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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77화 (177/200)

[177] 177화.

몇 달 만에 본 그녀의 모습.

많이 핼쑥해진 모습이었다.

“아…….”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제일 먼저 그녀에게 가고 싶었지만, 감금되어 있는 상태에서 밖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속속들이 전해들은 상황이라 차마 그녀에겐 따로 연락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녀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 때문에 시작한 일.

물론 전적으로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깝게 지내는 가족이 거의 없는 그녀에게 나란 존재는 단순한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과는 다른 무엇인가였다.

나에게도 그녀가 그런 존재였고.

내가 사라진 직후 같은 날, 거의 비슷한 시각에 터진 두 건의 사고.

그러고도 나는 한동안 연락두절이었다.

이한일에게 들은 바로는 김윤지는 얼마 되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고 거의 매일 퓨처금융투자에 왔다고 한다.

그를 만나 보겠다고 난리를 치기도 하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지만 그런 것에 움직일 이한일은 아니었다.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로 매일 회사에 와 하루 종일 기다리다 간 날이 한 달.

“얼굴은 괜찮아 보이네.”

목소리는 차가웠다.

딱히 나에게 좋지 않은 심정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나 또한 나오자마자 그녀를 만날 수가 없었기에.

“누나…….”

“준서가 알려 줘서 왔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너 정말 그렇게 할 거야?”

우리의 대화를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던 그녀.

준서가 알려 줘서 왔다면 방금 전 그가 나에게 했던 말도 대략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내 머릿속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준서의 가시 돋은 말을 듣고서도 사실 별 효과는 없어 보였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가 있겠는가 싶은 생각만 가득…….

그렇게 멍하니 그녀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세 달이야. 세 달 만에 다시 나타나선 이전의 너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어. 모르겠어?”

모를 리가 있겠는가.

“이렇게 무너지려고 그간 그런 위험한 일들을 감수하고 뛰어다닌 거야?”

“그럼 저보고 뭘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조용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이 건물 안에 있던 몇몇 손님들이 놀라 이쪽을 쳐다봤다.

하지만 더 이상 소리를 지를 생각은 없었기에 그들은 이쪽을 잠시 쳐다보고는 다시 자신들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현덕아.”

이번엔 준서.

“무너지려면 혼자 무너져. 하지만 그러려면 네가 그만두겠다고 나서야 해. 이미도 원장님, 오광필 교장 선생님, 주현필 원장님, 그리고 김미연 부회장님과 김승주 회장님께도. 전부 다 네가 찾아가서 뵙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그만둬.”

“그러면! 그러면 뭐가 달라져?”

애처럼 반응하는 항변.

나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있어 봐야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걸.

하지만…….

“그러면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갈 거야. 너를 배제하고 자신들의 일을 할 거라고. 하지만 네가 지금처럼 이렇게 그대로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게 지금 상황이야. 네가 세운 S 아카데미, 에듀코인도 마찬가지고, 거기에 한성 에듀와 은성 고등학교까지, 네가 이렇게 있으면 아무것도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어.”

그렇겠지.

내 눈으로도 확인했다.

내가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그만큼 내 중심으로 운영되던 사업들이고, 그만큼 내가 그들에게 힘이 되고 그들도 나에게 힘이 된 사람들이다.

굳이 언급된 몇몇을 빼고서라도, 관련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원재 형은 너 이러고 있는 거 보면 좋아하겠니?”

지원재 실장.

폭발.

내 일을 하다가 당한 일이다.

그리고 그 이름과 함께 내 머리에서도 약간의 폭발이 일어난 듯 했다.

“그 이야기는 하지 말자.”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

“그래도…….”

“원재 형, 시신 찾았어?”

아…….

분명 시신도 찾지 못했다고 들었다.

“너만 생각하지 마. 너 하나에 모든 것을 건 사람들이 많아. 원재 형도 그중 하나였고. 그러니 끝낼 거면 깔끔하게 네가 직접 끝내라고.”

끝낼 거라면 내가 직접…….

나는 끝내려고 이러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하지만 뭘 하려고 이렇게 머뭇거리는 건가.

내 앞에 앉아있는 김윤지와 준서.

그들의 표정을 다시 한 번 쳐다봤다.

방금 전까지도 보고는 있었지만 머릿속이 텅 빈 것만 같은 기분이라 그들의 얼굴에서 어떤 것도 읽을 수 없었다.

그들의 표정은 슬픔이 가득한 모습?

감정이 없어 보이는 무표정?

둘 다 아니었다.

왜 이걸 내가 이제야 보게 된 것인지.

나를 책망할 거라 생각하고 내가 그들의 시선을 피해왔던 것이 아닐까.

그들의 눈에 이런 나의 모습은 상당히 어색하리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성공과 실패가 오가는 선택의 순간에서 지금처럼 풀 죽어 있는 모습은 없었다.

전생의 기억?

단순히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는 기억만 가지고 내가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을까.

아니겠지.

기억이 아니라면 혹시 나 자신의 숨겨진 능력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까.

그것도 아니리라.

내가 여기까지 와 있는 건 지금 내 앞에 있는 이들 둘, 그리고 이미도 원장, 주현필이나 오광필 할아버지와 같은 동료들 때문이다.

그리고 지원재도 그중 하나.

어쩌면 위기마다 나의 생각을 가장 완벽하게 실행해 주고,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해결방안들을 스스로 찾아내 준 사람인데…….

이제는 그가 없다.

준서의 말처럼 그가 없다고 혼자 이렇게 무너지려 하는 나의 모습을 그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미안해요, 누나. 그리고 너도.”

“결국 내려놓는 거니?”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테이블에 꽂혀 있던 시선을 천천히 들었다.

“아니요. 이런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다고요.”

준서나 김윤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표정에 아주 짧은 한순간 약간의 동요가 일어난 듯 보였다.

이것조차 나의 착각일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리 믿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아마 이날 준서를 만나고, 그리고 김윤지를 만난 뒤로 처음 짓는 미소였을 것이다.

“이미도 원장님과 주현필 원장님, 그리고 오광필 할아버지와 김미연 부회장님도 일단은 지켜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김승주 회장님은 물론 뵙지도 못했고요.”

“결국 우리 셋? 이거 너무한 것 아냐?”

대책을 마련하는 건 결국 그 카페에 있던 우리 셋뿐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

사실 어떤 목표가 명확히 있는 것도 아니기에 예전처럼 팀을 꾸려 움직일 수 없다.

박승재 회장을 목표로 잡을 수도, 이한일을 적으로 상정할 수도 없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다면 애초에 멘탈이 나간 상태로 김승주 회장을 만나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때가 되면 다들 함께해 주실 거예요. 지금은 그렇게 믿고 가고 싶습니다. 준서야, 말한 건 알아봤어?”

“응. 이충현 선생님 말이지? 연락하고 지금 상황 공유했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대?”

“에듀코인 가격은 일단 안정적인가 봐. 거래가 아직 완전히 공개되지 않아서 큰 변동은 없는 것 같아.”

지금 당장 박승재 회장과 경쟁을 할 수는 없다.

미래에도 그게 가능한 일인지는 모른다.

회사 한두 개가 걸린 일이 아닌 만큼, 이쪽에서는 공격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아니 예나 지금이나가 아니지.

전생이나 지금이나 재계 상위권은 정치권력도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

오죽하면 한성 공화국이니 하는 말이 나왔겠는가.

물론 한성은 아니고 박승재의 그 그룹 이름이 앞에 들어가긴 했지만…….

하지만 그 천하도 중간 중간 시련을 겪는다.

2010년대 중반에 벌어진 일도 그렇고…….

돈의 힘은 정말로 강력하나, 부정이 심해지면 언젠가는 얻어맞게 된다.

국민의 힘으로.

그건 나중 일이고, 일단은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우리 선에서 함께 준비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이제까지 지키려 했던 것을 조금만 흔들어 보죠, 그럼. 이충현 선생님께 암호화폐 거래 사이트 개발 건 진행해달라고 연락드려 줘, 준서야. 그리고 누나는 언론에 살짝 그 내용만 흘려 주시고요.”

“알겠어.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야?”

“지금 당장은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박승재 회장이나 이한일과 싸울 여력도 없고요. 김승주 회장님까지 아무렇지 않게 공격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러면…….”

이럴 때 지원재 실장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한데.

내가 선택한 방법이 적절한 길인지 판단도 해 주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에요. 하나는 운영하는 사업들을 정상화시키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다른 일을 벌이는 것.”

“다른 일을 또 벌려? 말이야 쉽지만 지금 그렇게 해야 하는 거야?”

준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하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거란 판단이었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이미 한 번 패한 싸움.

지금 당장 그들과 싸움에 나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혹여 내 바람대로 준비가 충분히 끝날 시점까지 버틴다면, 그때는 지원재의 복수를 할 기회가 생길 수도 있겠지.

준서는 당장 그렇게 하고 싶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잘못했다가는 다 당한다.

“정상화는 준서 네가 맡아 줘.”

다행인 점은 준서라도 이 시점에 다시 사회로 돌아온 상황이란 것.

불행인 것은…….

“나는 일단 군대를 알아봐야 할 것 같아.”

“뭐?”

“뭐라고?”

김윤지와 준서가 거의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는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꼈으나, 한두 번 일은 아닌지라 견딜 만 했다.

군대.

그것은 이 나라의 남자로 태어나면 모두가 겪는 일생일대의 위기다.

“나이가 있잖아. 나도 더 이상 피할 수만은 없지.”

“야, 그래도 지금 같은 때에…….”

“너무 걱정하지 마. 일단은 병원에서 서류는 다 떼 왔어. 확신은 못하지만 피할 수도 있어. 그래도 가게 되면 가야지 뭐.”

사실 내 두 번째 계획을 관철시키려면 군대는 아마 필수로 다녀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그게 발목을 붙잡을 수도 있으니…….

그래도 안 갈 수 있으면 안 가는 것이 백번 생각해도 옳은 결정이긴 하다.

어쨌든 나도 이 시점에 이런 어려움을 툭 던져두고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름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번 생애에서는 유독 내가 정신을 잃은 때가 많았는데, 혹시 이걸 어떻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병원에서 떼 온 서류란 그것에 관한 것들이고.

습관적으로 어깨뼈가 탈골되는 사람들도 심하면 공익근무요원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다는데, 나의 경우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지 않을까.

세 달을 혼수상태로 지낸 적도 있는데.

“만약에라도 가게 되면 어떻게 할 건데? 지금 상황은?”

계획은 이미 내가 군 입대를 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아마 지금 누군가 우리 셋의 표정을 봤다면 조금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지.

군 입대를 할지도 모르는 건 나인데 나의 표정은 아마 편안해 보이지 않을까?

오히려 그런 나를 보는 준서나 윤지 누나의 표정은 심각할 것이고.

“그것도 두 가지야. 일단 준서, 너는 지금 우리 사업들 정상화시키는 것만 신경 써. 그리고 누나?”

“응.”

“누나에게는 다른 부탁이 있어요. 에듀코인 이충현 선생님 아시죠?”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녀와 따로는 아니겠지만, 나와 같이 있을 때 말이지.

“그쪽이 이제 거래소 오픈할 거예요.”

“거래소?”

“지금 S 아카데미와 한성에듀, 그리고 맥스스쿨이 결재수단으로 연동시켜놓은 암호화폐가 있어요.”

“그건 알지.”

“그걸 이제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도록 할 거예요. 그럼 가격이 지금처럼 적절하게 유지되지 않고 막 위아래로 크게 움직일 거고요.”

“…….”

그녀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것이다.

이 시장은 정말 실체 없는 데이터 쪼가리에 수십억 이상의 돈을 투자하는 곳이고, 이건 정말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으니.

하지만 나의 에듀코인은 실체가 있다.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에듀코인 한 개로 지금은 한성 에듀나 S 아카데미 강의를 1시간 들을 수 있어요. 물론 현금결재도 가능하고요. 하지만 이제 에듀코인 가격이 오르면 그걸로 강의를 들으려 하는 사람보다 현금화시키려는 사람들이 늘겠죠.”

그러면 교육복지를 표방한 에듀코인의 사업은 무너진다.

여기까지 그녀나 준서가 예상을 했을까.

해야만 한다.

내가 지금 당장 군 입대를 한다면, 앞으로 2년 동안은 우리가 욕을 오지게 먹을 수도 있는 시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이 시점에 거래소를 열려고 하는 건 결국 돈 때문이다.

버블이 생기기 전에 자리를 선점해야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

그리고 시장을 주도할 위치를 확보하면, 버블이 생길 때 그간 확보한 자금과 암호화폐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암호화폐 사업에 뛰어들 생각은 애초에 없었으나 이미 뛰어든 이상, 그리고 비트코인보다도 상용화에 앞선 시스템을 구축한 이상 주도기업이 되어야 한다.

주도기업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하고.

“그럼 원래 네가 하려고 했던 것과는 다른 사업이 되는 것 아냐?”

준서가 끼어들었다.

계획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해야지.

“달라지지. 달라지지만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변화를 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목적…….”

“싸게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잖아요. 거래소 오픈과 더불어 에듀코인을 시장에서 거래하고, 그와 동시에 새로운 온라인 학원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건 아예 시작부터 에듀코인에 연동을 시켜서요.”

갑작스런 준서의 끼어듦이 있었지만 이 부분은 김윤지에게 전하던 말이었다.

그녀도, 준서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역할은…….

“누나가 그걸 좀 맡아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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