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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84화 (184/200)

[184] 184화.

죽지 않는 자

“그러니깐, 이게 다 그 사람의 계획이라고요?”

제임스의 표정은 지금 상황이 그만큼 어이없기도 하면서 믿기 힘든 일이란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뜬금없이 나타난 한 사내의 이야기.

정체도, 신원도 수석 비서관인 그가 미리 확인하지 못했지만, 오브라이언은 그의 말을 철썩 같이 믿는 듯했다.

아니, 애초부터 미국 대통령까지 이런 골목길로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이 전 세계에 몇이나 될까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면 상황은 오히려 간단해지려나.

유현덕이란 사내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 바 있다.

오브라이언이 얼마 전까지 미국 교육계에서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었으니.

그가 한국과 미국에서 시도한 것들은 분명 돈을 벌기 위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시도들에서 얻어진 결과들은 정체되어 있던 교육계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기존 홈스쿨링 제도를 사용자와 수익자 양측에서 훨씬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발달시켰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지금은 한국에서 더 큰일에 휘말린 상황.

“네.”

“전쟁 위험이 높아지면 경제계에 큰 타격이 될 것 아닙니까.”

“한국의 대기업들은 1990년대 중반에 있었던 IMF 사태에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위기는 돈이 있는 자들에게는 기회란 것이죠.”

유현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언급된 적은 있으나 그가 주된 내용이 아니었다.

박승재.

한국이 아무리 경제적 강국이 되었다 하더라도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냥 여럿 있는 동맹국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여럿 중의 한 국가의 여럿 중의 한 그룹 회장.

그런 사람이 이 정도 일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중이라는 지원재의 말을 제임스는 곧바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의심을 가지시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리고 저도 아직 그자의 그림 전체를 보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저와 유현덕에게 닥친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여기 계신 오브라이언 대통령의 방한과 그 직후 벌어진 심정의 극심한 불안정은 제 생각을 심증으로나마 뒷받침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그가 방금 말한 내용들, 이것들은 사실 제임스 또한 일부 의심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오브라이언 대통령이 방한한 이후 한국의 남북관계와 대미관계는 완전히 경색되었다.

한국에 들어가 있는 외국 자본들은 슬슬 발을 빼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주식시장은 매일 연중 최저치를 기록 중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임스는 오브라이언 대통령이 실제로 북한에 대한 압박을 계속하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국내 무기 개발 예산을 올리는 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고, 그걸 위한 좋은 핑계로 북한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희망 아닌 희망.

물론 개인의 희망이지만 이제까지 몇 년간 오브라이언을 알아 온 사람으로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의 성정 변화가 걱정스러웠던 것도 사실.

그리고 방금 지원재가 전한 말에는 오브라이언의 변화가 자신의 의지에 기인한 것이 아닌, 한국 재벌 그룹 총수 박승재의 계략에 의함이란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 있었다.

중독이라.

미국 대통령에게 성격을 흥분시키는 그런 한약재를 음식에 넣어 자신의 의도대로 일을 진행시킨다니.

“증거는 있습니까?”

“증거로 잡기가 어려운 것들뿐입니다.”

“대통령님은 언제 이 사실을 알게 되신 거죠?”

그간 지원재와 제임스가 대화를 나누고 있느라 오브라이언은 약간 뒤로 물러서 있었다.

제임스는 몸을 돌리며 오브라이언에게 물었다.

“나도 얼마 되지 않았네요. 이 사람에게서 처음 연락이 왔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북한이랑 정말 한 번 일을 저질러 보려고 하고 있었고. 유현덕 이름이 나오자마자…….”

“큰 소리를 내셨죠.”

실제로 오브라이언은 지원재의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 유현덕에 대해 엄청난 성토를 해댔다.

감히 자신을 만나고 싶다고 불러 놓고선 자리에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

그리고 지원재가 한 말은 상황이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는 것과 곧바로 만나고 싶다는 것.

또한 유현덕이 그 기간 직전까지 박승재에게 붙잡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오브라이언이 마음만 먹었다면 이 정도는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다.

굳이 정보기관을 돌릴 필요도 없이, 그냥 은성고등학교에 있는 오광필에게 연락 한 번만 돌려 봤다면 말이다.

하지만 나중에 제임스가 느낀 것처럼 이성적 판단을 할 정신상태가 아니었고, 박승재의 의도대로 진행되어 오히려 다행인 정도로 위험한 상태였다.

어쨌든 천만다행으로 오브라이언은 지원재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마음이 심히 불편한 상태인데 그 이유를 모르고 그냥 화만 나는 상황이었으니 뭐라도 잡고 싶었고, 지원재는 그의 상태를 전화 통화에서 정확하게 짚었다.

“증거가 없다면 대응하기도 어려운 부분입니다만…….”

“대응은 저희 쪽에서 하겠습니다. 대통령님과 비서관님은 그냥 박승재 회장과 지금 이 관계를 유지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만 하면 된다고요?”

“네.”

“그것 가지고 뭘 어쩌려고…….”

이 대목에서 시종일관 신중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지원재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제임스는 그의 표정을 보자마자 뭐랄까, 약간의 섬뜩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원재가 죽을 위기를 넘겼다는 소리는 들었으나 그게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그의 입장에서는 이상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의 섬뜩함.

오브라이언 또한 그의 이런 표정은 본 기억이 없었기에 순간 자신의 위치를 잊고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그 표정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시 원래의 지원재로 돌아왔다.

“알고만 계십쇼. 대통령님, 드린 약은 며칠 더 드셔야 할 겁니다. 일단은 급한 나머지 직접 연락드렸지만 앞으로 비서관님 통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박승재 회장은 자신의 뜻대로 흐른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약을 쓰건, 아니면 다른 계획으로 방향을 돌리건 할 수도 있으니까요.”

오브라이언은 주머니 속을 만졌다.

환약 다섯 개.

이게 뭔지는 모른다.

다만 지원재가 말했던 대로 확실히 며칠 간 자신의 감정 상태보다는 훨씬 편안했다.

백악관 의무원들조차 찾아낼 수 없었던 약의 정체가 뭔지 궁금하긴 했지만, 말하지 않으려는 것을 더 이상 캐묻는 것도 아닌 일인 것 같았다.

유현덕.

그자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은 괴한 셋의 급습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기에 무슨 이유로 그런 습격을 꾸몄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유현덕, 그자의 요청으로 만나기 위해 방문한 한국에서 재벌 회장만을 만나고,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알 수 없는 약에 중독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그래도 지금 상황에 대해 이해하는 듯해 보이는 제임스가 오브라이언을 쳐다봤다.

연락처를 줘도 되겠느냐는 표시겠지.

오브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였고, 지원재는 전화번호 하나를 받았다.

“미스터 지의 계획을 알려 달라고 해도 알려 주지 않겠죠?”

제임스가 왔던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지원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골목 안쪽에 밖으로 나가는 길이 과연 있긴 할까 싶었으나, 그는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방향을 틀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렇겠죠. 우리 미국도 이래저래 피곤한 일들도 많고 머리 쓰는 사람들도 많긴 한데, 저쪽은 몇 수는 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하네요.”

오브라이언 또한 골목 안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난 테러 사건도 저 나라와 관련이 있는 일일 수도…….’

토크 콘서트 시작 두 달째.

말이 두 달이지 그간 일주일에 한 번씩 총 여덟 번의 콘서트가 진행되었다.

고정 호스트로는 전에 이야기했던 유명 MC 한 명과 나였고, 게스트는 사회 각계 전문가와 청년 사업가들이 대부분.

처음 시작할 때 기획한 프린스 리뷰 인수합병 소식에 묻어 어느 정도의 홍보 효과가 있었다.

아침마당 같은 몇몇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나는 S 아카데미를 성공시켰을 때와는 또 다른 인지도를 쌓고 있다.

그리고 이번 9회에서는 특별한 손님이 준비되어 있었다.

-놀라지도 않으시는군요. 허허.

사실 이 게스트의 연락은 나 자신이 놀랄 일이었다.

“아뇨. 언젠가는 연락을 해 주시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에이.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만, 저희 프로그램이 성장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최대한 안 놀란 척.

하지만 엄청 놀란 상태였다.

내가 놀랐다는 걸 상대방이 알아서 좋을 것이 없단 생각에 그렇지 않은 척을 하는 것이었을 뿐.

국회의원 곽한영.

이한일과 함께 사업가 유현덕을 직접적으로 공격했던 사람이다.

다만 그때도 그는 유미진이 얽혀 있는 이한일이나, 또는 나와 직접적으로 경쟁했던 조규만의 경우와는 달랐다.

그가 갑자기 연락을 해 왔다.

토크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를 원한다고…….

그는 현재 여당의 차기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

처음에는 당연히 인사만 주고받고 끝낼 생각이었다.

그와 나의 과거상 서로 좋은 대화가 오가기 힘들 수도 있으리란 생각, 그리고 이 행사의 초반부터 정치색을 가지면 애초의 취지에 벗어나 시청자의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그렇게 설명을 했을 때, 곽한영은 웃으며 멋지게 받아쳤다.

-저 혼자 나가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야당에서도 유력 주자 한 분이 같이 나가시면 괜찮지 않나요?

“그걸 맘대로…….”

-맘대로 정한 것이 아니고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솔직히 다 까놓고 말씀드리자면, 이렇게라도 이번 지방선거의 관심도를 올리고 싶은 정치인의 바람이죠.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는 분이 바로 유 대표 아닙니까.

말문이 살짝 막혔다.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중 대화에서 나를 이토록 사이드로 몰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문제는 그럴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내 반대편에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의 말처럼 민주주의의 최대 장점이자 약점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참여다.

정책 홍보나 인간 홍보라면 거절하겠으나, 선거 자체에 대한 홍보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리고 정치 이야기도 슬슬 집어넣으면 토크 콘서트도 훨씬 더 주목받고 성장하게 될 겁니다. 유 대표님은 제가 불편하시겠지만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는 대립할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요.

마치 사회생활 오래 해 온 어른이 막 사회에 나온 병아리 가르치듯 하는 말.

그런데 기분이 나쁘진 않다.

이게 그의 능력이겠지.

대립은 했으나 딱히 사람 자체에 대해서 악감정은 들지 않는 사람이 곽한영이다.

그나저나 이한일이 나한테 했던 짓을 생각하면 쉽게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는데.

머리를 굴렸으나 제대로 굴러가지가 않았다.

결국 이 통화는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렀고, 내부 회의를 거쳐 결정하고 연락을 주겠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내부 회의야 당연히 정치 쪽으로 토픽을 넓히자는 쪽이었고.

내부 회의가 어떤 거냐고?

“야, 네가 원하던 것이잖아?”

주현필이 무례한 말투로 말했다.

뭐 어쩌랴.

아무리 가진 돈도 내가 많고, 위치도 내가 높더라도 나와 그의 사이는 그것들만으로 설명을 할 수는 없잖은가.

나에게 있어 그는 자리가 어찌 되었건 분명 큰형 같은 존재였다.

“그래도 곽한영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지! 다들 불안해하는데 네가 한다고 해 놓고선 기회가 왔는데 뭘 망설여? 게다가 곽한영이야. 어쭙잖은 정치인 출연하는 것보다 훨씬 파급력도 클 거고.”

“호호. 부원장님은 학원 관리만 하시면서 정치 쪽도 잘 아시네요.”

“아! 아닙니다, 원장님. 저 녀석이 답답한 소리를 하잖아요.”

이미도 원장이 나의 편에 살짝 서는 듯 했다.

하지만 그녀도 곧, “나도 주 부원장님과 같은 생각이에요. 이걸 기다리고 있던 것 아녀요?”라고 말했다.

기다리고 있던 것은 맞다.

프로그램의 파급력을 보자면 당연히 이맘때쯤이면 정치권에서도 주목을 할 시점이고, 특히나 조금 있으면 지방선거가 시작된다.

기다리고 있기는 했으나, 상대가 곽한영이란 사실이 약간 부담스럽달까?

“또 약해지는 소리 하는 거죠, 뭐.”

“예? 아니에요.”

“아니긴 뭘 아니야. 이거 시작한 목적이 뭔데?”

김윤지의 말이 비수가 되어 꽂혔다.

이렇게 표현하면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이지만, 사실 필요한 말이었다.

토크 콘서트를 시작한 목적.

내가 가진 한 줌의 경제적 힘으로는 박승재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그와 나 사이의 간극은 아마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만큼 되겠지.

이 거리를 어떻게 좁히느냐…….

콘서트를 통한 인지도 확보.

각종 사회 공헌적 활동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

어디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어떤 위치에 올라서면 그의 만행을 공식적으로 조사하고 처벌할 수 있는 시점이 오지 않을까.

이게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동료들을 설득할 때 했던 말이다.

지금은 그 1단계고.

그런데 1단계에서 부담스러운 사람이 나온다고 해서 우물쭈물하는 나의 모습은 이들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자신감 있는 모습, 완벽한 계획으로 무한 신뢰를 받아도 어려운 일인데, 나 스스로가 먼저 흔들려 버리면 어찌되는 걸까.

“후. 곽한영 의원이라…….”

“어렵게 생각하지 마. 이제까지 만난 사람들 중 그 사람보다 쉬웠던 사람이 있었어? 외삼촌도…….”

조규만.

곽한영은 사실 어려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막상 그와 대립한 일은 단 한 번.

그리고 큰 피해를 입지도 않았다.

그에 비하면 조규만은 엄청 끝판 왕 급 보스였지.

“조규만 의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그러니깐, 시작부터 너무 부담 갖지 마. 전처럼 즐기라고.”

그녀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표정은 편하지 않았다.

이런 경쟁과 싸움조차 어느 정도 즐겼던 과거였다면, 지금은 그렇지가 못하다.

지원재의 죽음.

시신도 찾지 못한 그의 죽음이 가져온 그늘은 너무 컸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

그리고 앞으로 나갈 사람은 과거에 묶여 버리면 안 된다.

김윤지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도 그것이리라.

과거의 일에 대한 복수든 아니든, 아니면 새로운 경쟁이든 과거의 잔재 청산이든,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물끄러미 과거를 돌아보며 기억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원하는 곳에 도착해서 해도 늦지 않으리라.

“누나, 역시!”

“뭐?”

“고마워요.”

나만 분위기가 어두웠던 것 같겠지만 막상 사무실 분위기로는 다들 곽한영이란 이름에서 부담을 느끼긴 했으리라.

박승재와의 기나긴 싸움이 시작된 시점에서 자꾸만 우울해지는 팀 분위기를 그냥 놔둘 수 없다.

곽한영이 아무리 어려울 수 있는 사람이더라도 박승재에 비할까.

“그럼 오늘 회식?”

“회식이요?”

“분위기도 환기시킬 겸!”

그리고 그때였다.

징. 징. 징.

회의를 하기 위해 잠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딱 세 번.

문자 메시지가 올 때 생기는 세 번의 진동.

폰 화면을 켜고, 나는 거의 1분 이상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아니, 정신이 없었으니 얼마나 그렇게 물끄러미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중요한 건 평소보다 긴 시간을 멍하니 보냈다는 것이고, 더 중요한 건 내가 보고 있던 화면 속의 글이었다.

“왜? 뭔데?”

김윤지가 내 표정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들 나를 보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잠시 더 그렇게 있었다.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가짜일까.

장난일까.

화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표님, Ji입니다. 조용한 곳에서 전화 부탁드립니다.

Ji는 지원재가 종종 결재 서류에 사용하던 서명이었다.

지원재?

그래, 맞다.

박승재와 이한일이 일으킨 폭발 사고로 시체도 못 찾은 그 지원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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