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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96화 (196/200)

[196] 196화.

이 길의 끝은 어디로

벌어진 일을 마무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삼전 물산의 지분은 내 기억대로 박재용 사장의 소유가 대부분.

그리고 다른 움직임도 있었다.

외국 투자은행으로 볼 수 있는 멀라인 투자사가 시장에 나와 있는 삼전 물산의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눈에 빤히 보이는 수작이나 어쨌든 내가 생각한 걸 그들이 생각하지 못했을 리 없다.

이때 전생의 박재용 사장이 어떤 대응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이 분야는 확실히 내 전문 분야는 아니다.

나는 뭘 하고 있었느냐고?

박승재 회장이 멀쩡한 상황에서 내가 삼전에 발을 들이밀 여지는 없다.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면 김승주 회장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정도까지 밀어 붙일 생각도 없었고.

내가 할 일은 암호화폐 시장의 상황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박승재 회장의 건강을 체크하는 일뿐.

온라인 사교육 사업가가 무슨 이런 일에 신경을 쓰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확실히 내가 회귀하면서 가졌던 목표에서는 많이 벗어난 것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나도 잊고 있던 전생의 일이 현생에서도 똑같이 벌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속보)진도 앞바다 세계호 침몰 중.]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았다.

[(속보)학생 전원 구조.]

오보다.

나는 곽한영 의원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의원님!”

-바쁩니다.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지금 세계호 뉴스 보고 계십니까?”

-그렇잖아도 그것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용건만 말씀하세요.

휴대폰 건너편으로 꽤나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들려왔다.

여당이고 야당이고 할 것 없이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그날이었다.

“의원님, 지금 세계호 구조 상황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무슨 소리에요, 지금! 하아. 일단 속보로는 전원 구조라고 했으니…….

“전원 구조 아닙니다. 의원님 힘이 어느 정도까지 닿을 수 있습니까? 행정안전부 총리까지 닿나요?”

-무슨 소리세요?

“대통령 되실 수 있는 기회입니다. 지금 청와대는 제 기능하지 못합니다!”

-잠깐만요. 청와대 쪽에서는 상황 잘 통제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아니라고요! 어쨌든 지금 소방서 헬기들 사고 현장에 접근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위아래 다 꼬여 있습니다. 저 지금 진도로 내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의원님께서도 얼른 내려오시면서 연락 좀 최대한 돌려주세요. 청와대 명령이 중요하겠지만 그쪽 라인 어차피 우왕좌왕하고 있을 테니 의원님 역할이 중요합니다!”

차를 타러 내려가는 승강기 안에서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가 왜 이 일을 기억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감과 전생에 느꼈던 그 충격과 슬픔을 다시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지원재 실장이 어느새 지하 주차장 벽을 붙들고 간신히 서 있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내가 급히 이성을 잃고 사무실에서 뛰쳐나가자 무슨 일인가 싶어 따라왔던 모양이었다.

“진도요. 속도위반 다 걸려도 좋으니 최대한 빨리요.”

“네, 대표님.”

남의 일에 왜 이리 예민하게 반응하냐고?

전생에 이 일이 터졌을 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

내가 맡은 학생들의 수학여행 준비에 한창이던 그 시기, 끔찍한, 그리고 모두가 무력감을 느꼈던 사고가 터져 버렸다.

당연히 모두를 구해 낼 줄 알았다.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이 수백 명이나 타고 있다는 속보를 봤을 때에도 별일 아닐 거라 생각했다.

배가 기울고 침몰 중이라는 속보에도 거대한 배가 꽤 오랜 시간을 버텨 줄 거라 생각했고, 그 뒤를 따른 ‘전원 구조’라는 속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전원 구조’는 오보였다.

그냥 오보가 아니라 최악의 오보였다.

사태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던 청와대발 오보.

말 그대로 수백의 아이들이 세상에 발을 딛기도 전에 빛을 잃어버렸다.

어른의 잘못으로.

“형, 혹시 지금 상황에서 도움 줄 만한 분 아는 분 계세요?”

“세계호 사고 관련해서 말씀이십니까?”

“네.”

“그거라면 일단 해양경비대에 연락을 해 두었습니다만, 그쪽은 굉장히 위계가 강한 조직이라 움직일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렇겠지.

이 사고에서는 경찰서장도, 소방서장도 다 말단이다.

그래도 그 짧은 순간에 거기까지 연락을 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나야 이 일이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그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단 말인가?

그때를 기억해야 한다.

그 사고를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나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들고 나온 휴대폰을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락처를 뒤져 정현수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어이, 유 대표. 웬일이신가?

김승주 회장의 소개로 처음 만난 자리 이후, 상호간의 투자 협의를 하기 위해 그와 나는 몇 번을 더 만났다.

에듀코인과 프린스 리뷰의 지분 일부는 정현수 회장 개인 소유로, 그리고 해신 자동차의 지분 일부는 내 개인 소유로 교환하는 거래를 했다.

암호화폐 시장이 아무리 성장한다 할지라도 전통적인 기계공학 분야의 자동차 산업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따라서 주당 가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적정한 선의 교환 금액을 산정하는 것이 어려웠고, 서로 양보를 약간 하는 기분으로 거래를 성사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정현수 회장 입장에서는 라이벌 박승재 회장의 대항마를 자신의 시야 아래 둔 다는 점에서, 그리고 내 입장에서는 박승재의 직접적인 후속타를 피하기 위한 점에서 서로 이득인 거래였다.

양보하는 기분이기는 했지만 나쁘지도 않은 거래였다.

“지금 그룹에 띄울 수 있는 헬기 얼마나 되십니까? 그리고 진도 주변에 있는 배도 알고 싶습니다.”

-뭐? 헬기? 배는 또 왜? 무슨 일이야?

“세계호 뉴스 때문에 그렇습니다. 조금 급합니다, 회장님.”

이런 통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배는 계속 기울고 있을 것이다.

-세계호? 구조 중이라던데?

“구조 못 합니다. 일단 급하니깐 가능한 한 많은 헬기라도 띄워 주십쇼. 그 지역 중심으로요. 그리고 배는…….

-배는 아마 제 시간에 못 도착할 거야. 그렇게 빠르지가 않아.

더 넘어가는 걸 막기라도 해야 한다.

배가 아무리 주변에 깔린다 하더라도 이미 뒤집힌 이후엔 복구 불가다.

“일단 출발시켜 주십쇼. 혹시 해경에 아시는 분 있으십니까?”

-해경? 청와대는 뭐 하는데?

“거긴 지금 제정신 아닌 상태입니다. 직접 해경 쪽에 아는 분이나, 혹시 압력을 넣을 수 있는 분 있으십니까?”

-알아보겠네.

“감사합니다.”

뭐라도 잡아야 했다.

배는 차나 비행기보다 확실히 느려서 세계호 같은 해상 사고가 한 번 발생하면 구조나 복구에 어려움이 있다.

기억을 되돌려 보자면 구조를 위해 전국에서 출발한 소방 헬기들은 해경의 이해할 수 없는 명령으로 사고 해역 상공에 진입하지 못한다.

힘으로라도 밀고 들어가야 한다. 헬기든 배든…….

차가 고속도로를 굉장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기에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좋은 차라 할지라도, 그리고 우리나라 고속도로가 아무리 잘 포장되어 있다 하더라도 속도는 못 이긴다.

한껏 경직된 상태로 앉아있다 보니 몸이 쑤셔 왔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인터넷에선 이미 전원 구조 속보가 오보였다고 나오는 중이었다.

부디 정현수 회장이 잘 알아듣고 움직여 줘야 할 텐데…….

띠리릭.

“네, 의원님.”

곽한영이었다.

-지금 해경청장 연락해 놨습니다.

“제 목소리 들으실 수 있는 상황이신가요?”

-그렇게 할게요.

수화기 건너편에서 클릭음이 들렸다.

해경청장이라니……. 대통령만 만나면 되나, 이젠?

만나 봐야 뭘 하겠는가.

조금 이따가 배 다 뒤집히고 나서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데 구조하기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라는 말이나 할 뿐일 텐데…….

“안녕하세요. 무례를 무릅쓰고 연락 부탁드렸습니다. 유현덕이라고 합니다.”

-아, 네. 무슨 일로 연락을…….

“지금 세계호 구조 상황 좀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아는 내용이다.

해경에서 보유한 배는 세계호 주변을 맴돌 뿐이겠지.

배가 돌아가는 것을 막지는 못하리라. 세계호 규모의 배는 옆에다 다른 배를 붙인다 하더라도 넘어가는 걸 막기는 어려우니까.

까딱하다가는 구조고 뭐고 같이 휩쓸려 넘어갈 수도 있다.

그래도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그렇게라도 해야 했고, 적어도 헬기 도착 직후 선내에서 멍청하게도 얼어 있던 선장에게 지시를 내려 대기하던 승객들에게 무조건 밖으로 나오라는 방송을 시작해야 했다.

-지금 저희 헬기 두 대가 사고 해역으로 진입한 것으로 보고받았습니다. 해경선도 구조 활동중입니다.

“배는 어느 정도 넘어갔다고 하죠?”

-하아…….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바쁜 와중에 이리 쓸데없는 걸 물어보니 그도 답답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휘 체계가 이미 무너져 버려 더 무너질 것도 없는 상황이란 것.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오히려 좋지 않다.

스스로의 판단력과 실행력을 믿도록 해야 한다.

“제가 연락드린 것은 구조 활동을 어떻게 하시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청와대에서 어떤 지시를 받으셨습니까.”

-…….

“별 지시가 없었을 겁니다. 그쪽도 저와 마찬가지로 바다에 대해서는 문외한들만 가득하니까요. 청장님, 제가 알기로는 배에 백 명이 훌쩍 넘는 고등학생들이 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뉴스를 보셨겠죠.

“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현장 지휘관들의 판단임과 동시에 적절한 수준의 개입입니다.”

당연한 소리다. 하지만 그 당연한 결정을 아무도 내리지 못했다.

공직 사회란 어떤 경우에도 무너지지 않는 시스템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강력한 상하 관계를 통해 형성되고.

헌데 현장의 상황을 위에서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할 때는 그만큼 적절한 대처를 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결정권자는 현장이 되어야 하는데, 결정에 대한 책임 또한 현장에서 전부 지게 된다면 현장의 지휘관은 큰 부담을 가지게 된다.

안타까운 상황.

이렇게 큰 배가 넘어가는 것은 현장 책임자도, 그리고 청장도 겪어 본 적이 없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이 어느 정도일지도 전혀 모를 것이다.

“청와대 지시 기다리지 마시고 직접 움직여 주십쇼. 법적 책임은 제가 어떻게 해 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잘못될 경우의 금전적 보상은 제가 개인적으로 해 드리겠습니다.”

-이봐요. 당신 무슨 그딴 소릴…….

-청장님, 흥분하지 마시고 유 대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 보시죠. 유 대표, 자네가 어떤 근거를 가지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임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아십니까?

곽한영 의원은 대통령의 자리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물론 그도 사람이기에 이 사고가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기를 바라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네. 잘못되면 제 책임, 잘되면 전부 의원님께서 도와주신 거로 하시죠. 일단 이걸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개입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청장님, 들으셨죠?

-의원님, 그래도 이건…….

-지금 상황에 대한 해경의 대처 방법이 효과가 있으리라고 확신하십니까? 애들 다 구할 수 있어요?

-…….

못 구한다. 청장도 그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겪어 보지 못한 규모의 사고. 그리고 망가진 지휘체계.

현장 책임자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 상황이니 자신은 일이 잘못되더라도 책임은 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청장님, 저도 이게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해경선 몸체로 세계호를 받쳐 줄 수는 없을까요?”

-그러면 둘 다 넘어갑니다.

“시간 지연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가능할지 몰라도 너무 위험합니다!

그래도 좀 하라고, 이 사람아. 그러지 않으면 당신들이 죽는다고.

“일단 붙여 주세요. 그리고 사고 해역에 구조 헬기 들어가는 것 막지 막으시고요. VTS와 해경선, 그리고 가능하면 군 지원도 받아서 해경은 헬기 사고 나지 않고 구조 작업 가능하도록 교통정리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금 해신 그룹 산하 헬기들도 전부 사고 해역으로 출발시켰습니다. 도와드리려고 가는 거니 통제 확실히 해 주세요.”

-해…… 해신이요?

“네. 정현수 회장님께 부탁드려서 그렇게 했습니다.”

-…….

그는 머릿속이 복잡해 보였다.

행정부의 수장은 대통령이다. 하지만 자신도 대통령의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청와대에서는 따로 지시가 내려오진 않고 계속 상황 보고만을 요구하는 중이다. 직접 나서지 않을 생각이 분명했다.

전원 구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보고가 끝나고는 연락조차 거의 오질 않았다.

사고 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연락이 계속 오겠냐마는, 이런 대형 사고일수록 현장과 위의 긴밀한 협조가 필수적이다.

몇 명이 타고 있고, 구조가 얼마나 되고가 아니라 책임은 위에서 지겠으니 최선을 다해 달라는 말이 더 중요하다.

이 상황이라면 책임은 온전히 그가 져야 할 것 같았다.

“이 일 잘못되면 청장님 또한 무사하지 못하실 겁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대로 해 주신다면 일이 잘못될 경우의 금전적 보상은 과할 정도로 해 드리겠습니다. 부탁 좀 드립니다, 청장님.”

그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곽한영도 그냥 듣고만 있었고.

그래도 걱정되진 않았다.

그는 내가 내민 줄을 잡을 것이다. 잃을 것은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네, 알겠습니다. 사고 해역 진입 금지 풀겠습니다.

“당장 바다로 다 뛰어내리라고 안내 방송도 해 주셔야 합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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