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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64화 (164/200)

[164] 164화.

“뭐? 아니야, 재준아. 아니에요, 선생님.”

“맞아. 재준이 잘못은 아니에요.”

너무도 쉽게 인정을 하는 재준이의 대답에 황급히 막아서는 아이들.

학교란 곳은 특이한 힘이 있다.

성인이 되면 고등학교, 중학교 시절의 친구 사이를 그리워하듯, 그때는 그저 옆에 있는 또래를 자연스레 친구로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성격이 비슷하든 다르든 간에.

은성 고등학교.

아무래도 시골 한구석에 위치한 작은 학교이고, 여기에 오는 학생들은 전국에서 지원을 해서 모인다.

동네 초중고를 연달아 다니는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환경임은 분명하다.

이런 점이 아무래도 서로 간의 불신과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그래? 너희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는 재준이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 걸?”

“아…….”

딱히 누군가가 나서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봐도 스스로가 벽을 쌓고 지내는 재준이었기에 다가가기 어려웠으리라.

그리고 그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재준이가 먼저 그렇게 너희들 앞에서 인정을 한 부분이잖아. 그런데 재준이만 이 일의 원인은 아니겠지?”

그런데 나는 뭐라고 떠들어대는 거냐…….

“소심한 성격, 그리고 활발하지 못한 성격인 것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 싫어한다는 오해를 너희에게 준 부분이 있지 않을까?”

나만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내 이야기에 그 어떤 때보다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중이었다.

사실 친하게 지내는 녀석들 사이에서도 뭔가 모를 위화감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직 서로를 잘 몰라서 그랬겠지.

그래도 친하게 지내다 보면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그 후에는 맞춰 가면 되는 거다.

문제는 애초부터 조금은 떨어져 지내는 친구 관계.

재준이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고.

“선생님…….”

“응?”

반장이었다.

“재준이가 소심하긴 해요.”

“그렇지.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야.”

“그래도 나쁜 친구는 아닌 것 같아요. 편한 친구도 아니지만요.”

재준이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아까 잠시 말을 할 때를 빼고는 시종일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지만, 분명 듣고 있다고 생각됐다.

그래, 이렇게 지들끼리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없었겠지.

불만은 인간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정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속으로 삭이느냐, 아니면 밖으로 꺼내 말하고 상황과 맞닥뜨리느냐의 차이는 크다.

“여기까지 왔으니, 그리고 너희도 어차피 짐작하고 있을 테니 다 털어놓고 이야기하자. 우선 케이크 먹으면서?”

몇몇 녀석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잠시 지었지만 이내 혼이 날까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 케이크가 넘어가겠는가.

나는 상자에서 준일이가 가져온 케이크를 꺼냈다.

크진 않지만 그래도 한 입씩은 먹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자,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 볼까?”

“…….”

“재준이 이야기보다도 그냥 각자의 이야기 말이야. 서로 이렇게 알 기회가 없었잖아, 그간. 기숙사 같은 방 친구들이랑만 잘 지내는 모습이었고.”

그런 경향이 뚜렷했다.

내가 이 시골에 학교를 짓기를 결심하면서 간과했던 부분.

학교를 일종의 철장 속으로 여기는 아이들에게 은성 고등학교는 아마 새로운 종류의 철장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집에서 다녔더라면 그래도 가끔씩 시내도 놀러 나가고 하면서 숨을 돌릴 텐데, 여기는 그렇게 숨 돌릴 공간이 없다.

대안 학교인 만큼 교육과정을 아이들에게 조금 자유롭도록 운영하는 건 있었다.

다양한 활동도 꾸준히 만들고 진행했고.

하지만 그것조차 어쩌면 이들에게는 그저 다른 종류의 억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나는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은성 고등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하며 했던 각오들, 이곳에서 이루고 싶은 것, 그리고 아이들과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 말이다.

대화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막 시작할 때쯤 오광필 할아버지께 미리 양해를 구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전생이었다면 어디 건방지게 학교 안에 있으면서 교장 선생님께 문자로 연락을 하나 싶었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 일을 처리하는 게 최우선이라 생각했다.

모든 것을 제쳐 두고 내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그것이 바로 내가 이 학교에서 일을 해 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처음부터 모든 것을 털어놓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계속 흐르고, 순서가 계속 이동하자 몇몇 아이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자기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거나 미안하다는 반응부터, 심지어 조언까지도.

대화란 서로가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이해하며 피드백을 받는 과정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그런 대화가 이루어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고작해야 잠깐의 쉬는 시간, 점심시간밖에는 시간이 없고, 그러다 보니 서로 간의 의사소통은 표면적이며 깊이가 얕을 수밖에 없다.

심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심리 치료 방법이 있다.

편안한 환경을 조성한 상황에서 상대방이 꺼내 놓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꺼내 놓도록 하는 치료 방법.

이때 내담자는 단순히 자신의 어려운 상황들, 힘든 감정들을 입 밖으로 내놓는 것만으로도 그런 상황들에 대해 직면하고 해결책을 찾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떻게, 잘 끝난 거야?”

무려 세 시간 동안의 대화.

오광필 할아버지는 중간에 센스 있게 매점에서 과자와 음료수를 사서 우리 반으로 보내 주셨다.

덕분에 대화 분위기는 조금 더 밝아졌고.

“네. 덕분에 잘 끝났습니다. 그래도 일단, 지켜봐야죠.”

“그렇지. 아무튼 고생했네. 그나저나 생일이었어?”

아…….

“그런가 봅니다. 저도 잊고 있었어요. 하하.”

“이런이런. 연가라도 쓰라고 할 걸 그랬나.”

“괜찮습니다. 생일이라고 저만 연가 쓰면 눈치 보여요.”

“이 학교에서 자네가 눈치 볼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래? 아무튼 고생 많았어. 초반에 막 애들한테 화 낼 때는 정말 심장이 떨렸다니깐. 연기도 잘해 하여간.”

아, 그 모든 것이 연기였다고 생각했나 보다.

연기는 아니었다.

그때는 분명 화가 났었다.

재준이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역할극을 했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다.

그랬다가 정말로 싸움이라도 났다면…….

“그런 연극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습니다. 좋을 것이 없는 것 같아요.”

“됐어. 알아서 잘하겠지만, 가끔 보면 꽉 막힌 구석도 있다니깐. 본인은 파격적으로 행동하는 걸 좋아하면서 말이지.”

어쨌든 재준이 일은 이걸로 어느 정도 봉합의 시작은 만들어진 것 같았다.

자신의 학급 내에서 일어나는 따돌림 사건…….

교사를 단순히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절대로 무심히 넘기기 어려운 일이다.

그나저나 준일이와 수진이가 떠올랐다.

그 녀석들은 우리 반이 아닌데도 순전히 내 생일 때문에 이 일에 참여한 것 같은데…….

“참……. 교장 선생님, 저 좀 다시 가 볼게요.”

“응? 또 무슨 일 터졌어?”

갑자기 급히 이렇게 말을 하는 나를 보고 오광필 할아버지는 불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긴, 그가 충분히 그렇게 반응할 만하지.

이상하게 이런 일은 꼭 내 주변에서 계속해서 일어났으니.

“아뇨. 아까 준일이랑 수진이도 있었잖아요.”

“아! 그 녀석들…….”

“애들 좀 보고 오겠습니다!”

나는 황급히 그 둘을 찾으러 복도를 빠르게 걸어갔다.

“대표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표라고 하지 마셔요. 그냥 지금은 교사입니다.”

“하하. 제 선생님은 아니시니까요. 저는 대표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꼭 말을 안 듣는 사람들이 있다.

나만큼이나 고집이 센 사람들…….

“이건가요?”

열 대 남짓한 컴퓨터와 모니터들.

그리고 각각의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남자들.

딱 보기에도 컴퓨터 전공자들 같아 보였다.

“네. 일단은 한참 코딩 중입니다. 아, 코딩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대략적인 운영 목적이나 방향은 나온 건가요?”

얼마 전까지는 학원 강사, 그리고 지금은 나름 사업가의 모습을 보이는 이충현은 자신의 책상 뒤로 걸어가 서랍 안에 있던 서류 봉투 하나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서류 봉투 안에는 홍보용 팜플렛, 그리고 대략적인 코인 운영 계획 같은 것들이 있었다.

“백서는 나왔는지요?”

여기서 백서(White Paper)란 암호화폐의 개발 배경, 그리고 세부적인 로드맵과 시한들이 적혀 있는 일종의 보고서라고 생각하면 되는 문서다.

“아주 두껍지는 않지만…….”

그는 내가 들고 있는 서류 봉투에서 A4 용지 묶음 하나를 꺼냈다.

“이게 백서입니다. 그리고 언제든 원하시는 대로 수정도 가능합니다.”

나는 그의 책상 앞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원래 앉으라고 권유하기 전에 앉는 건 실례겠지만, 손님을 서서 계속 두는 것도 실례다.

이충현이 그런 것도 모를 사람은 아니지만, 아마 정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별로 염두에 두진 않았다.

그의 비서로 보이는 젊은 여직원이 커피를 앞에 갖다 주었다.

비서라니…….

나도 비서는 없는데.

그가 기획한 암호화폐는 대략 기존의 비트코인, 그리고 다른 암호화폐의 목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분산형 장부를 통해 보안을 담보하고, 아무래도 교육 시장에 있다 보니 교육 서비스와 관련한 개인 정보를 각각의 분산 장부에 보관하는 형식.

솔직히 실망이었다.

물론 그에게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웬만한 아이디어는 대부분 자신이 겪은 일들이기에 신선함을 줄 수 없다.

“이게 전부입니까?”

“네?”

“백서의 내용대로라면 지금 있는 암호화폐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데요?”

“그건 그렇게 만들어야 시장에서 유통시키기 편리해서…….”

그의 표정에 당혹감이 스쳤다.

“똑같은데 후발 주자라면 굳이 살 필요가 없겠죠.”

“그건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십니다.”

당혹감을 보이던 표정이 이제는 살짝 흥분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가 뭐라고 하나 궁금했다.

조금은 들어보기로 했다.

“지금 당장에도 유사한 암호화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력만 있다면 구매자들도 줄을 서는 상태고요.”

“아예 새로운 방식을 떠올리실 수는 없습니까?”

“새로운 방식이요?”

어이가 없겠지.

그는 나름 이 분야에 대해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랬으니 이렇게 사무실도 차려놓고 사람도 모아 준비하고 있는 거고.

그의 입장에서 나는 단순한 투자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 기술이 가져오는 폐해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이상, 내가 투자할 사업이 그 폐해를 일으키는 것들과 똑같은 가치를 지니지 않았으면 했다.

며칠을 고민하여 내린 결론.

투자는 한다.

하지만 원하는 방식으로 이 사업을 바꾼다.

그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전에 언급하셨던 대로, 암호화폐는 일종의 도토리 같은 거라면서요. 별풍선이나요. 그러면 이걸 교육과 연관 지어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로 만들면 어떻습니까?”

그는 이성의 끈을 간신히 잡고 있는 듯했다.

기분이 상할 만하지.

단순한 투자자라고 생각하고 투자를 요청했던 것인데 자신의 기획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고 바꾸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투자자는 그럴 권한이 있다.

내 돈이 투자되는 만큼 사업의 운영에 있어서 영향을 미칠 권한.

“예컨대, 완전하게 랜덤한 채굴 방식이 아니라 일정량은 채굴, 그리고 일정량은 이쪽에서 따로 발행하여 운영되도록 하는 시스템은 어떨까요? 그리고 그걸로 S 아카데미, 맥스스쿨에다 한성에듀 미주 사업까지 연결해서…….”

방금 전, 기분이 상한 듯해 보였던 이충현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오묘한 표정.

그는 아마 유사 암호화폐를 만들어 돈을 벌 생각이었겠지.

그에 반해 나는 그런 사업에 투자할 생각은 없었다.

2017년.

비트코인 가격이 1년 동안 열 배가 넘게 뜨는 상황에서 너도나도 투자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정부에서는 규제를 해 보려 하지만, 문제는 개인 간의 거래가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 암호화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규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

학교 상황은 어땠냐고?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암호화폐 투자에 뛰어들고, 심지어 부모님 돈을 몰래 빼돌려 여기에 넣었다가 잃는 경우가 뉴스에까지 나오곤 했다.

블록체인의 기술적 혁신을 제외한다면 이건 그냥 투기, 도박판일 뿐이었다.

물론 이 모든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하면 현재 온라인 결재 시스템과 비슷하지만, 다른 인센티브 같은 것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블로그나 게시판을 통해 서로의 숙제를 도와주거나, 공부 방법 등을 공유를 하면 자유롭게 평가를 해서 점수 형식으로 해당 암호화폐를 줄 수 있도록 말이죠. 플랫폼은 이미 여럿 있고, 그중 몇 개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으니 보안 문제와 보상 시스템만 제대로 구성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보상 시스템……. 교육 사업과의 연계라…….”

이제 큰 거 한 방을 날릴 시간이다.

“저도 많이 공부를 해 봤습니다. 그리고 암호화폐가 가지는 잠재성에도 기대가 되고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걸로 정말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그냥 지금 비트코인을 무리하지 않을 정도로 사 두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굳이 이렇게 새로 만들지 말고요. 그런데…….”

사무실을 다시 한 번 훑었다.

이미 그는 이걸 직접 만들 준비를 다 해 둔 모습이었다.

아니, 어쩌면 개발은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투자자들의 투자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만약 직접 뭔가를 이걸로 만들어 보고 싶으시다면, 제 생각은 어떨까 제안을 드려 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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