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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75화 (175/200)

[175] 175화.

김승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길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찬물도, 얼굴을 몇 번 두드리는 것도 효과가 없었다.

김미연은 그런 자신의 아버지를 역시나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짐작 가는 곳이라도 혹시 있으신 거예요?”

그리고 그녀가 그에게 물었다.

그녀가 이토록 긴장한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아니, 적어도 기억에는 없는 듯했다.

아무리 상대가 조직 폭력배를 끼고 사업을 키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다.

그리고 돈에 있어서는 이쪽이 불리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긴장한 모습처럼 보였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불편하게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건 분명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니야.”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김미연의 눈에는 김승주가 뭔가 짚이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김승주는 나지막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거기까지 갈 사람은 아닌데…….”

“깨워.”

“네, 알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한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령을 내린 사람이 이한일인가 싶겠지만 그건 아니다.

그는 재빠르게 건너편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손짓을 했고, 어둠 속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촤아.

“헉…….”

내가 깨어난 것은 사실 찬물 세례를 받기 조금 전이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나는 날 보러 왔다는 이한일과 만나기 위해 에듀코인 건물 1층 로비로 나갔고,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한일과 악수를 나눴다.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

나에게 있어서 내 편은 분명 아닌 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한일의 제안에 따라 그의 차를 타고 누군가를 만나러 갔다.

아니, 만나러 왔다고 표현해야 옳을까?

“정신이 좀 드나?”

중후한 목소리.

어둠 속에 가려져 누군지는 정확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내가 정신을 잃기 한참 전 인사를 나눴다.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도 않은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고?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렇게 했다.

이한일의 사람들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그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고, 누군지는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어두운 건물.

왜 이런 사람들은 이런 장소만 좋아하는 거지?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후우. 후우.”

찬물은 조금 몽롱했던 정신을 제대로 들게 해 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지가 꺾인 것은 아니었다.

“유 대표, 어르신께서 물어보십니다.”

이한일이 옆에서 거들었다.

이한일이 그에게 하는 말투, 그리고 행동거지로 보아 분명 이한일보다 그가 한참 위에 서 있는 존재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얼굴에 쏟아진 물은 턱을 타고 내려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허허. 이 녀석도 자네만큼이나 강단 있는 사람이구먼?”

얼굴 윤곽도 보이지 않으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표정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겠지만.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이 정도 돼야 자네 같은 사람도 그만큼 고생시킨 거지.”

“…….”

“젊은이, 목숨은 하나밖에 없네. 아깝지 않은가.”

하나밖에 없는 목숨.

첫 삶이었다면 이런 상황이 오기도 전에 꼬리를 말았을지도 모른다.

죽은 뒤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를 상황이니.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말씀하신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왜 그래, 이 사람. 그 사람 생명의 은인이라며. 에듀파티 이사장직을 뜬금없이 현직 미국 대통령이 맡고 있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인데 계속 부인을 하나.”

“친분이 있는 것뿐이지 그런 부탁을 할 만한 사이는 아닙니다. 그리고 부탁한다고 해도 들어줄 사람도 아니고요.”

부탁한다면 들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험했다.

내가 이곳에 도착하고 이한일이 그에게 나를 소개시킨 직후, 그는 나에게 딱 한 가지를 물어봤다.

아니, 강요라고 해야 할까?

“이런 곳으로 불러서 미안하네. 하지만 보는 눈들이 많아서 말이야. 부탁할 것이 있어서 불렀네.”

“아닙니다. 무슨 부탁인지…….”

“오브라이언 대통령을 3월내로 이 땅에 오도록 할 수 있겠나?”

아무리 친분이 있다 하더라도 한 나라의 대통령을 내가 어찌 오라 가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 같은 상황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분위기가 그럴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건 제가 어떻게 해 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 알겠네.”

의외로 빠른 수긍?

아니었다.

그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방금 나에게 이상한 부탁을 한 남자가 나에게서 먼 방향으로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주변에 있던 이한일의 사람들이 움직였다.

“무, 무슨 짓입니까?”

“…….”

그러고 나서 나는 의자에 앉혀졌고, 밧줄인지 뭔지로 의자에 구속된 상태가 되었다.

이쯤 되면 뭔가 폭력적인 행동과 말이 오갔으리라 예상하겠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나를 그렇게 묶은 채로 두고 시간만 하염없이 보내게 만들었다.

정신은 왜 잃었냐고?

나도 모르겠다.

어둠 속에서 시간이 지나가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리 있겠나?

소리를 지르고 욕도 해 보고 했지만 어느 누구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무슨 시간과 공간의 방?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이 몽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팔에 뭔가가 따끔한 기분이 든 직후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나는 찬 물에 얻어맞기 조금 전에야 깨어났던 것이었다.

“이한일 회장님! 이 사람은 누굽니까?”

“어둡게 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알려고 하지 마십쇼.”

“날……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위험한 미래는 차라리 모르는 게 낫지만, 인간은 왜인지 항상 궁금해한다.

공포 영화를 보면 위험한 순간이 오지만 눈을 반쯤 가리고서라도 굳이 무서운 부분을 보고야 만다.

그래도 다행인지 무서운 부분을 알려주진 않았다.

곧바로는…….

“내가 누군지 알려 준다면 자네 생각이 바뀔까? 그런데 말이야, 자네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일어날 일을 이야기해 준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거야.”

듣지 않으면 일어날 일이라고?

이게 정말로 무서운 부분이다.

내 목숨이 하나냐 둘이냐 하는 부분보다도…….

그는 말을 거의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그냥 듣지 않고 자네만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걸세. 거기에 자네 사업도 도와주지.”

“거절한다면요……?”

“자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치게 될 거야. 이한일이나 자네나 비슷한 사람들이거든, 허허. 자기 자신보다도 주변을 더 아끼지. 물론 이 친구는 그 선을 이겨 냈지만 말이야.”

어느 순간부터 이한일은 조용히 듣고만 있는 듯했다.

그나저나 주변 사람들이라면…….

“가져오게.”

“네.”

이번에는 다른 쪽 구석에서 뭔가가 움직여지는 소리가 났다.

내 등 뒤쪽이었다.

그리고 내 의자도 뒤로 돌아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명의 사람들이 의자를 들어 뒤로 돌린 것이지만.

눈앞이 갑자기 환해졌다.

보통의 컴퓨터 스크린.

그런데 한 개가 아니라 총 여섯 개였다.

어둠에 완전히 적응했던지라 갑자기 환한 불빛에 익숙해지는 건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내 스크린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김승주 회장, 오광필, 이미도, 주현필, 지원재, 그리고 가족.”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

부모님 댁 거실을 찍고 있는 화면이었다.

나머지 화면들은 도대체 어떻게 찍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방금 이자가 말한 각 사람들 정확히 따라가며 보여 주고 있었다.

“못 믿겠으면 하나를 택해 보게. 아, 물론 나를 시험하지 않고 내 부탁을 들어주면 서로 좋겠지만 말이야.”

“무슨…….”

“선택하지 않으면 그냥 1번부터 가 볼까?”

1번은 김승주 회장이다.

도대체 누가 재벌 그룹 회장을 다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블러핑이란 생각도 듦과 동시에 그만큼 위험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설마…….

이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한일은 아니다.

사고가 터지기 시작하면 분명 저기 있는 사람들은 이한일의 짓이라고 생각하고 움직일 텐데.

“대답이 없으니 가 보지. 1번을 너무 센 사람으로 골라 놨는데, 지금 보니. 쯧쯧.”

“죄송합니다.”

“아니야. 어차피 걸림돌이 될 사람이면 이렇게 경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자! 1번!”

1번 화면의 김승주 회장은 어느 저택에서 나오는 모습이었다.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리고는 자신의 차로 가 운전수와 대화를 하고 뒷좌석에 앉았다.

여기부터는 정확히 그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차가 천천히 움직이고 도로로 빠져나갔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차를 찍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평소 모습일 것만 같았다.

도로를 나온 차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 큰 거리로 나왔다.

이때 화면이 바뀌었다.

사거리 모습.

김승주 회장의 집에는 가 본 적은 없다.

그렇기에 정확히 저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본 김승주 회장의 검은색 외제 차량과 같은 차가 신호에 걸렸는지 사거리 한쪽 편에 멈춰 섰다.

“이게 뭡니까?”

“그냥 보고 있어. 이젠 되돌리지 못해.”

“무슨 말…….”

“조용히 해!”

이한일이 이렇게 절절매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그리고 김승주 회장을 다치게 하겠다는 이 사람이 누군지…….

잠시 뒤,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속도가 이상했다.

마치 빨리 감기를 하듯 양옆의 차들보다 확연히 빠른 속도로 튀어 나가는 김승주 회장의 차량.

“어어…….”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방금 보여 주던 사거리를 먼 방향에서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검은 색 차가 날아가듯 달리는 모습.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운전자가 차를 제어해 보려는 듯 양옆으로 크게 흔들렸다.

차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면서 도로 가에 있는 가로수로 돌진했다.

“잠깐!”

“늦었어, 이미.”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화면으로 보더라도 상당히 큰 충격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차에 부딪힌 가로수는 심지어 옆으로 쓰러졌고, 차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보닛에 충격이 컸는지 거의 운전석과 조수석까지 먹고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정신 차려, 유현덕!’

하지만 어느 누가 이런 상황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겠는가.

어둠 속에 보이는 것이라곤 여섯 대의 스크린뿐.

각각의 스크린에는 나와 함께했던 사람들이 보인다.

그중 하나가 지금 막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만한 사고를 당했다.

픽.

화면이 갑자기 꺼졌다.

전부 꺼진 것은 아니고 김승주 회장을 찍던 그 화면, 사고 장면이 있었던 화면만 나간 것이었다.

“나쁜 새끼야!”

“뭘 이것 가지고 그러나. 이제 시작인데. 자, 대답을 들어 보지.”

“야!”

“허허. 그럼 이번에도 내 마음대로 고를까? 자네 덕에 이한일이 꽤나 고생했으니 이번에는 관계된 사람으로?”

관계된 사람?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라도 하면 그가 마음을 바꾸리라 생각했을까?

그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랬던 것은 그만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왜 극한 상황에서 이성을 잃은 모습을 보이는지 알 것만 같았다.

“시끄럽구먼. 5번으로 가지.”

나와는 대조적으로 이자는 극도의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리면서도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5번은 지원재 실장.

“걱정 마, 김승주는 나도 심하게 다루기가 좀 그래서 살살 한 거니깐. 하지만 이번에는 어디까지 갈지 모른다네.”

“아악! 아아아악!”

왜 저런 소리를 지르고 있는 거지.

그냥 선택만 하면 되는 건데 말이다.

생각과 감정이 따로 놀았다.

지원재는 S 아카데미 사무실이었다.

김승주 회장은 김승주 회장이고, 지원재가 있는 장소가 이토록 불길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불길함을 확인시켜 주듯 그가 던진 한마디.

“이 회사에 액운이 낀 건가, 아니면 자네가 운이 좋지 않은 건가. 허허.”

그리고 이번에는 미처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상상할 여유조차 없이 터져 버렸다.

지원재가 앉아 있던 사무실 책상.

그리고 그 건너편에서 그를 찍고 있던 카메라가 한 번 번쩍이더니 화면이 바뀌었다.

외부에서 바라본 S 아카데미 본사 건물 모습.

그의 사무실이 어디쯤인지는 당연히 내가 가장 잘 안다.

내가 은성 고등학교로 넘어가기 전까지 쓰던 사무실이었기에…….

바로 그곳 창문을 통해 불길이 뻗어 나오고,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쪽 방향을 보며 손짓을 하고 있다.

“그만…….”

심장이 쿵쾅거렸다.

정신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해야 할 말은 꺼내고 있었다.

“그만하세요.”

-뉴스 속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오전 10시, 오브라이언 미국 대통령이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전격 방한했습니다. 세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번 방한은 두 달 전 있었던 일련의 테러 행위에 대한 대처 방안을 한국 정부와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양국 정상은 곧바로 청와대에서 회의를 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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