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훈련 마지막 날.
모든 일정이 끝나고 거나한 뒤풀이가 이어졌다. 술잔을 서로 주고받으며 개인적인 일상을 꺼내놓았다.
“이야∼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딸아이가 눈에 아른거려 죽는지 알았네.”
“나는 이상하게 훈련만 들어오면 마누라가 예뻐 보이지? 훈련 오기 직전까지 대차게 싸웠는데 말이야.”
“그건 좋은 증상이야. 나는 군대만 오면 배가 고파 미치겠어.”
한때는 군대밖에 모르던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사회생활에 더 익숙한 상태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냥 즐겁다는 얼굴이었다.
“막내야, 너도 한잔 받아라.”
“저는 사이다면 됩니다. 아직 학생이라…….”
“괜찮아, 괜찮아. 여기서는 상관없어.”
“교칙에 위반됩니다. 학생은 술을 마실 수 없습니다.”
모두가 술잔을 주고받을 때 동빈은 사이다를 홀짝거렸다. 덥수룩한 수염의 예비군이 괜찮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동빈이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자 더 이상 술을 권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막내는 좋겠다. 고등학생이라… 나는 학교 다닐 때 만날 싸움만 했거든. 그래도 일찍 정신 차렸으니 이 정도라도 성공했지.”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열심히 공부만 할 거야. 괜히 이상한 놈들과 어울리다가 사고 친 적도 몇 번 있었지. 깜씨 자네는 어때?”
“저는 그냥 무술만 연마했습니다. 깝치는 놈들 몇 번 혼내주기는 했지만… 가소로워서 상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학창 시절로 이어졌다. 실제 학생은 동빈밖에 없건만 다른 사람들이 더욱 신이 난 모습이었다.
“참! 요즘은 일진인가 뭔가가 문제라며?”
“어린놈들이 심심해서 만든 거 아니야? 언론 때문에 너무 과장된 것 같은데?”
“내가 학창 시절로 돌아가면 그런 놈들은 다 죽었다. 예전에는 사내답게 싸우는 맛이 있었는데 말이야, 요즘은 개념 없는 놈들이 워낙 많아서 문제야.”
“우리 막내는 어때? 만날 애들 패고 다니는 것 아니야?”
“조심해라, 막내야. 웬만하면 참는 게 좋지. 네 주먹에 맞으면 진짜 병신 되기 십상이다.”
이제야 사람들은 동빈에게 관심을 두었다. 나이 어린 무술 고수의 학창 생활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동빈의 무력이 너무 강해서 문제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입니다. 함부로 싸우면 안 됩니다.”
“정말 대단한 놈일세? 그것도 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냐?”
“장군님… 아니, 아버님의 명령입니다.”
동빈이 민간인이 된 지도 어언 반년이 흘렀다. 이제는 명령에 죽고 사는 신분이 아니지만, 장군의 명령은 여전히 절대적인 것이었다.
“막내야, 싸움은 피한다고 좋은 게 아니야. 기어오르는 놈은 가끔씩 밟아줘야 해.”
“맞아. 나도 무술만 연마하고 싶었지만 이상한 놈들은 꼭 있었어. 그러나 제대로 한번 실력을 보여주면 절대 건들지 않았지.”
“너무 걱정이 지나친 거 아니야? 설마 막내가 맞고 다니겠어?”
“하긴, 아무리 개념 없는 일진들도 사람 봐가며 건들겠지.”
진심 어린 충고가 아니라 농담에 가까웠다. 그러나 동빈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휴우∼ 이틀 뒤면 개학이구나. 차라리 이곳이 편한데…….’
불안한 마음을 감추려는지 사이다만 계속 홀짝거렸다. 혹독한 특수 훈련보다 학교생활이 더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부르르.
동빈의 불안한 마음은 더욱 심해졌다. 음료수를 잡은 손에는 작은 경련까지 일어났다.
누구나 경험하는 학창 생활. 그러나 동빈은 포기한 지 오래였다.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신분이기에 남들과 똑같은 생활은 꿈같은 일이었다.
동빈이 철이 들 무렵인가, 자신이 왜 군대에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
작년 겨울.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는가? 동빈은 뜻하지 않는 제대 명령을 받았다.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이상하네? 오늘은 사람들이 없잖아?”
동빈의 학교생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에 편입하고 한 학기가 지나도 여전히 낯설기만 했다.
두리번두리번.
동빈은 텅 빈 화장실로 들어섰다. 평상시면 북적거려야 할 장소가 너무나 조용했다.
‘아무래도 수상해… 분명히 뭔가 있다!’
동빈의 동물적인 감각이 실력을 발휘했다. 누군가 자신을 노려보는 느낌. 화장실은 텅 비어 있건만 확실히 혼자는 아니었다.
쾅! 쾅! 쾅! 쾅!
“……!”
동빈이 몸을 돌리는 순간 화장실 문이 열렸다. 누군가 동빈을 노리는 것이 분명했다.
“재수 없는 새끼. 이번에는 도망치지 못할 거다.”
“김동빈, 어디 한번 쌩까보시지.”
학생들은 험상궂은 표정으로 동빈을 위협했다. 오늘은 한두 명이 아니다. 작정을 하고 왔는지 쇠 파이프와 몽둥이까지 들고 있었다.
“대화로 해결하자. 우린 학생이잖아.”
“미친 새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지.”
동빈은 조심스럽게 뒷걸음쳤다. 공간은 협소하고 상대는 너무 많았다.
‘계속 물러서면 불리하다. 뚫고 나가야 하는데…….’
화장실 출입문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탈출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너 이 새끼… 예전부터 밥맛없었어!”
후웅.
학생들은 다짜고짜 쇠 파이프를 휘둘렀다. 동빈은 고개를 숙여 피했고 애먼 화장실 문이 박살 났다.
와지직.
파편이 튀면서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동빈을 잡으려는 학생들이 한꺼번에 뛰어들었다.
“저놈 잡아! 오늘은 반드시 버릇을 고쳐주마!”
“내 버릇이 뭐가 어때서?”
동빈은 혼란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가장 앞에 있는 학생을 밀어붙이며 출입문으로 내달렸다. 협소한 공간이기에 쏟아지는 몽둥이는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거의 다 왔다. 저기만 빠져나가면…….’
워낙 단련된 몸이라 이 정도 고통은 참을 수 있었다. 화장실 밖으로 나가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더욱 거세지는 학생들의 공격을 감수하며 한 발 한 발 전진했다.
“뭐, 뭐야? 오늘은 정말 작정하고 온 거야?”
간신히 화장실을 빠져나온 동빈은 경악하고 말았다. 화장실 복도 양편으로 다른 놈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동빈을 잡기 위해 몰려든 것 같았다.
쩌벅쩌벅.
양쪽에서 진을 치고 있던 놈들이 서서히 접근했다. 설상가상인지 화장실에 있던 놈들도 하나 둘 빠져나왔다. 더 이상 뚫고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방법은 하나. 창문을 통해 나가는 것밖에 없었다.
드르륵.
급하게 창문을 열고 몸을 띄웠다. 학생들이 혈안이 되어 달려왔지만 도망칠 시간은 충분했다.
“얘들아! 다음에 보자고. 안녕∼.”
동빈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손길을 피해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이렇게 빠져나가는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오늘은 뭔가 다르다.
“마, 말도 안 돼! 여기가 4층이었어?”
너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음을 깨달았다. 화장실이 있는 곳은 분명 2층이 아니던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학교생활 적응하기 진짜 힘드네. 화장실을 언제 옮긴 거야∼!”
동빈의 처절한 외침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대변했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신세였다. 학교 건물 4층이 이렇게 높은지도 새삼 깨달았다.
쿠웅.
엄청난 소리와 함께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다, 다행이다. 목숨을 건진 것 같은데… 여, 여기는…….’
다행히 학교 건물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눈을 떠보니 자기 방 천장이 보였다. 악몽을 꾸고 침대에서 떨어진 것이 확실했다.
‘하긴… 학교 애들이 전부 날 잡으려고 달려들 리 없겠지.’
요즘은 꿈과 현실도 구분을 못 했다. 학교 내에서 쇠 파이프와 몽둥이가 등장할 리 없었다.
철컥.
“괜찮네? 왜 이리 요란스럽게 일어나는 기야?”
문이 열리면서 자그만 체구의 노인이 들어왔다. 북한 말투와 남한 말투가 뒤섞인 묘한 어투를 구사했다.
“교관님, 죄송합니다. 침대에서 떨어졌습니다.”
“기왕 일어났으니 날래 내려오라우. 장군님도 오셨으니 다 같이 밥이나 먹자우.”
“그, 그런데… 지금 몇 시입니까?”
“글쎄? 8시 좀 넘었지 아이가?”
“8시가 넘었으면…….”
완벽한 지각이다! 개학 첫날부터 지각하는 사태에 봉착하게 되었다.
화들짝.
동빈은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켰다. 세수는 필요 없다. 옷만 챙겨 입어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왜 이리 서두르네?”
“오, 오늘이 개학 날입니다. 교관님이 좀 깨워주시지요!”
“내래 아직도 방학인지 알았지.”
누굴 원망할 시간도 없었다. 동빈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없이 움직였다. 군대에서 비상이 걸린 상황과 흡사했는데…….
“동빈아, 학교 가는데 왜 군복을 입고 난리네?”
“크윽! 마, 맞다. 훈련이 아니지.”
교복과 군복도 구분을 못 하다니… 아직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쯧쯧쯧… 군에서는 똑똑했던 놈이 말이야, 사회에서는 완전히 고문관이 됐구만. 날래 끝내고 내려오라우.”
노인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방을 나섰다. 동빈이 학교에 적응하는 기간이 예상보다 훨씬 더뎠기 때문이다. 이처럼 훈련이라도 갔다 오면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
사투리 노인은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에서 내려다보는 거실 풍경은 매우 고풍스럽다. 검정색 피아노가 햇볕 좋은 창가에 놓여있었고 반대편 소파에는 장군이 앉아있었다.
우당탕탕.
아무리 위층이 시끄러워도 장군은 묵묵히 신문만 읽었다. 노인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제야 신문을 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아침부터 요란하군요. 동빈이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별거 아닙니다. 오늘이 개학 날이라고 하더군요.”
노인은 최대한 사투리를 자제했다. 장군에게는 서툴러도 표준말로 대답하는 성의를 보였다.
“개학? 벌써 그렇게 됐습니까?”
“그런가 봅니다. 장군께서도 신경 좀 쓰시지요.”
“글쎄요. 이것이 나의 평소 모습입니다.”
“…….”
수양아들이라 차별하는 행동은 아니었다. 장군은 무심한 아버지의 표상이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친아들에게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는 뜻이었다.
쿵쿵쿵쿵.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어색한 침묵을 깼다. 동빈은 두세 칸씩 건너뛰며 급하게 계단을 내려왔다.
“다, 다녀오겠습니다, 장군님.”
“아무리 급해도 복장은 신경 써라.”
“알겠습니다.”
동빈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잡았다. 아무리 급해도 장군의 명령은 지켜야 했다.
“공부를 못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이거 한 가지는 반드시 명심해라. 절대로 학생들과 싸우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절대로 학생들과 싸우지 않겠습니다.”
장군의 이상한 명령도 동빈의 힘든 학창 생활을 한몫 거들었다. 학생들과는 절대로 싸울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 한해서란 제약이었다. 학생의 범위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동빈에게 달려있었다.
“늦었다고 했지. 어서 가봐라.”
“네, 알겠습니다.”
허락이 떨어지자 동빈은 현관으로 뛰어갔다. 곧이어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동빈이 신발장을 뒤지는 기척이 확실했다.
“전투화 신지 말라우!”
사투리 노인은 불안한 느낌이 들었는지 현관을 향해 소리쳤다. 군복도 모자라서 전투화까지 신었을까?
순간적인 정적.
요란했던 소음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노인의 불길한 예상이 적중했다는 증거였다. 다시 신발을 갈아 신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진짜로 다녀오겠습니다.”
쿠웅.
동빈이 현관을 나서자 노인은 긴 한숨부터 토했다. 국가에서 키운 비밀 병기? 국민들의 세금만 낭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휴∼ 아침부터 전쟁이구만기래.”
현관을 바라보던 노인이 장군에게 시선을 돌렸다. 조용히 신문만 읽고 있는 장군을 바라보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장군님, 오랜만에 차나 한잔하시겠습니까?”
“좋지요. 송 교관이 부탁하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동빈이가 등교할 때마다 전쟁을 치르는 느낌입니다.”
장군은 읽던 신문까지 내려놓으며 흔쾌히 승낙했다. 무심한 듯 행동했지만 장군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녹차가 탁자 위에 놓였다. 장군은 여유롭게 몇 모금 들이켰지만 노인은 김이 흐르는 찻잔만 바라볼 뿐이었다.
“송 교관, 왜 안 드시는 것입니까? 먼저 차를 마시자고 한 건 송 교관 아닙니까?”
“오늘은 아침부터 덥군요. 뜨거운 차를 보니… 마시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면 차갑게 해서 내오라 할까요?”
“아닙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냥 장군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입니다.”
뜨거운 차는 분위기를 맞추려는 구실에 불과했다. 송 교관의 진짜 목적은 장군과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군에 대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요.”
“맞습니다. 상당히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장군님은… 동빈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
조금은 난감한 질문인가? 장군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제가 너무 주제넘은 질문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송 교관은 물어볼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의미로 질문한 것인지 도리어 내가 묻고 싶군요.”
“동빈이를 입양한 목적 말입니다. 저번에 하셨던 말씀이 마음에 걸려서 말입니다.”
“그냥 술김에 한 말이라고 치부하시면 됩니다.”
송 교관의 표정은 금방 어두워졌다. 장군이 어떤 사람인가? 아무리 사적인 술자리라도 빈말을 내뱉을 인물이 아니었다. 장군이 그렇게 많이 취했던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장군님, 먼저 간 아드님이 아직도 마음에 걸리십니까?”
“글쎄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장군의 대답은 조금 애매했다. 뭐든 확실하게 매듭짓는 그의 성격과는 맞지 않았다.
“저는 이해할 수가 없군요. 그렇다면 왜 동빈이에게 이상한 명령을 내리셨습니까? 폭력을 쓰는 놈들은 모두 다 부숴버리라고 명령하십시오. 그게 장군님이 원하시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나이가 들어도 송 교관의 과격함은 여전하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군인이 설쳐서 잘된 일은 아무것도 없지요. 내가 아무리 미쳤다고 해도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은, 동빈이가 진짜 학생이 되는 것입니다. 군인의 티를 완전히 벗고 보통 학생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지요.”
“그 다음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미리 결정을 내리고 싶지 않군요. 동빈이가 적응하는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려서…….”
날카로운 질문을 피하는 것인가? 아니다. 장군의 변명이 그리 틀린 말이 아니었다. 벌써 한 학기가 지났건만 동빈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군대로 따지면 완벽한 고문관이었다.
“동빈이가 적응을 못 해서 서운하십니까?”
“아니요.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빨리 적응하라고 명령을 내리면 어떤 수단을 써서든지 맞추려 하겠지요.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동빈이 스스로 깨닫는 것입니다.”
“동빈이가 군인의 티를 벗는다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원래 청소년은 반항이 심하지 않습니까? 장군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송 교관은 이제야 다 식은 찻잔을 집었다. 꽤나 시간이 흘렀기에 녹차의 김은 완전히 사라졌다.
“상당히 좋은 지적이군요. 군인의 티를 벗으면 더 이상 내 명령에 복종하진 않을 것이고… 그때는 아비로서 부탁을 해야겠지요.”
“재미있군요. 장군님이 부탁을 하신다고 하셨습니까?”
“이제 그만 합시다. 머리가 복잡하군요. 나는 차를 다 마셨으니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저는 조금 남았습니다.”
후룩.
송 교관은 다 식은 녹차를 한입에 들이켰다. 차를 마시는 게 아니라 그냥 물을 마시는 느낌이었다.
“식으니 조금 낫군요. 오늘따라 차 맛이 좋습니다.”
송 교관은 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장군과의 대화가 만족스럽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