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187화.
“멈칫거리는 걸 보니 잡고 싶긴 한가 보네.”
자리에서 일어나긴 했으나 이한일이 던진 말에 나도 모르게 멈칫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칠 그가 아니었다.
“박승재요?”
“삼전 그룹 박승재 회장.”
하지만 그 말이 이한일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야말로 나를 박승재에게 데려가 구속을 시켜둔 사람이 아니었던가.
완전한 상하관계.
그것이 내가 그들의 모습을 보고 생각했던 그들의 관계인데 아니었나?
이한일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이해가 되질 않겠지. 내가 왜 유현덕 대표가 박승재를 치려는 일에 협조적으로 나오는지.”
“아직 자세한 이야기는 지원재 실장이 전해 주지 않은 것 같네.”
“그러게 말이야. 유 대표가 이런 모습은 상당히 어색한 걸?”
뭔가 실마리를 잡아야 했다.
지원재 실장에게서 온 연락과 이들의 갑작스런 들이닥침.
그리고 박승재 문제에 있어서 이들의 스탠스 파악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건지를.
아, 실마리를 잡는 건 여기까지 지원재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끌고 왔냐는 실마리다.
“지 실장도 나름 바쁘겠지. 어디 있는지는 아시오, 유 대표?”
“…….”
“지금 미국에서 오브라이언을 만나고 있다고 하네. 원, 이렇게 모르니 내가 더 가까운 사람 같구먼.”
“오브라이언을요?”
오브라이언과의 연락은 나도 끊긴 상황이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지원재가 지금 미국에서 오브라이언을 만나고 있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린지…….
궁금증만 점점 커지는 대화였으나, 이한일이나 곽한영은 굳이 숨기려고 하지도 않는 듯했다.
“박승재 회장이 꾸민 일이 조금 있거든. 그거 원상태로 되돌리려 잠깐 갔다고 들었습니다.”
“뭘 꾸몄는데요?”
“전쟁을 꾸몄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전쟁 분위기 조성을 오브라이언을 통해 했다고 해야 하나?”
최근의 뉴스들과 김준현의 연락을 통해 나도 짐작하고 있던 바였다.
박승재와 만나고 간 이후로 갑작스레 바뀐 오브라이언의 정책들.
정책만 바꾼다고 전쟁을 준비한다 할 수는 없겠지만, 확실한 것은 언제 전쟁이 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강경파의 손을 들어주는 상황이었다.
박승재가 우리나라에 전쟁 위기를 고조시켜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설마 IMF 때의 상황을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만들어 보려고 했던 걸까.
1990년대 중반, 우리나라는 외환 보유고가 거의 바닥이 드러날 정도의 외환위기를 겪는다.
이걸 해결하려면 다른 나라에서 달러를 빌려와야 하는데, 당시 상황은 동아시아 쪽 여러 개발도상국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외환위기를 겪고 있어 자체적으로 도움을 받기 어려웠고, 결국 IMF에 구제 요청을 하게 된다.
채권자는 IMF, 채무자는 대한민국.
여러 부실기업들이 무너진 것은 당연지사이며, 건실한 기업들조차 단기 자금 압박에 시달리다 싼 가격에 시장에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싼 가격.
대부분 체력이 남던 해외 기업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나, 몇몇 국내 기업들 중에서도 외환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던 곳들은 쇼핑에 참여한다.
위기는 말 그대로 위기.
위기가 지나면 단기적으로 존립에 위협을 받았던 회사들도 원래 자신의 위치에 걸맞은 장소로 돌아간다.
그리고 쇼핑에 참여할 수 있었던 기업들은 떼돈을 벌고.
“쇼핑…….”
“허허. 맞아. 작게 말해서 못 들을 뻔했네. 박승재가 원하는 건 바로 그거죠.”
“우리가 막으려는 것도 그것이고.”
이한일과의 대화 중 거의 끼지 않았던 곽한영이 여기에서 끼어들었다.
뭐, 이들의 뜻은 알겠다만,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이들이 그런 대의를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었냐는 것이다.
박승재의 계획에 한 다리 걸쳐놓고 편승하는 편이 평소 이들이 보여 주었던 모습과 더 비슷한데 말이지.
여기까지 듣고서도 내 표정이 풀어지지 않았는지 이한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 실장은 이 정도 대의를 꺼낸다면 유 대표도 이해할 거라 생각하던데, 그 정도는 아닌가? 이해 안 되나요, 유 대표?”
“이런 일에 회장님과 의원님은 왜 참여하시는 건가요?”
“응? 하하하.”
곽한영 의원이 아주 크게 웃었다.
어찌나 그 소리가 컸는지 조용히 그의 바로 옆까지 걸어와 서 있던 이한일이 몸을 움찔했을 정도였다.
“유 대표님, 대표님은 우릴 어떤 사람으로 판단하십니까.”
“의원님과 이한일 회장님 말씀이십니까?”
“여기 우리 둘 말고 또 누가 있습니까?”
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이 눈빛.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언제였더라…….
조규만이 떠올랐다.
일개 지방에 있는 학원 원장에서 국회의원까지 진출했던 그 사람.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생긴 빈자리에 혜성처럼 나타나 일약 정계의 스타가 되어 있는 곽한영.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린 학생들의 과거까지도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 냉혈한일까.
그 목적에 대의가 있기는 했던 걸까.
무슨 대의?
순전히 나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아니면 교육과 경제 문제는 다르다는 걸 말하는 것일까.
“우린 대표님을 색안경 끼고 보진 않았습니다. 대표님이야말로 우릴 계속해서 색안경 낀 채로 보고 있는 거죠.”
색안경이라.
적절한 표현이다.
그리고 그 색안경은 그들이 끼워 준 것이었다.
“지금 대표님은 우리의 의도가 어찌 되었건 삼전과의 싸움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본인이 달려가는 길에 우리가 방해가 될 사람들이냐, 아니면 발판이 될 사람들이냐만 판단하면 되죠.”
이건 분명 맞는 말이다.
내 감정은 확실히 이들과 손을 잡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의 현실은 뭐가 됐든지 간에 힘이 필요하단 것.
그리고 지원재는 그 힘을 줄 사람들은 모은 것일 테고.
“왜 이 문제에 있어서 저와 함께하시려는 겁니까?”
“허허. 아직도 착각을…….”
이한일이었다.
“우리가 유 대표와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방향이 같을 뿐이오. 지금 시점에선 말이지.”
“박승재를 잡는 것 말인가요.”
“그렇지. 유 대표는 개인적 원한 때문에 박승재를 잡으려는 거요, 아니면 그것에 더불어 다른 목적도 동시에 얻기 위해 잡으려는 거요?”
개인적 원한.
김승주와 지원재가 당했다.
내가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 때문에 말이다.
단지 오브라이언과 내가 가깝고, 오브라이언에게 어느 정도 영향력을 내가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이라고 해야 할까.
인간의 개인적 원한은 어떤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내버릴 정도로 큰일일지 모른다.
정말 박승재라는 거물과 싸우려는 나는 원한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아니, 맞을지도 모른다.
단지 아니라고 스스로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과거, 전생, 그리고 지금의 삶까지.
학교에서 학원까지, 그리고 각종 회사를 운영하는 것까지 쉬운 일은 없었다.
지금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동년배 중 가장 앞서 나가는 자수성가의 표본이겠으나, 나에게도 전생의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삼전 그룹, 대기업, 재벌 그룹과 나의 고통이 무슨 관계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막상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 수도 있다.
원한이란 명사로 포장하면 원한이 될 것이고, 대의를 위한다고 포장하면 대의를 위함이 될 수도 있는 상대가 박승재가 아닐까.
그에게 가지고 있는 원한은 크다.
그리고 그 원한을 기꺼이 대의로 포장할 수 있을 만큼 더러운 짓을 나에게 한 사람이다.
당한 사람이 나뿐이겠는가.
혹시…….
“회장님도 개인적 원한이 있으신 거군요.”
“응?”
“그렇지 않고서야 주인 같은 사람을 치려는 계획에 동참하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주, 주인? 허허.”
이한일은 갑작스런 나의 태세 전환에 그냥 웃을 뿐, 아니라는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머리가 순간 가뿐해진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적의 적은 동지랬나?
“지원재 실장이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곽한영 의원님께서는 도대체 왜 이 일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셨는지 모르겠고요. 하지만 두 분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 시점에 궁금한 건, 두 분은 박승재 회장을 어디까지 몰기를 원하시는 건가 하는 부분입니다.”
삼전 그룹을 통째로 날린다.
이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재벌 총수는 대통령보다 권력이 더 세다는 항간의 소문도 있다.
이게 단순히 돈의 힘을 과대평가한 소문일 수도 있지만, 그 돈의 맛을 본 자들이 정재계, 그리고 사정 기관에 수두룩하단 걸 고려하면 진실일 수도 있었다.
내가 보아 왔던 정치권과 재계의 싸움.
잠시 동안은 재계가 몸을 사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유리한 쪽은 재계다.
어떤 죄목을 들이대더라도 그들이 가진 돈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곽한영과 이한일의 표정을 살폈다.
물론 너무 티 나지 않게.
웃고는 있지만 처음보다 한껏 긴장한 듯했다.
아마 내 표정도 그렇겠지.
어리숙한 젊은이에게 이 정도 일을 벌이도록 종용하고 있는 자신들의 한계를 느끼려나.
아니면 자신들의 말로써 내가 어느 정도까지 해낼 수 있는지를 판단하고 있을까.
“발표 시일은 가능한 한 최대한 늦춰 주십쇼.”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않겠나? 이미 인기가 상당한데?”
“지방선거에서 의원님과 회장님이 원하는 정치 인사를 늘리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죠. 하지만 총선과 대선은 아직 시간이 좀 남지 않았습니까.”
“대, 대선?”
곽한영의 반응이 먼저였다.
“어차피 저 군 문제 완전히 해결되려면 2년은 잡아야 합니다. 입대를 하건 안 하건 2012년은 되어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건 해결됐다고 하지 않았나.”
“단순히 새로운 세력을 만드는 것은 가능할지 모릅니다. 아니, 그건 지금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죠. 하지만 그걸 지속시키려면 시작할 때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단기적인 목표로 보고 그 박승재를 잡으려 했던 것일까.
어쩌면 지원재가 이들에게 말한 계획을 이들이 지금 나에게 앵무새처럼 전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원재 또한 이렇게 허술하게, 이 정도로 별 효과 없어 보이는 일을 꾸미진 않았을 것이고.
혹시…….
“지 실장님이 이렇게 급히 하자고 하신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확연히 드러났다.
지원재는 구멍 뚫린 계획을 그들에게 전달한 것이고, 그는 나름대로 스스로 뭔가를 위해 움직이는 중이다.
굳이 구멍 뚫린 계획을 그들에게 줬다는 건 결국 이들과 내가 손은 잡되, 내가 끌려 다니는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겠지.
뭐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느냐 싶을지도 모른다.
이 판은 원래 이리 복잡하다.
이한일과의 대화로 잠시 우리 둘을 쳐다보고만 있던 곽한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문제는 이겁니다. 한일아?”
“아, 응. 허허. 이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무슨 말씀이요?”
“아…….”
이한일이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나는 나대로 머리를 심각하게 굴려 대고 있었다.
정치권 진입.
이번 지방선거에는 내가 직접 나설 수 없다.
군 문제가 해결된다 할지라도 면제 판정을 받자마자 선거에 나설 수는 없잖은가.
그게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다음 기회는 2년 뒤다.
그리고 그 2년 뒤에는 내가 어떤 위치까지 가 있을 수 있을까.
금전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어쩌다 지금처럼 잘 풀려서 그 위치에 도달한다면, 내가 박승재의 상대가 될 수는 있을까.
머리가 복잡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것들도 있었다.
지금 우리 셋이 이 자리에 모여 박승재 타도라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투덕거리는 상황을 만든 것은 지원재.
그는 그대로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중인 것 같다.
그가 이한일과 곽한영을 설득하며 써먹었던 계획은 구멍이 많다.
그 구멍들은 의도된 것일 수 있고, 그것이 의도된 것들이라면 우리의 다음 계획은 내가 주도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야 한다.
“으흠. 어차피 알게 될 부분이니 뭐……. 그래. 지 실장이 우리에게 전해 준 계획은 처음엔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렸네. 하지만 솔깃한 부분도 있었지. 삼전 박승재의 영향력은 유 대표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여야를 막론하고 정계와 사정 기관까지 깊숙이 뻗쳐 있는 상황이야. 여기 곽한영 이 친구가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오르고는 있지만, 박승재에게 등을 돌리는 모습이 비치는 순간 당내 경선에서의 승산은 완전히 사라진다고 봐도 돼.”
예상했던 바다.
각계각층, 크건 작건 자신의 사업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는 삼전 장학생 출신들이 다수 차지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라고 해 봐야 다를 것이 있겠는가.
교사를 하다가 국회의원이 될 수도 있고, 군인을 하다가 될 수도 있고, 사업가를 하다가 될 수도 있는 것인데.
“이건 자네가 들어와도 마찬가지고. 인기가 있어 봐야 뭐하나, 인지도가 있어 봐야 어디에다 써. 막상 정계 진출하는 순간 삼전인들에게 둘러싸이는 꼴인데.”
“그럼 지원재 실장의 계획은…….”
지금 급격히 올라가는 인지도를 바탕으로 거대 양당 구도의 국회 지형도에 제3지대를 만드는 것.
고요하게 고여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물 잔에 외부의 충격으로 회오리를 일으키는 것이겠구나.
“이번 지방선거의 깜짝 스타, 그리고 그 후에는 곽한영이 이끌 신당에 합류하는 거지.”
“그 다음에는요?”
“다음?”
정신 나간 사람들 같으니라고.
‘곽한영이 신당을 창당할 테니 너도 합류해라’ 이게 전부라고?
박승재를 잡는 것은?
신당 창당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 정도로 고심해야 할 일인가?
“박승재를 잡는다고 했잖습니까.”
“아, 그건 다음 대선 때 신당이 여당이 되면 가능하지.”
기약 없는 약속.
아니, 약속조차 아니다.
“지방 선거는 전 관심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12년 총선은 몰라도 말이죠.”
“저, 지원재 실장이 그렇게…….”
“실장님 계획인 뭔지는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실장님과 가까운 사이이기는 했으나, 실장님의 명령을 제가 받은 것도 아니고요. 오히려 반대였죠. 의원님, 회장님, 박승재를 잡는 걸 원키는 하십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둘.
아마 자신들이 그렇게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만큼 이들을 만난 직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랐다.
무슨 상황인지, 지원재 실장의 계획은 또 무엇인지 파악하느라 어리바리하게 행동했던 나, 그리고 이제는 다시 평소의 유현덕으로 돌아왔다.
“지금 당장 제가 박승재 회장을 찾아가 두 분의 계획을 알려 드리면 어떻게 될까요?”
“뭐?”
이 사람들은 바보인가.
도대체 왜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다 해댄 것일까.
“제가 그분께 복수를 꿈꾸고 있다는 건 그분도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곽한영 의원님이나 이한일 회장님께서 그렇다는 건 새로운 소식 아닐까요?”
나는 대화 중 계속 내 손에 들려 있던 휴대폰의 화면을 켜고 둘에게 흔들며 보여 주었다.
마치 녹음이라도 한 것처럼.
“그러니깐 도대체 두 분이 왜 지원재 실장님의 조금은 허술한 계획에 동참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이제. 그거 들어 보고 함께할지, 아니면 박승재 회장을 만나러 갈지 결정하죠.”
지금 보니 곽한영이 이한일보다는 한두 수 위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곽한영에 비해 이한일의 얼굴은 이미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한일 회장님은 정말 위험해지실 수도 있겠군요. 곽한영 의원님이야 돈줄 끊기는 수준이겠지만요. 흐흐.”
웃을 상황은 아니다.
그럴 기분도 아니고.
하지만 왠지 웃음이 나왔다.
오늘 이들을 내가 만나고, 아니, 지원재의 연락을 받은 이후로 처음으로 내가 뭔가의 주도권을 잡는 상황 아닌가.
물론 내 휴대폰에는 어떤 소리도 저장되어 있지 않다.
전형적인 블러핑.
하지만 일단 이 고비만 잘 넘긴다면 혼자서라도 박승재 회장에게 타격을 줘 보려던 나의 계획에 날개를 달아 줄 수 있다.
내가 이제까지의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고 믿는 동안은 이한일이나 곽한영 모두 내 뜻에 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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