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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82화 (182/200)

[182] 182화.

이 계획대로, 그리고 나의 의지대로만 됐다면 아마 어느 정도는 성과를 얻어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을 가는 건 어렵지만, 누군가가 먼저 걸어봤던 길을 걷는 것은 명확한 이정표들이 존재한다.

토크 콘서트의 진행도 그러했다.

“오늘은 장안의 화재인 토크 콘서트를 기획하고 참여하고 계시는 유현덕 대표님을 모셔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아침방송 출연.

아침방송이라니…….

하지만 리처드 기어도 아침방송에 출연했다.

해외 뉴스룸 형식의 뉴스들은 201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흥행을 한다.

아직은 그때가 아니다.

뉴스만큼 보수적이어야 하는 콘텐츠도 없겠으나, 뉴스만큼 변해야 할 때 변하지 않는 콘텐츠도 없다.

“요즘 20대와 30대 청년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으세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무슨 이런 질문을 던지는지…….

“아휴. 제가 무슨 아이돌도 아닌데 인기가 있고 없고 할 것이 있나요.”

“그래도 닮고 싶은 사업가 순위에도 들어가시고, 매달 계속 순위가 오르고 계시잖아요.”

“사업이야 열심히 했고 운이 많이 따라 줬을 뿐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조금 아쉬운 분도 계시겠지만요.”

겸손의 미덕은 적절해야 효과가 있다.

그리고 나는 겸손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일부러 유도한 것도 아니다.

“운이라니요. S 아카데미 하면 대한민국 청소년 거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이상 들어 본 회사잖아요.”

“그건 그렇습니다. 열심히만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진행자의 눈이 반짝였다.

성공한 게스트를 부르면 뭔가 비결을 캐어 내는 것의 그의 역할이다.

그런데 내 성공에 과연 비결이란 것이 있을까.

“맛집이라 하면 뭔가 특별한 소스 같은 것이 있고, 학원이라 하면 뭐가 있을까요?”

“특별한 소스요? 그런 것은 또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S 아카데미는 이제까지 다른 학원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하게 시대에 적응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사실이다.

인터넷의 발달에 따른 장소의 제약이 사라진다.

기존 학원에서는 결국 강의실 하나 만큼의 학생만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온라인 교육은 다르다.

인기만 있다면, 또는 효과만 있다면 수만 명의 학생들이 동시에 강의를 시청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면 왜 다들 그런 방식을 일찍이 도입하지 않았느냐?

이게 이미 한 사람이 길을 뚫어 놓으면 간단해 보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그런 길을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학원 수업에 온라인 시스템을 도입하는 건 우리가 처음은 아니었다.

맥스스쿨이 있었지.

맥스스쿨이란 거대 학원이 이미 시작을 해 둔 상황에서 후발주자로 들어간 우리가 맥스스쿨의 경영권을 뺏어 올 정도로 성장했던 것은, 온라인 시스템에 추가로 오픈형 강사 수급제, 거기에 전생에서는 2010년 이후에나 생겼던 프리패스(강의별로 수강료를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간을 구매하고 많은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를 바로 도입했기 때문이었다.

말이야 쉽다.

콜럼버스의 달걀 세우기도 아랫부분을 깨는 꼼수를 알기 전까지는 남들이 이 생각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고 보니 전생의 기억이라는 있어 보이는 단어로 포장은 하고 있지만, 나 또한 꼼수로 여기까지 올라온 것 같긴 하다.

토크 콘서트는 그냥 경제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사업가였던 나를 꿈과 희망의 전도사로 포장해 주고 있었다.

“에듀코인은요? 암호화폐 투자가 요즘 또 유행인데, 그 부분은 어떻게 사업에 참여하게 되신 건가요?”

이건 내가 시작한 일은 아니지.

그리고 지금 시점에 굉장히 우려스런 부분이 있기도 했다.

“제가 원래 기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온라인 교육 사업을 하다 보니 온라인을 통해 돈이 움직이는 걸 많이 봤고, 또 가끔 뉴스에 나오는 해킹 문제도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나왔을 때,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암호화폐가 어떻게 거래되느냐보다 교육에 있어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는 것이네요.”

“불평등 해소요? 교육 분야까지요?”

“지금 에듀코인 사업을 통해 발행 중인 암호화폐가 바로 그것입니다. 첫 강의 하나만 들어 두면 그것에 대한 리뷰나 댓글을 통해 에듀코인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했어요. 일종의 쿠폰 같은 것입니다. 이걸 돈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다른 유료 강의를 들을 수는 있습니다.”

돈이 되지 않는데 암호화폐라고 부른다.

뭔가 이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강사는 에듀코인에서 직접 운영을 시작한 거래소를 통해 학생들에게 받은 코인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최소 보장 금액은 1코인 당 만 원이고요.”

“잠깐만요, 이해가 되질 않아서요.”

“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이미 에듀코인은 거래소를 통해 거래되는 중이다.

“암호화폐의 대명사로 불리는 비트코인은 시세가 엄청 들쑥날쑥하다던데요? 에듀코인 가격이 강사들이 원하는 것보다 확 줄면…….”

“최저 보장 금액은 에듀코인 본사를 통해 보장합니다. 그게 만 원입니다.”

“아하.”

대차게 망할 수도 있는 구조.

하지만 그렇기에 프린스 리뷰라는 거대 업체를 인수합병한 것이다.

중국 쪽에서는 내 예상대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규모가 커지면 외부의 장난질도 쉽지 않다.

“그럼 본사에 돈이 없으면…….”

“큰일 나죠. 하하.”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신 거예요?”

한 번 본 과거니깐?

어쨌든 이런 식의 인터뷰가 계속 이어졌다.

군대도 아직 다녀오지 않은 새파란 젊은이의 사업 이야기.

내가 20대에 신성 학원에 들어가 강사를 시작한 것부터 지금까지 한 일 모두가 남들에게는 꿈과 희망의 이야기였다.

“나름 재미있게 움직이는 걸?”

혼잣말이었다.

이한일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유현덕이 출연하는 프로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굳이 혼잣말까지 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그의 주변에 딱히 없었다.

유미진?

그녀와의 관계는 모든 것을 터놓고 지낼 수 있을 정도지만, 지금 당장 어찌 되었건 과거의 일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항상 자신의 주변에 있던 사람처럼 지내지만 자의건 타의건 강재훈의 부인으로 수십 년을 살았던 사람.

물론 그 타의는 이한일 자신의 목적 때문이란 걸 그도 잘 기억했다.

그녀는 유현덕을 자기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람이라고 여긴다.

박승재는 처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고.

자신은?

그는 특별히 유현덕에 대한 억하심정 같은 것은 없었다.

맥스스쿨 강사진 이탈로 인한 손해?

그건 그의 사업 규모에 비하면 덮고 넘어가도 될 정도로 미미하다.

그런데 혼자 있던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시작일 겁니다.

“허허. 자네 말마따나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인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한참 더 봐야지.”

-이길 수도, 질 수도 있겠죠. 그래도 혼자서라도 벌이려고 하셨던 것 아닙니까?

잠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혼자서 벌이려 했던 일.

형체 없는 목소리의 내용처럼 자신 혼자서라도 언젠가는 부딪힐 일이었다.

이한일에게 있어서 유현덕은 흥밋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리라.

골프채를 맞고 나서도 멀쩡한 그를 보기 전까지는.

아니, 그때만 하더라도 그냥 우연이리라 생각했다.

“하긴, 자네도 그 와중에 살아남았으니…….”

-박승재 회장님은 유현덕도 처리하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도 저와 같을 수 있습니다. 사고도 많았는데 죽지 않는 사람 말이죠.

“자네야 운이 좋았을 뿐이고, 사람이 그럴 수가 있겠는가.”

-운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회장님이야말로 그런 면에서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분 아니십니까. 저도 그렇고 유현덕 대표도 그렇습니다.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자신이 겪은 것들은 그것 이상의 것들도 많았다.

살면서 사람이 죽는 것을 많이 봤지만,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사람들…….

자신도 그중 하나였다.

이한일의 성공에는 순전히 사업력과 조직 장악력 외에 다른 것이 있었다.

그 또한 거친 사내들 사이에서 칼도 맞고 기습을 당한 적도 부지기수.

하지만 정말 엄청나게 운이 좋았는지, 그때마다 가장 위험한 부위는 모두 빗겨 나갔다.

서너 달 동안 병원에 입원했어도 어디 하나 불구된 곳 없이 복귀해 적에게 복수하는 그는, 한때 야차라고 불릴 정도였다.

아니, 사채꾼이 무슨 이 정도로 험한 일에 직접 뛰어드냐고?

사채만으로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주먹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라지만, 압도적 돈 없이 지금의 그처럼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돈이 아니라면?

그는 대부업 경영자이자 수하 주먹 조직의 일선에서 직접 뛰는 대장이었다.

그런 그가 몸에 별 탈 없이 지금까지 버틴 것은 아무래도 기막힌 운, 거기에 더 기막힌 운이 겹친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목소리만 들리는 자네 말을 어디까지 믿으란 말인가. 얼굴 한 번 보여 주지 않으면서.”

-말씀 드렸습니다. 지금 뵙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요. 게다가 제가 얼굴을 드러내고 다니면 이한일 회장님 입장도 불편해지실 겁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사실 이한일이 목소리의 주인을 직접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를 알아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

둘은 사실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전화 통화는 몇 번 사무적인 이유 때문에 나눈 적이 있었지만…….

꺼림칙한 기분이 아예 가시지는 않는다.

죽었어야 할 사람에게 연락을 받고, 신분 확인 요청에 대해서는 자신과 맥스스쿨 인수 문제로 나눴던 업무적 비밀 내용을 알고 있는 것으로 대신했다.

어떻게 그 사고에서 살아남았느냐에 대한 대답은 자신도 모르겠다는 것.

모르겠다는 사람에게 더 물어서 알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알리기 싫은 것이든, 또는 정말로 모르든 간에 말이다.

“자네 계획은?”

-저는 계획대로 진행 중입니다. 회장님도 그 계획의 일부이시고요.

“자네가 말했던 대로만 하면 내가 노출될 일은 없고?”

-말씀 드렸습니다. 회장님은 이미 너무 깊게 관여되셨습니다. 하지만 일이 터질 때 지금 관여된 것 중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대의를 위한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회장님께서도 적극적으로 계획에 참여해 주셔야 하고요, 물론.

“박승재를 잡는다는 말이지……. 허허.”

삼전 그룹의 박승재.

삼전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거물급.

거대한, 하지만 썩은 경제 권력은 정치권력이 잡아야 하지만, 막상 그 정치권력 중 상당수가 그의 편이다.

이걸 과연 이제 서른이 갓 될 풋내기가 할 수 있을까.

아마 어렵겠지.

대의를 위한 것뿐이라면 자신은 목소리의 계획에 동참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의보다도 이건 개인적인 원한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대의를 실현시킬 기회, 그리고 자신에게는 개인적 원한을 갚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사안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네.”

심호흡 뒤에 나온 이한일의 말.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는 대답했다.

-할 수 있는 일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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