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168화.
중앙 식품.
급식 식자재 납품 입찰 내역에 나온 업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애초부터 낮은 단가로 맞추는 것보다는 식자재 공급처의 개수와 수준에 높은 점수를 줬던 은성 고등학교.
그리고 그 부분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던 업체가 중앙 식품이었다.
“업체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희섭 행정실장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행정실장님이 교사에게 이렇게 어렵게 대하는 경우는 없겠지.
이건 다 은성 고등학교의 설립과 관계된 일이라 어쩔 수 없다.
편하게 해 달라고 몇 번이나 말씀을 드렸건만, 그게 쉽지 않으신 것 같다.
뭐, 내가 이 행정실장님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 상황이었겠지.
오히려 편하게 해 달라는 말을 계속 듣는 것이 부담스러웠을지도.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우리 학교와 나와의 특수한 관계가 아니라 식중독 문제다.
“아뇨. 이것만 보고는……. 아무런 문제는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러게. 점수도 제일 높잖아. 다른 곳들 선정했다가 문제 생겼으면 혹시 모르겠는데, 여긴 왜…….”
문득 드는 생각.
이게 우연일 수도 있었다.
중앙 식품은 이제까지 수년 간 단 한 번도 식자재의 유통기한이나 질에 있어서 문제를 일으킨 기록이 없었다.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이번에 혹시 일이 터질 운명이 아니었을까.
아니, 그런 생각은 너무 안일하다.
실수라고 하더라도 사고가 터진 이상 잘잘못을 가려 책임을 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 져야 하는 법.
“교장 선생님,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오! 강 선생! 잘 왔어.”
닫아 둔 행정실 문을 열고 들어온 20대 후반의 여성.
강연두 영양사님이다.
아마 우리 학교에서 몇 안 되는(어쩌면 유일한?) 나보다 젊은 직원일 것이다.
그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삼시 세 끼를 모두 준비해야 하는 우리 학교의 특성상 식중독 문제는 급식실 직원들에게는 생각하기도 싫은 사고일 것이다.
“영양사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유 선생님.”
신기한 건(나만 신기하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는 상황에 대해 다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점이었다.
아니, 뭐 굳이 신기하게 느낄 부분은 아니려나.
전생 기준으로는 이런 신기한 일 자체가 있을 일이 없었으니.
“먼저 말씀드려야겠네요.”
응?
“방금 조리사 어머님들과 오늘 배식된 식자재 재고 전부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는 그녀.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좋지 않은 정도였지만, 얼굴색이 창백했다.
결국 식자재 문제.
그것밖에는 없었다.
“점심으로 들어간 감자 상태가 좋지 않은 걸 방금 확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책임은 제가 전부…….”
“잠시만요.”
감자가 상태가 좋지 않은 건 납품 업체의 문제지 조리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납품된 재료의 상태를 일일이 확인하는 일은 급식실의 책임이다.
아마 책임은 져야 하겠지.
내가 그녀의 말을 끊은 건 그 책임을 덮거나 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애초 식중독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결국 재료 문제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떠오른 건 학교 급식실 직원분들이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거란 생각.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회피하고 싶은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다.
은성 고등학교는 곧 나였다.
그런 학교에서 식중독 문제가 발생했으니, 어떻게 하든 간에 내부의 책임이 아니라 외부의 문제로 돌리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겠지.
하지만 검수의 문제는 검수의 문제고, 좋지 않은 재료를 납품한 것은 기록에 나온 중앙 식품이란 회사다.
수년 간 단 한 번도 이런 사고를 일으킨 기록이 없었던 회사.
“김태원 사장님?”
“네?”
“김태원 사장님 직접 뵌 적 있으세요?”
감이랄까.
아니, 내가 무슨 감이 있겠는가.
내 생각은 그냥 이쪽을 닦달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밖에서 이 상황을 본다면 내부의 문제를 덮기 위해 시선을 외부로 돌린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부의 문제는 이미 드러난 상황.
그럼 좀 더 근본적인 부분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지.
검수는 말 그대로 검사를 하는 것이다.
재료가 괜찮은지, 문제가 없는지 말이다.
검수의 실수는 책임을 진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재료를 이상하게 보내온 곳에도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업체 말씀이신가요? 한 번 뵌 적 있습니다. 입찰하실 때…….”
“나도 본 적 있어.”
당연히 교장인 오광필 할아버지나 행정실장님도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처럼 보였어요? 여기 기록 보면 이제까지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던 회사던데요?”
“으흠…….”
그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했다.
나도 느끼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람 기억 속의 사람 얼굴과 상황을 매치시키는 것이 어려워진다.
게다가 학교나 학원이라면…….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고 나중에는 각 사람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왜 만났는지가 이리저리 뒤섞이는 경우도 있다.
행정실장님이 먼저 기억이 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광필 할아버지가 훨씬 연배도 위였기에 자신이 나서기 조심스러웠겠지.
우리는 전부 그렇게 그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결국 내가 들을 거라 생각했던 대답과 다르지 않았고.
“괜찮은 사람 같아 보였는 걸……. 일부러 이런 일을 저지를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누가 미쳤다고 자기 회사 망할 수도 있는데 이런 일을 일부러 저지르겠는가.
내가 궁금했던 건 김태원이란 사람의 됨됨이가 아니었다.
“그러니깐,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다는 말씀은 자기 일을 소중히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사람 같았다는 말씀이시죠?”
“뭔 질문이 그러냐. 딱 봐도 괜찮았어, 네 말대로. 그리고 직접 음식점도 운영하고 있고, 거기 들어가는 음식은 중앙 식품 식자재들로만 사용한다고까지 했는걸.”
“그리고 교장 선생님께서 그것도 물어보셨죠. 음식점 음식 다 가족 먹일 수 있겠냐고요.”
“그렇지! 기억났네. 허허.”
그러면 그쪽도 실수였을까.
아니면 실수가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을까?
혹시나…….
“그래서 대답은요?”
“대답? 당연히 그렇다고 했던 것 같아. 별문제 없었고 사람은 참 마음에 들었어. 나랑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니면 조금 더 들었을 걸?”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실수이든 아니든, 또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든 없든 간에 필요한 절차니깐.
어차피 우리가 부르지 않더라도 구청에 식중독 신고가 들어간 상황이니 그쪽에서 부를 것이다.
거기에 불려 가는 상황에서는 우리 입장도 결코 좋은 상태가 아닌지라 그 전에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알겠어요. 그냥 궁금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실장님. 교장 선생님, 올라가시죠, 이제.”
“어? 어어. 그래.”
내가 직접 그 사람을 오라 가라 할 처지는 아니다.
일이 진행되는 순서와 절차는 지켜야지.
딱히 갑작스런 퇴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의아한 눈빛들이 뒤통수에 꽂히는 것 같았다.
내가 호통이라도 치거나 해결책이라도 이 자리에서 바로 꺼내 놓을 거라 생각했을까?
“영양사님도 같이 가시죠. 어차피 일은 터진 것 아닙니까. 너무 불편해하지 마셔요. 해결하면 되죠.”
어쩔지 몰라 하는 강연두 영양사에게는 이렇게 던져 놓고 같이 데리고 올라왔다.
행정실에 있어 봐야 행정실장님에게 깨질 상황이었겠지.
검수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으니 말이다.
우리는 다들 교장실로 바로 올라왔다.
학교는 그래도 대충 정리가 되었는지 조용했다.
아니, 정리가 된 것이 아니라 학생들 상당수가 병원으로 실려 가서 조용한 것이었지만…….
나라고 이런 일에 별수 있겠는가.
다만 다행인 것은 우리가 교장실로 올라가면서 보건 선생님을 잠깐 봤는데, 그는 막 병원으로 출발하려는 모습이었다.
이미 병원에 도착한 다른 선생님들 몇으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한다.
식중독 증상이 맞고, 수액을 맞은 몇몇 아이들은 호전되기 시작했다고…….
그나마 다행일까.
아니, 이제 시작인데 뭘 다행인가.
본부 교무실을 지나면서 본 모습은 전화기 여러 대가 동시에 울려 대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이미 전화기 하나씩을 귀에 대고 연신 죄송하단 말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때, 내 휴대폰이 울렸다.
지원재였다.
⁂
“무슨 신이세요?”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표님?
이 사람은 정말 어떻게 이런 타이밍에 딱 맞춰서 항상 연락을 한단 말인가.
바로 몇 달 전 은성 고등학교 개교일만 하더라도 아이들 과거 문제가 터졌을 때 미리 알고 연락을 하지 않았던가?
아닌가?
어쨌든…….
이게 내가 그를 정말로 의지하는 이유이긴 했지만, 가끔은 무섭기도 했다.
“아닙니다. 무슨 일로 연락하셨어요?”
바로 상황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긴 했지만 설마 이번에도 이 사람이 이미 이 상황을 알고 연락한 것인가 궁금했다.
뭐라고 대답할까.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평소의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제가 어떻게 은성 고등학교 상황을 알고 연락을 하는 건지 궁금하신 건가요?
아…….
그래.
엄청 궁금합니다.
“지금 상황을 알고 연락하신 거예요, 또?”
-식중독 의심 상황이라는 것 말씀이시죠?
“네.”
-은성 고등학교에는 예전 맥스스쿨부터 S 아카데미 출신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중 몇몇은 대표님보다도 저와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이고요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현지훈 선생님을 비롯해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지원재 실장과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던 사람들.
오히려 신분은 기간제 교사이면서 교장이나 이사진들과 특수 관계인 불편한 나보다 그와 훨씬 가까울 수 있었다.
단지 무슨 터미네이터같이 일처리를 하는 지원재에게 그런 인간관계가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친하셔요?”
바보 같은 질문 또 하나 더하기.
하지만 정말로 하고 싶은 질문이기도 했다.
적어도 그가 나에게 형 같은 인물이기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사무적이지 않은 관계는 별로 본 적이 없었다.
-…….
그게 무슨 질문인가 싶었겠지.
기다렸다.
-대표님은 저와 친하지 않으십니까?
헐.
이 사람은 정말 사회성이 없는 사람인가.
그런데 어떻게 강사 출신 선생님들에게는 즉각 즉각 연락을 받는 거지?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사람이랑 친한 것인가, 정말로?
“아…….”
-…….
이게 무슨 대화란 말인지.
“유 선생! 뭐해? 누구야?”
오광필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고서야 지금 그런 이야기를 논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걸 알아차렸다.
“아, 잠시만요, 교장 선생님.”
그리고 아마 지원재 실장도 잠시 넋을 놓고 있었던 것 같다.
오광필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그도 들었을 테고, 애초 전화한 목적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대표님, 식중독 발생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혹시 필요한 부분이 있을까 해서 연락드린 겁니다.
필요한 것은 분명 있었다.
사실 전화기가 울리기 직전에 나는 그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다.
“음,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네, 그렇잖아도 방금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저도. 실장님, 혹시 중앙 식품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당연히 들어 봤죠. S 아카데미 지방 분원 몇 곳의 식당 식자재 납품 업소입니다.
“네?”
생각지 못한 전개였다.
그런데 왜 내가 모르고 있었지?
-식당 계약 건과 관련해서는 전부 제가 처리했잖습니까. 중앙 식품이 적어도 국내에선 이쪽 업계에서 가장 깨끗하게 일하는 업체입니다. 그리고 은성 고등학교 식자재 납품 입찰도 통과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네…….”
-바로 김태원 사장님과 만남 일정 잡아 보겠습니다. 직접 만나셔서 말씀을 나눠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실장님 생각에도 그냥 단순한 납품 질의 문제는 아닌 것 같으신 건가요?”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뭐, 바로 만남 잡아 보겠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그가 그리 생각하는 것 같긴 했다.
어렴풋이, 이 일이 그냥 식자재의 유통기한 문제나 질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었다.
입찰 계약건도 공문을 세세히 들여다봤지만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다른 업체에 비해 단가는 오히려 비쌌다.
그만큼 재료의 질을 자신하는 내용이었는데.
지원재 실장의 눈에 들 정도의 업체였다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그냥 순전한 실수였을 수도 있지만(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지.
-네. 개인적인 생각을 물어보신 거라면, 중앙 식품에서 단순히 질 나쁜 물건을 보내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입니다. 그런데도 문제가 생겼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이유라면 어떤 거죠?”
-…….
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머릿속에 누가 떠오른 것인지는 알 것만 같았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에게 만남을 주선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는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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