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181화.
“그런데 미스터 유는 자리에 안 나옵니까?”
약간은 불쾌한, 하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는 표정으로 묻는 오브라이언.
박승재는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 원래 같이 나오기로 했는데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오브라이언 대통령께서 이사장으로 계신 은성 고등학교에서요.”
“그렇군요.”
명목상이나마 어쨌든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에 일이 생겨 나오지 못했다는데 뭘 어쩌겠는가.
하지만 왜 그가 자신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그리고 대신 혼자서 나온 박승재란 사람은 미국 내에서도 몇 번 이름을 들어봤던 사람이었다.
한국 내 최대 재벌 그룹 회장.
그리고 전 세계를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상위권인 삼전 그룹이었다.
정상회담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은 있으나 딱히 연결고리도, 관심도 없었기에 이렇게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다.
그는 천천히 비서관들을 통해 받은 브리핑을 떠올렸다.
삼전 그룹.
전후 한국에서 사카린 밀수로 큰돈을 벌고, 그것을 기반으로 군사 정권의 재벌 중심 경제 구조에서 큰 혜택을 받은 기업.
또한 정계의 각종 비자금 사건에서도 연루된 적이 다수이나, 처벌은 언제나 요리조리 잘 피해 가며 성장한 지금은 한국 내 재계 부동의 1위.
박승재는 그런 삼전 그룹 초대 회장의 셋째 아들이었지만 형들을 이기고 그룹 전체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들은 비공식 정보로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할 사람이고 실제로 그리했지만, 현재는 각종 규제나 빈번한 정권교체 때문에 몸을 사리는 중이라고…….
그런 그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자신을 만나고 있는 것일까.
애초에 순수한 의도는 아니리라 생각했다.
“그럼 어서 드시죠.”
그렇게 말은 했지만, 박승재가 뭔가 생각이 있어 이 자리에 혼자서라도 나왔다고 생각했기에 오브라이언은 자신의 음식을 먹으며 기다렸다.
그가 원하는 것을 꺼내기를…….
“네.”
둘은 조용히 먹기만 했다.
대략 10분 정도 흘렀을까.
“오브라이언 대통령님…….”
그가 기다리던 박승재의 첫 번째 움직임일까.
먹는 속도가 빠른 오브라이언이었기에 거의 다 먹고 다음 코스를 위해 포크를 내려놓으려는 순간이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음식은 입에 좀 맞으신가요?”
“네? 아. 맛있군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리라 생각했기에 약간은 당황했다.
하지만 이 정도 예상을 빗나가는 걸로는 오브라이언의 마음이 흔들릴 리 없었다.
이건 박승재도 잘 알고 있던 사실이고.
박승재는 오브라이언의 대답을 듣고는 그냥 빙긋 웃고 식사를 계속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불편해지는 건 오브라이언이었다.
분명 뭔가가 있어서 자신을 만날 자리를 만든 것일 텐데, 이자는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원래 이쯤에서 재벌 총수가 정치인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밝히고 거래를 요청하거나, 또는 그 정치인에 대해 자신이 뒷조사한 지저분한 내용을 슬쩍 흘리며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이 익숙한 장면이리라.
오브라이언의 머릿속에도 그런 생각이 있었지만, 허무하게도 식사 자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회장님도 다 드셨나 보군요.”
의아한 표정을 숨기려고는 했지만, 그래도 목소리나 말투에서 묻어 나오는 감정은 완전히 숨기기 어렵다.
다시 한 번 박승재는 그냥 웃을 뿐이었고.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여기 요리가 굉장히 좋습니다. 사실 유 대표는 여기 요리 먹어 본 적도 없지요. 허허.”
먹어 본 적도 없는 음식점에 자신을 초대한다.
이 자리는 유현덕이 아니라 박승재가 만든 자리였다.
그런데 왜 유현덕을 통해 자릴 만들고, 정작 본인은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는지 이해되질 않았다.
자리가 끝나면 따로 전화라도 해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박승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뭐, 입이야 중간 중간에 계속 열긴 했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기에 이제 드디어 그 일이 거론된다는 의미다.
“요리사가 저와 개인적인 친분이 조금 있습니다. 오늘 대통령님 뵙기 전에 잠깐 따로 보고 왔는데 그 요리사가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동양 요리,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 요리에 들어가는 향신료 중 일부는 약성이 있는 것들이 있다고 합디다.”
“약성?”
“네.”
처음에는 약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 정도 상식은 오브라이언도 익히 알고 있던 것이니.
그리고 사실 크게 문제될 만한 것은 과거에는 모르지만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들었었다.
원래 대통령이 움직이는 곳, 그리고 대통령이 먹는 식사는 경호원들과 전담 닥터가 항상 먼저 확인하는 절차도 있었다.
그런데 거길 통과했다는 의미는 별 위험한 것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고.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걱정하실 만한 것이 들어 있지도 않고요.”
박승재의 말마따나 별로 걱정할 부분은 없을지도 모른다.
오브라이언도 크게 개의치 않으려 했는데…….
“일 이야기는 제가 추후에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도 많고, 저희 회사를 어필하고 싶은 부분도 있으니까요.”
“잠깐. 미스터 유는 왜 이 자리에 나오지 않은 겁니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은성 고등학교 일로 급히 자리를 떠야 했다고요. 허허.”
“허어. 이거 너무하군요. 내 생명을 지켜 준 사람이라 없는 일정까지 만들어 여기까지 온 것인데……. 아, 그래도 살려 줬으니 크게 신경 쓰지 말아야 할까요. 그래도 상당히 기분이 나쁜데 이거 왜 이런지 모르겠군요.”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꺼내는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고,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그에게 있어서 화술의 변화는 작지만 박승재의 계획이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첫 단계였다.
“아……. 제가 조금 흥분을…….”
“아닙니다, 대통령님. 자, 여기 준비된 차를 한 잔 드시고 기분 좀 푸시죠.”
“네.”
사실 이 변화는 오브라이언의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먼저 알아채긴 했다.
다만 직접적인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 피경호자인 오브라이언의 신호가 없이는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박승재는 테이블에 놓여 있던 차를 오브라이언의 찻잔에 따르고 그가 차를 마시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목이 조금 탔는지 그걸 단숨에 들이켠 오브라이언은 찻잔을 내려놓고 진정을 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괜찮으십니까, 대통령님?”
바로 뒤에 있던 경호원 하나가 그에게 물었다.
그는 대답 없이 손만 들어 휘휘 내저었다.
괜찮다는 표시였지만 경호원이 오브라이언에게서 처음 보는 제스처이기도 했다.
“일은 무슨 일 이야기입니까? 여기에서 들으면 안 되는 것인가요?”
“천천히 생각을 해 보셔야 할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저를 보십쇼. 머리도 아예 하얘지고, 젊으신 대통령님과 조리 있는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정리를 조금 해서 보여 드려야 할 것이 있으니 저를 좀 찾아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안보가 달린 일입니다.”
“안보요? 북과 관련된 일입니까?”
오브라이언이 거의 테이블을 내려치다시피 손을 내려놓았다.
분명한 약효.
박승재는 이런 모습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지만 약효과 있음을 확인한 듯싶어 기분이 좋았다.
이 자리에서 바로 이야기를 꺼내도 되겠으나, 이 자리 직후 오브라이언의 정책 노선이 변한다면 말이 나올 소지, 의심을 받을 여지가 있었다.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조용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유현덕도 대략적인 내용은 아는 상황에서 자리를 주선한 것이고요.”
약간의 뻥이 들어가 있긴 했지만, 오브라이언은 유현덕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얼굴을 구겼다.
“그 사람은 매너가 없군요. 내가 누구라고 불러 놓고 자신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다니…….”
“사정이 사정인 만큼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노여워하지 마시죠.”
“아무튼 그럼 빠른 시일 내에 이야기를 들어 보죠. 이쪽에서 이야기하기 어려우시다면 미국으로 오시는 건 어떠신지요?”
박승재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어때? 이 정도면?”
김윤지가 물었다.
분명 묻는 것이기는 한데 벌겋게 상기된 표정으로 보아 그녀 또한 나처럼 이 일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걸 물어보셔요? 흐흐.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화기애애한 분위기.
물론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상처를 회복한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다들 힘을 내는 모습이다.
프린스 리뷰 인수합병 확인을 요청하는 기자들에게 슬쩍 흘린 토크 콘서트의 내용.
이것 자체로 큰 관심을 받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미국 내 온라인 사교육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프린스 리뷰를 국내 벤처기업이 인수한다는 것은 큰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관심이 에듀코인의 이충현과 그를 지원했던 S 아카데미 유현덕으로 옮겨가자, 자연스럽게 관심은 우리의 다음 사업으로 흘러갔고.
“토크 콘서트를 진행한다고 하셨는데, 무엇에 관한 이야기입니까?”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나보다 네다섯 살 많은 기자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워낙 시끄럽게 여기저기에서 질문들이 빗발쳤으나, 내가 대답해야 할 질문들은 미리 정해져 있었기에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젊은이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시간과 장소 좀 알려 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건 회사 홈페이지에 공개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제1회 토크 콘서트.
회당 출연료만 수천만 원 하는 유명 MC를 섭외했으나, 그는 딱 절반만 받겠다고 했다.
프로그램의 모토에 대해 자신도 공감하는 바가 크다면서.
“아이들의 꿈이 공무원입니다. 공무원, 물론 중요한 자리이지만, 어떻게 꿈이 공무원이 되는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겠어요?”
“제대로 돌아가긴 합니다. 다만 미래가 없이 지금만을 돌고 있는 거지만요.”
물론 돈은 전부 지불했다.
사업 규모가 규모인지라 개인의 출연료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됐고, 더욱 큰 홍보 효과를 위해서였다.
돈을 벌기 위한 사업?
그랬다면 어떻게 해서든 콘서트의 내용을 교육 분야로 한정짓고, 그 과정에서 프린스 리뷰, S 아카데미에 대한 내용을 넣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직접 관계된 회사들은 협찬 리스트에도 올리지 않았다.
“도대체 뭘 위한 건데, 이거는?”
처음 이 계획은 전부 들은 준서가 조금 답답한 표정으로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삼전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응? 너 박승재 회장 정말로 잡으려는 거야?”
“이 상황 만들어 놓은 것, 원재 형 사고, 다 박승재 짓이야. 그러면 그 사람을 잡아야지.”
“아니, 그러니깐,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건 사업적으로 큰 도움이 되질 않잖아. 아니면 그렇게 함으로써 오는 홍보 효과?”
“아니야. 일단 지켜보면 돼. 군대 문제도 있고 하니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할 수는 없어. 사업적으로 보자면 우리가 삼전과 경쟁할 수 있는 규모도 아니고.”
“그러면?”
“큰 사람이 되어야지. 거리 지나다니다 보면 누구나 알아볼 사람.”
“무슨 소리야…….”
큰 사람.
인물의 됨됨이를 떠나 유명도를 말한 것이었다.
유명하다고 해서 큰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일단 좋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써의 인지도를 쌓고, 경제 권력에서 정치권력 싸움으로 넘어가면 승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100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10을 가진 사람이 싸움을 걸 수는 없다.
10에서 50을 더하는 건 정말 끔찍이도 어려운 일이겠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적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덧셈과 뺄셈 외의 다른 수식을 추가한다면?
예컨대 곱을 추가할 수만 있다면 각기 다른 능력치로 10배 이상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것은 바로 다른 지표를 추가하여 승부를 보자는 것.
그리고 실제로 그걸 해낸 사람이 내 전생의 기억에 있지 않은가.
그 사람의 말로야 어찌 되었건, 지금 이 시대는 꿈과 희망에 목말라 있는 시대이다.
꿈과 희망팔이?
그렇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어느 시대에나 청년 문제는 해결되는 경우보다는 곪아 터져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 똑똑한 사람들조차 효과 있는 정책을 만든 적이 거의 없잖은가.
하지만 아무리 해결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으니 그렇게 살라는 말은 악수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 노력해야 하고, 효과가 있든 없든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야 하는 것이다.
전생에서의 그분의 꿈은 뭔지 잘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 주려 했던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의 꿈조차 이루지 못했던 모습.
여러 선택지가 복잡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지만을 고를 수는 없겠지만, 자신을 위한 선택조차 하지 못했던 모습.
“박승재를 잡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된들 뭘 할 수 있겠어. 엄청 세게 때려 봐야 몇 년 감옥살이 하고 나올 텐데. 게다가 없는 사람 감옥살이와 있는 사람 감옥살이는 천지 차이라잖아.”
“대통령? 너…….”
“아니, 그걸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 다만 딱, 그 사람 잡을 정도까지 올라가 보겠다는 거야.”
“이걸로?”
토크 콘서트 따위로…….
이런 콘서트 따위가 대통령 후보까지는 만들어 냈다.
두렵다.
두렵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대통령조차도 대기업과 싸우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판인데.
그래도 한 번 걸어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목숨, 하나뿐인 목숨이 아니다.
이미 두 번의 경험이 있다.
그래, 한 번 달려 보는 거야.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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