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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65화 (165/200)

[165] 165화.

버는 건 쉽지, 쓰는 건 어렵다

이충현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모르지.

죽었다 다시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인생이 동일하지 않는 한 모든 것은 새롭다.

이충현이란 사람을 내가 만나게 된 것도 전생에서는 없었던 일이다.

S 아카데미도, 지금의 맥스스쿨도…….

어쨌든 내가 할 말은 다 전달했다.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고서도 직접 나서지 않는 것은 이 판이 이제까지 내가 있었던 판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가 전생에 보고 느낀 것으로는 이건 사업이라기보다는 도박과 가까웠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퍼센트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암호화폐.

이걸 화폐라고 부를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하지만 나름의 의미는 있는 것이, 금융권의 통화는 각 지역의 정세에 따라 요동을 치지만 여긴 전 세계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걸 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전 세계 단위로 투기판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지만…….

“말씀하신 것 잘 들었습니다. 이쪽 분야는 전혀 관심이 없으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군요.”

큰 그림이라.

이것도 전생과 현재의 차이겠지.

내 인생 하나 살아가기 버거워하던 전생.

갑자기 그때가 떠올랐다.

나는 왜 그렇게 살고 있었을까.

조건은 동일하다.

같은 부모님 아래에서, 같은 경제적 여건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다른 결정들이 지금의 나와 전생의 나의 차이를 만들었다.

물론 그 결정들은 온전히 내가 내린 거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전생에 겪었던 일들에 기반하여 내린 새로운 결정들.

“개인적으로 암호화폐에 대한 전망은 좋게 봅니다만, 위험한 일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단순한 데이터에 현실 화폐를 넣고, 엄청난 등락폭을 견디는 것 자체가요.”

“네……. 알겠습니다. 유 대표님께서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이해합니다. 그리고 만약 대표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저희가 그로 얻는 것은 무엇인지요?”

정신 나갔나.

투자를 받으려고 먼저 나에게 말을 꺼낸 것은 이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얻는 것은 무엇이냐고?

‘이 아이디어를 얻었잖아.’라고 말은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유치하게 나올 필요는 없겠지.

“투자금이죠. 새로운 로드맵과요. 그리고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많은 것들이라면…….”

“방금 말씀드린 내용에 거의 다 담겨 있습니다. 암호화폐에 ‘현실’을 부여하는 기반이 될 것들이죠.”

온라인 교육 서비스의 결제를 암호화폐로 가능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 암호화폐는 비트코인처럼 단순한 채굴 방식이 아니라 각 교육 사이트의 활동 지수에 따라 부여될 것이다.

강사마다 누구는 자료에 집중하고, 누구는 전달 방식에 집중하는 등 차이가 있다.

그리고 강사의 성향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학습자의 성향에도 차이가 있다.

어떤 학생은 강사와 능동적으로 대화를 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고, 또 다른 학생은 단순히 질 좋은, 또는 정보가 많은 수업을 듣고 싶어 한다.

본인이 선택하여 참여하는 만큼 활동 지수가 높아지고, 그만큼 많은 암호화폐를 부여받은 뒤 다른 강의들을 들을 수 있다.

이게 내가 구상했던 방식.

“일단 저희 기술팀과도 논의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제안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도 확인해 봐야 하고요.”

“당연히 그러셔야죠. 이번에는 제가 기다려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멀리 오셨는데 식사라도…….”

“아닙니다. 일찍 가 봐야 해서요.”

특별히 바쁜 일은 없었다.

요즘은 학교 일을 제외하고는 하는 일이 없었으니.

하지만 굳이 여기에 더 머무를 이유도 없다.

나는 약간은 아쉬워하는 이충현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은성 고등학교 교직원 숙소로 다시 들어가려면 시간이 조금 걸린다.

이럴 때는 산골에 학교를 세운 것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있다는 건 나쁜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바로 들어가지 않고 오랜만에 S 아카데미를 들르기로 했다.

거기까지도 꽤나 먼 거리였다.

차라리 여기라면 맥스스쿨이 가깝지만,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 모두 S 아카데미로 오기로 했기에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원재 실장도 만나야 하고, 김미연 부회장도 볼 생각이었다.

“얼굴이 훨씬 좋아졌네요.”

의외로 보통은 가장 늦게 등장하는 김미연 부회장이 제일 먼저 와 있었다.

물론 지원재 실장이야 S 아카데미에 상주하다 보니 그보다 먼저 얼굴을 봤고.

그는 내가 제안한 사업 구상에 대해 조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부회장님 미모도 갈수록 빛이 나십니다.”

헐.

내가 이런 소리까지 하다니.

온몸이 오글거렸지만 그래도 이런 일도 할 줄 알아야 하리라.

사회생활이란 참…….

근데 뭐 사실 마음에 아예 없는 소리도 아니긴 했다.

이 자리에 김윤지가 있었다면 생명에 위협을 느꼈겠지만, 다행히 그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다행이긴 한 건가?

이렇게 다수로 만난 것은 아마 몇 달 전 내가 이한일 회장에게 끌려갔다 돌아왔을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사실 단순한 사업 구상이라면 굳이 이렇게 모일 이유는 없겠지만, 만약 이충현이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협력 업체가 S 아카데미 하나만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한 상황이 벌어진다.

기술적인 부분은 이충현의 기술팀이 알아서 해 줄 것이고, 거기에 추가적인 지원은 한성 그룹 산하 한성 전자의 도움을 받으면 되리라.

강의 협력은 S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맥스스쿨과 한성 에듀까지 참여하면 될 것이고.

참, 맥스스쿨은 이한일과도 연락을 해 봐야 하긴 할 것 같았다.

일단 현재는 이미도 원장이 어느 때라도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는 상황이기에…….

“전화로 말씀해 주신 것은 전자 팀에서 검토 중이에요. 아버지도 흥미를 보이셨고요.”

김승주 회장.

뭐, 그 자리까지 올라가려면 돈에 대한 감각은 엄청 뛰어나야겠지.

암호화폐에 대한 것도 아직까지는 붐이 일어난 상황은 아니다.

게다가 그냥 단순한 데이터에 돈을 넣는다는 것도 사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확률이 엄청 작은 도박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그 또한 관심을 보인다.

돈 냄새를 맡는 것에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들일까.

“회장님도 관심을 보이시던가요?”

“네. 유 대표가 벌이려는 일이면 재밌을 거라고 기대하시던 걸요?”

“헐. 전 회장님 몇 번 뵌 적도 없는데…….”

“이야기는 제가 많이 했죠. 호호.”

그럼 일단 한성 에듀는 우리와 같이 움직여 줄 것이고, 남은 것은 맥스스쿨.

아직까지는 이미도 원장 체제였지만 이제 곧 바뀔 예정이다.

이한일과의 거래는 이제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고, 지분 상당수도 이미 넘어간 상황.

운영진 교체는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될 것이다.

똑똑.

지원재 실장과 이미도 원장, 주현필까지 모두들 함께 들어왔다.

이제 오광필 할아버지와 김윤지만 빼고는 다 모인 것일까?

오늘 논의할 사항에 대한 결정권자들은 전부 모였다.

나는 차분히 은성 고등학교에서 이충현을 만난 이야기와 그가 나에게 했던 제안을 말했다.

그러고 나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했으나, 사실 나도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선 문외한이기에 전달이 잘됐을지는 모르겠다.

“내 생각엔……. 참, 저 먼저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원장님, 부회장님?”

역시나 성질 급한 주현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처음 그를 만났을 때보다는 많이 사람이 됐지.

그때였다면 또 한 소리 듣고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네 맘대로 다 해 놓고선 뭘 보고하고 있냐?’ 이러고…….

이미도 원장과 김미연 부회장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말을 이어갔다.

“이건 도박 아니야? 거의 빠칭코 게임 같은 느낌인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블록체인이란 것 자체는 굉장한 혁신이고 여러 분야에 응용될 소지가 많은 기술이지만, 암호화폐는 다른 문제였다.

기존 화폐 개념과의 유사성보다는 카지노 도박장의 칩과 오히려 비슷한 암호화폐.

“알고 있죠. 이충현 선생님이 제안한 내용이 처음에는 그것이었고요.”

“그런데도 이걸 하겠다고? 그래도 명색이 교육업계 종사자인 네가? 아니, 우리를 이렇게 부른 건 우리도 움직이기를 바랐던 건가?”

“맞습니다. 그리고 하겠다고 한 건 이건 아닙니다.”

“그럼 뭔데?”

“역제안을 해 놓았습니다.”

“역제안?”

맞지.

이충현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인 적은 없다.

내가 이들을 부른 건 나의 역제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고 싶기 때문이었다.

온라인 교육 서비스 결제를 암호화폐로 한다는 것.

그러려면 일단 해당 암호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받아 주는 업체가 많아야 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함께 일했던 이 사람들은 이제 각각 하나씩 큰 업체를 맡고 있다.

그것도 교육 관련한…….

“도박판을 도박판으로 만들지 말고,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입장이 되면 좋지 않을까요?”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는데요, 유 선생님?”

이미도 원장이었다.

그녀 또한 말을 하진 않았지만 유심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했다.

전생의 기억으로 그것이 가져오는 폐해까지는 알 수 있지만, 이걸 돌리려는 시도는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

게다가 이쪽은 전생에도 현생에도 내 전문 분야는 아니다.

위험 부담은 아마도 내가 이번 생애에서 내렸던 크고 작은 결정들 중 가장 클 것이다.

“지금의 비트코인은 그렇게 될 소지가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이충현 선생님의 제안도 마찬가지고요. 정부 규제도 받지 않는 판이라 사설 도박판처럼 급등락이 심하고 재산 말아먹는 사람들도 쏟아져 나올 겁니다. 물론 그 와중에 큰돈을 버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그런데 이걸 왜 하겠다는 건데요?”

“그걸 앞지르는 결제 시스템을 만들어 보자는 거죠. 동시에 공익적인 목적까지 달성하도록 하는…….”

될까.

“그게 돼?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이걸로 S 아카데미, 맥스스쿨, 한성 에듀의 통합 관리 사이트를 만들 겁니다. 거기에서 사용할 화폐로 이 새로운 암호화폐가 선정되는 것이고요.”

정적.

현재의 결제 시스템은 온라인 쇼핑과 유사하다.

원하는 강좌가 있으면 온라인에서 상품을 구매하듯 강좌를 구매하는 방식.

이걸 암호화폐로 바꾼다?

“물론 현재의 결제 시스템도 그대로 유지하긴 할 겁니다. 다만 일종의 보상 시스템을 통해 암호화폐를 실용화시키고, 그 암호화폐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예를 들면 강의 후기 게시판, 숙제 도우미 게시판, 숨겨진 고수 게시판 같은 것들을 만들어서 활동 지수에 따라 이 암호화폐를 부여합니다. 많은 활동을 하면 할수록, 그리고 활동의 질이 좋으면 좋을수록 더 많은 암호화폐를 받을 수 있고, 이걸로 우리의 온라인 교육 사이트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활동에 따른 보상.

이론적으로는 집안 사정이 조금 어려운 학생들도 활동을 열심히 한다면 공짜로 강좌를 들을 수 있다.

돈이 있어서 굳이 이런 방식으로 돈을 벌 필요가 없는 학생들은 그냥 기존의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면 되고.

“여기에 추가적으로, 이 암호화폐에 대한 일종의 기부 시스템도 만들고요. 이건 아직 그냥 머릿속에만 있는 겁니다.”

조용했다.

하긴, 이건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다.

학원에서 애들 가르치고, 애들 가르치는 강사들 관리만 해 봤던 사람들이 뭘 알겠는가.

나도 마찬가지고.

나도 산 날들이 이들과 비슷했다면 몰랐겠지.

하지만 머리가 아플 정도로 많은 기억이 지금 내 머릿속에 들어 있다.

물론 전생 기억의 상당 부분, 현생의 과거 기억 중 일부는 망각되고 있지만 말이다.

“김미연 부회장님?”

“네, 이미도 원장님.”

“한성 그룹 차원에서도 검토를 하신 건가요? 조금 전에 유 선생님 말대로라면 한성 에듀도 참여하는 구조인 것 같은데요.”

이미도 원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김미연 부회장이 나이는 더 젊지만 그래도 편한 위치의 사람이 아니었다.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 특히나 나나 주현필 같은 흙수저는 일생을 살면서 얼굴 한 번 직접 보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녀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뜸을 들였다.

사실 암호화폐에 대해 대기업이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후반이 되어서였다.

대기업 차원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하는 공격적인 투자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암호화폐의 위험성.

엄밀히 말하자면 2010년대 후반이 되어서도 대기업이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건 아니었고, 그 기반이 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할 방법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아무튼 우린 다들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고, 그녀는 충분히 뜸을 들인 후 말을 하기 시작했다.

“도박이죠, 이건.”

그녀는 이미도 원장을 먼저, 그리고 다음으로 나를 한 번 슥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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