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174화.
우리는 그냥 새로운 결제 시스템만 준비하던 건 아니었다.
이한일의 어두운 과거 스타일로 잠시 소강상태가 된 맥스스쿨 강사들의 움직임 또한 전적으로 계산된 것이었다.
“정말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저런 조폭 같은 사람들이 있어?”
“그러게 말이야. 여기도 한순간에 개판 되는구나.”
강사들의 공식적인 항의는 잦아들었으나, 내부의 불만은 오히려 고조되었다.
이는 사전에 이한일이 그런 움직임을 보일 거라고 몇몇 강사들에게 김윤지와 이미도 원장이 접촉을 해 두었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남을 가르치는 직업의 특성상 가뜩이나 주관이 어느 정도 생길 법한 일인데, 거기에다 연 십억 이상을 버는 강사들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주 옛날 방식으로 윽박지르듯 입을 막으려 했으니 그것이 잘 되겠는가.
어쨌든 의도한 대로 맥스스쿨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해졌고, 그것은 곧 일부 강사들의 행동으로 드러났다.
“그만두겠습니다.”
한 명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뒤 선택한 경로는 워낙 다양했기에 초반에는 이한일이나 강호영도 단순히 몇몇 강사들의 이탈이라 여겼다.
개인 학원을 차려 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몇몇은 한성 에듀나 S 아카데미로 움직이는 강사들도 있었다.
주변의 비교적 신생 학원으로 움직이는 사람도 있었고.
이것만으로 강사들이 집단으로 떠나는 엑소더스라 생각하긴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이건 결국 벌어질 일.
그리고 어쩌면 내가 이한일을 상대로 벌인 최초의 제대로 된 공격이었다.
한 달 뒤, 에듀코인 사업의 영향이 처음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
“매출액 감소분 감당하실 수 있으십니까?”
이충현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에듀코인의 첫 발행이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매출액 감소가 발생했다.
이 사업에 뛰어든 이상 잠시 동안의 매출액 감소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최대한 버텨야 할 문제였다.
중요한 것은 맥스스쿨의 매출.
“감당할 만해요. 그것보다 맥스스쿨 쪽이 엄청 비상일 겁니다.”
정확한 집계는 우리가 알 수 없으나,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라고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가시적으로 밖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회원 수와 강의 수강생 수.
맥스스쿨은 가뜩이나 수강료가 비싼 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활동 지수에 따라 무료 수준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다 보니 굳이 비싼 강의료를 내고 그쪽 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어진 것.
이걸 사교육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실 내가 만든 혁명도 아니고.
한성 에듀가 표방하는 모습에 암호 화폐를 적용시킨 것인데.
맥스스쿨의 회원 수가 감소하면 감소할수록 S 아카데미와 한성 에듀의 가입자 수는 오히려 폭증했다.
에듀코인의 활용성은 사실 학원 커뮤니티 활동 지수에 따른 현금 포인트와 오히려 유사해서 저절로 홍보 효과를 가져왔고, 이것이 곧 가입자 수의 증가로 이어진 것이었다.
물론 현금 결제 비율은 약간이나마 줄긴 했다.
에듀코인을 받아 그것으로 결제를 하려는 학생들이 아무래도 많았기 때문.
그래도 버틸 만했다.
돈은 버틸 만했다.
왜 이때 내 몸 걱정을 하지 않았지?
“고생하셨습니다. 첫 코인 배포가 제대로 끝났네요.”
“뭐, 대표님께서 부담하신 건데요. 아직 사업이 성공하려면…….”
“잘될 겁니다. 걱정하진 마셔요.”
말은 이렇게 했으나 나도 모르는 일이긴 했다.
비트코인의 성공은 알고 있지만 그게 그대로 일어날지도 모르겠고, 일단 에듀코인은 전생에 없었던 암호 화폐이다.
수십 종의 암호 화폐가 하루에 생겨나고 없어지기를 반복하는데 에듀코인은 어떨까.
물론 공개 즉시 상용화란 측면에서도 전생에 없었던 개념인데…….
우리는 그렇게 이충현의 사무실에서 괜찮다고 말하면서 속으로면 벌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유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한 번 뵙고 싶은데요.
익숙한 목소리.
익숙할 것까지는 아니었나?
그렇게 들은 것은 아무래도 이맘때쯤 내가 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쪽에 피해가 막심할테니…….
“오랜만입니다. 언제가 괜찮으신가요?”
-지금 괜찮으신가요?
뭔 소리야, 그런데.
지금이라니.
-에듀코인 사무실에 10분 뒤면 도착합니다.
내가 에듀코인 사무실에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손목에 걸린 시계를 보니 시간은 대략 오후 3시를 막 지나고 있다.
이한일이 조만간 연락을 해 오거나, 또는 뭔가 액션을 취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연락도 없이 덜컥 와 버리는 경우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약간은 당황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 하하. 이거 갑자기 찾아오신대서 조금은 당황스러운 걸요.”
-뭐 연락을 미리 드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갑작스런 만남도 가끔은 필요하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시간 내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밑으로 내려가겠습니다.”
갑작스런 이한일의 방문.
지금 맥스스쿨의 상황은 좋지 않다.
회원 수가 급감하고, 일타라고 불리던 강사 절반 정도가 학원에서 빠져나간 상황이다.
그래도 퓨처 금융투자 전체의 기준에서 본다면 작은 손실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성 그룹 김승주 회장의 말로는 대기업들도 그곳의 현금 보유량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는 집단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타격이 컸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로?
어쨌든 지금은 이 사람을 만나 보긴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고, 뭘 원하고 나를 찾은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다.
눈이 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추운 날씨였지만 그래도 그 정도까진 아닌가 보다.
잠시 우산을 펴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도로 쪽에서 검은색 대형 세단이 세 대가 연이어 멈추는 모습이 보였다.
세 대라…….
앞뒤의 세단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그중 둘은 가운데 있는 차량으로 달려가 우산을 펼치고 문을 열었다.
중년의 남자가 열린 문으로 내렸고, 한 남자가 받쳐들고 있던 우산을 뺏어들고는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이한일이었다.
⁂
“이 녀석은 도대체 인생이 왜 이런 거야?”
주현필이 인상을 푹 쓰며 내뱉은 말.
하지만 어느 누구도 대답하진 않았다.
딱히 대답을 요한 말도 아니었다.
보통 유현덕이 앉아있던 회의실 한가운데 자리에는 지금 김승주 회장이 앉아 있었다.
김미연 부회장은 바로 옆에 서 있었고.
지원재 실장이 자리를 일부러 그렇게 안내한 것이었다.
회의실에는 총 다섯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김승주 한성 그룹 회장과 김미연 부회장,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 그리고 지원재 실장까지.
현재 유현덕이 새로 벌인 사업에 관여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후 늦게 각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유현덕 대표는 내가 잠시 모시고 있겠소. 별일 없으니 걱정하진 마시고 우리는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게 수화기에서 흘러나온 말의 전부였다.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 그리고 심지어 김미연까지도 무슨 의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김승주 회장은 가장 먼저 사태를 제대로 파악했다.
그는 곧바로 비서에게 퓨처 금융투자의 현재 재정 상황에 대해 알아보라고 시켰고, 맥스스쿨 인수에서 생각보다 큰 출혈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맥스스쿨이 에듀코인 사업으로 인해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으니 이한일이 유현덕을 만나기로 한 것은 그의 말마따나 그냥 이야기나 하려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위험해. 위험해.”
그는 퓨처 금융투자를 통해 이한일에게 연락을 해 보려고 했으나, 이한일은 자리에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맥스스쿨로도 사람을 보냈는데 이어진 보고는 더욱 우려스러웠고.
바로 전날까지 원생들이 출입을 하던 학원 건물은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고 했다.
게다가 건물 내부로 들어가 보니 강사들은 아무도 자리에 없고 원장인 강호영만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원장실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
심지어 그는 이미 누군가에게 심하게 얻어맞은 듯한 모습이었고, 사진을 본 김승주 회장은 곧바로 유현덕과 이한일을 수소문하는 한편 딸 김미연 부회장을 통해 이 자리를 만든 것이었다.
“CCTV 확인되면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움직이면 늦지는 않을…….”
지원재 실장이 그나마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종종 감성이 이성을 지배한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다들 이성이라면 둘째라면 서운할 면면이지만, 그래도 이한일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불안함을 감추질 못하고 있었다.
“이한일을 몰라서 하는 소리!”
김승주 회장이 지원재 실장의 말을 끊으며 큰 소리를 냈다.
딱히 그에게 화를 내는 것은 아니었고, 아마 그 정도 되는 사람이 이런 상황을 겪는 것에 대해 심히 불편했을 것이다.
역시나 이 자리에서도 시종일관 조용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이미도 원장이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회장님.”
김승주 회장은 이미도 원장을 잠시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상황일까.
이한일의 과거가 떠올랐다.
한성 그룹이 국내 재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라지만, 그래도 1위는 한성이 아닌 삼광 그룹이다.
삼광 그룹 회장 박승재.
그리고 한성 그룹 회장인 김승주 자신.
이 둘 앞에서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이 국내에 몇이나 될까.
이한일은 그걸 했다.
심지어 협박까지도.
“허허. 미친 녀석이네.”
뒤에서 악을 써 대는 이한일, 그리고 앞에서 그에게 등을 돌린 채로 앉아 커피를 마시는 박승재였다.
그리고 그의 건너편, 박승재와 마주앉아 있는 김승주는 자신의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 마치 영화에서 봤던 악인이 주인공을 괴롭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 판의 주인은 박승재였으나, 김승주의 눈에는 오히려 이한일이란 사람의 강인함이 더 인상 깊게 들어왔다.
다섯 명의 경호원들이 이한일의 무릎을 꺾어 놨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주변에 너부러져 있는 열댓 명의 소위 ‘동생’들은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으나, 그들보다 체구도 훨씬 작아 보이는 이한일은 끝까지 버텼다.
이 일의 전후를 모두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 테니 짤막하게 말하자면, 서울로 올라와 규모를 확장하던 조직 폭력배 집단의 수장 이한일이, 삼광 그룹이 계열사를 통해 손을 대려던 호텔 사업에 발을 들이밀었던 것이 발단이었다.
하지만 이한일도 모르던 사실이 박승재 본인 또한 지금의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사업가의 길만을 걸어왔던 건 아니었다는 것.
돈이 되는 일이라면 일본의 야쿠자, 중국의 삼합회 등과도 손을 잡으며 성장한 그였기에 이제 상경한 조폭은 사실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어쨌든 이한일은 그 자리에서 죽을 뻔했다.
박승재가 던진 두 개의 질문에 그가 원하는 답을 주지 못했다면 말이다.
“자, 내가 널 풀어 주면 너는 날 위해 뭘 해 줄 거냐?”
피투성이가 된 얼굴에 대고 박승재가 한 질문이었다.
이한일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눈을 내리깔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그를 붙잡고 있던 거구의 주먹이 두어 차례 얼굴에 내리꽂혔으나 그래도 그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크흑. 풀어 줘? 풀어 주면 후회할 걸. 평생 밤이 두려워지도록 해 주지.”
이빨이 몇 개 나갔는지 제대로 발음도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 김승주가 들은 내용은 이것이었다.
죽겠구나 생각했을 때, 박승재는 껄껄거리며 웃더니 다시 한 번 이한일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강단 있는 녀석이구나. 그래. 좋다. 이렇게 해 보지. 너는 돈을 벌려고 이러는 거냐, 아니면 꼭대기에 올라가 보려고 이러는 거냐.”
의외의 질문이었을까.
아니면 삶을 놓아 버린 상황이라 그랬을까.
이한일이 이 질문에는 머뭇거렸다.
김승주도 그의 대답이 궁금했다.
돈을 벌려고 목숨을 걸고 이 싸움을 걸어 온 것인지, 아니면 걸리적거리는 박승재를 재끼고 자신이 그 위에 오르려 그런 것인지…….
박승재는 이한일의 대답을 기다렸고, 그런 둘의 모습을 김승주는 긴장했지만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진 않았다.
물론 하도 머리를 맞아 정신이 온전치 않았을 수도 있다.
이한일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것이었다.
“죽여…… 버리겠어.”
꼭대기에 오르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김승주는 눈을 꽉 감았다.
박승재가 원했던 것은 첫 번째 답이 아니었을까 하면서.
“그래? 하하. 이 녀석! 김 회장! 아주 강단 있는 녀석이 나왔어! 안 그래?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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