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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89화 (189/200)

[189] 189화.

우산

“그럼 일단 김승주 회장님께 연락을 드려 봐야겠네요.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는 저는 모르지만요.”

일부러 ‘저는’ 이란 단어에 힘을 줘 말을 했다.

지원재가 김승주 회장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안다면 내가 조금 편해지겠지만 이 사람은 그런 걸 하나하나 말을 해 주질 않는다.

-하하. 자세한 사항을 전부 이야기해 드리지 않는 이유는 아시잖습니까.

“아뇨, 모르는데요.”

-아, 이런. 대표님……

“알아요, 알아. 아무튼 실장님의 예상 밖으로 제가 행동하면 어떡하려고 그러십니까.”

-예상 밖으로 항상 잘하시는데요. 제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계획을 만들어 내십니다, 대표님은.

“위계질서 확실한 대기업 같은 곳에 있으셔도 잘하셨을 것 같은데…….”

-거기 갔으면 벌써 잘렸습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코너로 몰렸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건 딱 세 가지다.

첫째는 가만히 있는 것.

이건 사실 선택이 아니라 선택할 의지조차 잃은 상황에 하는 행동이다.

마지막 한 방을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

둘째는 항복 선언.

코너로 몰렸다는 건 이미 실력 차이를 한껏 느낀 상황이다.

가만히 있다가는 항복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납작 엎드려 패배를 인정하고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백방 낫다.

마지막으로는 발악이다.

이 마지막은 한 단어로 표현하기 조금 어려운 면이 있는데, 그것은 발악 과정에서 첫 번째 선택이었던 가만히 있는 것과 같은 결과가 생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 말 그대로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행운의 카운터 블로우나 효과적인 클린치로 상대방과 나의 위치를 바꾸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어쨌든 선택은 딱 한 번 하지만 그 결과는 무궁무진할 정도로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마지막 경우다.

지원재가 나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하지 않는 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일을 함께한 스타일이 그래 왔기 때문이었다.

나도 지원재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큰 관여를 하지 않고, 그도 내가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생각해 보니 왜 그랬지?

어쨌든 코너에 몰리면 몰릴수록 예상치 못한 한 방을 찾는 것이 그와 나였다.

-빨리 연락해 보시는 것이…….

“형.”

-…….

내가 그에게 형이란 호칭을 하는 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잦은 일도 아니었고.

특히나 최근 들어서 몇 년간은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다.

지원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어 갔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에요. 고맙고 미안해요.”

-…….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는.

살아 있는 것은 다행이나 지금 당장은 만날 수가 없다.

박승재는 지원재가 누군지도 제대로 모른 채로 그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지금 그가 세상에 다시 드러난다면 자신의 명령이 완수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까지 살생부에 올라가 있는 상황인지라 내가 뭘 도와줄 수도 없다.

-곧 돌아가겠습니다, 대표님.

특유의 단호한, 그리고 사무적인 말투로 대답하는 그.

내 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해 줘서 고마웠다.

항상 그랬듯이.

“그나저나 하나만 말씀해 주세요. 제가 지금 당장 빼서 쓸 수 있는 돈이 얼맙니까?”

“회장님.”

“어서 오게, 유 대표. 꼴이 말이 아니구먼.”

그렇게 말은 하지만 막상 내 모습보다 김승주 회장의 모습이 더 말이 아니었다.

마음고생은 서로 했겠으나 나는 회복 중이었고, 그는 아직 그렇지 못한 듯해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걸어오는 김승주 회장.

손을 내미는데 살도 전보다는 많이 빠진 것 같았다.

나는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허허. 내가 잘못 봤나? 풀이 죽어 있을 줄 알았건만, 그건 아닌가 보군.”

“저야 젊으니 괜찮습니다. 이래저래 죄송했습니다.”

“아닐세. 유 대표와 손을 잡았던 건 내 선택이었고, 그 결과가 이랬으니 뭐……. 박 회장이 자네에게 이 정도로 관심을 가질 줄도 몰랐었고.”

그러게.

그게 정말 의문이다.

도대체 왜 그 정도 되는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을 이 정도로 몰아붙인 건지는…….

“앉게나.”

“네. 감사합니다.”

우리의 대화는 지원재 이야기부터 시작됐다.

그와 지원재의 사고 경위는 지원재로부터 어느 정도 들었다고 했다.

사실 그는 지원재의 연락을 받기 전에도 박승재가 개입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박승재의 성격을 잘 아는지라 어찌해 볼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재계에는 삼전과 한성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회장들의 도움을 받을까도 생각했으나, 막상 그렇게 하기는 이제야 잠잠해진 수면에 다시 돌덩어리를 던져 놓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았다고도 했고.

삼전 같은 재벌 그룹이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나 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나도 이쪽 세상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 들었던 것밖에 없었다.

그들의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규칙이 적용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다르겠지.

한참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정도로 그가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혼자서 한 적이 있었나?

갑자기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이런 자리에는 보통 김미연 부회장이 함께 있었는데.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이야기도 나왔다.

김승주 회장이 퇴원을 하고 첫 번째로 한 일이 김미연 부회장을 미국으로 보낸 일이었다.

다수의 수행원 형식의 경호원과 함께…….

“지원재 실장에게 연락을 받고 나서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지. 흐흐.”

‘흐흐’라니. 가끔 그냥 보통 사람 같은 모습도 보여 준다.

“앞으로는 그럼…….”

“지 실장 연락을 처음 받은 것이 일주일 전이네. 자네에게 연락을 주려고 했지만 그가 직접 연락하기 전까지는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받았고. 게다가 자네 만나기 전에 미리 해야 할 일도 있었고 말이야.”

“지 실장의 계획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그나저나 자네 그렇게 돈이 많았나? 티를 전혀 내질 않으니 그냥 아등바등하면서 사업체 키워 가는 스타트업 사업가라고만 생각했는데…….”

“아, 돈이요. 하하. 저도 잘 몰랐습니다. 어느 시점이 지나가니깐 매번 그거 계산하고 있기도 어렵고 해서요.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라서…….”

“회사 운영한다는 사람이 그래서 쓰나. 하긴, 굳이 개인 돈과 회사 돈을 섞어 가며 쓸 필요도 없이 성공 가도를 달리기는 했나 보군.”

보통은 나처럼 살아가긴 힘들 것이다.

회사 돈과 개인 돈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경영을 하면서 완전히 그렇게 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없진 않다.

양쪽 다 돈이 충분한 상황이라면 관계는 없겠지만, 한쪽이 부족하면 다른 한쪽을 유용해야만 한다.

사업은 생물과 같아서 아플 때는 외부의 수혈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정도로 심하게 아픈 적이 없었다.

대기업들이야 각각의 회사 가치를 생각하면 그걸 전부 개인 돈으로 지배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배 구조를 돌리고 돌려서 약간의 돈으로 여러 개의 회사를 지배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지만, 나는 그런 대기업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다.

적극적인 확장이 굳이 필요한 적이 없었기에 맥스스쿨 인수 때를 제외하고는 있는 돈 가지고 사업을 벌였고, 그 결과가 지금의 에듀코인과 프린스 리뷰 인수.

지분 구조상 S 아카데미와 에듀코인의 접점은 없다.

단지 대주주가 나라는 공통점 빼고는 말이지.

심지어 프린스 리뷰는 에듀코인 소유다.

그럼 월급도 없는데 돈이 어디서 그렇게 모였냐고?

이제야 말하지만 S 아카데미는 월급은 없지만 수당을 받는 구조였다.

수익의 일정 퍼센티지는 내가 받는 구조.

이게 대기업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주주가 워낙 다양하게 얽혀 있고, 지분 구조가 복잡해 지배권 외에는 얻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그 지배권이 워낙 강력해서 굳이 개인 돈을 만들려고 혈안이 될 필요도 없고.

괜히 세금만 더 내게 되는데 뭣 하러 그렇게 하겠는가.

회사 돈으로 쓰면 비용 처리도 가능하고.

때에 따라 지분을 일정량씩 팔았던 적도 있었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만 팔아도 시총이 워낙 올라가 있었을 때였으니.

거기에 맥스스쿨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판(물론 이한일에게 넘기면서 충분한 대가를 받지는 못했다) 케이스.

이미도 원장에게는 조금 미안한 소리지만, 어쨌든 그때도 시가보단 싸게 넘겼다.

싸게 넘긴 것의 수익률이 몇 배였으니 나름 성공한 셈.

“어쨌든, 계획은 들었는데 지 실장도 나에게 그러더군. 그건 순전히 자신의 계획이고, 이걸 쓰거나 말거나 결정을 내리는 건 나라고.”

“맞습니다.”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는 지금 이 자리에 나를 부른 시점에 이미 정해졌을 것이다.

부정적이었다면, 또는 박승재와의 한판이 부담스러웠다면 이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동참하겠네. 이제까지처럼…….”

“감사합니다.”

“다만,”

역시 단서.

어떤 단서가 붙을 것인가.

“이 끝이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네. 그러니 보험 하나만 해 주겠나?”

“보험이요?”

“응.”

수척해졌지만 그래도 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던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네에게 제공하는 우산. 나 혼자서는 못 할 일이야. 삼전과 상대를 맞추려면 해신이 나서야 해.”

“잘 알고 있습니다.”

잘 모르지.

그래도 아는 척이라도 해야겠다.

한성 그룹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규모다.

정재계에 단독으로 미칠 수 있는 영향력도 크고.

그런데 그 그룹의 총수를 마치 아랫사람 처리하듯, 또는 단순한 하나의 카드처럼 공격했다.

이건 삼전과 한성의 차이다.

전생에서는 해신과 삼전이 나름 경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막상 그 판에서는 삼전이 해신을 따돌린 지 오래였을 수도 있다.

결국 해신과 한성이 힘을 합해야 간신히 삼전과 경쟁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 수 있단 뜻인데…….

“자리는 내가 만들겠네. 설득은 자네가 해 보게.”

오케이.

이것만 해도 원했던 것 이상이다.

가능하면 김승주 회장이 직접 해신 회장을 설득하고 함께했으면 좋았겠지만 이것만 해도 충분하다.

보험은 뭐냐고?

지금 시점에 한성과 해신이 손을 잡으면 박승재 회장의 주의가 김승주 회장에게로 쏠릴 수 있다.

거기에 내가 낀다면?

단순한 조력자로 내려가는 것이고.

박승재는 김승주 회장도 주시하겠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의 주역을 나로 생각할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허허. 너무 쉽게 생각하진 말고. 오랫동안 삼전과 재계 1위를 노리고 경쟁하던 그룹이야. 지금은 창업주 아들이 넘겨받고 많이 무너졌지만 쉽지 않을 걸세.”

“쉽다고 생각하고 일했던 적은 없습니다. 아예 불가능하지만 않다면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겠죠.”

“시원시원한 것은 좋구먼. 이 매력에 나도 빠져서 여기까지 온 거겠지. 이제 그만 가 봐도 좋아.”

“예?”

돈 이야기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왜? 투자 이야기하려고?”

“아, 네.”

“그건 알아서 하게. 지 실장이 나에게 한 대로 나도 나 스스로 움직일 거리를 찾아야지. 자네는 자네 스스로 움직이게. 그게 투자가 됐건 뭐건 말이야. 해신 쪽에 던져 줄 선물도 알아서 정해 보고. 일단 자네가 저 문밖으로 나서는 순간 우리 쪽 보안요원 스무 명이 붙을 걸세. 차 실장이라고, 능력 좋은 사람이니 알아서 잘 사용하게.”

“한성 보안 소속으로 말입니까?”

“그래. 그래야 우산이 제대로 씌워지지. 자네 개인이 보안요원 고용해 봤자 박 회장이 더 많이 보내면 어쩌겠나. 그래도 저 사람들은 우리 쪽 사람들이니 함부로 하진 못할 걸세. 적어도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움직이겠지. 그리고 내가 전할 말이 있으면 그 사람 통해서 할 테니깐 잘 듣고 다녀.”

“감사합니다, 회장님!”

김미연 부회장이 있었으면 어떤 표정이었을까? 궁금했다.

상황이 정리될 쯤이면 다시 볼 수 있겠지.

김승주 회장까지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라 차라리 그녀는 이 나라를 잠깐 떠나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그녀가 중간 다리 역할을 해 줬다면, 이제는 내가 직접 나서야 한다.

일단 출발 사인은 그린 라이트.

하지만 신호등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위험해지면 언제라도 발을 뺄 거야. 살아야 하거든. 만약 그런 상황이 되면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게.”

“당연히 그러셔야죠. 저도 저 때문에 다른 사람들 위험해지는 것 원치 않습니다.”

“근데 다들 위험해지지. 흐흐. 예전에도 종종 이런 일이 있었다면서? 참 신기한 사람이야, 자네는”

김윤지 이야기인 것 같다.

그때도 죽을 뻔했었지. 그녀 또한 위험에 빠졌었고.

정말 신기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말은 못 해도 죽었다 다시 살고 있는 사람이 신기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

“기대하겠네.”

“해 보겠습니다!”

발을 빼겠다느니 보험을 들어야겠다느니 말은 했지만 김승주 회장의 표정은 전의 그 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자신감 있고 너그러운, 재벌 총수도 그냥 사람과 다를 바 없구나 싶은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그냥 동네 아저씨 얼굴이다.

나는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의 말처럼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기다리던 비서가 무섭게 생긴 아저씨 한 명을 소개시켜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차명진입니다. 회장님 지시로 오늘부터 대표님 경호를 맡게 되었습니다.”

다부진 체격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전형적인 경호원 느낌의 남자였다.

나이는 대략 마흔 정도?

경호원치고는 조금 많은 편이나 말단이 아닌 이상 굳이 꼭 파릇파릇하게 젊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

“반갑습니다. 유현덕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앞으로.”

“네. 기본적으로는 위험에 대비하는 성격이니 근접 경호는 최소로 하겠습니다. 회장님께서도 원래 혼자 잘 다니시는 분이라고 하시더군요.”

“맞습니다. 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요. 하하. 든든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잠시 어색한 순간이 찾아왔다.

“하하. 이런. 그냥 저는 할 일 하고 다니면 되는 건가요?”

뭔가 어딜 가든 이 사람 허락을 받고 다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는 없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단지 너무 떨어지면 경호의 의미가 없기에 저는 거의 항상 대표님과 함께 다니게 될 겁니다.”

“아, 네.”

그러고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가는데 엄청 어색했다.

중간 중간 이 사람이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기도 하고.

신기한 것은 그가 나에게 너무 가깝게 붙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대략 2, 3m 정도랄까?

그 정도 간격을 계속 유지하면서 내 뒤편에서 따라오는 모습.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곳에 내 차가 있으니까.

주차장 공간으로 들어가자마자 웬 아저씨들 스무 명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아, 네. 안녕하세요. 하하.”

나는 거의 도망치듯 내 차로 뛰어갔고, 차명진은 그런 내 뒤를 좀 전과 똑같이 2, 3m 거리를 두고 따라왔다.

차 문을 열려는 순간 그가 내 차 문을 붙잡았다.

“운전도 이젠 제가 하겠습니다.”

“괜찮은데요.”

“직접 하셔도 관계는 없지만 일단 조심하셔야 한다는 회장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

차키를 주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 주기는 하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가끔 티비에서 유명인들이 뒷좌석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했었는데, 막상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보니 전혀 기분 좋지 않았다.

내 차를 뺏기는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이래서 참새가 뱁새 따라 가려다가는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이 있나 보다.

차 실장은 능숙하게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그 뒤로 밴 세 대가 함께 따라 나왔고.

“음……. 차 실장님?”

“네.”

“저 경호해 주시는 것 맞으시죠?”

“그렇습니다만…….”

“그렇군요.”

그가 잠깐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대표님, 회장님의 첫 번째 연락입니다. 해신 자동차 정현수 회장님과 이번 주 금요일 저녁 7시에 약속 있으십니다.”

해신 자동차 정현수 회장이라.

해신 그룹 창업주의 큰아들이다.

이 사람 전생에서 TV로 봤을 때는 굉장히 무서울 정도로 덩치 크고 인상 나쁜 아저씨였는데…….

“김승주 회장님도 나오시죠?”

말을 마치고 운전에 집중하던 그가 다시 나를 슬쩍 쳐다보았다.

“회장님도 나오십니다.”

“네, 알겠어요.”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될 것만 같아 나는 조수석을 살짝 뒤로 밀어 두고는 창밖을 바라봤다.

도로는 어둑어둑해지고, 고등학교 방과 후 수업이 끝났는지 교복을 입은 몇몇 학생들이 학교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아이들의 표정은 다들 밝았다.

뭐, 그중 어둡거나 무표정한 녀석들도 있긴 하겠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밝은 얼굴이었다.

나는 창문에 희미하게 비치는 내 얼굴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직 서른.

많은 나이는 아니겠지.

전생보다 훨씬 돈 걱정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나.

그런데 그때의 얼굴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냥 드는 느낌.

그때보다 왠지 지금이 더 나이 들고 수척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저 눈 좀 붙여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눈을 감았다.

차가 어디론가 움직이며 흔들거리지만 그것 또한 눈을 감으면 어둠에 잠겨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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