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200화 (완결) (200/200)

[200] 200화.

[대통령 탄핵안 가결.]

파란만장.

만약 후세 사람들이 강명자 대통령에 대한 내용을 역사책에서 봤다면 딱 이렇게 표현할 것이다.

육군 장성의 딸로 태어나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의 딸이 되고, 모친의 죽음으로 퍼스트 레이디가 되었다.

아버지 또한 가장 믿는 사람에게 총격으로 죽고, 자신은 젊은 나이부터 이 모든 악조건을 뛰어넘어 결국 대통령의 자리까지 다시 오게 된 여성.

하지만 끝은 비극이었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성격 탓이었을까. 믿을 사람이 없었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둘 모두였을까.

그녀와 같은 인적 자산을 가진 사람은 드물었을 텐데,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탄핵안 가결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 곽한영은 대통령 선거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이한영은 전적인 지원을, 나는 약간 거리를 둔 채 형식적인 지원을 했다.

하지만 그의 뜻과는 다르게 큰 흐름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물심양면으로 전면에 나섰다면 모르겠으나, 그게 아닌 이상 결국 전생대로 가는 것이 순리인 듯했다.

“유 대표, 실망입니다.”

실망은 무슨.

하긴 곽한영의 입장에선 실망스런 지원이었을 것이다.

금전적인 것이야 내가 워낙 조심스러우니 없었고, 게다가 이한일이라는 든든한 금전적 후원자가 있으니 내가 나서지 않아도 충분했으리라.

옛날처럼 동네 노인정 봉투돌리기는 없어진지 오래다.

“역사를 가진 정당의 힘이란 역시 대단하네요. 하하.”

“그렇긴 해도 유 대표가 도와주지 않은 부분이 컸죠.”

“에이. 다음번이 있지 않습니까. 아직 젊으시니 나라를 위해 좋은 일 계속해 나가시면 언젠가는 분명 그 자리에 올라가실 겁니다.”

이 정도로 그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곽한영의 신당이 국회 내에서 이젠 제법 파워가 있는 3당이 되었다는 것.

전생에서도 지금 시점에는 거대 양당제에서 다당제 비스무리한 모습으로 바뀌기는 했으니 이것 또한 큰 흐름을 거스른 것은 아니라고 봐도 될까?

아무튼 강명자 대통령이 비선 실세와 그들의 국정 논란 문제로 탄핵됨과 동시에 그간 그 비선 실세들에게 지원을 해 온 대기업들도 같이 묶여 법정에 서게 되었다.

박재용 사장, 아니 이제 회장이 된 그가 제일 일선에 서서 판결을 받았다.

결과가 어땠냐고?

박재용 회장이 전생에서 본 모습과는 완전 다른 사람이었고, 그가 박승재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삼전 그룹을 맡은 뒤로 진행했던 이미지 개선 사업 때문에 여론 또한 그의 편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법은 그에게 있어서 전생처럼 날카롭게 적용되지는 않았다.

보통은 돈과 권력은 한 몸처럼 움직이지만 개인적으로 돈과 권력 모두를 잡고 싶진 않았다. 그 위치에 오르는 사람들은 다들 그만한 욕심과 포부가 있어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었다.

갑작스런 ‘파직’소리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한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고?

혹시라도 2017년, 내 생명이 다시 한 번 죽음의 골짜기 끄트머리까지 오게 된 그 시점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읊어 본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또다시 흰 머리 할아버지 앞에 앉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다시 죽진 않는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내가 언제?”

“지난번에 여기 왔을 때 그러셨잖아요?”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이 할아버지.

이젠 몇 번을 봐서 그런지 이 공간이 어색하거나 불편하진 않다. 오히려 여기만 오면 나이가 들면서 느끼던 체력 고갈이 사라진다고 해야 할까? 뭔가 어릴 때처럼 뭘 해도 힘이 남는 듯했다.

물론 여기서 뭘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그냥 텅 빈 공간과 나와 그뿐이었으니 말이다.

“죽은 거예요?”

이 정도 이뤘으면 마음이 꽉 차 있어야 할 것만 같은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뭔가 시원치가 않았다.

다만 몇 번 이곳에 다시 올 때처럼 ‘벌써 끝난 거야?’라는 생각은 들진 않았다. 그냥 이룰 것을 이뤘는데 다 못 이룬 듯한 찜찜함이 남아 있을 뿐.

“쯧쯧. 욕심도 많은 녀석 같으니라구.”

“전기가 위험한 것이었나? 얻어맞아서 여기 왔을 때는 곧바로 다시 돌려보내 주셨잖아요?”

생각해 보면 예전에 그가 ‘이런 식으로 죽진 않는다’라고 했던 말이 감전사를 의미한 것 같았다.

처음 죽었을 때가 드라이기로 머리 말리다가 감전되어 죽었던 것이니, 나의 회귀가 끝날 때는 다시 감전이 된다는 의미였나?

그런데 이 할아버지, 전부터 생각했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 사람 같은 느낌이다.

살면서 이렇게 생긴 사람을 본 적은 딱히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누구지?

“행복하냐?”

“네?”

“행복한 삶을 살았냐고?”

글쎄.

행복이라.

돈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줄로만 알았다.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돈도 가질 만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다 해도 기대했던 것처럼 행복하진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들을 가지면 뭔가 크게 달라지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가지고 보니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기분이랄까?

“표정 보니 그다지 그렇지 않았나보구먼.”

“돈도 가졌어요, 그리고 힘도 가졌고요. 물론 고생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강민호에게 얻어맞은 뒤통수가 갑자기 아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상상했던 것처럼 막 엄청 좋거나 하진 않았어요.”

사실이다.

돈도 쓸 줄 아는 사람이 쓰는 거다. 그리고 쓸 줄 아는 사람은 아무리 써도 만족감을 느끼기 어렵다.

나는?

쓸 줄도 모르고 만족감을 느낄 줄도 모르고. 최악이네.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튀어나온 할아버지의 질문.

글쎄, 이곳은 저승 아니었던가?

그러고 보니 여기 몇 번 와 보면서도 그에게 이곳이 어떤 곳인지 물어본 적이 없다. 그냥 막연하게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을 뿐.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기억 속의 모습과 크게 다른 건 없었다.

다를 만한 것 자체가 없다. 있는 것이 없으니.

그냥 사방이 흰 공간. 흰색이 벽인지, 아니면 그냥 강한 빛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건 그의 모습과 나, 둘뿐이다.

“행복은 어떤 거라고 생각하니?”

“네? 아악!”

대답을 하면 안 되나 보다.

뒤통수를 강하게 때리는 할아버지를 쳐다보는데 다시 한 번 어디선가 봤던 얼굴이란 생각이 들었다.

쭈글쭈글.

주름살 가득한 이 정도 얼굴을 가진 사람과 특별히 가깝게 지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글쎄요. 돈이 없어서 할 수 있는게 없으니 돈을 많이 벌면 달라질까 싶었어요.”

“그런데?”

“돈이 있어도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요.”

“흐음…….”

돈이 있어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전생과 다른 것이 있긴 했다.

친하게 지낸 친구라고는 준서 하나였고, 다른 관계들이 없진 않았지만 거의 다 일을 하며 마주치는 선후배 선생님들, 그리고 학교 선후배들 정도였다.

이번 생애에서는 그래도 여러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어?”

그리고 내가 막 준서를 떠올렸을 때, 내 눈앞에 신기한 모습이 펼쳐졌다.

하얀 벽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준서가 나타났다. 딱 내가 그를 처음 만났던 대학생 때의 모습, 옷차림까지 그대로였다.

그가 얼굴에 특유의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오랜만이네?”

“준서야!”

한 번의 전생, 그리고 얼마 전까지 살던 삶에서도 함께했던 그였지만 이곳에서 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어떻게?”

나는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그 또한 준서와 비슷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가 불러내서 왔지. 이제야 부르다니 빠르기도 한데?”

“내가?”

“응. 그리고 한 명 더 불러야지.”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지원재.

잘 몰랐는데 그는 준서의 대학생 때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형제인가?

“대표님, 여기서 다시 뵙게 되는군요.”

“뭐야, 너도 나잖아. 여기서 까지 다른 사람인 척해야 해?”

잠깐…….

‘너도 나’라고?

“대표님 기억에 나는 준서 네가 아니니까. 거기에 너까지 함께 있으니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머리가 복잡하지 않으실 거야.”

그러고 나를 보며 그 또한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느끼게 된 건데, 나는 이제까지 지원재가 몇 번 회귀한 나 이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 내 생각을 읽고 일처리를 하는 줄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준서는 분명히 그에게 ‘너도 나잖아’라고 말했다.

그 말은 곧 지원재가 준서라는 의미. 무슨 소리야, 이게 대체…….

“혼란스러운가 보네. 흐흐. 그럴 만도 하지. 나도 여기 와서 너 만났을 때 엄청 혼란스러웠으니까. 네가 기억하는 준서는 나 하나야. 내가 너처럼 회귀하면서 여기 이 지원재란 사람으로 다시 살게 된 거고.”

“그런데 도대체 왜…….”

“왜 내 삶을 살지 않고 네 주변에 머물렀냐고? 네가 다시 하는 삶이 재미있어 보였거든. 물론 내 복수도 좀 해야 했고 말이지.”

“복수?”

“첫 번째 삶에서 네가 죽었을 때, 나도 오래 살진 못했거든. 널 도우면 살면 어차피 복수는 어느 정도 이뤄지게 되어 있겠더라고. 삶이 많이 겹친달까?”

복수. 준서의 복수의 대상은 누구였을까.

지원재란 사람이 워낙 나에게조차 말하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이라 무슨 일을 하고 다녔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내 주변에 복수의 대상이 있던 것이었나? 주변에 누가?

다음으로 나온 사람은 유미진이었다.

뜬금없지?

자주 본 적도 없는 그녀가 왜 나왔는지.

그녀는 먼저 나타난 준서나 지원재와는 다르게 나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그냥 준서와 지원재만 그녀를 슬쩍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렸을 뿐이었다.

“뭐야? 이 사람이 왜 여길…….”

“그러게 말이다. 하필이면 딱 불러내다니……. 그런 게 있어. 너는 신경 안 써도 돼. 얼른 다른 사람들이나 불러내 봐.”

“다른 사람들? 불러내?”

“응. 얼른!”

그리고 순차적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을 시작으로 오광필 할아버지와 김승주 회장, 그리고 김미연 부회장까지. 심지어 조규만과 강민호까지 나타났다.

이 사람들은 왜 나오지?

“야,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안 부르면 어떡해?”

“응? 아니, 이 사람들은 도대체…….”

“중요한 사람만 아직 안 불렀구먼? 허허허.”

막 튀어나온 오광필 할아버지가 주변을 슥 둘러보더니 말했다.

중요한 사람?

아니, 그것보다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질 않았다.

“다 죽은 거예요?”

“뭐?”

“허허. 이 녀석…….”

나는 죽어서 이곳을 왔는데 이 사람들이 여기 있단 건 곧 다들 죽었단 의미 아닌가.

헐.

그런데 내말을 들은 이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막 웃고 있는 것 아닌가?

“악! 왜 자꾸 때려요!”

그리고 어느새 내 뒤에 와 있던 할아버지가 다시 한 번 내 머리통을 후려쳤다.

그렇다. 이번엔 ‘탁’ 친게 아니고 눈알이 빠질 정도로 ‘후려’쳤다.

“오래 살고도 상황 파악이 이리 느려서야……. 네 친구 준서는 바로 어떤 상황인지 알아차리더만!”

“그냥 말로 하시면 되지 왜 굳이 때리시고……. 무슨 상황인데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네 기억 속의 사람들이야. 죽건 안 죽건 간에 네 기억에 있는 너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

기억 속의 사람들. 그래서 내가 누군가를 머릿속에 떠올릴 때마다 이 공간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심지어 유미진조차도 기억 속에 있던 사람이었기에…….

“그럼 그냥 기억이네요, 뭐.”

실제가 아니라 아쉽단 생각이 드는 순간, 다시 한 번 몸이 움찔거렸다. 이건 이 할아버지가 나를 때리려 하기 직전마다 느끼던 기분.

“사람이 산다는 게 뭐라고 생각하나?”

“네? 아……. 글쎄요.”

인간이 산다는 것.

행복, 고통, 슬픔, 회한의 감정들.

만약 기억이 없다면 이런 감정들에 무슨 의미가 존재할까.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그건 결국 기억을 만드는 것이고, 좋은 기억은 행복을, 그리고 나쁜 기억은 슬픔이나 분노를 불러온다.

죽은 뒤에는?

내가 죽고 난 뒤에 이곳에서 깨어났다. 몇 번의 회귀를 거쳐 다시 도착한 이곳. 빈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내가 그간 만났던 사람들이 나타난다.

“불러야 할 사람을 아직 안 불렀다고, 이 친구야!”

오광필 할아버지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내가 불러야 할 사람을 아직 안 불러냈다.

윤지 누나…….

“너 좀 맞아야겠네.”

그녀가 나타나자마자 나에게 한 첫 마디.

오금이 저렸으나 반가웠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여기 서 있는 모두의 얼굴이 반가웠다.

아쉽기도 했고.

이제 정신없던 삶이 대충 정리가 되어 가고, 복수극과 전쟁이 끝나는 상황이었는데 이곳에 다시 왔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막상 돌이켜보면 처음 살았던 삶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돈? 죽어서 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명예? 이것 또한 마찬가지다.

삶이란 무엇일까.

내가 지금 여기에서 기억 속의 친구들과 적들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결국 삶이란 관계가 전부가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수많은 관계.

기억과 기억에 얽혀 있는 수많은 인연의 끈들.이게 끝이라면 아쉽긴 하겠지만, 아직 할아버지는 끝이라고 하진 않았다. 그저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을 뿐.

“부모님은 안 보고 싶어?”

내 옆으로 온 윤지 누나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부모님. 모든 것을 자식에게 쏟아붓고, 회귀를 해서도 바쁜 삶으로 인해 챙겨드리질 못했다.

계속 보고 싶단 생각은 들었지만 의도적으로 죄스런 마음에 떠올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뵐 때가 된 것 같다.

성공을 했건 안 했건 결국 자식이 커서 결혼하고 부모님의 삶을 이어받는 모습을 보지 못하신 우리 부모님…….

“엄마, 아빠…….”

누군가가 내가 불러낸 인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인파를 뚫고 내 앞으로 나왔다.

이제는 주름으로 가득한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 또한 웃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를 꼭 껴안았다.

“아버지는요?”

“그러니깐, 있을 때 잘해야지!”

“네?”

이 말을 한 것은 내 뒤에 서 있던 할아버지였다.

그리고 왜 이 할아버지의 얼굴이 낯이 익은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가 백 살 정도 되시면 이런 모습이 되셨을 것만 같은 그런…….

“아버지?”

“아직 안 끝났어, 현덕아.”

딱!

삐.삐.삐.삐.

눈을 떴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흰 공간도, 수많은 사람들도 사라졌다.

“아아…….”

“야! 괜찮아? 말 좀 해 봐!”

“저리 좀 가세요! 지금 손대시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같은 사람들이라고 해야 하나?

“현덕아!”

익숙한 목소리. 윤지 누나였다.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누워 있는 거지?

가슴이 답답했다.

“헉. 큭.”

숨이 잘 쉬어지지가 않는다. 누군가가 내 가슴팍을 심하게 눌렀던 것 같다.

“이제 옮기겠습니다. 일단 병원으로 이송할 테니 보호자만 차량에 타세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순식간에 장소가 바뀐 듯했다.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희뿌옇게 보이는 시야에 둥그런 물체가 몇 개 들락날락했다.

“현덕아?”

“누, 누나?”

“아! 어머님! 현덕이 일어났어요!”

어머님? 날 부른 건 분명 윤지 누나 목소리였는데.

그리고 둥그런 물체가 몇 개 더 생겼다.

뭔가 굉장히 소란스러운 분위기.

“현덕아? 현덕아, 다시 말 좀 해 봐. 으허헝…….”

이번에는 엄마 목소리. 울먹이며 나를 부르는 목소리였다.

하도 크게 소리쳐서 귀가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아……. 엄마. 귀 아파요.”

“의사 선생님!”

급히 윤지 누나가 달려 나갔다. 그리고 희뿌옇기만 했던 시야가 점점 돌아왔다.

처음 제대로 보인 것은 눈물범벅인 어머니의 얼굴,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눈물을 꾹 참고 있는 듯한 모습의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나를 끌어안고 한참을 우셨다.

내가 정신을 잃은 기간이 한 달이었다고 한다.

뭐, 세 달을 의식이 없이 지낸 적도 있으니 내 입장에선 별것 아니지만, 어쨌든 부모님 입장에선 엄청 걱정하셨던 것 같다.

물론 윤지 누나에게는 내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했다가 몇 대 얻어맞았고.

역시나 회복은 쉽지 않았다.

이제는 나이도 많이 들어 한 달 동안 빠진 근육을 다시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6개월 정도의 재활기간. 그리고 퇴원.

“나 업을 수 있을 때까지는 운동해야 해.”

“오. 그럼 업을 수 있으면 그때부터 운동 하나도 안 해도 돼요?”

“뭐? 혼자 살려면 그러든가.”

혼자 살려면 그렇게 하라고? 이거 혹시 프로포즈인가?

아니겠지.

그녀는 왠지 모르게 저 말을 하면서 얼굴이 붉어진 듯했다.

눈을 반대쪽으로 돌리는 바람에 정확하게 보지는 못했지만…….

“그나저나 뭐 할 거야, 이제?”

“글쎄요.”

뭘 해야 할지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하염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기만 했으니.

개고생을 끝내고 싶어서 회귀했는데 오히려 일은 더 많아지고 나의 삶은 전과 비등비등했다.

그래도…….

굳이 생각하고 정하고 사는 것이 인생인가? 흐름이 있으면 흐름대로 가는 것이 인생이지.

청렴하게 살겠다고, 또는 모든 것을 누리며 살겠다고 아등바등하며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들 각자의 역할과 능력에 따라 열심히 사는 세상인데.

“학교나 다시 가야죠.”

“학교?”

“네. 거기가 제일 편한데요?”

“야, 너 학교 들어가면 조직에 위화감 심할 텐데? 돈이…….”

“돈 많고 적고가 무슨 상관이에요. 그냥 하고 싶은 일 하는 거고, 적어도 경제적 걱정할 필요 없이 살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은데요? 흐흐.”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경제적 성공은 행복을 가져다주리라 생각했는데……. 너무 어린아이처럼 생각했을까?

성공과 행복은 비례관계가 아니었다.

돈이 없어도 누구보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을 때까지 돈 벌 필요 없을 만큼 부자인데도 끔찍할 정도로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지금의 삶이 전생보다 불행한 것은 아니다. 돈도 돈이지만 그것보다도 나에게는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의 돈을 보고 함께하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겠으나,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 오광필 할아버지와 지원재, 그리고 준서와 김미연 부회장, 그 외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나에게 돈이 없더라도 함께해 줄 사람들이다.

지금 당장 내가 돈이 하나도 없어진다 할지라도 함께 할 사람들…….

관계다.

인생은 관계다.

관계가 행복을 가져오기도, 불행을 가져오기도 한다.

너무 늦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해야 후회가 없겠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나?”

“응?”

역시 그녀는 일부러 내 쪽을 보지 않고 말했던 것이었다.

‘혼자 살려면 운동하지 말고 살든가’라는 말의 의미.

그녀에게 이런 말까지 먼저 하게 만들고…….

“미안해요.”

“뭐? 뭐가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요, 미리.”

부끄러워하는 표정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의아함이 채웠다.

다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고 나서야 확실히 알았다.

물론 내 주변의 돌아가는 일들이 정리가 된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기에는 최적의 시점이었고, 나는 잠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그녀에게 화면을 보여 주며 말했다.

“누나, 우리 결혼해요.”

“야!”

돌아온 것은 일단 주먹이었지만…….

그녀는 웃고 있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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