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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86화 (186/200)

[186] 186화.

토크 콘서트 9회에는 현 여당의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꼽히는 곽한영 의원과 야당의 임정욱 의원이 출연하여 대학생들과 담화를 진행할 예정이다.

나와 곽한영 사이의 과거 사건은 외부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은성 고등학교 입학생을 대상으로 과거의 불미스런 사건을 매스컴에 알린 것은 정말 분노가 치미는 일이었으나, 그것 또한 몇 달 전의 이야기.

사람이 어떻게 단 몇 달 만에 이런 식으로 입 싹 닦고 만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으나, 그사이 내가 겪은 일들에 비하면 곽한영과 이한일이 나와 학교에 했던 일은 사소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지원재가 살아 있다는 감격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썩 달갑지 않은 자에게서 걸려 온 전화.

말투가 곱게 나갈 리 없었다.

-오랜만입니다, 유 대표님.

토크 콘서트 출연진 이야기는 내가 직접 진행하진 않았다.

특히나 이번 패널은 더더욱 내가 건드리지 않았고.

그와 내가 이렇게 전화 통화로나마 대화를 나누는 건 오랜만이긴 하다.

“네, 의원님.”

어차피 지원재의 당부도 있고, 지금 상황에서 내가 길게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나도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이번처럼 알 수 없는 적은 거의 처음이었다.

적어도 이번 생애에서는 말이다.

지원재는 곽한영과 이한일이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전화가 끝나자마자 나에게 걸려 온 연락.

지원재는 믿을 수 있다. 그런데 그가 곽한영과 이한일을 이번 일에 끼어들게 만들었다는 건 이해되질 않았다.

좀 만나고 이야기나 해 주지.

죽었다가 살아난 상황이었을 테니 만날 수 없단 것일까.

-토크 콘서트 출연을 허락해 주셨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감사 말씀 드리려고 연락 드렸습니다.

설마 감사 인사하려고 연락한 것뿐?

정치인이야 인지도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 우리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도움이 되긴 했겠지.

하지만 이 사람 하나 띄워 주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다.

“네? 그 말씀 하시려고 연락하신 건 아니시겠죠?”

말이 곱게 나가질 않았다.

행사에서는 웃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 입장에서 이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는, 박승재나 이한일과 마찬가지인 사람이었다.

어쨌든 지원재가 조금 더 자세히 말이나 해 줬으면 이렇게 답답하진 않았을 텐데.

본론으로 들어가는 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으나 그래도 초조했다.

무슨 계획인지.

-허허. 급하시군요. 일단 조만간 뵙고 싶은데 시간을 좀 내주셔야 하겠습니다. 두 시간 후 어떠신가요?

“무슨 일이신데요?”

-이한일 회장과 관련된 일입니다.

“두 시간 후, 이쪽에서 뵐 수 있습니까?”

서울이 아니다.

두 시간 동안 내려올 수 있는 거리도 아니다.

곽한영이 두 시간이라고 한 것은 이미 이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오고 있다는 말.

-가고 있습니다. 그럼 사무실에서 뵈면 될 것 같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서 말씀드리죠.

그리고 두 시간 동안의 기다림.

사무실에서 함께 있던 준서나 윤지 누나는 자리로 돌려보냈다.

곽한영과 이한일, 박승재까지 전부 최근 나와 부딪힌 사람들이다.

지원재는 일단 자신이 살아 있단 것을 비밀로 해 두길 원하는 것 같다.

그의 계획이 무엇일지.

아니, 사실 그가 도대체 어떻게 그 폭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건 직접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고, 조만간 볼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일단 그가 던진 공 하나를 제대로 처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곽한영이 나에게 날아온다.

지원재의 연락으로 보자면 이한일도 곧 연락을 줄 것이다.

아니면 곽한영이 이한일, 그리고 지원재까지 이미 뭔가를 꾸민 상황일 수도 있고.

박승재를 상대하는 건 나 혼자서는 어렵다.

그래도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기에 어떻게든 해 보려 토크 콘서트니 뭐니 하면서 일을 벌여 보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분명 한계가 올 수도 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가며 힘을 구하길 원하지만, 막상 내가 아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다.

박승재를 상대할 수 있을까.

지금은 단 한 명의 아군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다.

곽한영이나 이한일과 손을 잡는 것?

그자들도 박승재나 똑같은 족속일 텐데…….

지원재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구상을 했을까.

온갖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리를 떠다녔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런 생각 때문에 고민을 하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라는 걸.

어차피 일은 곽한영이 오고 나서, 그리고 그가 나에게 할 말을 듣고 벌어질 것이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시계를 봤다.

곽한영이 연락을 준 시각으로부터 딱 한 시간 반이 지난 시간.

“들어오세요.”

역시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곽한영이다.

“대표님.”

“의원님.”

나는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몸을 의자에서 일으켰다.

나보다 훨씬 나이도 많은 사람이다.

기분이 나쁠 법하겠지만 그는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활짝 웃으며, 마치 자신과 나의 과거 불미스런 일은 다 과거 일인 양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은 우리 둘 사이의 대화가 이어졌다.

“별일 없으셨습니까?”

싱긋 웃으며 말하는 그.

별일이라고 한다면 죽었다고 생각했던 지원재가 살아서 연락을 한 일이겠지.

“네.”

물론 지원재의 연락 내용으로 보아 곽한영은 대충 지금 나의 상황, 그리고 박승재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은 저렇게 대답했다.

그것 외에는 별일은 없으니.

그리고 상대가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상황인 것이 확실하다면 굳이 에둘러 숨길 필요는 없다.

“허허. 뭔가 있으셨을 겁니다. 지원재 실장 말입니다.”

“아, 그것 말이군요. 방금 연락은 받았습니다만…….”

“그럼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이 좋겠군요.”

응? 벌써 본론으로?

빨리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좋겠으나, 이 정도로 빠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나 혼자 세웠던 박승재 타도 계획에는 없던 것이었다.

“여당에서는 유 대표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할 겁니다.”

“끌어들여요?”

“네. 아시겠지만 곧 있으면 지방선거에 대선에 이것저것 많습니다. 그리고 지금 정계의 화두는 유명 외부 인사 영입이고요.”

“저는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습니다만, 그건 알고 하는 말씀이시겠죠?”

“군 문제는 해결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군 문제가 해결이 됐다고?

나도 모르게 어떻게 내 군 문제가 해결이 되고 말고 한단 말인가.

알 수 없다는 내 표정을 본 곽한영은 다시 한 번 웃으며 말했다.

“이런, 이런. 지원재 실장이 아직 이 이야기는 전달하지 않았나 보군요.”

“무슨 소리입니까?”

“유 대표 사고 기록이 몇 개 있습니다. 병원 기록도 가지고 있고요. 그걸로 군대는 면제 판정 받은 상황입니다. 몇 달 전, 지원재 실장이 사고를 당하기 전에 처리한 일이고요.”

‘그러니까 그걸 당신은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건 그렇고, 저희 쪽에서 곧 이 사람, 저 사람 연락이 갈 겁니다. 아! 혹시 야당 쪽에서 연락 받으신 적은 없습니까?”

“야당이요?”

“네.”

“아, 없는데요.”

평소에는 내가 곽한영처럼 대화를 주도하는 편인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를 못했다.

물론 가끔 이런 식으로 끌려다닌 적이 있긴 하지.

어쨌든 군 면제 이야기는 금시초문.

지원재가 언제 그런 것까지 준비를 했는지…….

내 입장에서 나쁠 것은 없다.

박승재랑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군대는 큰 걸림돌이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여당에서 접촉을 해 온다고?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선거철이 되면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예상은 했다.

결국 정치권의 힘을 얻어야만 경제 권력으로 압도적 우위에 서 있는 박승재에게 약간이나마 타격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생긴다.

하지만 아직 고작 8회밖에 진행하지 않은 토크 콘서트인데 벌써 연락이 올 거라고는…….

“잘됐습니다. 제가 강력히 추천한 인사가 바로 유 대표입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잠시 뜸을 들이는 곽한영.

“지원재 실장이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그 사람의 계획이 어디까지인지 모르니 제 역할만 하겠습니다. 대표님은 여당의 제안을 공식적으로 거절하시면 됩니다. 물론 야당에서 제안이 온다고 해도 그것도 거절하시면 되고요, 공식적으로.”

공식적으로 양당의 입당 제안을 거절한다.

여기에서 지원재가 생각한 바가 무엇인지 대략 감이 올 것 같았다.

사실 내가 토크 콘서트를 통해 기대했던 것도 이런 모습.

전생의 대선 기억을 되살려서 한 정치인이 했던 것을 따라가려 했던 것이다.

물론 결말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길 원했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히 토크 콘서트만으로 인지도를 쌓고 정계의 관심을 끌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과연 박승재가 기다려 줄까라는 걱정.

토크 콘서트를 통해 일개 온라인 학원가의 유명인 수준이었던 내가 일반 대중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직 그 정도로 정계의 관심을 받을 수준은 아니었다.

여당에서 나에게 연락을 할 거란 소식과, 그 소식을 들고 온 사람이 곽한영이란 것은 결국 그가 움직여 나를 영입하자는 제안을 꺼냈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런데 다시 나보고 거절하라고?

야당의 제안까지 거절하고.

“왜 이렇게 하시는 건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오. 연락이 오면 거절하시라고 말씀드린 이유가 궁금한 것이 아니고요?”

여당에서 함께하자고 연락이 온 건데 거절하는 것이 이상하려나.

여당이든 야당이든 결국 박승재의 지원을 받아온 사람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삼전 그룹이 대한민국 기득권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만큼 대단한 것이니까.

각종 장학회를 통해 머리 좋은 학생들을 선발하고 지원하여 그들이 성공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주고, 그 뒤에는 기업 운영에 도움이 되는 일을 알아서 하도록 만드는 시스템.

괜히 삼전 공화국이란 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에 발을 들이는 건 꼭 여당, 야당에 들어가야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미 다들 자리 잘 잡고 계시는데 제가 들어가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요. 그나저나 의원님께서는 왜 저에게 이런 제안을 하시는 건가요?”

“이 제안의 의미가 궁금하신 건 아니고요? 하하.”

“의미…….”

모르겠다.

곽한영이 방금 한 이야기만으로는…….

“공식적으로 여당, 야당의 입당 제안을 거절한다고 발표하시죠. 아마 저희 쪽에서도 공식적으로 입당 제안이 들어갈 겁니다. 그리고 대표님은 대표님이 구상하신 대로 정치의 길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혼자 하라는 말씀이세요?”

“혼자 하셔야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그 전에, 저도 하나 여쭤 보죠. 유 대표는 왜 토크 콘서트를 시작하신 건가요?”

결국 이 이야기.

토크 콘서트의 목적.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권과 온 국민의 관심을 받게 되면, 자연스레 다음 대선에서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된다.

물론 공익적인 목적도 있겠으나 내가 지금 이 시점에 급히 이런 행사를 기획한 것은 그것보다는 내 과거의 기억을 최대한 써먹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고.

곽한영이 나에게서 듣기를 원하는 답은 하나일 것이다.

정치권 진출을 위해 이걸 하는 것이라고.

“결국 정치죠.”

“지난번에는 별 관심 없어 보이시더만, 왜 갑자기 하려는 건가요?”

“알고 물어보시는 것 아닙니까? 의원님이야말로 왜 저에게…….”

그때였다.

곽한영이 들어오며 닫아 둔 문을 누군가가 다시 한 번 두드렸다.

-똑똑똑똑.

이번엔 네 번인가?

따로 비서 같은 건 두지 않기에 내가 들어오라고 소리치거나 직접 나가서 문을 열어 줘야 한다.

나는 진지한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던 중이라 갑작스런 노크 소리에 놀랐는데 곽한영은 슬쩍 뒤를 한 번 돌아본 것이 다였다.

마치 누군가가 올 것을 알고 있던 것처럼.

“안 나가 보십니까?”

“누구세요?”

어색한 질문.

어색한 기류가 방안에 흘렀다.

잠시 뒤.

“이한일이오.”

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곽한영에 이어 이한일까지 내 사무실로 직접 온 것이었다.

이한일?

맞다.

아무리 지원재가 방금 전 연락에서는 도움을 받으라고 했으나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가 내 건물에 찾아와 나를 데리고 간 이후로 김승주 회장과 지원재가 사고를 당했다.

나에게 있어서 그는 완전히 박승재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나를 찾아왔다고?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곽한영이 그런 나를 흥미롭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뭔가 일이 있으셨군요. 이한일 회장이 여기 온 것은 나쁜 건 아닐 겁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어서 제가 부른 거죠.”

이건 뭐 지 맘대로 만날 사람을 더 추가하고 앉아 있네.

그리고 떠오른 또 다른 생각.

지원재가 분명 그랬다.

이한일과 곽한영의 도움을 받으라고.

그 또한 이한일이 자신의 사고 배후에 있는 것을 알 텐데, 그리고 그 사고로 자신은 죽을 뻔했는데 그들과 미리 사전에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내 머리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내가 이 정도로 대책 없이 당황했던 적이 있었나?

“들어오지 마세요. 나중에 이야기하겠습니다.”

“……?!”

곽한영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손님을 문전박대하는 나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참으로 어이가 없지만, 이렇게 끌려다닐 수만은 없단 생각에 내뱉은 말이었다.

그래도 내뱉은 말은 지켜야지.

나는 일순 얼어 버린 듯한 곽한영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말했다.

“의원님도 이제 그만 돌아가 주시는 게 어떨까요.”

“뭐라고요?”

“정치를 하니 마니, 그리고 입당 제의를 거절하니 마니 하는 이야기는 주변부 이야기잖습니까. 본론을 말씀한다고 하시고선 주변부만 돌고 계시니 계속 그러실 거면 그만 돌아가 달라고요.”

그때 이한일이 문을 벌컥 열었다.

예의 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아 참. 이 사람에게 예의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이려나.

문은 벌컥 열었으나 표정은 한없이 평온했다.

전에도 이랬다. 눈앞에 다른 사람이 피를 뚝뚝 흘리고 쓰러져 있어도 나만 편하면 된다는 듯한 모습.

“유 대표.”

“…….”

“박승재 회장을 잡고 싶지 않소?”

아, 진짜 지원재, 어차피 이런 연락을 해줄 거라면, 그리고 뭔가 꾸민 거라면 나에게 더 많이 알려 주고 이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죽었다 살아온 사람에게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나저나 함께 나를 붙잡아 두고 내 주변 사람들을 공격한 박승재와 이한일이었는데, 이한일이 박승재를 잡고 싶지 않냐고 물어본다.

지원재가 필요하다.

절실히…….

일은 자기가 꾸며 놓고 나만 덜렁 이 사자들 사이에 던져 놓으면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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