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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92화 (192/200)

[192] 192화.

결착

-웬일이십니까, 미스터 박?

“허허. 차갑게 바뀌셨군요, 다시.”

-첫 만남에서도 저는 별로 다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흔히들 하는 착각이 재벌 총수는 영어를 못할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신문을 꾸준히 보다 보면 그들이 자녀 교육에 투자하는 돈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정도라 해외 유학은 기본임을 알 수 있다.

굳이 자녀 교육이 아니라 해외 바이어들을 상대하려면 통역 끼지 않고도 기본적인 대화는 가능해야 하고.

어쨌든 둘의 대화는 중간에 아무도 거치지 않고 매끄럽게 이어졌다.

“뉴스를 봤습니다. 우리 약속은 어찌 된 겁니까?”

오브라이언의 말투는 중간 몇 번 연락을 했을 때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우리나라 안에서 아무리 무소불위의 금권을 자랑하는 삼전 총수라도 해외에서는 일개 외국 기업 그룹 회장일 뿐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으나, 오브라이언이 가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감정, 유현덕이란 친구, 그리고 자신과의 만남은 형식적인 관계 이상일 거라 생각했던 박승재였다.

물론 들키지 않을 계략을 들켰단 건 그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약속이요? 무기 건 말씀이신가요?

“당연하죠. 진행도 잘되고 있다고 일전에 연락 주시지 않았습니까.”

-아, 그건 여기 상황이 조금 어려워져서요. 거래가 외부에 공개되면 저도 어쩔 수 없는 건데 이미 냄새를 맡은 타 기업들이 있었습니다. 참, 미스터 유는 잘 지냅니까? 그 사람 신변에 문제가 없어야…….

“아, 그렇군요. 미스터 유는 당연히 잘 지냅니다.”

-다음에 한 번 기회가 되면 같이 보시죠. 아무튼 저는 바빠서요. 뉴스와 관계없이 일은 진행 중이니 너무 심려치 마십쇼.

핑계다.

일은 이미 어그러졌다.

국방부 장관이 직접 뉴스에 나와 그런 건은 진행 중인 사안이 없다고 발표했다.

그 뉴스를 뒤집는 건 대통령이라면 가능하긴 하겠으나, 오브라이언은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은 여론에 민감하다.

“알겠습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저게 전부였다.

이상한 기류는 분명 존재한다.

아니, 존재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눈앞에 있다.

하지만 그걸 어찌 할 도리가 없는 것이 문제다.

한 번의 기회였고, 그걸 거의 잡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을까.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으로 기회를 나누어 놔야 했을까.

삼전 중공업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이미 미국과의 계약과 공장부지 설립 등의 이유로 주가가 상식적인 선 이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오늘자 뉴스로 거래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하한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하한가를 맞아야 할까.

여러 계열사 중 하나일 뿐이지만, 한국 재벌 그룹의 특성상 하나가 이 정도로 얻어맞으면 나머지도 무사하진 못한다.

“젠장.”

“괜찮겠나요?”

“잘해 주셨습니다,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아니, 나야 이 정도 하는 건 상관이 없는데, 미스터 유, 미스터 지가 한국에서 괜찮겠냐는 말입니다. 어차피 여기까지 밀려 왔으면 그냥 들어줘도 괜찮을 성 싶은데…….”

“아닙니다. 오브라이언 대통령님께서 이제까지 견지하신 입장을 완전히 뒤집는 상황이 되면 미국도 혼란스러워질 겁니다.”

“이미 혼란스러워질 만큼 혼란스러운 상황이에요. 허허.”

웃음은 지으나 웃음이 그냥 웃음이 아니었다.

오브라이언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지원재를 만나는 중이었다.

백악관 출입 기록에 그의 이름이 남긴 하겠으나, 자신의 지인으로 온 것이기 때문에 이쪽에서 관심을 가지진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지원재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것으로 되어 있고.

“저희 때문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니, 아닙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게 잘 풀리면 그래도 미스터 유에게 빚은 어느 정도 갚는 기분이 들 것 같군요.”

“잘 풀릴 겁니다. 참,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무기 계약이나 투자 유치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필요하시다면 진행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허허. 그건 알아서 잘할 겁니다. 내가 지난번처럼 우기지만 않는다면요.”

둘은 오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 내용은 친구 사이의 대화라기보다는 완전히 사무적인 것뿐이었지만 유현덕의 존재가 그들 둘을 친구의 친구로 이어 준 격이었다.

지원재는 미국에서의 자신의 역할 중 1단계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총 2단계까지 있는데 그중 오브라이언을 통해 삼전의 미국 공장 설립을 막는 것이 1단계였다.

2단계는?

“이걸로 한국에 돌아가는 건가요?”

“아닙니다. 아직 할 일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말은 안 해 주시겠죠?”

“일이 잘 끝나면 다 알게 되실 겁니다.”

비밀 계획은 비밀이 유지되는 것 자체가 힘이다.

오브라이언은 유현덕의 편이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긴 하나, 그조차도 박승재의 손아귀에 놀아날 뻔했다.

지원재는 가볍게 오브라이언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백악관 건물을 나왔다.

여행을 올 때나 스쳐 지나가며 볼 건물인데 그 안에서 방금 전까지 한 시간 이상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오다니…….

그래도 생각보다는 별것 아니었다.

TV에 나오는 사람도 결국 사람이다.

돈이 많은 사람도 결국 돈이 없는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고.

2단계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때까지는 유현덕을 만나러 한국에 돌아가지도 못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유현덕이 독자적으로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모른다는 점.

이한일에게 들은 바로는 박승재 회장이 유현덕을 처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했다.

이 상황에서 그는 어떻게 움직일까.

자신 또한 몇 번이나 다시 살고 있지만, 친구인 유현덕 또한 그렇다.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움직일지 궁금했다.

그냥 물어보면 될 것을…….

하지만 그렇게 하면 너무 쉬워지지 않은가.

“자, 나중에 봅시다!”

그는 지하철역으로 내려가기 직전 구름 가득 낀 하늘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했다.

뭔가를 기다릴 때면 이상하리만치 시간은 기대를 저버린다.

그리고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있으면 항상 어느새 저 멀리 와 있는 나 자신을 깨닫게 되고.

“야, 무슨 생각해, 또?”

“아, 누나.”

김윤지였다.

건물 옥상은 자주 올라오진 않지만 가끔 이렇게 바람 쐬기에는 이만한 공간이 없다.

바람도 바람이거니와, 이 건물에서 강의를 듣는 학생들 때문에 개방을 하지 않기에 아무도 올라오지 않는다.

여기 올 수 있는 건 내 사무실 바로 앞 복도에서 직통으로 오르내리도록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뿐.

“으이그. 이렇게 공터에 혼자 나와 있지 말라니까?”

“누난 어떻게 자꾸 여길 올라와요? 와서 저 없으면 어쩌려고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그녀에게 내가 엘리베이터 카드를 하나 줬다는 점도 잘 기억하고 있다.

크진 않지만 어쨌든 회사 대표를 지인으로 둔 이점이 조금이라도 있어야지.

물론 그게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누나 혼자 온 거예요?”

“응. 교장 선생님은 조금 있다가 오신다고 했어. 시간 딱 맞춰 오신다고.”

“이미도 원장님이랑 주현필 원장님 출발하셨다고 연락 왔어요. 거의 비슷하게 도착하시겠네요.”

“김미연 부회장님은?”

“김승주 회장님 모시고 오신다고 했고요.”

오랜만에 갑자기 팀 전체가 모이는 상황이다.

이유는?

“이충현 선생님은, 참?”

“이미 와 계십니다.”

“이렇게 모이는 건 처음 아냐?”

나보다도 그녀가 오히려 들뜬 모습이다.

하긴, 이 일은 내가 주도한 것이기는 하지만 나 혼자 한 일은 아니다.

다른 어떤 때보다도 오늘 모이는 사람들의 힘이 필요했던 일이고, 그리고 해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확실히 해내는 중이다.

옥상으로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고, 그녀와 나는 그때부터 하염없이 시간을 때우기 시작했다.

다른 어떤 때보다도 가벼운 마음으로.

이렇게 가뿐한 기분을 가져도 되는 걸까? 아직 일이 전부 끝난 것도 아닌데.

-띠리리.

일부러 진동을 풀어 둔 휴대폰에서 전화가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저 도착했습니다, 대표님.

“아! 네, 지금 바로 내려갈게요!”

내 말만 듣고도 김윤지는 서둘러 엘리베이터 문을 향해 걸어갔다.

아직 전화는 끊기기 전이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상대편 또한 들을 수 있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지옥에서 돌아온 사람이 그를 그리워하던 동료들 곁으로 돌아왔다.

“뭘 어떻게 한 건가?”

모든 사람들이 모였다.

지원재가 도착하고 나와 김윤지가 먼저 그를 반겼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이미도 원장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자리에 모였고, 역시나 그래도 재벌 총수답게 맨 늦게 온 김승주 회장을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지원재 실장은 얼굴이 많이 야윈 모습이었다.

조금 탄 것 같기도 했고.

하지만 정말 다행이게도 몸에 이상은 없어 보였다.

회의실에 혼자 앉아 우릴 기다리던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떠오른 것은 기쁨과 환희가 아니라 내가 CCTV로 본 폭발 장면이었으나, 그의 몸은 살이 좀 빠진 것을 제외하고는 별 탈 없어 보였다.

“미국발 남북 관계 경색은 오브라이언 대통령이 방한 때 박승재 회장과의 만남 자리에서 먹었던 음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음식 하나가 전쟁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네.”

“자네는 그걸 어떻게 알았고?”

“그 자리에 저도 있었으니까요.”

이건 사실 나도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박승재란 인간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 정도 도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리라.

그런데 그걸 어떻게 증명을 하는지가 문제지.

독을 넣었는데 이 독이 검출도 되지 않고 그냥 흔히 쓰는 한약재 중 하나라는데, 어찌 이걸 확인하겠는가.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아니라면 모를 것이다.

독이 뭔지도 모르는데 해독약을 구할 수도 없고.

게임의 영향인지 사람들은 어떤 독이든 해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게임 내에서 중독 상태에 빠지면 해독제를 사용하면 바로 풀리는 것처럼.

“무슨 말인가?”

“주방에 저도 있었습니다.”

“그게 가능해요?”

이미도 원장이 끼어들었다.

보통은 그냥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자리가 자리인 만큼 궁금한 걸 해결하고 싶다는 느낌이었다.

“대단한 음식점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냥 박승재 회장 단골 집 중 하나였습니다. 미리 어디서 만나는지 알았던 건 사고 직후 이한일 회장 뒤를 밟다가 박승재 회장이 관여된 것을 안 덕분이죠.”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아직도 이 사람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것이 많은 걸까.

죽다 살아났는데 어떻게 곧바로 그런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겼을까.

게다가 이한일 회장의 뒤를 밟아 박승재까지 연결을 시키다니.

“대표님 실종 직전 행보를 따라가다 보니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허, 참. 대단한 건지, 정말 자네 표현대로 운이 좋은 건지 모르겠군요.”

“그냥 대단하다고 해 두셔요, 아버지.”

김승주 회장 옆에 앉아 대화를 유심히 듣던 김미연 부회장이었다.

그녀는 미국에서 돌아온 지 이제 한 달이 되었다.

내가 풀려나고 김승주 회장과 해신 그룹 정현수 회장이 나를 돕기로 결정하기 직전, 그녀는 미국 한성 에듀 지사로 발령이 났다.

김승주 회장까지 공격 대상이 될 정도로 박승재가 막 나가던 시기라 국내보다 해외가 안전하리란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한 달 전, 이제 상황이 어느 정도는 정리가 되었단 판단인지 김승주 회장은 그녀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의 판단대로 상황은 정리 중이다.

진행 중인 부분도 있지만…….

“일단 그 폭발에서 멀쩡히 살아 나왔다는 것부터가 기적이죠. 이거 유현덕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인 걸?”

이번에는 주현필.

“아뇨. 살아난 거는 운이었지만 그 다음은 유 대표님이 본인의 계획대로 진행하신 거였습니다. 저는 그냥 적절한 타이밍에 지원사격만 했던 것이고요.”

“아니, 나 같으면 그 돈만 들고 잠적을 했겠다고. 유현덕, 이 녀석은 그만한 돈이 있는지도 몰랐다면서? 흐흐.”

아…….

나이를 먹으면 철이 든다고 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능청스러워지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저 두 말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 꽤나 역설적이다.

“아, 참. 원장님도 무슨 말씀을 그리…….”

“하하. 계획도 계획이지만 그 돈이 별 탈 없이 모여 있던 돈이기에 적절한 시점에 그렇게 쓸 수 있었습니다. 항간에선 투기판 돈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일정 부분 사실인 면도 없진 않지만요.”

“헐. 실장님도 그러시기입니까.”

투기판 돈.

내가 비트코인에 묻어 둔 약간의 돈을 말하는 것이다.

에듀코인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비슷한 금액을 유지하고 있다.

원래 그러라고 만든 암호 화폐다.

이충현 사장은 조금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덕분에 2017년 말에 있었던 암호화폐 대 호황기에 비트코인의 옆에 서서 들썩이는 비트코인을 잡는 역할을 맡았다.

몇몇 신규 거래소에서는 아예 테더(1달러의 가치를 보장하는 암호화폐,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을 거래할 때 돈처럼 사용된다) 대신 에듀코인을 기축 통화로 사용하는 곳도 생겨났다.

이충현 사장도 아쉬울 건 없다.

얼마 전 있었던 대선의 승자가 이충현 사장을 과학기술 보좌관으로 데려가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 갑자기 웬 2017년이냐고?

지금이 바로 2017년이다.

방금 전까지 2010년 아니었냐고?

그건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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