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166화.
나도 그녀를 쳐다봤다.
계획에 먼저 동의해 놓고 이게 무슨…….
하지만 동의를 하든 안 하든 이건 도박이 맞긴 하다.
미래에 대략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는 나조차도 이것은 미래를 바꾸는 일.
도박이었다.
그녀는 나의 당황한 표정을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이미도 원장에게 고개를 다시 돌렸다.
“유현덕 선생님이 한 일치고 도박 아닌 일이 있었나요? 호호”
“사업성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번엔 주현필이었다.
‘사업성’.
맞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은 할 수 없다.
돈을 모으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나, 쓰는 건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녀는 대답을 바로 하진 않았다.
사실 한성 그룹에서 이 사업을 검토해 달라는 부탁을 내가 하긴 했으나, 그건 바로 며칠 전 일이었다.
암호화폐란 것이 붐을 일으키는 건 앞으로 몇 년 뒤.
그때가 되어서야 제도권 내 금융사들도 블록체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
지금은 그냥 몇몇 마니아들의 돈 걸고 하는 취미 활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마 아직 제대로 된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저희 쪽에서도 연구 중입니다. 의뢰 맡긴지가 얼마 되지 않아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어요.”
“그렇군요.”
“그럼 우리도 아직 결론을 내리기에는 조금 이른 것 아닌가요, 유 선생님?”
날카로운 지적.
그리고 기다렸던 말이기도 했다.
“지금 당장 결론을 내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사업을 진행하려고 하니 미리 알아 두십사 말씀드린 거죠.”
“개발을 진행하는 거야 뭐 우리가 나설 일은 아니고, 개발이 되면 곧바로 협력해서 운영할 준비를 하라는 건가?”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런 구상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기도 했고요.”
“뭐 지금도 비슷한 걸 사용하고 있긴 하니까……. 이걸 조금 더 확장시키자는 것 아닌가요? 우리 사이트에도 댓글 많이 달거나 후기 같은 거 블로그에 올리고 하면 포인트 주는 것 있잖아요.”
역시 이미도 원장.
“맞습니다, 원장님!”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죠. 다만 이게 도박판이라고 했는데 그쪽으로 안 가게 할 방법은 확실히 만들어 두고 진행해야 할 것 같네요. 저도 조금 더 공부해 보고……. 그리고 사실 맥스스쿨은 이거 진행할 때쯤이면 내 손을 떠날 것 같은데?”
음.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면 뭐 어떠랴.
“원장님은 일 계속하실 거잖습니까?”
“하긴 해야죠. 호호. 어디서 할지는 모르지만.”
“학원계면 그때 일하시는 곳에서 같이 하시면 되죠.”
“너무 주먹구구식 아니야, 이거? 말 들으면 굉장히 거창한데 일을 그리 하면 어떡해?”
원래 암호화폐 판이 좀 주먹구구식 아니던가.
대부분의 사업 진행 사항은 트위터를 통해 공지된다.
물론 홈페이지도 있지만 가장 빠르게, 그리고 화폐 보유자들과 쌍방향 소통까지도 할 수 있는 건 역시 트위터.
이걸 생각하면 왜 증권시장에서는 회사 관계자가 트위터를 활용하지 않나 싶지만, 사실 그쪽과 이쪽의 규모와 환경은 천지 차이다.
아무튼 주식하는 사람이 암호화폐 시장을 경험해 본다면 굉장히 놀랄 것이다.
어떻게 트위터 같은 가벼운 소식 수단을 사용하는 건가 하고.
“일단은 제가 이런 구상을 하고 있단 건 말씀드리고 진행해야 할 것 같아서요. 기술 투자야 제가 하더라도 막상 기술 다 개발해 놓고 활용할 수 있는 시장이 사라지면 망하는 거잖아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만약 정말로 그리 된다면 그냥 현재의 알트코인들(비트코인과 유사하게 만들어진 기타 암호화폐들)처럼 운영하는 수밖에 없다.
도박판…….
“저희 쪽에서는 시장성 여부 판단에 대략 1주일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그거 결과 나오면 세부 일정이나 기술개발에 관한 투자, 그리고 운영 계획 같은 걸 논의하시죠.”
“좋습니다. 저도 공부 좀 해 봐야겠네요. 갑자기 이런 걸 들고 오니…….”
어차피 결론을 내리기 위한 만남은 아니었기에 이야기가 조금씩 주변으로 샐 듯하자 김미연 부회장이 정리를 해 주었다.
이미도 원장도 나를 슬쩍 째려보며 말했다.
그 다음은 주현필 차례였고, 그의 성격상 그가 뭐라고 할지는 다들 예상하리라.
“하여간 뭘 그냥 자꾸 툭툭 던져 놓는단 말이야. 이쪽은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죄송합니다, 주현필 선생님.”
“됐어. 그리고 이제 원장이야.”
신성 학원 원장 주현필.
알고는 있지만 ‘원장님’이라는 호칭보다는 ‘선생님’이 익숙했다.
“아, 네, 원장님.”
“호호. 나 돌아갈 자리도 확실히 막겠다는 거죠.”
“네? 아! 아닙니다, 원장님. 저는 잠시 맡고 있는 거고…….”
상당히 남성스런 성격의 주현필은 유독 이미도 원장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오랜 기간 동안 모신 사람이기 때문이겠지만, 그것만 이유는 아니겠지.
다른 이유가…….
하지만 여기에서 더 묻지는 못했다.
그들 둘의 관계에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웃으면서 나에게 무언의 눈빛을 보내는 이미도 원장의 눈초리가 두려웠다.
그녀 자체는 무섭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불편하게 하면 주현필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
“학교에 소홀하면 안 된다.”
어느 날, 오광필 할아버지가 교무실을 지나가다 내 자리에서 살짝 이렇게 말을 했다.
기간제 교사 유현덕.
물론 다양한 타이틀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이게 맞다.
S 아카데미, 에듀코인, 그리고 지금은 내 손을 떠나긴 했지만 맥스스쿨까지, 그런 것들은 지금의 나로서는 부차적인 일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여기고 있었고…….
하지만 주변에 돌아가는 일들이 많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우려를 가질 만했다.
수업 중에도 코피를 서너 번 쏟았으니…….
“네! 당연하죠.”
밝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은 했지만 사실 그의 이런 말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하나의 일을 하면서 다른 일을 더 한다는 것.
그건 정말로 힘든 일이다.
물론 지금은 예전 대학생 시절 신성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와는 조건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사업적인 부분은 원활하게 진행 중이다.
이충현은 내 제안을 들은 뒤 기술팀과 논의를 하느라 한 주를 다 허비했다고 했다.
기존 비트코인처럼 코인을 채굴하는 방식과 따로 이쪽에서 사용자의 활동 지수에 기반하여 코인을 부여하는 방식이 양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부터, 이게 과연 시장성이 있을까 하는 문제까지.
격렬한 토론이 있었다고 했다.
심지어 기술팀 몇은 팀에서 떠나겠다는 소리까지 하고.
하지만 앞으로 그들이 맞닥뜨릴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코인의 실용성인데, 이걸 해결하기 좋은 루트를 이미 가지고 시작하기를 포기하긴 어려웠으리라.
원래는 단순히 암호화폐 개발이 완성되기까지 버틸 투자자를 찾으려 했던 것이지만, 이걸로 이 코인은 향후 사용성까지 확보하게 된다.
물론 그들이 앞서 언급된 산적한 문제를 잘 해결하며 개발을 끝낸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이지만…….
어쨌든 그 한 주 이후에 나에게 연락이 와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나로서도 기대했던 바고, 이충현도 사교육에 종사했던 사람이라 잘 알겠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지원재 실장에게 연락해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지원을 아끼지 말아 달라고 전해 두었다.
지금은 한창 개발 중.
맥스스쿨과 이한일 문제는 그것대로 종결된 상태였다.
이한일 회장은 생각보다 통이 큰 사람인지 이미도 원장 지분을 전량 주식시장 가격의 90% 선에서 넘겨받겠다고 했고, 원래 80% 제안보다 더 좋은 조건이었기에 그녀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이미도 원장이 향후 5년간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사교육 업계에서 활동하지 않는다는 단서가 있었고, 나는 S 아카데미 고문직만 허용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현재 맥스스쿨은 상당히 공격적인 확장으로 S 아카데미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던 공무원 시험과 국가 자격증 시험 강의까지 손을 뻗치는 상황이다.
“선생님! 애들 찾아요.”
“네? 아, 네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던 나에게 현지훈 선생님이 지나가다 불렀다.
시험 문제 출제 기간이라 아이들은 교무실 출입이 금지된 상태.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선생님을 찾을 일은 자주 있기에 이렇게 밖에서 부르면 지나가던 다른 선생님이 전달을 해 준다.
그리고 보통 이렇게 부르는 일에 큰일이 있는 경우는 없다.
아니, 이제까지는 없었다고 해야 하나?
“어? 진호네? 왜?”
“선생님, 저 배가 아파요…….”
얼굴을 살폈다.
정말 핏기가 없었다.
배가 아픈데 왜 얼굴에 핏기가 없는지를 보냐고?
배 아프다고 내가 직접 이 친구 배를 볼 수도 없잖은가.
내가 의사도 아니고.
“보건실은 가 봤어?”
“네.”
“뭐라시는데?”
그리고 내가 그렇게 묻는 것과 거의 동시에 본부 교무실 전화가 울렸다.
삐리릭. 삐…….
“네.”
한 번의 신호음이 막 지나가고 곧바로 선생님 한 분이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잠시(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후 내 쪽을 보더니 나에게 손짓을 했고, 나는 그리로 갔다.
“네, 유현덕입니다.”
-선생님…….
보건 선생님이었다.
-이진호 학생 만나셨나요?
“네. 지금 이야기 막 듣고 있었는데…….”
-지금 병원 좀 다녀오셔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식중독인 것 같아요.
식중독…….
오늘 점심은 평소 나오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뭐가 나왔더라.
-선생님?
“네. 지금 말씀이세요?”
-네. 이야기 아직 못 들으셨어요?
학생이 보건실에서 방금 왔는데 무슨 이야기를 듣는단 말인가.
아니, 이 녀석 혹시 참았던 건가?
“방금 올라왔어요, 이 친구.”
-단순한 식중독이면 그 아이만 병원 다녀오면 되요.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급식에 문제가 있었다면…….
지금 그녀는 그걸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혹 다른 아이들도?
-지금 셋 정도 들렀어요, 속 좋지 않다고요. 일단 진호부터 병원 데려가 주세요. 다른 아이들은 진호만큼 심한 건 아닌 것 같으니 일단 기숙사로 돌려보냈어요.
은성 고등학교는 기숙형 학교이기에 삼시 세끼 모두 급식이다.
개교 후 1년이 되어 가는 지금까지 급식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재료도 가장 좋은 것으로 써 왔고…….
하지만 아무리 신경을 쓴다 하더라도 급식 문제는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데리고 다녀 올게요. 교장 선생님께는…….”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교무실 문 앞에 나를 기다리던 진호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내 자리로 가서 옷과 차키를 들고 나왔다.
가는 길에 교장실을 들러 오광필 할아버지에게 간략한 사정을 보고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괜찮어?”
조수석에 앉은 진호가 땀을 비 오듯 흘리기 시작했다.
⁂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네?”
“식중독 맞습니다. 이게 근데 조금 심하네요. 며칠 된 것 같은데요?”
“며칠이요?”
식중독이 보통 며칠이나 기간을 두고 증상이 나타나나?
“네. 탈수 증상도 심하고…….”
“혹시 원인이 어떤 건지 짐작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허허. 그거야 저야 모르죠. 먹는 것 문제인데,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먹으면 생기는 게 보통 식중독입니다.”
유통기한…….
아니,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식자재 업체 선정 때도 가격보다 질을 훨씬 더 많이 신경 썼다.
거기에 들어가는 추가적인 비용이 얼만데…….
보관?
보관에 문제가 있었을까.
우리 학교 급식실 시설을 갖추고도 보관에 문제가 생긴다면 대한민국 유명 음식점들도 다 문제가 생겨야 한다.
가르치는 건 어차피 교사들이 담당할 일이고, 거기에 돈이 얼마나 더 투자되는지는 크게 중요치 않기에 예산의 상당 부분을 급식에 때려 넣었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학교라고 하셨죠? 이런 일은 보통 보건소에 연락을…….”
“네.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하면 보건 선생님께서 처리하실 겁니다.”
“그렇겠죠. 거기 시설 좋다고 들었는데…….”
말을 하다 마는 의사 선생님.
뒤의 말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시설 좋다고 들었는데 식중독이 발생했으니 시설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 있나 보다는 말이겠지.
그나저나 보건소도 보건소지만 교육청에도 보고를 해야 한다.
그러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급식실 감사가 나오려나.
내가 직접 관련된 일은 아니었지만 은성 고등학교는 곧 나였기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 했다.
“진호는 지금 볼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수액 맞고 있으니 5분 내로 나올 겁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는 나와서 진호를 기다리는 동안 오광필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나라도 그간 많은 발전이 있어 이런 일은 시스템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일이 터지면 각 담당자들이 자의적인 판단은 뒤로 미뤄 두고 정해진 절차를 밟게 된다.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니기에 익숙하지 않아 조금 허둥댈 수는 있겠으나, 대부분의 매뉴얼은 공문 형식으로 내부 망에 저장되어 있기에 그 절차를 따르면 된다.
-그래서, 애는 좀 어때?
“해열제 섞은 수액 맞고 있어요.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일단 다시 돌아가도 괜찮다고는 했습니다.”
-그쪽에 며칠 더 있다 들어오는 것이 낫지 않겠어? 혹시 모를 일이잖아. 그리고 아까 보건실에서 연락 받았을 때 애들 몇 명 더 있다고 했는데?
참…….
몇 명 더 있긴 하다.
상태가 어떤지를 모르겠는데.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딱 그 타이밍에 문자 하나가 전송되었다.
기숙사장을 맡고 있는 김윤지였다.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별일 없다면 그녀가 지금 시각에 나에게 문자를 보낼 일은 없는데.
“잠깐만요, 할아버지.”
나는 뭔가를 계속 얘기하려는 오광필 할아버지를 잠시 막았다.
그리고 화면에 뜬 문자 메시지를 클릭했다.
-현덕아, 아파서 기숙사 들어온 애들 상태가 이상해. 누가 와 봐야 할 것 같아. 보건실에 연락을 받지 않아서…….
보건실은 지금 뭘 하고 있길래 연락도 받지 않는단 말인가.
“할아버지, 지금 보건 선생님께 연락 좀 해 주세요. 진호랑 비슷한 증상으로 기숙사에서 쉬고 있는 학생 몇 명이 있는데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뭐? 허, 참. 근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어떻게 내가 아는지 궁금하겠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니잖은가.
“김윤지 선생님이 문자 보냈어요. 보건실에서도 연락을 받지 않는대요.”
-거긴 또 왜!
“모르죠, 그건……. 빨리요!”
-알겠어. 어? 잠깐만…….
갑자기 수화기 저쪽 편, 오광필 할아버지가 있는 곳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뭔가를 떠드는 것이 들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