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161화.
정리, 그리고 새로운 도전
김윤지와의 대화 이후 나는 사업에는 관심을 최대한 두지 않으려 노력했다.
물론 이한일과 몇 번의 통화가 더 있긴 했지만, 일 자체는 내가 직접 나설 것이 아니었다.
블록딜도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 원장이 알아서 하는 부분이었고.
내 지분 문제도 있었지만 그건 그대로 두기로 했다.
내가 당장 이한일이 줄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현금이 부족한 것도 아니기에 나름대로 성과를 가지고 있고 싶은 욕심이었다.
올라가는 주가를 보고 즐거워하거나, 또는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낙심하는 건 불필요한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S 아카데미만 잘되면 돈에는 걱정이 없는 상황이었으니.
“이거 괜찮겠지?”
“괜찮지 않을 리가 있나요, 뭐? 다른 학교들은 외부 인사들 초청해서 듣는 강의인데요.”
“그래도…… . 음. 뭐, 네가 괜찮다니 괜찮겠지 뭐.”
그리고 나는 은성 고등학교에 모든 것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때는 가을이 지나고 있었고, 이 학교에서의 내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응?
왜 얼마 남지 않았냐고?
나에게는 계속 일을 하려는데 아주 큰 걸림돌이 하나 있다.
가만 보자, 준서는 이제 곧 다시 사회로 돌아올 시기가 되었고, 나는 이제 사회에서 반 강제로 격리될 시기가 다가오고 있지.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의무이자 권리.
참, 권리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가.
인생의 벽이라고 하는 편이 조금 더 현실적이겠지.
군대가 아직 남아 있지 않은가.
어차피 한 번 다녀온 것, 두 번 다녀오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음, 과연 그럴까.
하지만 마음이라도 이렇게 먹고 있어야 속이 편하다.
다시 갈 날을 계속 생각하다가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일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 아. 학생 여러분, 교장 오광필입니다. 다들 바쁜 학업에 정신이 없겠지만, 미리 예고한 대로 오늘부터 토크 콘서트를 진행합니다. 시간은 일과 끝나고 보충수업 시간에…….
“와! 와!”
헐, 이 정도 반응을 생각했던 것은 아닌데.
오광필 할아버지가 방송을 하는 도중 보충수업 시간에 다른 걸 하겠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건물 건너편 교실 쪽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방송실이 약간은 방음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수십 명이 학생들이 온 힘을 다해 내지른 소리는 충분히 방음벽을 뚫고도 남았다.
우리는 둘 다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곧바로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어했다.
예기치 못한(사실 이런 일은 종종 있다. 방학식 날이거나 또는 갑자기 야간 자율 학습을 하지 않는다는 공지를 할 때) 상황에 잠시 말을 멈췄던 오광필 할아버지는 벽까지 넘어 들어오는 함성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
-으흠. 그렇다고 자유 시간을 주는 건 아니니 너무 흥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부터 예고한 대로 신청자에 한하여 토크 콘서트를 진행합니다. 기존 보충수업은 자율 학습으로 대체되고, 저녁 식사 후 7시에 교내 도서실에서 할 예정이니 신청한 학생들은 도서실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토크 콘서트.
내가 아이들을 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할 무렵, 그러니깐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중반 유행했던 것들이 있다.
사회적으로 나름 성공한 사람들, 또는 저명한 인사를 각 대학, 각 기관, 그리고 시민 단체 등에서 초청하여 담화를 하는 이 행사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뉴스에서나 보던 사람들의 솔직한 생각들을 들을 수 있어서 인기였다.
물론 그 명칭이 토크 콘서트는 아니었다.
다만 특별히 역사가 바뀌지 않는 한 똑같은 명칭이 나올 수도 있으니 유사한 걸로 그냥 선정했다.
“아이들 준비는 다 된 거지?”
“물론이죠. 첫 회부터 기자를 불러오시는 교장 선생님의 열정이…….”
“기자를 내가 불렀냐? 네가 불렀지. 어차피 크게 해 보려는 거라면 잘 해내야 하는 거 알지? 가뜩이나 학교생활 얼마 하지 않은 교장이라고 무시 받는데 이런 거라도 보여 줘야지.”
“무시를 왜 받아요?”
말은 이렇게 했어도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교장 선생님들, 그리고 교감 선생님들끼리의 모임.
이게 무슨 사조직 같은 것은 아니었다.
보통은 교감 연수, 교장 연수를 함께한 분들끼리 동기라고 생각하며 모임을 갖는 정도고, 가끔씩 교육청 연수 같은 게 있으면 얼굴만 보는 정도랄까?
하지만 대부분 지역의 현재 교장, 교감 선생님들은 몇몇 국립대 사범대학 출신들이 많았고, 학교 경력만 수십 년인 사람들이다.
그 말은 곧, 이런 저런 연수를 통해 수십 년 동안 서로 얼굴을 본 사이란 의미.
학연, 지연, 혈연이란 건 좋지 않으나, 이건 굳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는 놈이 왜 다시 묻고 그러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 했다.
나는 머쓱해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만 믿으십쇼. 이거 애들한테 꼭 필요한 겁니다. 동기부여!”
“내가 너 안 믿은 적 있냐. 아무튼 잘해.”
“네!”
이번에도 사실 한성 그룹의 지원을 받으면 굉장히 큰 행사가 될 수 있었겠지만,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기자들도 몇몇 지역 언론사에 연락을 돌려 부른 것이었고, 내부 결재 처리 후 교육청에도 행사 공문을 보냈기에 도내 각급 학교들에서도 온다고 했다.
하지만 장소는 도서실.
사실 은성 고등학교 강당이 상당히 큰 규모이기에 거기서 하면 꽤나 멋져 보이겠지만, 아무래도 처음으로 하는 행사인데다가 규모가 크면 내실 있는 대화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아이들 입장에서 다양한 질문을 던져 주고 그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편안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강당이란 장소가 아무래도 부담스러우리라.
초청한 사람들도 많고, 참여를 신청한 학생 수도 열 명이 넘기에 아마 꽤나 북적일 것이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교장실에는 형식적으로나마 문이 달려 있었고,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나는 교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상황이었다.
“오늘 콘서트해 주실 분 오셨습니다.”
“아, 벌써요? 일찍 오셨네요?”
오광필 할아버지는 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나는 바로 행정실 쪽으로 가 기다리고 있던 강연자를 맞이했다.
“선생님! 멀리까지 와 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반질반질한 얼굴, 누가 보더라도 쫙 빼입은 정장 차림의 남성은 상당히 잘생겼다.
요즘 인터넷 강의 성공 여부에는 강사의 외모도 한몫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날 정도였다.
이렇게 생각은 하고 있으나, 내가 그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맥스스쿨을 잡고 초반, 이미도 원장이 교육 방송으로 강사 차출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나를 불렀을 때, 그때 그 자리에서 열변을 토하던 그.
오랜만에 본 자리였고, 그사이 나도, 그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학교로 오시다니,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도 상상도 못했네요. 흐흐. 돈 많이 버신다고 들었습니다.”
“많기는요! 유 대표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지금도 그가 맥스스쿨에 있냐고?
그때가 벌써 몇 년 전이다.
그는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맥스스쿨에서 나왔다.
사이가 틀어지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당시에 우리 쪽에서 제안한 것이, 1타급 강사진이 독립할 때 회사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그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도전을 택했다.
“그래도 뉴스에도 종종 나오고, 대단하십니다.”
의례적 인사들.
학창 시절은 순수하고 솔직한 시기다.
의례적인 것은 별로 없고, 감정과 본능에 충실한 시기.
성인과 미성년자의 사회생활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아이의 눈에서 어른의 이런 행동들은 얼마나 가식적이고 쓸데없이 보일까.
어쨌든, 그가 은성 고등학교에 온 것은 오늘 토크 콘서트의 초청자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이충현 선생님, 처음 뵙겠습니다. 교장 오광필이라고 합니다.”
“참, 이쪽은 교장 선생님이십니다.”
“그 말은 먼저 했었어야지!”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뵙는 분이라.”
“안녕하십니까. 이충현이라고 합니다.”
한때 과학탐구 분야 국내 일인자라고 불렸던 이충현.
그는 독립 후 탐구 영역만을 전문으로 하는 온라인 강좌 사이트를 개설했다.
원래 중앙 사교육 시장에서는 몇몇 인기 강사들이 대부분의 인기와 수익을 독점하는 추세가 강하기 때문에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경우가 많다.
맥스스쿨은 온라인 교육 사이트 운영과 관련하여 여러 도움을 줬기에 그쪽에서 강사들을 빼 가지는 않았지만, 주변 다른 대형 학원들에서 몇몇 인기 강사들과 함께 동업하기 시작했고, 현재 그 학원은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교육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공무원 시험, 각급 고시, 자격증 시장까지 영역을 넓힌 S 아카데미와 비교해서도 딱 자신들의 강점만을 살리는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 있기에 지출이 별로 없을 것이고, 아마 쌓인 자산도 꽤 될 것이다.
요즘은 신문에도 나보다 많이 나오고.
“자, 이쪽으로 오시죠. 조금 쉬시다가 시간 되시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유현덕 대표님, 이따 시간 되시면 이야기 좀 나누시죠.”
“알겠습니다.”
시간은 많았다.
나야 뭐 지금은 학교 수업이 있으니 계속 그와 같이 있을 수는 없었지만, 중간 중간 수업 없는 시간에 내려와 그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했다.
흥미로운 주제 거리는 많지 않았다.
다만 그가 안정적으로 학원을 운영하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나도 잊고 있었던 것.
하지만 만약 그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내가 과연 그쪽까지 손을 댔을까 싶기는 했다.
“블록체인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블록체인……이요?”
“네. 요즘 뜨고 있는 기술인데, 이걸 화폐처럼 유통한다고 하더군요. 암호 화폐라고 부르는데…….”
학원 강사나 학교 교사라면 자신의 교과목에 대한 지식만 있으면 될 거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인터넷 강의를 듣건, 아니면 학교에서 수업을 조금이라도 열심히 들어봤던 학생들은 알겠지.
교사나 강사나, 자기 분야에 대한 지식은 기본으로 깔고 간다.
그럼 비슷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누군 어마어마하게 성공하고, 누구는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지식 전달력’과 ‘썰’ 의 차이 때문이다.
그리고 ‘썰’은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공부에서 나오는 것이고.
“아……. 그런 쪽까지 관심을…….”
“그 이야기도 한 번 해 보고 싶어서요. 어차피 온라인상으로 상품을 구매하고 판매하는 건 종이 지폐 없이 이뤄지지 않습니까. 전체 통화량과 연동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엄연한 기준에서는 암호 화폐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죠.”
그의 설명이 맞다.
그리고 지금이 아마 비트코인이 막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기일 거고.
비트코인과 더불어 수많은 알트코인이 생기면서 새로운 통화 생태계를 구축하게 되는 시기.
그런데 문제는 이 코인들의 엄청난 등락폭에 있다고 들었던 것이 기억났다.
예컨대 방금 전 내가 10만 원 어치의 코인을 샀는데 한 시간 뒤 이걸 20만 원에 파는 경우도 생긴다는 것이다.
그 절반이 될 수도 있고.
근데 이것에 대해 온라인 학원 원장이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걸까.
“이걸로 강좌를 들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한 번 꾸려 볼까 합니다.”
“암호 화폐로요?”
“네. 알트코인이라고 하는데, 소스가 공개되어 있어서 일정 부분 원하는 대로 수정한 뒤 유통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비슷한 거로는, 메가월드의 도토리 같은 그런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예 암호 화폐 한 종을 만든다고?
이건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등락폭이 문제라면 등락폭을 줄일 수 있는 구조로 만들면 되긴 할 것 같았다.
어마어마한 수량이 유통되도록 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하지만 그게 과연 말처럼 쉽게 될지는 몰랐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이충현의 얼굴을 보았는데, 그의 표정은 확신과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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