,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의 공간을 가진 구조물이었다.

“어디 보자. 187… 아주 좋구만기래. 키가 더 자라고 있구만.”

체크 사항을 살펴보던 송 교관은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키는 클수록 좋다는 뜻이었다.

“교관님, 너무 크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문제는 무슨 문제? 딱 190만 됐으면 좋겠구만. 서양 놈들은 체격도 좋고 움직임도 빨라. 그런 놈들을 상대하려면 적어도 190은 돼야 편하지. 내가 키만 좀 컸으면 세상이 달라졌지. 걱정 말고 이쪽으로 오라우.”

송 교관이 키가 작기 때문일까? 동빈의 걱정을 단번에 일축하고는 중앙에 있는 구조물로 향했다.

“나처럼 자상한 스승 있으면 나와 보라고 기래. 말이 나와서 그렇지, 내 스승님은 술주정이나 하고 난리도 아니었어야.”

송 교관은 동빈의 몸 곳곳에 끝이 동그란 전선을 붙였다. 신체의 변화를 감지하는 측정기처럼 보였다.

“내래 수련을 끝내고는 북에서 힘깨나 쓰는 놈들과 모두 붙어봤지. 무인이고 군인이고, 잘나가는 건달까지 모조리 아작을 냈어. 괜히 수련을 많이 했다는 후회가 들 정도였지.”

정신없이 말을 하면서도 송 교관의 손길은 꼼꼼하게 움직였다. 동빈의 상체뿐만이 아니라 얼굴과 머리에도 빠짐없이 전선을 부착했다.

“더 이상 상대가 없다고 느꼈을 때 수제자를 찾기로 마음먹었지. 나도 스승 행세 좀 하려고 했는데, 마땅한 놈을 찾는 게 쉽지가 않았어야. 북한군 총교관까지 지내면서 살폈지만 내 성에 차는 놈은 한 명도 없었지. 흠… 이제 다 됐으니 안으로 들어가라우.”

몸에 전선을 붙이는 작업을 끝내자 송 교관도 수다를 멈췄다. 그러나 조용한 것은 잠시였다. 동빈이 유리 구조물로 들어가자 다시 입을 열었다.

“내래 노력도 많이 했지. 스승님께 전수받았던 고행은 물론이고 인간의 한계를 느끼는 훈련도 시켜봤어. 주먹으로 못을 박고 맨발로 전구를 깨고… 별의별 방법을 다 썼지만 특출 난 놈은 나오지 않았어야.”

북한 최고의 무술인 송 교관은 자신의 뒤를 이을 수제자를 찾지 못했다. 실전보다 제자를 찾는 것이 더욱 어려웠던 탓일까? 그의 넋두리는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러시아 놈들이 나를 초청했지. 무술 교관이 필요하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내 몸을 연구하는 것이었어야. 요상한 기계를 놓고 시험하는데… 성질 같아서는 모두 죽여버리고 싶었지. 솔직히 북한에서 나를 팔아먹은 것이나 진배없었거든. 그러나 나는 거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지. 왜 쓸 만한 제자들이 나오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었지.”

송 교관의 음성엔 어떠한 감정도 묻어나지 않았다. 동빈이 듣건 말건 계속 중얼거렸다.

“놀랍게도 내 몸에는 다른 힘이 자라고 있었지. 남한에서는 뭐라고 해석하면… 그래! 알 수 없는 기氣라고 정의하면 되겠지. 러시아 놈들도 밝혀내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어이, 뭐가 좋아서 그리 실실대는 거이가?”

“죄, 죄송합니다.”

넋두리를 늘어놓던 송 교관은 뚱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우습단 말인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동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기 때문이었다.

“시험을 잘 본 모양이구만기래.”

“네, 시험도 잘 보고…….”

좋게 넘어가니 다행이다.

사실은 시험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개팅이 바로 오늘이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동빈은 하루 종일 들뜬 상태였다.

“이제는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편히 가지라우.”

송 교관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이제부터가 중요한 순간인 모양이었다. 뿔테 안경을 살짝 치켜올리며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렇지, 아주 좋아.”

특수 카메라로 찍은 모양이었다. 동빈의 몸이 여러 색상으로 구분되었다. 측면에 있는 공간에는 각종 그래프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내가 멍청했지. 세월이 변하면 환경도 변하는 기야. 옛날 방식으로 무식하게 가르치기는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 것이지.”

계기판이 안정을 찾자 송 교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동빈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했다.

“러시아를 탈출하고 곧장 남한으로 왔지. 북쪽보다 인구도 많고 특히 인체 과학이란 것이 마음에 들었지. 늦은 나이에 이렇게 복잡한 기계나 만지는 수고를 알간?”

“…….”

동빈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는 완전한 무아지경으로 빠져 들었다.

“나도 궁금해죽겠어야. 내가 특이해서 알 수 없는 기를 가진 것인가. 아니면 내가 배운 살극무가 불완전한 것이었는가. 이 모든 것을 너를 통해 밝혀낼 것이야. 넌 충분한 가능성이 있거든…….”

송 교관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있었다. 모니터를 주시하는 얼굴도 한층 밝아진 상태였다. 늦은 나이에 공부한 보람을 찾았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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