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4/224)

뛰자! 뛰자! 뛰자!

책가방을 멘 동빈은 내리막길을 질주했다. 타고난 운동 신경과 상상조차 못 하는 훈련을 받았기에 엄청난 속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화아앙.

큰길로 들어서자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마을버스 정류장과 가까워지면서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학생들이 한 명도 없다? 확실히 늦었다는 증거였다.

끼이익.

거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마을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한 무더기의 학생들이 아우성을 치며 내렸다. 첫날부터 지각하는 사태를 면해보자는 발악이었다.

“늦었다! 뛰어!”

“나 몰라. 첫날부터 지각이야!”

여학생들은 포기한 듯 보였고 남학생들은 눈썹이 휘날리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는 동빈의 표정이 밝아졌다.

‘좋아! 가능성은 충분하다. 포기하지 말자!’

시계를 차는 것을 깜박했기에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다. 열심히 뛰는 학생들을 보자 답답했던 마음이 풀어진 것이다.

와르르.

뒤엉켜 뛰는 학생들의 모습은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측으로 꺾었다. 한참이나 뒤처져 있던 동빈은 중간까지 치고 올라온 상태였다.

“헉헉… 나는 포기… 헉헉… 젠장할… 우리 학교는 왜 이리 높은 곳에 있는 거야. 헉헉…….”

학생들은 가파른 언덕길을 넘어야 하는 난코스에 봉착했다. 지쳐서 포기하는 학생들이 속출했지만 동빈은 더욱 속력을 높였다. 군에 있을 때의 훈련과 비교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덜컹덜컹.

정문이 닫히기 시작한다. 한쪽 문이 완전히 닫히면 지각이라는 불명예를 쓰게 되었다.

동빈이 박차를 가해 튀어나가자 육상 선수보다 빠르게 느껴졌다.

“젠장! 저놈은 뭐 저리 빨라!”

교문은 점점 좁아지고 추월당한 학생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동빈처럼 달릴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가 원망스럽다.

촤르르.

동빈은 간발의 차이로 교문을 통과했다. 얼마나 속도를 높였던지, 흙먼지를 풍기며 한참이나 미끄러지는 장관을 연출했다.

쿠웅.

“헉헉… 다, 다행이다.”

동빈은 굳게 닫힌 교문을 돌아보면서 숨을 골랐다. 개학 첫날부터 지각하는 사태는 면한 것이다. 흐트러진 복장을 간추리고는 교실로 가려 했지만 누군가 동빈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김동빈. 방학 동안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구나.”

체육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있었다. 동빈의 달리기 솜씨가 매우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우리 학교에 육상부가 없는 것이 한이구나. 기특한 놈… 저번보다 훨씬 빨라졌어.”

“과, 과찬이십니다.”

동빈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칭찬이 싫은 것은 아니다. 주변의 이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었다.

“동빈아, 이쪽으로 오너라. 이놈들한테 학생의 참모습을 보여줘야겠다.”

“아, 알겠습니다.”

하늘 같은 선생님의 명령인데 어찌 거역하겠는가! 동빈은 썩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체육 선생을 따랐다.

“이놈아! 너는 머리 모양이 이게 뭐야! 방학 동안 길렀으면 잘라야 할 것 아니야! 학생이면 학생다운 머리를 해야 하는 것도 모르냐? 여기 있는 동빈이를 봐라, 얼마나 단정해 보이냐?”

‘우와! 상당히 부담스럽다.’

체육 선생은 동빈의 든든한 후원자였지만 때로는 과도할 정도의 애정을 표시했다. 두발 불량으로 잡힌 학생들에게 동빈의 스포츠형 머리를 본보기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네놈들 말이야. 양아치냐? 누가 교복을 이따위로 입으랬어? 이렇게 입으면 교칙 위반인 거 몰라? 여기 있는 동빈이를 봐라. 얼마나 깨끗하고 단정해 보이냐? 학생이라면 학생답게 꾸미고 다녀야지!”

‘선생님, 제발 그만 하세요. 저는 아이들의 눈빛이 걱정이에요.’

동빈은 교칙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았다. 칭찬을 받아 마땅했지만 원만한 학교생활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차갑게 노려보는 눈빛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걸린 놈들 모두 잘 들어. 학생이 공부를 못하면 행동이라도 제대로 해야 할 것 아니야. 학교 망신시키지 말고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여기 동빈이를 봐라. 공부는 좀 못하지만 운동 하나는…….”

“저기… 선생님.”

“무슨 일이냐?”

훈계를 하던 체육 선생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예의 바른 동빈이가 선생의 말을 끊다니! 체육 선생은 의아한 눈빛으로 동빈을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많이 늦어서… 곧 수업을…….”

“미안 미안. 동빈이는 어서 들어가, 어서. 조심해서 들어가라.”

체육 선생은 애정이 듬뿍 담긴 말투로 동빈을 보냈다. 매우 자상한 눈빛과 행동. 그러나 교칙 위반으로 걸린 학생들을 대할 때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너희들은 당장 엎드려!”

와르르.

체육 선생의 추상같은 질타에 학생들은 혼비백산했다. 걸리면 죽는다. 체육 선생의 악명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나에 복장, 둘에 불량. 알겠지? 하나!”

“복장─.”

“둘!”

“불량─.”

학생들은 체육 선생의 구령에 맞추어 팔굽혀펴기를 했다. 체육 선생이 눈을 부릅뜨고 있기에 요령을 피울 수도 없었다.

‘휴우∼ 이젠 애들한테 눈총 받을 이유가 없겠지.’

동빈은 안도의 한숨을 지으며 교실로 향했다. 체육 선생이 더 이상 자신을 언급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이것들이! 얼마나 됐다고 벌써 후들거려! 평소에 운동을 하란 말이다. 공부 때문에 운동 못 해? 노상 컴퓨터에 앉아있으니 문제란 말이다. 저기 가는 동빈이를 봐라. 세 시간 동안이나 팔굽혀펴기를 해도 끄떡없었어.”

‘우와! 진짜 이런 칭찬은 싫다.’

동빈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서둘러 교실로 들어가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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