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163화.
“네. 네. 그렇게 된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재준이의 사건.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는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애초에 학교에서 먼저 파악했던 문제가 아니었기에 교육청으로 연락을 했다.
학교 폭력 사안은 겉으로 드러나는 내용보다 복잡한 사안들이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이번 사안과 마찬가지로.
“잘된 거야?”
“네. 뭐, 청에서는 정리됐다는 보고만 받으면 되는 거니까요. 어느 정도 해결이 난 듯하니 별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고생했어. 유 선생도 고생했고.”
이번 건에서는 내가 한 일은 별로 없었다.
단지 재준이를 계속 불러 이야기를 해 보고, 상담실에서 그 외로 진행한 상담일지를 확인한 것뿐.
참, 하나 한 것이 있다고 치면, 재준이를 포함한 아이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비밀 편지를 받은 부분이라 할까?
비밀 편지라고?
일전에 말했듯이 교무실 내 책상에는 자물쇠가 채워진 편지함 하나를 놓아두었었다.
거기에는 아이들이 직접 말로 하기 어려운, 또는 다른 친구들에게 알리기 어려운 일들이 가끔씩 들어왔었고, 엄청 많지는 않지만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우리 반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현 상황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학급의 문제는 특별히 위험하거나 한 일은 아니었다.
애초 재준이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신고한 학생이 누군지는 아직도 파악이 되질 않았다.
다만 반 친구들을 대하는 재준이의 태도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긴 했다.
워낙에 소심하고 말수가 없는 편인지라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를 않았고, 몇몇 학생들이 재준이를 콕 짚어 그런 점이 어렵다고 나에게 편지를 써 왔던 것이었다.
신고자는 뭐 그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누가 신고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점이 있다면 그것이 무언지를 알아야 고치고, 누가 그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건 제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를 불러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을 때, 그의 반응은 이랬다.
당연하겠지.
사람마다 성격이 다 다른데 자신들에게 맞추지 않는다고 해서 따돌린다고 느낀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다른 친구들이 너라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단 걸 알았으면 좋겠어서 이야기하는 거야.”
“…….”
그래도 알 필요는 있다.
아니, 본인도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회란 것이 개개인의 성격에 맞춰 주지만은 않기에, 또 지금은 학교니깐 이런 상황에서 본인이 피하는 것으로 대처할지 모르지만 사회에서는 피할 수가 없다.
어쨌든 이 일은 이런 상황이란 걸 알고 특별히 반의 분위기를 반전시키지는 못하고 끝이 나나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분위기는 의외로 어른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바뀌곤 한다.
이번 경우와 마찬가지로.
“유 선생님! 빨리 교실 가 봐!”
쉬는 시간.
교무실에 앉아 있는 나에게 선생님 한 분이 달려 오셨다.
표정은?
좋지 않았다.
뭔가 큰 일이 일어난 듯한 표정.
“무슨 일인데요?”
나는 바퀴 의자가 거의 건너편에 닿을 정도로 급히 일어나며 교실로 달려갔다.
나를 부르러 왔던 선생님도 나를 따라 다시 달렸고.
학교 복도에서 이렇게 애처럼 뛴 것이 언제 적 일이던가.
적어도 교사가 된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이렇게 뛸 일이 없는데.
하지만 불안했다.
재준이 일 자체는 큰일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냥 신고만 들어간 것이니깐.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되는 건 다른 부분에서였다.
‘분위기. 심상치 않은 분위기.’
교실 앞 복도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비켜! 얘들아! 비켜!”
빠른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몇몇 아이들이 우리를 도와 길을 뚫었고, 안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은 이미 우려했던 대로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가운데 뻥 뚫린 공간에는 재준이와 몇몇 남자 아이들이 대치중인 모습으로 보였다.
“야! 너희들!”
이쯤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교실 문이 왜 닫혀 있는지를…….
교실 안에서 남학생들끼리 싸우는데 문이 닫혀 있다고?
아니, 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무리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파악하긴 어렵다 하더라도, 이렇게 여럿이 단체로 한 명을 상대로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 일어날 만큼 우리 반이 막장은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문이 닫혀 있으니 나는 들어가야 했고, 문을 열었을 때 위에서 뭔가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퍽.
아…….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은 다행히도 머리를 살짝 빗겨 나갔다.
그리고 내 앞으로 떨어진 건 종이학들…….
우수수 떨어져 내려오는 종이학들을 보니 ‘이건 뭔가’ 싶었고, 교실 뒷문으로 누군가가 들어왔지만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당황한 상태였다.
“선생님, 이거 선물입니다.”
준일이였다.
그의 양손에는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나는 멍하기 그를 쳐다보았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죄송해요. 깜짝 파티를 한다는 것이…….”
“야, 너…….”
그리고 교실 가운데, 방금 전 남학생들이 대치하고 있던 곳을 보았다.
재준이가 걱정이었는데, 이 녀석이 다른 녀석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
실실 쪼개면서.
“야, 뭘 축하해, 근데?”
“오늘 유 선생님 생일이라며? 애들이 도와 달라고 했어.”
분위기의 심각함을 알았는지 방금 나를 급히 부르러 온, 이 사기극의 신호탄이 되어 준 선생님이 등을 톡톡 쳤다.
지금이 어느 땐데 이런 장난을 친단 말인가…….
“야, 너네 다 엎드려.”
“네?”
“다 엎드려!”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올랐다.
다른 녀석들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재준이의 경우가 가장 걱정이었다.
가뜩이나 교육청에 신고까지 들어간 녀석이니.
그런데 지금 이런 모습은 무어란 말인가.
‘불안함, 초조함, 걱정’에서 ‘안도감’과 ‘짜증’이라는 두 가지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감정이 내 마음을 휘감았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어 하다가 내 표정을 보고는 ‘장난 아니라는’ 생각을 했는지 몇몇이 슬슬 엎드리기 시작했다.
케이크를 들고 왔던 준일이도 옆에 놓고 내 앞에 엎드렸다.
“선생님…….”
수진이였다.
준일이와 수진이.
어떤 상황인지는 알 법했다.
학교에서의 소문은 의외로 상당히 빨라서 아마 재준이와 우리 반에 관계된 일을 다른 반 아이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입학하자마자 있었던 준일이와 수진이 일처럼 말이다.
이 녀석들은 그저 분위기를 조금 바꿔 보고자 했겠지.
아마 큰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재준이와 관계된 일이라고 해도.
하지만 이건…….
“너도 관련되어 있는 거야? 너도 엎드릴래?”
여학생에게 엎드리라고 하다니…….
그녀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나의 모습에 당황했는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여 버렸다.
“저, 저기. 유 선생.”
“선생님, 이런 장난은 좋지 않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애들이 선생님 생일 축하해 준다고 해서 말이야.”
“생일이요?”
생일?
내 생일이라고?
잠깐만…….
오늘 날짜가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는 일들이 많았다.
사실 생일을 따지는 건 어릴 때 이야기.
나이가 들수록 생일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그런데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그래. 교장 선생님도 저쪽에 계셔.”
복도 쪽으로 나 있는 창문 너머로 오광필 할아버지와 김윤지의 모습,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다 공범들이구나.
그나저나 안에 엎드리도록 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
나도 멘탈이 붕괴될 상황이었다.
아니, 무슨 생일을 이딴 식으로 축하를 해…….
“하아. 누가 챙겨 달라고 했습니까? 왜 그런 걸 이렇게 합니까? 애들까지 동원해서…….”
“애들을 동원한 게 아니고 애들이 하겠다고 해서 도와준 거야. 애들은 그냥 유 선생 좋다고 그런 거니 좀…….”
“얘네들 아주 본때를 보여 줘야겠어요! 어디, 선생님한테 이런 식으로 장난을!”
그리고 나는 엎드려 있는 준일이를 살짝 피해 그가 놓아둔 케이크를 집어 들었다.
‘제발 있어라. 제발 있어라.’
뭘 찾느냐고?
“야! 복도에 보고 있는 녀석들도 다 얼른 들어가! 얼굴 다 기억한다!”
정말 온 힘을 다해 소리 질렀다.
전생에 소리 지를 일은 참 많았다.
아이들이란 원래 어른들이 하자는 대로 하지 않는 존재들이기에 억지로라도 시키려면 소리라도 질러야 했으니.
하지만 은성 고등학교에서도, 그리고 학원 생활을 하면서도 이렇게 소리 지를 일은 전혀 없었는데.
순식간에 창문 너머로 몰래 보고 있던 아이들의 얼굴들이 사라졌다.
심지어 몇몇 선생님들도 민망했는지 사라졌고.
오광필 할아버지와 김윤지만이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야, 이런 식으로 선생님을 축하하는 건 축하하는 게 아니야. 지금 분위기 몰라서 그래? 그런데 그걸 가지고 이렇게 써먹어?”
“죄송합니다.”
몇몇 아이들이 죄송하다고 말했다.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수진이는 거의 우는 것 같았다.
빨리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나는 케이크 상자 옆에서 뭔가를 뜯어냈다.
그리고 바로…….
뻥!
엎드려 있던 아이들, 그리고 수진이도 갑작스런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내 머리 위로 폭죽에서 터져 나온 종이가 흩뿌려지고 있었다.
“자, 너희들이 나를 속인 것처럼 나도 한 번 속여 본 거다. 재준!”
“네!”
엎드려 있는 상태로 재준이가 대답했다.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만 하더라도 다행이리라.
그리고 그가 반 전체에 어우러지기 시작했단 것도…….
“괜찮은 거야? 강요나 협박 없었지?”
“네?”
“아니에요!”
그는 말 그대로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대답했고, 연극을 하던 다른 아이들이 당황했다는 듯 말했다.
“다들 일어나!”
일사불란하게 엎드려 있던 녀석들이 일어났다.
“밖에! 너희들도 얼른 들어와! 우리 반 전원 집합!”
어차피 대부분의 인원이 이 일에 동참한 것인지, 복도에 있던 여학생들도 우르르 교실로 들어왔다.
그들의 표정.
말 그대로 안도감과 아직 끝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었다.
“얘들아, 이 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다들 알고 있겠지.”
몇몇 아이들이 재준이를 쳐다봤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있는 준일이와 수진이를 한 번씩 톡톡 쳤다.
“고마워. 너희는 따로 이야기하자. 고맙다.”
그리고 미소를 짓고 있는 내 표정을 본 그들은 서둘러 교실을 나갔다.
둘 다 우리 반은 아니지만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났던 일들로 인해 거의 내 새끼처럼 대하던 녀석들이다.
수진이가 조금 놀랐는지 복도 나가면 바로 울 것만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은 학급 내의 일을 처리하고 그들은 나중에 따로 부를 생각이었다.
다시 우리 반 아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연극을 준비하느라 책상을 교실 가장자리로 밀고 몇몇은 심지어 넘어뜨린 상태.
정중앙 빈 공간에 아이들이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하며 눈치를 보는 모습이었다.
“후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동시에 몇몇 아이들의 고개가 내 한숨 소리와 함께 숙여지는 모습이 보였다.
조용히 손에 들려 있던 폭죽을 창가에 내려놓고 아까 준일이가 들고 들어왔던 케이크를 가져왔다.
“자리에 앉자.”
“네?”
“다들 자리에 그대로 앉자!”
방금 전의 화를 내던 목소리는 아니었다.
조용히 다시 한 번 말하며 나부터 교실 바닥에 주저앉아 우리 반 아이들이 다들 나처럼 앉기를 기다렸다.
“얘들아, 고마워. 그런데 가뜩이나 학폭 일로 심각한데 그걸 가지고 연극할 필요는 없잖아. 안 그래?”
“…….”
아무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도 까먹은 내 생일을 기억해 주다니 고마워. 이거나 오랜만에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나 하자.”
“…….”
풀어지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지.
하지만 이미 내가 정말로 화가 많이 난 것이 아니란 걸 느낀 아이들 몇몇은 표정이 풀어졌다.
아이들도 이미 재준이와 관련하여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게 학교 폭력과 관련한 일인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연극이랍시고 한 일이 애들끼리 싸우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었으니…….
학교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가끔씩 착각하는 일이 생긴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절대적으로 미숙하고 이해심도 부족하다는 생각.
대화로 풀 수 있는 일도 대화보다는 강압과 폭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고정관념.
물론 대화로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어른 사회에서도 인간쓰레기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고, 그리고 뉴스에도 나오는 것처럼, 아이들 중에도 그런 아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과 아이의 다른 점은, 어른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의무 또한 완전히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일을 저지른다는 것이고, 아이는 아무리 거지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아직은 보호받고 행동과 심리의 교정을 우선으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까 보니까 재준이는 이제 잘 어울리는 거야?”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원인을 직접 파고들어야 한다.
다른 아이들은 일단 가만히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재준이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괜찮은 것 같은데요?”
“괜찮은 것 같아? 상진이랑 어깨동무도 하더만.”
이렇게 말하며 상진이를 쳐다봤다.
그는 방금 전 상황에서 재준이와 정면으로 대치하던 녀석이었고, 그 다음 상황에서는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네. 요즘은 괜찮아요.”
“그런데 왜 전에는 그렇게 서로들 불편해했어?”
“그건…….”
상진이 곧바로 대답을 못 했다.
이건 사실 그에게 한 질문이 아니라 재준이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왜 자신을 친구들이 불편해했는지.
뭐 재준이는 분명 소심한데다 밝은 성격도 아닌지라 가깝게 지내기 어려운 스타일이기는 하다.
아이들 사회에서는 약간 떨어져 있는 나조차도 느낄 수 있는 것이었으니.
재준이 자신이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응?”
“제가 애들을 멀리했던 것 같아요.”
재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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