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67화 (167/200)

[167] 167화.

진호와 함께 학교에 돌아왔을 때, 처음 눈에 띈 것은 사라진 보안요원들이었다.

삭막한 학교 분위기는 좋지 않을 것 같아 담벼락을 세우지 않으려 했으나, 일전의 이한일 사건으로 펜스를 세우고 입구 두 곳에 보안요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문에서는 어느 누구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 식중독 때문일 거라 생각은 했지만 보안요원들이 나설 일이 뭐가 있겠는가 싶었는데, 막상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왜 그들이 입구에서 보이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헐. 이거 왜 이래요?”

옆에 있던 진호가 말을 하자마자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학교에 자꾸 소방서나 병원에서 찾아오는 일이 생기면 좋지 않은데…….

보안요원들이 몇몇 학생들을 업고 1층 보건실 쪽으로 서둘러 가는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들은?

선생님들도 이미 한두 명씩 아이들을 부축하거나 해서 내려오고 있었고.

그런데 그렇게 하는 그들 얼굴도 좋지 않아 보였다.

“유 선생! 당신은 괜찮아?”

이게 뭔 난리통인가 싶어 입구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아이 한 명을 부축하며 계단을 내려오던 선생님 한 분이 소리쳤다.

“네?”

나는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하고 대답했지만 그는 내 대답에는 신경도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순식간에 애 하나와 함께 보건실 쪽 복도로 사라졌다.

“진호야, 교실로 일단 들어가 있어. 넌 이제 몸은 괜찮은 거지?”

“네, 괜찮아요. 좀 피곤한 건 있지만…….”

“알겠어. 들어가 있어.”

진호가 먼저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보건실 쪽으로 먼저 방향을 잡았고.

굳이 방 안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보건 선생님이 안팎을 들락날락 거리며 내려온 아이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복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 선생님들도 몇몇 보였다.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한두 대는 아니었다.

“난리야, 난리.”

“네?”

오광필 할아버지가 어느새 내 바로 뒤에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이게 다?”

“보건 선생님 말로는 식중독 같다는데 모르지, 뭐.”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내 전생의 학교 기억.

학교란 곳은 원래 전염병에 취약하다.

하지만 식중독을 전염병이라고 할 수 있나?

아닐 것이다.

이게 병이 아니라 식중독이라면?

이건 사고다.

특히나 외부에서 본다면 몇몇은 옷을 벗어야 할 정도의 사고…….

“급식실은요? 확인해 보셨어요?”

“이 판국에 확인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 정신 하나도 없었어, 너 나간 사이에.”

대략적인 지금 시각을 알고는 있었지만 시계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내가 진호를 데리고 병원으로 간 지 3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일단 급한 대로 좋지 않은 애들 병원으로 보내야 할 것 같아서 구급차 가지고 있는 인근 병원이랑 소방서에 연락은 했으니 금방 올 거야.”

“잘하셨어요. 할아버지, 아니 교장 선생님은 괜찮으신 거예요?”

“나? 나는 오늘 밥을 안 먹었거든. 어제 잠이 안 와서 혼자 술을 좀 마셨더니.”

그의 얼굴은 괜찮지 않아 보였지만 이게 식중독 때문인지 술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다행은 다행이지.

그나저나 나는 밥을 먹었는데 왜 아무런 증상이 없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다행이긴 하지만…….

내가 학교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이미 조치를 취하고 있던 탓인지, 이때부터 구급차들이 올 때까지 더 소란스러워지지는 않았다.

구급차들은 아무도 없는 교문을 빠른 속도로 통과하여 입구 쪽으로 왔고, 다시 한 번 보건실에서 아이들을 구급차로 옮기는 이송 작전이 시작됐다.

나이 많은 오광필 할아버지까지 일손을 도왔고, 총 21명의 학생들과 5명의 교사들이 병원으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일까.

제일 먼저 증상이 있던 진호가 병원에서 수액만 맞고 괜찮아졌으니…….

어쨌든 사고 처리는 사고 처리고, 남은 사람은 정리를 해야 한다.

오광필 할아버지와 나는 학교를 한 바퀴 다시 돌며 혹 다른 아픈 아이들이 있는지 확인했다.

시간이 오래 걸릴 필요도 없었다.

거의 3분의 1가량 되는 학생들이 빠져나간 터라 교실도 휑했으니.

“야, 나 이거 기분 좋지 않다.”

교실을 다 돌고 나서 교장실로 향하던 그가 갑자기 멈춰 서서 나에게 말했다.

“네? 교장 선생님도 혹시 증상이…….”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이런 일이 흔한 일이냐?”

식중독이나 장염, 배탈은 흔한 일이지만 이렇게 단체로 생기는 일은 흔치 않다.

단 몇 명만 식중독에 걸린다 하더라도 신문에 대서특필될 일인데.

그리고 내 기억에 이렇게 많은 숫자가 한꺼번에 아픈 일은 없었다.

“급식실 선생님들은 별 말씀 안 하셔요?”

“그쪽은 그쪽대로 지금 비상이지. 자기들 목이 날아갈 위긴데.”

“조리 때문에 식중독이 생기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자기네들이 식자재 검수를 하잖아. 오늘 들어온 것들로만 썼대. 생각하면 우리 학교에선 굳이 재료 아낄 필요가 없잖아. 돈도 다른 곳보다 훨씬 많이 주는데…….”

“그렇죠.”

학교에서 식중독 사고가 발생하면 대부분의 화살은 학교를 향해 날아간다.

물론 그걸 피할 생각은 없다.

식자재 업체 선정부터 재료 검수와 조리까지, 전부 학교에서 이뤄지는 일들이니까.

하지만 이건 집밥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의아한 일일 것이다.

생각하면 학교 급식실은 집에서 밥을 해 주시는 부모님 역할.

집에서 밥 먹고 배탈 났다고 해서 엄마, 아빠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잖은가.

어디다가 책임을 묻지, 그러면?

“교장 선생님, 지금 바로 행정실 좀 가시죠.”

“행정실?”

“네. 그쪽에 식자재 업체 선정 관련한 공문들이랑 연락처 있을 겁니다.”

그는 바로 내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교장실 문 앞에서 우리는 행정실로 방향을 돌려 급히 내려갔다.

“야, 좀 미리 생각하지,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거려서 힘들어.”

“아픈 애들이 있는데 다리 좀 아픈 것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나이가 있잖아, 나이가…….”

은성 고등학교의 식중독 사고가 터지기 일주일 전.

“회장님, 정말 이러시면…….”

“이러면?”

“…….”

한 명은 무릎을 꿇고 머리까지 거의 땅바닥에 닿은 자세,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거만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있다.

나이로 치자면 뭔가 장면이 반대가 되어야 할 것 같지만, 과연 사람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자세로 다른 누군가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것인가.

대한민국이 비록 유교적 관념을 잘 따르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나이는 단순한 숫자로 만들어 버리는, 말 그대로 새로운 신분 관계를 만드는 것이 바로 돈이다.

예전처럼 천민, 양인 구분은 없으나 어쩌면 그것 이상으로 상하 관계를 만들어 버리는 것.

백발의 노인이 중년의 남성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까딱 잘못했다가는 자신이 백발이 될 정도로 노력하여 쌓아 온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회장님!”

“아, 왜! 내가 다 알아서 챙겨 준다니까.”

“중앙 식품은 제 평생을 바쳐 쌓은 회사입니다. 이게 무너지면…….”

“안 무너지게 해 준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어? 나 몰라?”

노인은 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냥 아는 것도 아니고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가 결정을 내린다면, 자기와 가족의 목숨도 위험하다는 것까지도.

중앙 식품은 그의 일생이었다.

남들이 바보 같다 할지라도 최상의 재료만을 각 식당과 업체에 공급을 해 왔고, 이문이 많이 남지 않아도 이제는 그 깨끗함을 인정받아 건실한 업체가 되었다.

아니, 그렇게 됐다고 생각했다.

정직한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면 쌓이는 돈이 줄어든다.

쌓이는 돈이 줄어들면 외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고, 그러면 거시적 규모의 경제적 위기가 왔을 때 버텨낼 체력이 떨어진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대출을 받으면 대출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추가적인 비용이 들고, 시장성이 있는 분야라면 경쟁 업체들이 증가하며 정해져 있는 파이를 나눠 먹게 된다.

결국 너도나도 정직함을 일정 부분 포기하고 부정을 들킬 위험을 감수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정직함을 유지하는 업체들은 더욱 더 자금난에 허덕인다.

중앙 식품은 후자였다.

현상 유지라도 했다면 큰 문제가 없이 운영이 되었겠지만, 최근 들어 몇몇 회사들과 계약을 하며 규모를 확장해야 했다.

정직한 식품업체에 대한 선호도가 올라가며 인지도도 올랐으나, 규모 확장에는 돈이 필요하다.

쌓아 둔 자금이 별로 없었기에 대출을 받아야 했고, 선뜻 나서 주는 금융사가 하나 있었다.

거기가 바로 퓨처 금융투자.

이한일이란 사람은 오래 알아 왔다.

그리고 퓨처 금융투자로부터 대출을 받았던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대출을 해 주는 조건이 조금 달랐다.

바로 회사의 지분 양도.

엄연히 따지자면 지분 양도가 대출의 조건이 될 수는 없지만, 문제는 대출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면 지분을 양도해야 한다는 조항에 있었다.

일종의 담보 대출인데, 이게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지 않았던 것이 실수였다.

퓨처 금융투자와의 대출 약정을 체결한 직후, 마치 마법처럼 계약금까지 받았던 업체들 몇 곳과의 계약이 해지되었다.

그리고 대출이자도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고.

이한일의 첫 조건은 은성 고등학교와의 신규 계약.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식자재 업체로써는 판로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니깐.

그냥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좋은 식자재를 구매해서 넘겨주면 될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자금난도 조금만 지나면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하지만 이번만큼은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은성 고등학교와 신규 계약을 마친 이후, 새로운 신규 계약건이 들어오지 않았다.

확장을 위해 돈을 빌리고 확장 공사를 마쳤는데 계약이 취소가 되어 버리니, 창고와 공장 가동률이 뚝 떨어졌다.

대출 원리금이 수익을 상회하기 시작했다.

이한일은 너그러웠다.

원래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빌려줄 때 한없이 너그럽다.

그렇게 해야 돈을 빌릴 테니.

하지만 회수할 때는?

깡패가 따로 없다.

“나도 지분 가지고 있잖아, 이제. 김태원 사장님, 그냥 걱정하지 말고 하라는 대로만 해 주면 돼. 그럼 지분도 다시 회수할 수 있다니깐?”

“양심적으로 그래도…….”

“양심? 하하. 사업하는 사람이 양심 따져서 어떻게 사업을 하나? 그렇게 오랫동안 양심적으로 운영을 해 와서 결과가 이렇잖아. 이번 일 걸려도 벌금 내고 끝이야. 그거 낼 돈은 내가 주면 되고.”

이한일이 김태원에게 요구한 것.

그건 대출 원리금을 갚으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도대체 은성 고등학교에 무슨 억하심정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일을 요구한단 말인가.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니리라.

이미 많은 업체들이 알게 모르게 그런 식으로 식자재를 납품하고,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이문을 가져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할 일은 절대로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협박을 받지 않는 한은…….

“다음 주야. 다음 주 식자재만 우리 쪽에서 주는 걸로 학교에 넣으면 돼. 조사야 받겠지만 의례적인 거야. 고의성만 없으면 큰 문제없고, 중앙 식품이 그럴 회사가 아닌 건 업계에서도 알아 주는 사실이잖아.”

악마의 속삭임…….

“이 건만 끝나면 퓨처에서 정식으로 산하 회사들과의 계약 건 따내 줄게. 그럼 조건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

대답하기 싫었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이걸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선택권은 애초에 자신에게 없었다.

김태원 사장의 눈앞에 깔려 있는 고급 카펫.

얼마나 관리를 하는 건진 모르지만 정말 티끌 하나 없었다.

자신의 볼품없는 회사 사무실과 비교됐다.

이 일로 김태원의 중앙 식품은 그간의 명성에 약간의 흠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지킬 수 있긴 하겠지.

흠이 생기면 고치면 된다.

아예 깨져 버리면 그건 되돌릴 수 없다.

머리가 땅에 닿더라도 자신의 인생에 흠이 생기는 것을 피하고 싶었지만, 이미 흠은 이번에 퓨처에서 대출을 받을 때 생긴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지금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