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194화.
“정말로 출마 안 하실 겁니까?”
내 얼굴에 거의 닿을 듯 가깝게 마이크를 들이밀던 기자가 물었다.
아니, 이건 그냥 질문이 아니라 고함을 지르는데.
귀가 아주 떨어질 것 같다.
“안 한다고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냥 있으면 안 하는 건데.”
“그럼 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말 좀 끝내자.
내가 이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일주일 전부터였다.
곽한영이 드디어 여당에서 나오며 자신의 깃발을 들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언론을 통해 내 이름을 언급했고.
이미 몇 달 전, 아니 거의 몇 년 전부터 나의 정계 진출은 종합 편성 채널 정치 프로의 단골 소재였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뭐가 이리 쉽게 풀리느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 다 한 번 봤던 일이기 때문이 아닌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 내면서 가는 것이 힘들지, 사실 누군가가 이쪽에 길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려 준 이상 어려울 것은 없다.
특정 시점에 특정 주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을 안다는 건 여러모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아뇨. 지금으로써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으니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십사 부탁드리는 겁니다.”
여기까지 말을 하니 기자들도 더 이상 처음처럼 추궁하듯 묻지 않았다.
2년이 다 되 가도록 공중파 방송을 타고 있는 토크 콘서트의 다음 게스트는 누구인지, 그리고 곽한영 의원은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물어보는 정도.
선거판에 나선다?
과거의 그라면 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전생에서는 상당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으니.
하지만 나는 그런 모습으로 마무리를 하고 싶지 않다.
박승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쪽에 얼굴을 들이밀기는 했으나, 막상 정치인이란 것은 꽤나 골치 아픈 일만 가져오는 것이다.
잘해도 욕을 먹고 잘 못해도 욕을 먹고.
“시간 다 되셨습니다, 대표님.”
“네, 실장님. 들어가시죠. 참! 실장님, 그 안내는 안 하시는 겁니까?”
그러면서 그에게 눈을 찡긋 했다.
오글거리는 신호.
그렇다고 손을 잡거나 하는 식으로 보낼 수 있는 신호가 아니잖은가.
지원재는 이제는 정말 능숙한 연기자가 된 듯 깜빡했다는 모습을 기자들 앞에서 보였다. 자신의 이마까지 탁 치면서.
아, 어색하다…….
“깜빡했습니다. 기자님들!”
별로 할 말 없다며 지나가려던 우리 둘이 갑자기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하자 다시 플래시가 터졌다.
이젠 이것도 익숙하다.
“S 아카데미와 에듀코인 시스템에 제플과 푸글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공개해도 좋다는 대답도 들었으니 잘 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예상했던 대로 여기 있는 대부분의 기자들은 정치부 소속이었다.
총선 출마, 또는 대선 도전 이야기가 나올 타이밍에 갑자기 사업 관련한 내용이 나오자 아쉬워하는 모습.
하지만 그 와중에 이 뉴스의 파급력을 생각한 몇몇 기자들은 휴대폰으로 이 소식을 전하느라 바삐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사이 나와 지원재는 미리 준비한 차로 슬쩍 올라탔고, 정치부 기자들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자신들이 있어야 했을 여야 당사로 갈 것이다.
-유 대표님.
“네, 의원님. 뉴스를 벌써 보신 건가요? 카메라는 있어도 생중계를 하는 건 보지 못했는데 빠르시네요, 역시.”
곽한영이었다.
그는 오전에 나를 영입한다는 기사를 내보내고 초조하게 내 화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조율된 문제 아니었냐고?
아니다.
그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고, 나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말했을 뿐.
그리고 아직 때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전생에서는 아예 국회의원도 아니었던 그가 대선을 노리는 주자로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생의 흐름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
경제 대통령이라 불렸던 강진우 전 대통령의 딸 강명자 의원이 이를 갈며 대선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당선이 된다.
전생에서는…….
물론 현생이 어찌 변할지는 모른다. 전생에서는 곽한영이란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정말 이번에는 안 도와주실 겁니까?
그는 내가 자신을 지지한다는 선언을 해 주기를 원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아마 판도가 뒤집힐 수도 있다. 지금 내 영향력은 그 정도다.
사람 목숨이 두 개가 아닌 이상 박승재가 나를 어딘가에 묻어 버리거나 할 수도 있으나, 설마 그렇게까지 할라고.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제플 회장이 일주일 쯤 뒤에 에듀코인에 방문하는 것을 준비 중인데 그날 함께 사진이나 찍으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
그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사안의 경중을 재고 있는 것이리라.
총선 직전의 정치인은 정말 우리나라에서 제일 바쁜 사람들이다. 거기에 신당 창당까지 준비하고 있으니 장난 아니겠지.
제플 회장과 사진을 찍고 전국적 인지도를 끌어올리도록 할 것이냐, 아니면 자신이 뽑은 몇몇 의원들의 유세 현장을 도울 것이냐…….
고민할 가치도 없는 일인데 뜸을 들이고 있다.
곽한영은 분명 스타성을 갖춘 정치인이지만 전체 흐름을 뒤바꿀 만한 사람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의원님?”
-스케줄 확인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한일 회장과는 연락을 좀 하시나요?
“연락 최근에는 못 드렸습니다. 마침 의원님께도 연락이 오고 했으니 한 번 찾아뵐 생각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지지 선언을 해 주시는 걸 고려는 해 주시길 부탁해요.
이 사람 집요하네.
“네. 고려는 해 볼게요. 그래도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최근 2년간, 그러니깐 내가 곽한영, 이한일과 한 배를 타기로 결정을 내린 뒤 해신 그룹과 한성 그룹을 이 판에 끌어들인 이후 큰 사건은 터지지 않았다.
확실히 두 개 그룹 계열사의 대주주로 들어가 동맹을 맺은 것이 박승재 회장에게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기에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나 같은 건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처리를 하든 그냥 놔두든 별 상관이 없기도 했다.
애초에 그가 나란 사람에게 어쩌다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관심은 삼전 그룹 내부 문제와 함께 사라진 듯 보였다.
뭐 이리 허무하게 해결되나 싶을 것이다.
복잡하게 꼬인 듯한 매듭은 그냥 잘라 버리면 된다.
한 번 잘려지면 다시 원상 복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꼬인 것을 풀기에는 훨씬 수월해진다.
그럼 그 2년 동안 내가 무엇을 했냐고?
곽한영은 그간 이번 총선과 대선에 맞추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당 창당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세 과시를 할 수 있는 입장까지 만들었고.
그 뒤에는 이한일의 자금이 들어갔다.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겠으나, 일단 해신 정현수 회장과의 협상을 통해 토크 콘서트의 공중파 방송을 얻어냈다.
그리고 곽한영과 그의 계파 의원들을 몇 번 불러 이야기를 나눴었고.
이제는 하다 하다 방송 업계까지 진출하냐고?
그건 아니다.
토크 콘서트는 어디까지나 나의 정치력, 그러니깐 정치권에 직접 들어가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필요한 경우 그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지도를 쌓기 위한 것이다.
청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게 되는지를 안다는 건 사실 교육보다도 이런 면에서 유리했다.
사람은 옳건 그르건 아픈 곳을 긁어 주고 어루만져 주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이해해 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기 마련이다.
별것 안 했지?
가장 큰 변화는 자산이다.
그간 고자세로 일관했던 제플과 푸글이 에듀코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그것은 아직 세간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으나 비트코인 가격의 엄청난 상승에서 비롯되었다.
교육 서비스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이다.
그렇지만 IT 기술의 발달로 학교 교육 시스템, 그리고 사교육 시스템에서 기기들의 활용도는 높아졌다.
제플과 푸글은 각각 학교 교육 시스템으로의 진입을 노리고 있었고, 그것이 성공하려면 훌륭한 강사 풀이 필수적이다.
에듀코인은 그런 부분에서 그들이 현재 겪는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암호화폐는 등락이 조금 있긴 하나, 일단 강사진들에게 능력에 맞는 합리적 보상을 할 수 있게 되기에 시스템 런칭과 동시에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할 만한 수업을 확보하게 된다.
애초부터 이런 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면 거짓이다.
나는 그냥 이 시스템을 통해 무료 교육을 시도하려고 했던 것이고, 나름 성공했다.
하지만 제플과 푸글은 완전 무료 외에 유료화도 계획하고 있다.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이 사업을 통해 들어오는 내 개인 돈은 지원재와 상의 후 거의 다 비트코인에 넣어 두었다는 사실.
나야 뭐 비트코인이 엄청나게 오를 거란 사실을 알고 있으나, 지원재가 그런 도박 같은 판에 동의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좋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실 저도 그쪽에 투자를 해 둔 것이 있습니다.”
“네?”
암호화폐는 투자라기 보단 투기성이 강하다.
적절한 등락폭과 해당 기술의 향후 발전 가능성이 가장 중요한데 그런 것들 다 제쳐 두고 돈의 움직임에 따라 어마어마한 등락폭을 가지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지원재는 절대로 그런 것에 눈을 돌릴 사람이 아닌데.
“초창기에 취미로 한 번 넣어 봤습니다. 그리고 사실 대표님 자산 관리하면서도 약간씩 그쪽에도 투자를 해 놓았고요.”
약간의 투자.
그 이익금이 다른 곳에 투자한 돈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아졌다.
말 그대로 현금 부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인데, 물론 이건 비트코인을 현금화를 시켜야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1비트코인의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기에 내가 들고 있는 것들을 시장이 소화해 낼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물론 이걸 처음 구매해 둔 것은 에듀코인 사업과 더불어 2017년 암호화폐 대폭등 때 어느 정도 시장을 안정화시키려고 했던 것도 있으나, 어쨌든 가격을 조정한다고 하더라도 일단 지금까지만 해도 많이 올랐다.
이 중 일부를 조만간 쓸 예정이고.
2012년 3월.
곽한영 의원은 결국 내 지지 선언을 받지 못했다.
거기에 내 조언에 따라 최선은 다하되 지키지 못 할 약속은 하지 않기로 했고.
한 해 동안, 몇 달 간격으로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새로 뽑힌다.
박승재는 이 타이밍에 엄청난 돈을 풀겠지.
해신과 한성 또한 그럴 것이다.
이쪽에도 조언을 하나 해 두기는 했는데 그들이 따를지는 모르겠다.
대통령은 아마도 강명자 후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초반부터 상당한 잡음이 생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설마 그녀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을까 싶었겠지만, 소문이 확대되고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 그녀는 정해진 임기도 다 채우지 못한 채 자신의 자리를 내려놓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를 지원한 대기업 몇 곳의 총수들이 청문회부터 구속까지 다양하게 처벌을 받고…….
내 편에서는 이쪽은 절대로 지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나는 지원재의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 이제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신호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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