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9/224)

우르르.

학생들이 한꺼번에 교문을 빠져나왔다. 하교 시간은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학교를 벗어날 수 있어 좋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기쁜 표정, 심각한 표정, 모두가 제각각이었다. 시험의 결과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행동을 보였다.

“동빈아, 너무 실망하지 마라.”

“그래, 내일 잘 보면 되잖아.”

“…….”

동빈의 어깨는 한없이 처져 있었다. 주철과 석진이 어깨를 걸치며 위로해도 소용없었다.

‘결국… 두 번째 과목까지 망쳤단 말인가! 상황이 좋지 않아… 이대로 가면 목표를 달성할 수 없어.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지? 모르는 문제는 과감히 지나쳤는데…….’

아는 문제를 우선 풀고 모르는 것은 찍는 작전을 썼다. 확실한 정답을 분석하여 가장 배분이 적은 번호를 찍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모르는 문제가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

‘과목 자체를 포기했어야 했어…….’

뒤늦은 후회.

과목당 똑같이 공부 시간을 배분한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자신 있는 첫 번째 과목에 집중했어야 했는데… 욕심을 너무 부렸던 것일까. 두 과목을 모두 망친 비참한 성적을 거두고 말았다.

“저놈은 정한수잖아?”

“정한수!”

동빈은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언제나 괴롭힘을 당했기에 반사적으로 보인 행동이었다.

“같이 있는 놈은 누구야?”

“강창도 선배잖아. 작년에 짤렸다고 하던데?”

동빈은 주철과 석진의 대화를 경청했다. 첫 번째 골목길에서 정한수 패거리가 누군가와 만나고 있었다.

“생김새를 보니 완전 생양아치구만.”

“생양아치 맞아. 학교 짤리고 뭐 할 게 있겠어? 툭하면 정한수나 찾아와서 개폼이나 잡지. 지금은 한수도 죽을 맛이라는 소문이야.”

동빈이 보기에도 정한수는 그리 반기는 얼굴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선배 대우를 해주는 모습이었다.

“내일 한수 놈이 또 난리 치겠군.”

“맞아. 괜히 선배에게 당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화풀이하잖아.”

덜컥.

동빈은 가슴이 주저앉는 느낌이 들었다.

괴롭힘의 대상?

모두가 인정하듯이 동빈이 바로 1순위였다.

‘곤란한데… 내일 시험까지 망치면…….’

평상시라면 그냥 도망치면 된다.

그러나 내일은 시험이다.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괴롭힐 것인지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석진아, 주철아! 미안한데 나 먼저 갈께.”

“무슨 소리야? 주철이 집에서 공부하기로 했잖아!”

“먼저 가있어. 곧 뒤따라갈게.”

동빈은 부리나케 뛰어갔다.

좀 전에 내려온 길을 거꾸로 올라서는, 정한수 패거리가 들어간 골목으로 사라졌다.

부석부석.

동빈은 조심스럽게 정한수 패거리의 뒤를 밟았다.

고공이나 해상 침투는 많이 했지만 미행은 처음이다.

상당히 어색한 행동으로 뒤를 쫓았으나 결정적인 순간만은 놓치지 않았다.

화악.

거들먹거리며 걷던 양아치가 뒤를 돌아보았다. 함께 걷던 정한수 패거리도 놀랄 정도로 갑작스런 동작이었다.

“창도 형님, 무슨 일이에요?”

“이상하다. 누가 따라오는 것 같았는데?”

강창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나가는 개조차 없었다. 좁은 골목길이라 숨을 곳도 마땅치 않은 장소였다.

“놀랐습니다, 형님.”

“내가 조금 예민했나 보다. 후딱 가자.”

양아치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길을 재촉했고 정한수 패거리가 따라붙었다. 간혹 뒤를 돌아보는 놈들이 있었지만 한가한 골목길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잠시 후.

골목이 굽어지는 지점에서 동빈이 고개를 내밀었다.

“후아∼ 들킬 뻔했잖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타고난 반사 신경 덕분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조심해야겠다.”

동빈은 주변을 살피며 다시 길을 재촉했다. 처음보다는 약간 더 거리를 두고서 미행을 계속했다.

정한수 패거리들은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명성고 학생들이 몰래 담배를 피우는 장소였다. 가끔 아이들을 끌고 와서 벌을 주기도 하는, 그들만의 공간이었다.

“한수 너… 날 보는 표정이 과히 좋지 않다?”

갑자기 뒤돌아선 강창도가 불쑥 물었다. 정한수는 약간 당황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뭐, 뭘요… 저희가 형님을 얼마나 존경하는데…….”

“아니면 됐고… 니가 돈 좀 걷어봐. 형님이 급히 쓸데가 있거든.”

“예, 예…….”

명령을 내린 강창도는 담배에 불을 붙였고 정한수는 자신의 패거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너 얼마 있어?”

“미안하다. 별로 없는데…….”

“씨발, 그거라도 줘봐. 진수 넌?”

“나도 이것밖에 없어.”

‘쯧쯧쯧. 학생들에게 강제로 돈을 빼앗더니… 결국 너희들도 비슷한 신세였구나.’

동빈은 안전한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약자에게 돈을 빼앗고 강한 자에게 상납하는 장면이었다. 약육강식의 고리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장면이었다.

“창도 형님. 여, 여기… 많이 모으지 못해 죄송합니다.”

정한수는 급하게 모은 돈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금액이 충분치 않다는 뜻이었고 강창도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새끼가 누굴 거지로 아나…….”

“죄송합니다, 형님. 시, 시험 기간이라…….”

“시험이 무슨 상관이야, 시팔! 네놈들이 공부라도 하는 거야. 앙!”

강창도가 격양된 반응을 보이자 정한수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명성고 일진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그, 그게 아니라… 수금할 애들이 공부한다고…….”

“지랄을 떨어라, 이 개새끼야!”

퍼억.

험악한 분위기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강창도는 가차 없이 정한수의 배를 강타했다. 배를 움켜쥐며 쓰러지는 정한수의 모습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혀, 형님… 왜, 왜 이러세요. 제, 제발 때리지 마세요.”

“너 평소에도 나한테 불만이 많았지?”

“아, 아닙니다. 창도 형님.”

강창도는 한 대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쓰러진 정한수 주위를 빙빙 돌면서 계속 트집을 잡았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 새끼야. 내가 학교 다닐 때 얼마나 잘해줬는데 말이야.”

“무, 물론이에요, 형님. 제가 형님을 얼마나 존경하는데요.”

“은혜도 모르는 썅노무새끼! 날 존경하는 새끼가 이것밖에 못해? 이걸 그냥 확!”

“자, 잘못했어요, 형님.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정한수의 추태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잔뜩 겁에 질려서 강창도가 손만 들어도 움찔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몰래 지켜보는 동빈이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뭐야 저 자식? 약한 학생들 때리면서 기고만장했을 때는 언제고…….’

이리도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정한수의 비굴한 모습이 역겹게 느껴졌다. 저런 놈한테 도망 다닌 자신이 괜히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수는 물론이고 너희들도 모두 잘 들어. 한 시간 뒤에 다시 올 거야. 네놈들이 선배한테 잘못한 만큼 정성으로 보답하란 말이다. 알아듣겠어, 이 개썅노무새끼들아!”

“형님. 어, 얼마나…….”

“이런 개새끼를 봤나? 내가 얼만지 꼭 말해야 돼!”

강창도는 담배까지 내던지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말보다 확실한 방법이 분명했다. 정한수 패거리는 화들짝 놀라며 연방 굽실거렸다.

“아, 아닙니다, 형님. 제가 실수했습니다.”

“오늘 하우스 갈 거니까 늦지 않게 준비해. 알았어!”

큰 소리를 치며 과격하게 돌아서자 효과는 더욱 커졌다. 정한수 패거리는 강창도의 뒷모습을 향해 계속 고개를 숙였다.

“아, 알겠습니다, 형님. 늦지 않게 준비하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돈을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강창도의 얼굴이 환해지는 순간이었다.

“두고 보겠어. 정확히 한 시간이야.”

강창도는 더욱 어깨에 힘을 주고 걸었다. 얼굴에는 매우 흡족한 미소까지 감돌았다.

‘정말 기분 나쁜 웃음이네. 그런데 어디를 간다고? 하, 하우스? 집에 가면서 왜 돈이 필요하지? 생긴 것과 다르게 가정적인 놈인가?’

동빈은 전봇대 뒤에 숨어 강창도가 지나치는 장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우스가 직역 그대로 집은 아니었다. 놀음판을 의미했지만 동빈이 모르고 있었다.

‘한수가 괴로워지면 나도 괴로워진다. 저렇게 비굴한 놈을 돕기는 싫지만…….’

뒷말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잠시 주변을 살펴본 동빈은 곧바로 강창도의 뒤를 따랐다.

강창도는 휘파람을 불며 골목길을 지났다. 헐렁한 바지에 양손을 넣은 채 발걸음도 가볍게 걸었다. 공돈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오늘은 재수가 좋아. 저번처럼 포카 한번만 뜨면…….”

판돈을 쓸어 담던 기억이 떠올랐다. 강창도의 얼굴이 더욱 밝아지고 있었는데, 그때였다.

멈칫.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는 강창도. 누군가 자신을 따라온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시팔! 아까부터 계속 더러운 기분이네…….”

평범한 삶은 아니었기에 뒤를 조심하는 습관이 붙었다. 이런 느낌이 바로 그 증거였다.

“아, 아니겠지… 요즘 돈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가?”

뒤를 돌아보려 하다가 이내 포기하는 모습이었다. 언제나 돈이 문제였고 노름을 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아까도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다시 길을 가려 했지만 이상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시팔! 아무래도… 뭔가 수상한데!’

휘익.

강창도는 길을 다시 가는 척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느낌이 맞았다. 누군가 자신을 노리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었다.

“……!”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뭐’됐다는 생각뿐이었다.

얼굴을 향해 삭막하게 날아오는 발차기 공격. 강창도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제, 젠장…….”

엄청난 충격을 예상했는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상태였다.

후웅.

세찬 바람이 얼굴을 타고 지나갔다. 강창도의 머리카락은 심하게 흔들렸다. 이제는 얼굴이 박살 나는 것만 남은 것이다.

“뭐, 뭐지?”

아무런 느낌도 없다. 흩날렸던 머리카락도 이미 제자리를 찾았지만 어떠한 충격도 느껴지지 않았다.

찔끔.

조용히 눈을 떠보니 눈앞은 여전히 캄캄했다. 신발 바닥이 눈앞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도 가능한 것인가!’

일부러 자신의 눈앞에서 멈춘 것이 확실했다.

이런 경지의 발차기는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강창도의 등골이 절로 오싹해지는 순간이었다.

“너, 너는 누구냐!”

“내가 누군지 알 필요는 없지.”

강창도는 자신을 공격한 상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조금씩 물러서며 시야를 확보하려 했지만, 눈앞의 신발을 떨칠 수는 없었다. 믿을 수 없다. 강창도의 시야를 따라 상대의 발도 정확히 움직였다.

“네놈이 누군지 알아야…….”

“많이 알면 다쳐. 그리고 거기까지. 더 이상 움직이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강창도는 또다시 움찔했다. 정체를 파악하려는 자신의 의도를 들키고 말았다. 이제는 불안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누, 누군지는 몰라도… 나, 나한테 불만 있어?”

“불만은 아니고 충고 좀 하려고.”

“추, 충고? 무슨 말인지 들어는 봐야겠지…….”

강창도는 순순히 충고를 듣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맞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학교를 졸업했으면 아니, 짤렸으면 끝이잖아? 왜 쓸데없이 학생들을 괴롭히는 거야?”

“뭐, 뭐라고?”

강창도의 눈 주위가 심하게 일그러졌다. 설마 학교 후배에게 당하는 것인가? 언뜻 보았던 교복이 낯익은 것이었다. 얼굴을 감추려는 행동 또한 수상했다.

“선배면 선배답게 굴어야지. 후배에게 돈이나 빼앗는 짓이 정당하다고 생각해?”

“너 이 새끼… 명성고 놈이지. 어떤 새낀지 얼굴 좀 보자!”

강창도는 독기를 품고 달려들었다. 학교는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후배에게 겁먹었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완전히 끝장이었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

투욱.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지만 동빈은 당황하지 않았다. 동빈은 뻗고 있던 발로 강창도의 얼굴을 밀어냈다. 가격을 한 것이 아니라 충격은 없었다. 강창도의 고개가 뒤로 젖히는 정도였다.

“크윽! 이 새끼, 잡히기만 하면…….”

강창도는 중심을 잡고 사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버릇없는 후배의 얼굴을 못 본 것이 아쉬웠는데, 누군가 자신의 목을 잡고는 귓속말로 속삭이는 것이다.

“움직이지 마. 반항하면 목이 부러지는 수가 있어.”

“……!”

강창도는 경기를 일으킬 만큼 놀랐다.

감정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목소리. 반항했다가는 정말 목이 부러질 것 같았다.

“나도 시험공부 해야 하니 짧게 말할게.”

“이런 미친새끼. 선배에게 이런 짓을 하고 학교생활 제대로 할 것 같아!”

“학교생활 제대로 하려고 이러는 거야.”

위협은 통하지 않는다. 이런 하찮은 위협이 통했다면 선배를 공격하는 미친 짓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놈은 대체 누구지? 내가 모르는 놈은 확실한데…….’

학창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지만 비슷한 후배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강창도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고 동빈의 충고는 계속되었다.

“한 가지만 약속하면 풀어주지. 학교 애들 괴롭히지 마. 다시는 이 근처에 얼씬거리지 말라는 소리지.”

“세상 물정 모르는 놈 같은데 말이야, 후배는 선배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거야. 솔직히 돈 몇 푼 뜯는 짓은 아무것도 아니야. 나도 선배들에게 지겹게 당한 일이야.”

“학교가 무슨 군대야? 무조건 복종하게?”

“군대보다 더 무서운 게 선후배 관계인 거 몰라? 후배 놈들은 심하게 다뤄야 기강이 잡힌단 말이야!”

“군대도 안 갔다 온 놈이 별소리 다 한다. 요즘 군대도 많이 바뀌고 있거든. 아직도 더 변해야 하겠지만…….”

“이런 시팔! 너는 군대 갔다 왔냐! 선배는 하늘이야!”

강창도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다. 주머니를 뒤지는 모습이 매우 수상하게 보였다.

“하여튼 너 같은 놈 때문에 학교와 군대가 욕을 먹는 거야. 잘못된 것은 바로 고쳐야지. 악습은 자랑이 아니거든.”

“이 새끼가 장난하나… 내가 누군지 알고!”

철컥.

이상한 쇳소리. 강창도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잭나이프였다. 날카로운 칼이 튀어나오고, 그것은 곧바로 동빈의 등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텁.

완벽한 동작이었는데 소리가 이상했다. 찌른 느낌도 없고 칼끝도 허전했다. 아니, 느낌은 있지만 칼끝이 아니라 손목이었다.

“뭐, 뭐야…….”

강창도는 어이없는 반응을 보였다. 동빈의 손아귀에 잡혀서 꼼짝도 못 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도 중학생하고 똑같구나. 아니, 이러면 중학생들이 욕하겠지… 다시 수정하지. 너도 철없는 중딩하고 똑같구나.”

우두둑.

“크악!”

동빈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강창도는 비명을 질렀다. 손목이 으스러지는 고통이라 미칠 것만 같았다.

땡그랑.

“시팔! 그, 그만! 크악…….”

강창도가 칼을 놓았지만 동빈은 손아귀의 힘을 풀지 않았다. 확실한 약속을 받겠다는 행동이었다.

“다시 학교에 올 거야, 말 거야.”

“시팔! 노, 놓고 말해!”

“대답하면 놓아준다니까.”

“시, 시팔! 놓으면 말한다니까!”

강창도는 독종이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학교에 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 충고야. 정말 손목 부러지고 싶어?”

“크악! 이 새끼… 주, 죽여버린다. 나도 이 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야!”

빠악!

강창도는 뒤통수로 박치기를 시도했다. 수많은 싸움을 했기에 잔기술은 뛰어났다. 손목을 쥐고 있는 동빈의 손이 느슨해지는 것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끄악!”

“내 주먹에 박치기하는 놈은 처음이네?”

비명은 동빈이 아니라, 박치기를 시도한 강창도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산전수전山戰水戰.

산과 물에서 싸웠다는 것으로, 온갖 고생과 시련을 겪어 경험이 많다는 뜻이다.

동빈이야 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진짜 공중전도 벌인 적이 있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머, 머리 좀 만져줘… 존나 아파…….”

“말해! 다시 학교에 올 거야, 말 거야.”

“시파!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단 말이야!”

“그러니까 말해! 다시 올 거야, 말 거야.”

“아, 알았어. 시파! 존나 치사해서 안 가!”

강창도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고, 한마디로 죽을 맛이었다.

“진작 이렇게 나왔으면 서로 편하잖아.”

화악.

동빈은 강창도를 떠밀었다. 간신히 풀려난 강창도는 머리를 매만지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벅벅벅벅.

“크윽… 졸라 아파… 크윽…….”

아무리 비벼도 고통이 가시지 않는 표정이었다.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분명히 약속했다. 다시는 학교에 나타나지 마라.”

동빈은 재빨리 등을 돌렸다.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는 방편이었지만 강창도에게는 반격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 개새끼… 내가 누군지 알아!”

머리를 벅벅거리던 강창도가 몸을 일으켰다. 고통이 가시니 후배한테 당했다는 쪽팔림이 몰려왔다.

“씨발새끼. 어떤 놈인지 면상이라도 보자!”

‘쯧쯧쯧. 대충 맞아서는 정신을 못 차릴 놈이었군.’

대책 없이 달려드는 강창도의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동빈은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기에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적당한 거리라고 판단되는 순간,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퍼억.

우당탕탕.

동빈은 깔끔한 뒤돌려차기로 마무리를 했다.

제대로 힘을 실었기에 강창도는 벽까지 날아가서 기절했다. 엉망이 된 얼굴에는 진한 피가 흘러내렸다.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신세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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