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191화.
“우산? 아하하! 그거였구먼!”
우산이란 말에 빵 터진 정현수 회장을 나나 김승주 회장은 영문을 모르고 쳐다봤다.
이게 그렇게 터질 만한 이야기인가.
“크큭.”
거의 숨이 넘어갈 듯 웃는 그.
김승주 회장을 쳐다봤으나 그 또한 정현수 회장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은 거의 처음 본 듯했다.
“이래서 박승재 쪽에서 연락이 먼저 왔던 거고.”
“네?”
“유 대표 이거 완전 큰일 날 뻔했는걸? 외국 기업들까지 거론하면서 내 구미를 당겨 놓지 않았다면 말이야.”
박승재가 미리 알고 있었나?
아무래도 정현수 회장에게 그가 앞서 연락을 줬던 것 같다.
둘의 사이는 친하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
“괜찮아. 구미는 충분히 당겼어. 제플과 푸글이라. 거기에 미국 정부라면 오브라이언을 이야기하는 건가?”
“그렇습니다만, 오브라이언은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겁니다.”
“왜? 삼전도 거의 따낼 뻔했던 건데?”
“그런 부탁은 할 수 없으니까요. 박승재 회장님이 무리하셨던 겁니다.”
“아주 크게 무리했지. 공장이야 굳이 미국에서 비싼 임금 들여가며 운영할 필요가 없는 건데 말이야.”
하지만 무기 계약 건이었다.
한 번쯤은 도박이란 걸 해볼 만한 규모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미국 정부와의 무기 개발 계약은 더더욱.
나는 사실 이때 정현수 회장의 표정을 살피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최근에서야 새삼 느낀 거지만 이놈의 재벌이란 자들은 평범한 사람처럼 감정을 드러내질 않는다.
좋으면 좋다, 나쁘면 싫다는 표정이 나와야 하는데 이들은 마치 도박사처럼 자신의 패와 감정을 숨겼다.
“그래. 그쪽을 통해서 유 대표가 우리 해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라인을 만드는 거죠. 지금 당장은 저는 해신 그룹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하지만 회장님께서 허락만 해 주신다면…….”
“허락? 우산? 우산 정도는 씌워 줄 수 있지. 박승재가 자네 못 건드리게 해 달라는 것 아닌가.”
“어떻게 씌워 주실 생각이신가요?”
“글쎄. 세부 사항은 논의를 해 봐야 알겠지만 일단 경호원부터 우리 쪽으로 붙여 놓지.”
부족하다.
경호원은 현재 한성보안에서 맡아 주고 있다.
굳이 해신에서 추가할 필요는 없다.
“저는 그것보다 큰 것을 원합니다.”
“큰 것? 자네가 나에게 줄 것이 어느 정도 크기인 줄 모르는데 어떻게 큰 것을 주겠나.”
“에듀코인과 프린스 리뷰의 지분을 넘겨 드림과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액수의 자동차 지분을 주십쇼.”
“뭐?”
해신 자동차.
에듀코인과 프린스 리뷰가 아무리 핫한 분야의 국내 최고 기업이라 할지라도 삼전 전자와 쌍벽을 이루는 해신 자동차 기준에서는 존재 가치가 미미하다.
방금 나는 정현수 회장의 입장에서 자존심까지 상할 수도 있는 소리를 한 것이다.
역시나 그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자네 자신을 너무 크게 보는 것 아냐?”
“에듀코인, 그리고 프린스 리뷰의 가치에 적합한 양만을 바랄 뿐입니다. 몇 프로 되지 않을 겁니다. 완전 양도가 아니라 향후 현금 상환을 조건으로 말이죠. 어차피 자동차 지분은 움직이지 않잖습니까.”
삼전이 그렇듯 해신도 그렇다.
가족 간 분쟁이 아니라면 지배 지분의 변동은 거의 없다.
내가 끼어든다 할지라도 나는 단순히 대주주 중 한 명의 자격을 얻는 것일 뿐, 회사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도, 미칠 생각도 없었다.
이건 정현수 회장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제안한 에듀코인과 프린스 리뷰의 최대 주주가 되려면 현금이 필요하다.
정현수 회장 정도면 본인 개인 재산만으로도 충분할 것이고, 여차하면 회사 자금으로 투자 형식을 거쳐 최대 주주에 오를 수도 있다.
내가 현재 가치에 맞게 해신 자동차의 지분을 임대받는 형식을 취한다면 그에게 득이면 득이지 실이 될 것은 없다.
“잠깐, 유 대표. 나도 헷갈려서 말일세. 해신 자동차 지분은 어쩌려고 그러나?”
“S 아카데미 최대 주주가 되실 회장님도 한성 화학 지분으로 인수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깐 왜?”
“확실한 우산을 가지겠다는 거죠.”
지분으로 얽힌 사이가 된다.
한 번 사고팔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주주 중 한 명으로 엮이면 경쟁 기업인 삼전으로서도 나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함에 있어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를 치면 곧 한성과 해신을 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사정 다 재끼고 앞뒤 안 가리고 위험한 짓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이 박승재 회장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하고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 정도면 유 대표가 얻는 것이 너무 없는데? 단순히 박승재 회장의 무자비한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쓸 수도 없는 지분을 갖고, 이제까지 키운 회사는 경영은 본인이 한다지만 결국 소유권은 우리가 가지게 된단 말인데…….”
“돈 욕심은 없습니다. 어차피 지금 가진 돈의 10분의 1만 있었을 때도 딱히 쓸 곳을 찾지 못했거든요.”
“회사가 한두 개씩 돈에 의해 왔다 갔다 하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제가 손해 보는 장사라고 생각하신다면 회장님께서 저의 정치적 행보에 도움을 주시면 됩니다.”
“당돌한 건지 자신감 넘치는 건지 모르겠구먼. 허허.”
당돌한 것이다.
자신감이 넘치는 상황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직 내가 가진 카드 하나를 꺼내진 않았다.
이 만남 초반에 잠시 언급했던 것을 제외하곤……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만한 돈일지도 모른다.
밖에서 그 정도 돈이라면, 아니, 전생에 만약 그것의 10분의 1만 있었더라면 굳이 다시 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평생을 놀면서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는데, 막상 그 돈이 생기니 딱히 감흥이 없다.
정현수 회장이나 김승주 회장도 그렇게 느낄까.
“정리를 해 드리자면, S 아카데미와 한성 화학, 그리고 에듀코인과 해신 자동차 지분을 맞바꾸어 한 배를 탄 상황을 만들고, 현재 진행 중인 토크 콘서트를 공중파 방송에 편성시켜 2년 뒤 대선을 노려보는 겁니다.”
“대선이라……. 허허. 생각했던 것보다 꿈이 크구먼.”
“대선을 노릴 수 없는 상황이 되더라도 적어도 한 편을 지지할 수 있을 만큼 크면 쓸 만하실 겁니다.”
2년이면 블록체인 시장이 지금보다 최소 100배 이상 커진다.
에듀코인은 일정 가치를 회사에서 보장해 주는 시스템이라 어느 정도 클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샀던 비트코인은 크게 오를 것이다.
원래부터 돈을 벌려고 사 두었던 것은 아니다.
혹시 쓸 데가 있을지 몰라 넣어 둔 것인데 생각보다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러려면 그때까지 살아 있어야지.
“이한일 회장을 아십니까?”
“이한일? 그게 누군데?”
역시 정현수 회장은 모르는 눈치다.
“퓨처 금융투자 대표입니다.”
나대신 김승주 회장이 설명했다.
“퓨처 금융투자? 저축은행인가?”
“그렇다고 보시면 됩니다. 박승재 회장님과 꽤나 가까운 사이고요.”
“그런데?”
“박승재 회장님으로부터 저를 처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합니다.”
정현수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생각보다 복잡해질 수 있는 사안 때문일 것이다.
순전히 박승재 회장의 눈 밖에 난 젊은 기업인을 돕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건 끼어들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
“한 말씀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이제까지도 마음껏 이야기하지 않았나. 해 봐.”
이 자리에 있는 사람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려야 했다.
“그 꽤나 가까운 사이인 이한일 회장도 저희와 함께 움직이는 상황입니다.”
“…….”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나 그 사람도 박승재 회장에게 안 좋은 과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연락을 줬더군요.”
“그 과거가 뭔지는 아나?”
아차.
무슨 과거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그것부터 확인하고 함께할지 말지는 결정해야 하는 거야. 내 입장에서는 잃을 것은 없겠구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회장님께서는 박승재 회장님과 약간 껄끄러운 관계가 되실 수도 있습니다.”
“약간이겠어? 그 사람과 나는 원래 껄끄러워. 움직이는 것은 어느 정도 도와줄 수 있을지라도 결국 돈이 꽤나 필요할 텐데…….”
“회장님께서 어떻게 안 되시겠습니까. 저는 적극 도울 생각입니다만…….”
김승주 회장이 고마운 소리를 한다.
하지만…….
“안 됩니다. 우리 돈이 유 대표 주변으로 들어가는 순간 당사자가 되어 버리거든요. 내가 알고 있기로는 이제까지 신기할 정도로 별 때 묻지 않고 사업을 진행해 왔다고 하던데, 맞나?”
“네. 세금 낼 것 다 내고, 특별히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허허. 우리는 뭐 불법적인 일을 한 줄 아는가. 아무튼, 자네 말대로 진행을 하려면 때도 묻히고 해야 할 거야.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사람 소개밖에는 없네.”
충분하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씩씩하구먼. 젊어서 그런가. 아! 회장님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었군요, 이거.”
“아닙니다. 허허. 저도 감사드립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 주셔서요.”
“나나 김승주 회장님 우산이 완벽한 건 아냐. 박승재 회장은 그런 것 신경 쓰지 않고도 일을 벌일 수 있어.”
“네. 명심하겠습니다. 참, 박승재 회장님은 한동안 조금 바빠지실 겁니다. 저 같은 사람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으실 정도로 말이죠.”
“왜? 아까 그 뉴스 때문에?”
⁂
박승재는 한 시간째 자신의 사무실에서 서성였다.
나이도 나이고 건강도 좋지 않은지라 자신이 사무실에 직접 나올 일은 별로 없었지만, 이날만큼은 아침부터 나와 계열사 사장들을 직접 불렀다.
“이게 뭐야! 미국이 왜 갑자기 발을 뺀 거야?”
당장 미국 국방부와 비밀리에 무기 개발 계약 건에 대해 협상 중이던 삼전 중공업 사장에게 불똥이 튀었다.
그의 얼굴에 박승재가 집어던진 서류더미가 쏟아졌으나 그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회, 회장님.”
“다 만들어 줬더니 어쩌다 이렇게 된 건데? 액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나? 내가 돈은 그쪽 편의 다 봐주라고 했잖아!”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작 담당자인 그는 3주째 진행되던 계약 논의가 중단되었다는 소식도 전해 듣지 못했다.
바로 전날만 하더라도 공장 부지와 규모를 논의하던 중이지 않았던가.
영문을 모르기에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영문도 모르고 일이 잘 풀릴 거라는 소식을 처음 박승재 회장에게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떡할 거야?”
“일단 현지 협상 팀에게 제대로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쪽도 뉴스 보고 국방부 사람들과 연락을 계속 시도하는 중이라고…….”
“시도? 완전히 엎어진 거구먼?”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어차피 일은 틀어진 것이고, 그렇다면 출구를 찾아야 했다.
어디 있는지 모를 출구를.
박승재는 오브라이언에게 준 약의 효과가 들은 것보다 약했나 생각했다.
약을 소개한 한의사를 잡아다 족쳐야겠다 싶어 이한일의 번호를 눌렀다.
“나가 봐!”
“네, 회장님!”
어렵게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순식간에 방을 빠져나가는 계열사 사장들이었다.
수신음이 몇 번 울리고 이한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회장님. 찾으셨습니까?
“어이, 이 회장. 뉴스는 봤지?”
-네, 방금 봤습니다.
이한일의 목소리는 박승재를 잔뜩 흥분하게 만든 그 뉴스를 본 사람치고 침착했다.
원래 처음 그를 거의 죽일 뻔한 때를 제외하고는 그는 항상 그랬다.
“어떡할 거야? 그 한의사가 약효는 확실하댔잖어?”
-그렇잖아도 저도 바로 애들 풀어서 확인 중입니다만, 이미 잠적한 것 같습니다. 찾기야 하겠지만 며칠만 기다려 주십쇼.
“알겠어. 빨리 찾아오게. 이거 어그러지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냐!”
-죄송합니다. 찾아보겠습니다.
이제 며칠 뒷면 이 사기꾼 한의사를 조질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일이 해결될까?
약효도 약효지만 그 약의 진정한 효과는 투약자 본인이 원래 가지고 있는 공격성을 깨우는 데 있었다.
그렇기에 지속적인 투약 없이도 원하는 상태를 만들 수 있다고 했고.
어차피 틀어진 일은 틀어진 일이지만, 확인은 해야 했다.
무엇이 자신이 짠 진로를 바꾼 것인지.
박승재는 내선 전화기를 들었다.
“어이, 김 비서. 지금 바로 오브라이언에게 연락해.”
보통이라면 어찌 대통령에게 직접 연락을 할 수 있겠냐마는, 지난 번 저녁 식사 이후 몇 번의 만남을 가졌기에 연락 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김 비서란 사람도 익숙한 일인 듯 알겠다고 대답했다.
잠시 뒤, 신호음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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