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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80화 (180/200)

[180] 180화.

이한일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자신의 차에 오를 때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시종일관 마치 감정이 없는 듯 무표정한, 하지만 진지한 얼굴로 박승재를 대하고, 삼전 그룹 사람을 대하던 그는 차에 오르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를 기다리던 건 유미진이었다.

그녀는 좁은 차 안에서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이한일을 기다렸기에 몸이 이곳저곳 쑤실 만도 했으나, 딱히 그런 내색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이한일은 더한 긴장감 속에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기에.

“어떻게 됐어요?”

“유현덕 처리하란 명령 떨어졌어.”

유미진의 입가에 순간 미소가 걸쳤다 사라졌다.

그녀는 이 시점을 기다려왔다.

자신의 아들 강민호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유현덕이라고 믿고 있었고, 그에 대한 복수의 시간을 기다려왔던 것이었다.

실상은 강민호의 정신적인 유약함과 특유의 사이코패스적인 성향, 거기에 피해망상까지 겹치면서 그 스스로 벌인 일이었지만, 원래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자식이 어떤 나쁜 사람이라 하더라도 믿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유현덕에게 맥스스쿨을 뺏길 때만 하더라도 약간은 덜떨어진 부잣집 사모님 수준이었던 그녀가, 이 정도로 독기를 품고 일을 꾸미는 사람으로 변모한 것이 신기할 정도.

그 또한 자식 잃은 어머니라는 그녀의 입장이 그녀 자신을 바꿔놓은 것이리라.

하지만 이한일에게 내색은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는 그대로 지금 상황에 대해 다른 생각이 있을 수도 있으니.

과거의 내연 관계는 내연 관계일 뿐이었고, 온전한 부부처럼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함께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당신은 어떻게 하려고요?”

‘그럼 이제 그를 죽이면 되겠네요.’라는 말을 하고는 싶었지만 아닌 척하는 그녀.

이한일은 고민에 잠겼다.

자신은 박승재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일단 ‘처리’라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나온 이상, 일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다면 자기 자신이 그 ‘처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해야겠지.”

말을 이렇게 하면서도 그의 머리에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난무하고 있었다.

유현덕과의 싸움을 시작한 것은 옆에 있는 유미진의 역할이 컸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업 분야가 완전하게 다른 두 사람이 딱히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싸움을 시작한 뒤로 유현덕이란 사람의 가치가 다르게 보였달까?

이걸 굳이 자신의 주변 누군가에게 표현할 일이 없었기에 아무도 모르고 있긴 했지만, 이한일은 유현덕의 능력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현덕과 손을 잡는다?

그건 아니다.

이미 저지른 일이 있는 이상, 그는 자신과 손을 잡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처리한 후에는?

박승재의 심복으로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고, 아마도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자신 또한 언제 팽 당할지 모른다.

박승재.

그에게 있어서 박승재란 존재는 외부에서 보이는 모습과는 약간 다른 무엇인가였다.

“자, 네가 선택을 해. 나는 네가 맘에 들어. 그래서 이렇게 끝을 내고 싶지 않거든.”

40대의 박승재는 현재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지금의 모습이 중후한 노인이라면(물론 겉으론 중후하나 속은 뱀 같은 사람이지만), 젊었을 적의 그는 훨씬 직접적으로 계략을 펼치고 적을 죽이는 스타일이었다.

그것도 무자비하게.

그런 그와 조직폭력계에 몸담았던 이한일의 조합은 어찌 보면 잘 맞는 것이었다.

겁 없이 박승재의 영역까지 손을 뻗쳤다가 그의 발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게 된 이한일은 지금 두 명의 박승재의 경호원에 의해 바닥에 완전히 엎어져 있다.

“개 소리 작작 해라!”

“말은 살살 해야지. 아직도 상황 파악 못 하겠어? 조금 더 나중에 선택할래?”

하지만 더 나중이란 말은 두려웠다.

아무리 겁 없이 날뛰던 그더라도 자신의 일을 도맡아 처리해 주던 든든한 동생들이 전부 피떡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더 나중은…….

“아악!”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계속 지옥 같은 루틴을 채우다 보면 언젠가는 죽겠지 싶었지만, 막상 죽이는 것만 빼고는 다 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이미 서너 번 정신을 잃었으나, 그때마다 자신에게 온 것은 찬 물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 바늘.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자신처럼 거친 삶을 살아온 자도 다른 누군가에게 여기까지 하리라곤 생각했던 적이 없었는데.

아니, 어쩌면 이제껏 자신이 사채를 하며 대출해 준 돈을 회수할 때 써먹었던 거친 방법들(박승재가 지금 그에게 하는 것보다는 약했다고 확신했다)에 대한 업보인가 싶기도 했다.

“꽤나 버티는구먼. 이게 내가 원하는 모습이지!”

정신이 다시 희미해져 갈 무렵,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박승재가 아까보다는 한껏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날…… 어떻게 할 생각……이냐. 윽!”

있는 힘을 다 짜내어 나온 말은 이것 뿐.

입에서는 붉은 선혈이 쏟아져 나오고, 눈은 제대로 떠지지도 않았다.

“회장님, 이제 그만하시는 게……. 잘못하면 죽습니다.”

“이거 왜 이러시나, 김승주 회장. 이 정도로 멈추면 되겠어? 저 사람이 아직 저리도 꺾이지 않는데?”

“…….”

옆에 있던 김승주가 불안한 목소리로 박승재에게 멈출 것을 이야기했지만 그의 말은 별 영향이 없었다.

적으로 상정된 자를 어느 정도 손봐주는 선이라고 듣고 자리에 나왔으나, 막상 죽어 버리면 일이 복잡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인의 생각은 본인의 생각일 뿐, 박승재에게 있어서는 김승주조차도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런 김승주를 보는 박승재는 나름의 생각이 있어 이 자리에 그를 부른 것이었다.

사실 이한일의 영역 침범은 박승재보다는 김승주에게 피해가 더 컸다.

그리고 김승주는 박승재처럼 모질지 못하다.

이 정도 사건으로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줄곧 싸움을 피해 왔던 것.

박승재는 김승주의 골치 아픈 일을 하나 처리해 주면서, 동시에 그에게 자신에게 복속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주길 원했다.

그리고 이한일의 패거리를 처리한 후, 이제까지 보아 왔던 수많은 주먹들과는 다른 이한일에게 매력을 느끼고는 자신의 사람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벌이는 일이었다.

죽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수로 죽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꽤나 고집 센 녀석이군. 마지막 카드가 하나 더 남아 있어.”

잠시 뒤, 박승재의 수하 한 명이 그에게 휴대폰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그것을 귀에다 대고 아무 말도 없이 잠시 기다리고는 이번에는 직접 바닥에 다시 구속되어 있는 이한일에게 다가갔다.

“자, 어떻게 할 텐가. 내가 강제로 결정하게 만드는 것과 본인 의사로 결정하는 건 다르지.”

박승재가 이한일의 귀에 휴대폰을 댔다.

이한일은 휴대폰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악! 어떻게……. 당신이 사람이야?”

“사람이고말고. 아니면 뭐로 보이는데? 원래 사람도 동물인지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복속시키는 거고, 강한 자는 자신의 일을 대신 처리해 줄 수 있는 다른 강한 자 또한 부하로 두고 싶어 하지.”

붉게 충혈 된 이한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 늦기 전에 얼른 결정하는 게 좋아. 나이 드신 어머님과 같이 갈 것인지, 아니면 둘 모두 살릴 것인지.”

박승재는 일어나 눈을 내리깔고 이한일을 보며 말했다.

결정된 일은 마냥 빨리 처리한다고 좋은 건 아니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점이 있고, 그 시점을 맞추느냐 못 맞추느냐에 따라 일의 성패 자체가 갈리는 경우도 많다.

얼마나 더 성공하고 덜 성공하느냐가 아니라, 성공하거나 아니면 아예 실패하느냐.

“전화 계속 받지 않을 거야?”

하루 종일 몰려오는 인터뷰 요청에 전화기 앞에만 계속 앉아 있던 김윤지가 말했다.

오전에 나간 기사 후에 연일 뉴스에서도 프린스 리뷰와의 계약 건에 대한 방송이 나가는 중이었다.

“네. 오늘은 안 받을 거예요.”

“그럼 밖에 기다리는 기자들은?”

“어차피 입구 막아 놨으니깐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죠, 뭐.”

“퇴근은 안 하고?”

“여기서 자고 가면 되요, 오늘은.”

김윤지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준 기자에게 나의 의사를 전달했다.

에듀코인의 프린스 리뷰 인수합병 뉴스는 예상대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동시에 S 아카데미 대표로서 ‘소통, 미래를 위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겠다는 기사도 나갔지만, 이건 완전히 프린스 리뷰 뉴스에 묻혀 버렸고.

의도대로였다.

인수합병 자체로도, 그리고 인수합병의 주체가 같은 온라인 교육 업체인 S 아카데미가 아니라 에듀코인이라는 벤처기업이라는 것도 이제까지 내가 해 왔던 사업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그 다음에 나간 ‘소통, 미래를 위해’라는 토크 콘서트.

나 같은 사람이 열심히 살고 있는 다른 사람 앞에서 감히 삶에 대해 논의할 자격이 있는지는 논외로 하고, 이건 아마 전적으로 전생의 기억 속에 있는 트렌드를 떠올린 것이었다.

하지만 교육 분야는 IT 기업처럼 항상 시장의 관심을 받는 업종은 아니었기에 약간의 홍보 효과를 누리기 위한 계책이랄까.

물론 프린스 리뷰 인수합병이 이 토크 콘서트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국내 온라인 교육 시장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이룬 이상, 눈을 해외로 돌려야 했다.

경제적으로 이길 수 없다면 정치적으로 가야 하겠지만, 경제적 뒷받침 없는 정치력은 존재하기 어렵다.

군 입대가 걸림돌이 되든, 아니면 피하던 간에 충분한 경제력을 갖춰야 하고, 지금 성장할 수 있는 곳은 해외였다.

“내일은 그럼 공개하는 거지?”

“네. 어차피 우리 쪽에서 정보 새 나간 것 알고 있는 기자들인데 계속 입 다물고 있을 수도 없으니까요. 역풍 맞으면 피곤해집니다.”

그리고 콘서트 준비.

상당히 급박하게 진행되는 일이었지만, 세간의 관심을 끌 만한 소재는 충분했다.

중요한 건 적절한 시점에 터지는 홍보 효과인데, 이게 토크 콘서트 자체로는 아무래도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였다.

이런 유사한 행사는 여기저기에서 많이 하는 상황.

주목을 받는 건 앞으로 2, 3년 뒤 일이다.

그리고 주목받은 그분은 깜짝 스타로 대통령 선거까지 나가시고.

내가 하려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2, 3년 뒤에 일어날 일을 앞당겨 내가 그 주인공으로 나서는 일.

그런데 뉴스가 묻혀서 어떡하냐고?

그건 두고 볼 일이다.

일반적인 단발성 행사 뉴스로 끝이 나느냐, 아니면 몸값을 올린 상태에서 함께 묶어 홍보 효과를 누리느냐.

바로 내일이다.

내일이면 기자들은 프린스 리뷰 인수합병 뉴스와 더불어 그 자리에서 내가 말할 토크 콘서트 뉴스도 함께 뿌려 줄 것이다.

미국 정계는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은 미국의 군사력을 앞세운 해외 원정을 반대해 왔다.

물론 때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으나, 2000년대 초반 있었던 테러와의 전쟁, 그리고 그 직후 이어진 이라크 전쟁에서는 분명하게 자신들의 색을 드러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정말 그렇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수석비서관 제임스는 거북한 표정으로 대통령 앞에서 서 있었다.

거북한 표정?

그럴 만한 것이,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이들은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표현하면서 평생을 살아왔던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안 좋거나 한 것은 아니다.

뭔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갈 때는 의견의 일치가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일단 그런 부분에 있어서 동력을 얻기에는 좋은 환경이다.

특유의 유교적 문화, 그리고 굉장히 오랜 기간 유사한 크기의 나라를 운영한 역사적 경험에서 오는 힘이랄까.

오브라이언은 길게 생각하지도 않고 곧바로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나의 의사가 그렇소.”

“지지자들의 반대는 어쩌고요? 이제까지 그런 스탠스는 취하지 않으셨잖습니까.”

제임스도 지지 않았다.

수석비서관의 역할은 바로 대통령이 잘못된 길을 가려 할 때 직언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깐.

그리고 오브라이언은 그런 제임스를 자신의 가장 가까운 자리 중 하나에 앉혀 놨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제까지 그의 의견을 오브라이언이 이 정도로 명확하게 거절한 적은 없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지지자들도 이해해 줄 겁니다. 우리 경제가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세계에서 따라오는 나라는 없지만 곧 뒤집힐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고려했을 때, 그리고 현재 상황만을 놓고 봤을 때 우리의 가장 위협적인 적은 북한의 핵개발 문제입니다. 대비를 해야 하죠.”

“그 문제를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국제 문제에 있어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의견에 지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군비를 줄이자는 것도, 유지하는 것도 아니라 늘리자니요.”

“국가를 적의 위협에서 방어하는데 군비 지출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겠습니까. 이번에 한국에 다녀오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극동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얼마나 수준 높은 군사력을 갖췄는지 말이죠. 정재계가 합심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해냈다면 그들의 반쪽인 북한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재계에서는 핵의 위협을 심각한 수준으로 보고 있더군요.”

박승재와 오브라이언의 만남.

그 자리는 사실 오브라이언이 의도해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자신을 구해 줬던 유현덕의 요청으로 방한하며 그를 만난 것이었다.

처음부터 박승재에 대한 이미지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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