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173화.
이 말의 의미는 내가 직접 설명하는 것보다는 이한일의 반응을 통해 이해하면 좋을 텐데.
내가 신이 아닌 이상 그가 이 소식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니 어쩔 수 없지.
“이제 정말 시작이네요.”
“떨리십니까?”
“대표님이 떨리셔야 맞는 것 아닌가요? 하하. 의도한 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S 아카데미잖습니까.”
그의 말은 사실이다.
백서에 나온 대로 에듀코인을 S 아카데미의 결제 수단으로 인정한다면 한동안 강의를 무료로 배포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겠지.
하지만 강의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에는 긴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면서 최대한 버텨야 그나마 우리가 기대한 성과를 볼 수 있을지, 아니면 완전히 실패한 결과를 볼 수 있을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약간의 보험으로 비트코인도 가지고 있잖아요.”
나는 최대한 진지하게 이렇게 말했지만, 이충현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말 그대로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어우러진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개발과 공개 직후 상용화를 시켰다는 것만 하더라도 이 팀은 어마어마한 돈방석에 앉을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게 잠깐의 펌핑으로 끝이 날지, 아니면 정말 기술력과 마케팅력을 인정받아 현재의 비트코인이 미래에 가지게 될 암호 화폐계의 기축 통화가 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비트코인은 아직 1달러도 되지 않는 금액.
이게 앞으로 몇 년 뒤에는 2만 달러에 육박하는 가치를 가지게 됨을 알고 있는 나는 약간의 돈으로 미리 사 두었다.
이게 2만 달러가 되면 좋기야 하겠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런 미래보다는 각 암호 화폐의 가치가 방향성을 갖고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모습.
그 시도를 해 보기 위해 에듀코인을 만들었고, 에듀코인의 성공 여부에 따라 비트코인의 미래 가격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아무튼 고생 많으셨습니다. S 아카데미 사이트 연동 여부 확인은 언제쯤 가능하죠?”
“일단 내일쯤 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결제 수단에 이걸 하나 추가하는 거니깐 지금 당장도 가능하긴 한데, 오늘 너무 다 터뜨리면 좀 아쉬우니까요.”
“그렇게 하시죠, 그러면. 저는 그럼 다시 넘어가겠습니다.”
여기 내가 오래 있을 필요는 없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자주 만나게 될 이충현과 잠깐의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S 아카데미로 왔다.
지원재 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들 와 있습니다, 대표님.”
“빨리도 알고 오셨네요.”
온라인상에 에듀코인의 백서가 올라가고, 이 코인의 기술개발에 한성 그룹이 관여되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관심이 집중되었다.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국내 대기업이 개발에 참여한 암호 화폐.
그리고 그 첫 사용처로 거론된 S 아카데미.
세미나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안에 사람들이 많은 것은 밖에서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문 앞에서 잠시 심호흡을 했다.
“들어가시겠습니까? 물 좀 가져다 드릴까요?”
“아닙니다.”
지원재 실장이 문을 열어 주었고(허례허식이지만 가끔씩은 연출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와 동시에 안에 있는 기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얼핏 서른 명 정도 되는 사람들.
그중에는 이미 노트북을 열고 기사를 작성할 준비를 마친 기자도 있고 사진 촬영을 위해 온 사진기자들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바쁘신데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능청스럽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연기하는 내 모습을 지원재 실장이 쳐다봤다.
뭐, 그에게도 이젠 익숙한 일이다.
나도 그를 슬쩍 쳐다보고 어께를 한 번 으쓱였다.
플래시가 우르르 터졌다.
“유 대표님!”
“에듀코인의 사업에 S 아카데미가 참여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비트코인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시는 건가요?”
“은성 고등학교에서 갑자기 일을 그만두신 이유가 이 사업 때문입니까?”
줄을 세워서 하나씩 물어보도록 해야 하는데.
이건 굳이 우리나라만의 특성은 아니리라.
미국도 정부의 중요한 발표가 있거나 하면 서로 기사를 따내기 위해 질문을 허공에 대고 막 던진다.
나는 그저 그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아니, 실실 웃고 있으면 미친 거지.
그냥 미소를 띠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지원재 실장이 언제 나서야 하나 몰라 머뭇거리는 모습도 나름 새로웠다.
평소 같았으면 모범생처럼 준비한 것을 읊고 질문을 받았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다르고 싶었다.
거드름피우는 모습?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기자들의 질문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멈췄다.
“질문은 하나씩 받겠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저의 개인적인 입장도 말씀드리고요. 천천히 하시죠.”
플래시가 연이어 터지고 노트북을 열어 둔 기자들은 조금 후에 송고할 기사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말이 시작되고 나서는 아무도 질문을 먼저 던지지는 않았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S 아카데미의 신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대략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최대한 세부적인 계획을 기자들에게 알렸다.
암호 화폐 시장의 성장성과 내가 가진 개인적인 우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업체인 S 아카데미가 이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
‘이쪽 시장의 기축 통화를 목표로 최대한 빠른 상용화를 추구한다.’
이것이 이 사업의 주요 요지.
그리고 동시에…….
‘전 세계 온라인 교육 결제 시장 통합과 교육을 통한 부의 재분배.’
이것이 첫 번째 상용화 계획이었다.
⁂
“S 아카데미는?”
“이미 에듀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열린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 그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에 조금 더 두고 봐야 하지만요.”
에듀코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이걸 부여받기 위해 활동을 하고 그 결과가 일주일 뒤에 나오기 때문이었다.
바로 전날 있었던 유현덕의 기자회견.
이건 온라인 교육을 무료로 풀어 버리겠다는 선언과 마찬가지였다.
이한일에게 있어서 교육 사업은 아직 생소했다.
우리나라의 엄청난 교육열은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리라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직접 사교육 업체를 운영한다는 계획은 그의 장기 플랜에 없던 것이었다.
그리고 벌써 그 삐걱거림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던 상황.
“가능하긴 한 거야? 강사들 강의료는?”
“아직 모릅니다. 가장 대표적인 암호 화폐가 비트코인인데 그것도 사실 시장의 주목을 받은 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근데 그거랑 비슷한 걸로 결제를 대신 받을 수 있다는 거지?”
처음 이한일이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유현덕이 미쳤나 생각했었다.
가장 가깝게 들 수 있는 예시가 예전에 있었던 한 SNS 플랫폼의 도토리였는데, 그건 단순히 현금을 도토리로 변환시킨 것에 불과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현덕이 미쳤나 생각하기 이전에 한참을 공부를 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만큼 이 시대는 아직 암호 화폐가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런데 불현듯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누가 들어도 이해하는 시간만 한참이 걸리는 시스템을 유현덕이 도입을 한다는 사실.
애초부터 별 업적이 없던 벤처기업이었다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건 유현덕이다.
서울 유수 대학을 다닌 것도 아닌, 그저 지잡대라고 부르는 지방 사립대 사범대학을 나온 사람이 온라인 사교육 시장의 선구자였던 맥스스쿨을 20대 중반에 인수해 버리고,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 중 하나인 한성 그룹 산하 한성 에듀의 미국 지부를 개척한 젊은이.
그가 이 이해하기 어려운 시장에 발을 들이민 이유가 뭘까.
이한일은 차분하게 생각에 잠겨 있다.
불안한 기분은 들지만 그렇다고 당황하거나 흥분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중년의 남성은 이 자리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바로 이미도 원장에게서 경영권을 넘겨받은 이한일이 맥스스쿨의 운영을 맡긴 강호영 원장.
그가 누구인가.
한때 서울의 학원가, 맥스스쿨 본원이 있었던 그 학원가에서 강재훈 원장의 맥스스쿨과 쌍벽을 이룰 만큼 큰 학원을 운영하던 원장이었다.
이름하여 대일N에듀.
물론 지금은 그것도 옛말.
대일N에듀는 온라인 교육 시장으로의 진입에 성공하지 못했다.
시장의 선구자는 맥스스쿨이고, 원래의 흐름대로였다면 다른 거대 학원들이 온라인 시장에 나름의 색을 가지고 뛰어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S 아카데미와 맥스스쿨이 한 사람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가게 되면서 일이 꼬였다.
이건 물론 유현덕이 의도한 것이기는 했다.
기존 수능시험 시장에 강세를 보이는 맥스스쿨을 그대로 둔 채로 신생 S 아카데미는 늘어나는 수시를 대비한 내신 시장과 지방 학원 시장, 그리고 학교 방과 후 수업 계약을 쓸어 갔다.
심지어 교육방송 강의까지…….
차라리 아예 후발 주자로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면 대일N에듀 정도의 자금력이라면 충분히 경쟁을 해볼 만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기에는 강호영 원장이 맥스스쿨에 가지고 있던 라이벌 의식이 너무 컸다.
그리고 지금은…….
“저……. 걱정하실 필요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회장님.”
그런 그를 이한일 회장은 인수한 맥스스쿨 운영자로 올려놓았다.
규모상으로는 사실상 대일N에듀와 맥스스쿨의 연합이기에 S 아카데미와 더불어 전국 최대라고 볼 수 있었고.
“왜?”
“비트코인도 아직 1달러도 되지 않습니다. 1달러면 천 원 정도인데 유현덕은 강의비를 단 1에듀코인으로 결제할 거라고 말했거든요.”
“당신 바보야?”
“네?”
그나마 침착했던 이한일의 표정이 갑자기 확 일그러졌다.
강호영은 자신이 뭔가 실수했나 생각했지만, 그게 뭔지를 알 수 없었다.
“내가 좀 알아봤더니 비트코인은 1달러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고 하던데. 수십 년 전도 아니고 개발된 것이 바로 몇 년 전이었으니 달리 말하면 몇 년 만에 열 배가 넘게 오른 것 아냐?”
“네…….”
“그럼 에듀코인도 그렇게 오를 수 있겠네. 그리고 1에듀코인이건 10에듀코인이건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 걔네는 지금 자기들 강의를 공짜로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라고.”
아마 에듀코인 사업 소식을 들은 사람들 중 아주 극소수만이 유현덕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한일도 그 소수 중 하나였다.
이 정도 돈 냄새를 맡는 능력이 있었으니 조그만 사채업자에서 현재와 같이 대기업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 금융권 회장까지 올라왔던 것이다.
“…….”
강호영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 이 자리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이한일의 능력은 능력이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유현덕이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았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을 시도하겠는가.
만약 성공하지 못한다면 S 아카데미는 길게 봐야 2년 이내에 파산할 것이다.
또는 지금의 규모를 유지하지 못하고 동네 학원 수준으로 작아질 수도 있고.
‘왜 그러세요.’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강호영에게 이한일이 ‘멍청한 자식’이라는 말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조차도 유현덕이 어디까지 준비했는지, 무엇을 의도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예전처럼 붙잡아 와서 윽박지를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뭔가 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여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큰 목적에는 왠지 자신의 실패도 포함이 되어 있지 않을까.
이한일은 다시 한 번 강호영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한때 강재훈과 호각을 이룬 사람이었는데, 최근 보면 이 사람에게 맥스스쿨을 부탁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나 싶기도 했었다.
호각은 호각이었지만 분명 맥스스쿨이 항상 한 걸음 이상 앞서 있었고, 그 맥스스쿨의 원장 강재훈도 무너뜨린 유현덕을 강호영이 제대로 견제할 수 있을까.
“아무튼 알겠어. 학원 관리나 잘하고 있어, 자네는. 그나저나 강사들 문제는 어떻게 됐어? 근래 들어 조금 시끄러웠다며?”
“아, 잘 해결되었습니다. 보내 주신 분들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흐흐. 그랬겠지. 사람 움직이는 건 둘 중 하나라니까. 많은 돈이나 압도적인 힘! 잘 기억해 두고 가끔 써먹어. 강사들 말이야, 지들이 움직이면서 수강생을 끌고 다닐 수 있다고 너무 기세등등하게 놔두지 말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회장님.”
강호영은 정말로 그 일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된 줄만 알았다.
이미도 원장 체제에서보다 훨씬 강화된 강사들 간의 경쟁.
그 경쟁에서 밀리는 순간 학원의 계약은 파기된다.
여기에 약간의 반발이 있었으나, 이한일이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자신의 동생들이라 부르는 사내들을 보내 왔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들락거리는 학원에 덩치 큰 사내들이 열댓 명이나 들락날락거려 불편했으나, 그들이 와 경비를 맡게 된 이후로 강사들의 개별 행동이 완전히 사라졌다.
효과는 확실했다.
하지만 정말로 해결된 줄로만 알았던 그 일은 아무것도 해결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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