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83화 (183/200)

[183] 183화.

오브라이언, 박승재, 그리고 현 백악관 수석비서관 제임스가 한자리에 앉아 있다.

이전 두 사람의 미팅 장소가 한국이었다면, 지금은 워싱턴 백악관 주변 한 호텔.

물론 대통령이란 사람들은 혼자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조차 안 되기 때문에 경호실 직원들이 함께 나와 있었다.

가까운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홀을 비워두고 각 입구마다 매의 눈으로 밖을 살피고 있었고.

“제임스가 꼭 함께 뵙고 싶다고 해서 말이죠.”

“허허. 괜찮습니다. 제가 독대를 요청 드린 것도 아니잖습니까. 반갑습니다, 제임스. 박승재라고 합니다.”

제임스는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백발의 노인으로 보이는 박승재란 사람.

극동아시아의 강국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로 강한 경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를 만나고 온 오브라이언 대통령의 행보가 이상할 정도로 과격해지고 극단적으로 변했다는 것도…….

뭔가 그의 정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리가 나왔었나 싶어 백악관 의무실을 통해 검사도 해 봤으나,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럼 이건 대화를 통한 변화라는 건데.

사람이 대화만으로 평생을 가지고 산 신념을 쉽게 뒤바꿀 수 있는 것일까.

“뭐, 어차피 이쪽 일을 진행하려면 제임스의 도움도 꼭 필요하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제임스도 생각을 조금 유연하게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브라이언이 이렇게 말하면서 제임스를 흘깃 쳐다봤다.

그리고 그 눈빛은 뭐랄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적어도 제임스에게는…….

박승재는 그들 둘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어차피 대통령이 정하면 따라가는 것이 대통령제의 단점이자 장점이지. 그리고 오브라이언 당신은 이미 노선을 바꾸기로 결정했고.’

그때 요리사가 요리를 들고 그들의 테이블로 걸어왔다.

어차피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렵기에 다들 조용히 요리가 세팅되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 요리사가 자리를 뜨고, 다시 그들 셋이 남았다.

“박 회장님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설명을 제임스에게 할까요.”

이 대목에서도 제임스는 굉장히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오브라이언이 자신에게 보낸 눈빛으로는 분명 그가 이 자리에서 할 말과 생각이 약간 다를 수 있음을 알리는 것 같았는데, 그는 다시 전쟁을 운운할 때처럼 이상한 오브라이언으로 변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생각의 변화는 박승재의 영향이 크다는 뉘앙스의 말이었고.

“제가 해 드리죠. 대통령님께서는 이미 제임스 씨와 함께 이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눠 보시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렇죠.”

“이번엔 제가 설득 드릴 기회이고요. 대통령님이야 저의 이야기에 전화로나마 동의를 해 주셨으니 이번엔 제가 노력을 기울여 볼 때군요.”

그리고 박승재는 제임스 쪽으로 몸을 완전히 돌려 앉았다.

그렇다고 해서 오브라이언에게 등을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불편했다.

그리고 불편함을 확인시켜주는 박승재의 이야기.

“핵 이야기는 들어 보셨죠?”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의 핵 문제 말입니다.”

북핵은 예나 지금이나 미국과 한국 정재계에서 큰 화두이다.

정치적으로는 작고 위험한, 그리고 관리되지 않는 국가가 핵이라는 위험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부분에서 오는 불확실성.

경제적으로는 한국이라는 세계 순위권에 드는 경제 강국이 전쟁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위험성이랄까.

“거의 개발이 완료되었다는 정보는 알고 있습니다.”

“거의가 아니라 완료된 것과 마찬가지죠. 실험도 진행한 적이 있고요, 이미.”

“그런데 그건 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삼전그룹이 세계 경제에 있어서 아주 큰 영향을 주는 기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향을 전혀 줄 수 없는 기업도 아닙니다. 그리고 미국도 현재 일자리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계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일자리 문제요?”

아직 제임스는 감을 잡지 못했다.

무엇이 오브라이언을 움직였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핵 이야기를 꺼내더니 갑자기 일자리라…….

“삼전의 신규 반도체 공장들을 미국에 건설하겠습니다. 텍사스든 오하이오건 관계없이 일자리 늘려야 할 필요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요.”

“네?”

“대신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핵을 막아 주십쇼. 미국의 경제 제제와 군사적 제제라면 충분할 겁니다.”

제임스는 이 사람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일자리 문제는 일자리 문제고, 군사적 문제는 완전히 다른 어젠다다.

하지만 오브라이언의 표정을 보고선 한 번 더 놀랐다.

오브라이언은 분명 이걸 들어주려고 하는 표정이었다.

일자리가 그만큼 큰 문제였던가.

물론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다.

미국이 아무리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은 이 나라 또한 완벽할 수는 없음을 말하고 있었다.

북핵을 막아서 이 사람이 얻는 이득이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군사적 수단을 동원한다면 한국의 경제는 개판이 될 것이다.

외국인 자본은 항상 한국의 군사적 대치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임스?”

오브라이언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냐니.

“말도 안 됩니다, 대통령님.”

“그렇게 대답하리라 생각했습니다. 하하. 박 회장님, 시간은 조금 주셔야 하겠습니다.”

당연히 주고말고.

박승재는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면 몇 년이고 기다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은 삼전은 버티기만 하면 될 일이고, 이 계획이 실행만 제대로 된다면 그때부터는 제플이고 푸글이고 할 것 없이 다 삼전 아래에 있게 될 것이다.

“저야 시간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핵 문제 자체는 기다릴 수 없는 시점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거야 당연히 문제가 가시화되면 행동으로 나서야 하겠죠. 그 전까지는 일단 논의하고 설득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시는 걸 확인했으니 그것 하나 못 기다리겠습니까. 제임스 비서관부터 일단은 설득이 되어야 하겠지만요.”

둘은 웃고 있었으나 제임스는 같이 웃을 수 없었다.

오브라이언은 이미 자신이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박승재가 떠나고, 제임스는 오브라이언과 함께 차에 올랐다.

비공식적인 만남이라 여러 대의 차량을 움직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평소와 같다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복귀하겠지만, 이날은 제임스의 기분이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오브라이언 또한 그의 기분을 짐작하고 있었고.

그들이 있던 식당가를 빠져나와 백악관을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오브라이언이 말했다.

“화가 났나요, 제임스?”

제임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강하게 밀고 나가는 상황에서 자신이 뭘 어떻게 할 수 있으랴.

그런데 오브라이언의 말투가 아까와는 조금 달랐다.

아니, 전과는 조금 달랐다고 해야 할까?

“화가 났겠죠. 내가 보여 줬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려고 하고 있으니.”

“대통령님…….”

“조금만 기다려 보죠. 박승재, 저 사람을 믿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잠시 들를 곳이 있습니다.”

들를 곳.

이건 예정에 없던 일이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비서실에서 관리한다.

개인이 어디 가거나 누굴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막 가고 만나고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자신은 수석비서관이고.

그런데 자신도 모르던 일?

“일단 그 전에 사과부터 하고요. 미안했습니다, 제임스. 워낙 달라진 모습을 설명 없이 보여 줘서.”

“아, 아닙니다. 그런데 어딜 들르신다는…….”

“제임스는 만나도 누군지는 모를 겁니다. 미스터 유 기억하나요?”

“유현덕이요?”

기억은 하다만 제임스 개인적으로는 유현덕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오브라이언이 대통령이 되기 직전 교육 관련 정책 수립차 만난 적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고에서 그가 오브라이언을 구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서 학교에서 일도 하고 사업도 한다는 정보뿐이었다.

박승재에 이어 유현덕까지.

오브라이언이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과 특별히 더 가깝게 지낼 이유는 없다.

그렇기에 제임스의 표정은 의문에 빠진 그것이었을 수밖에 없었고.

“네, 기억은 합니다만…….”

“그가 나를 결국 두 번 구해 줬거든요.”

“아…….”

그러는 사이 백악관으로 가던 차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다시 시내로 빠져나갔다.

원래 제임스는 가벼운 사람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한껏 더 심각한 표정이었다.

한 번은 과거에 있었던 사고.

나머지 한 번은 또 언제란 말인가.

워싱턴에 있는 대부분의 도로는 정말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으나, 아직 골목골목은 예전 그대로인 곳도 많았다.

딱히 돈이 부족해서 포장을 하지 못했다기보다는 아무래도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라 오랫동안 방치된 면이 없지 않았다.

차가 울퉁불퉁한 골목길에 진입하자 이리저리 흔들렸다.

“여기는 왜…….”

“잠시만 기다리죠.”

오브라이언이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통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두세 번 울렸을까.

아무도 없던 것 같은 골목 안쪽에서 사람 하나가 반짝이는 휴대폰 액정을 이쪽으로 살짝 비추며 나타났다.

“이거 괜찮은 일입니까? 왠지 위험한 기분이 팍팍 드는데요.”

하지만 오브라이언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문을 열었다.

“경호원이 사방에 깔려 있는데 뭘 걱정인가요.”

그의 말처럼 이 차가 이 골목에 진입한 순간 뒤에 따라오던 석 대의 경호 차량들 또한 골목 입구에 정차한 뒤 몇몇 경호원들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중이었다.

제임스는 슬쩍 뒤를 돌아보고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오브라이언을 따라 내렸다.

“도대체 누굴 만나시길래…….”

“내가 최근에 이상하리만치 과격해졌다고 생각했죠?”

“네? 아, 네.”

오브라이언은 제임스 쪽을 전혀 보지 않고 저쪽에 있는 남자에게 걸어가며 계속 이야기했다.

“나도 이상해졌음을 느꼈습니다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더군요. 이게 전부 미스터 유를 만나러 한국에 다녀온 뒤에 생긴 변화고요.”

오브라이언 자신도 자신의 입장 변화를 알고 있었다는 의미.

그런데 그 변화가 올바르지 못한 것이라면 왜 그는 알면서도 그리했을까.

제임스의 기억 속에 그는 예의바르지만 자신의 신념이 강한 사람이었다.

특히나 미국의 첫 유색인종 대통령인 만큼 남들의 편견에 맞서 싸울 의지가 강한 사람.

그리고 그는 평화주의자였다.

그런데 그가 한국에 다녀온 뒤 갑자기 전쟁을 언급하고 준비한다?

뭔가 잘못된 것을 본인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박승재, 그 사람 어떻게 보였습니까.”

“오늘 만난 박승재 회장이요?”

“네.”

제임스는 기억을 과거로 돌렸다.

오늘의 식사 자리.

그리고 오브라이언의 방한과 변화.

그 때 있었던 박승재와 오브라이언의 만남.

그리고 다시 오늘의 식사 자리.

“교활한 사람입니다.”

“그렇죠. 내가 궁금한 건 그가 나에게 전쟁이 필요하단 기억을 심어 무슨 이득을 볼까라는 부분입니다.”

“이득…….”

제임스가 다시 생각에 빠지려는 찰나, 그들은 이미 멀리 있던 남자의 얼굴이 보이는 정도까지 다가갔다.

어둠이 짙게 깔려 있는 골목이었기에 몇 발자국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제대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거칠 것 없이 다가가던 오브라이언이 이제야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이내 손을 내밀었다.

“정말 살아 있었군요, 미스터 지. 사고 소식은 오광필 교장을 통해 듣고 알았습니다만, 살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통령님. 그리고 제임스 비서관님, 처음 뵙겠습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옷차림이 이렇습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지원재가 오브라이언의 손을 맞잡았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