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158화.
누가 뭐래도 맥스스쿨 건에 관한 최종 결정권은 현 대표인 이미도 원장에게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결정은 이런저런 사건들로 인해 꽉 막혔던 부분을 뻥 뚫어 버리는 효과가 있었다.
‘어차피 넘길 거라면 최대한 좋은 조건으로 넘겨야 한다.’
그걸 위해서는 이미도 원장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어필해야 할 것이다.
아침이 되고 이한일 회장에게 곧바로 연락을 했다.
그 또한 전날의 여파인지 막 일어난 듯했고.
연락처는 어찌 알고 있었냐고?
수백억이 왔다갔다 하는 일이다.
연락처야 당연히 그쪽 비서실 통해서 받아왔다.
-유 대표는 알면 알수록 신기한 사람이네요.-
그의 반응이었다.
어렵게 설득했다고는 했지만 이미도 원장이 마음을 움직인 것 자체가 신기했으리라.
“서로 알고 지낸지 오래 돼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어려운 결정이니 할인율은 최소로 해 주실 거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결정되는 대로 연락드리죠.
학교는 평상시와 똑같았다.
원래 현대 사회는 개개인이 움직인다기보다는 잘 짜인 시스템이 운영을 한다.
이 시스템에서는 몇 명이 빠진다고 하더라도 그 빈자리를 곧바로 메꿀 수가 있다.
아이들은 호기심의 동물이라 가끔 물어보기는 했다.
“선생님, 눈…….”
“말하지 마.”
조금은 민망했던 것이 교사란 사람이 누가 보기에도 어디선가 맞고 온 듯한 모습으로 출근을 해야 했다는 것.
어쨌든 내 본업은 이제 교사다.
물론 전생보다는 훨씬 부담이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들에 대한 부담은 오히려 내 경제적 상황이 안정적이다보니 더욱 커지는 듯했다.
이건 객관적으로 크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전생에 내가 나 살아가는 것을 걱정하고 살다 보니 아이들에 대해 쏟아 부을 힘이 조금 분산되었었나?
지금은?
지금은 그런 걱정 자체가 없다.
사업적 걱정은 크지만, 어차피 이 일은 더 이상 내 소관은 아니다.
“자, 오늘 수업 시작하자!”
하지만 아이들은 펼쳐진 책을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시퍼렇게 멍든 내 눈두덩이를 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하필이면 거길 때려가지고…….
“자자! 정신 차리고!”
“선생님, 오늘 몸도 좋지 않아 보이시는데 그냥 다른 거 하면 안 되나요?”
“다른 거?”
“영화 봐요!”
하아.
과거나 지금이나, 전생이나 현생이나 학생들은 학생들이다.
생각해보면 공부가 일이라는 건 어른의 입장이고, 아이들의 삶은 각자 우주만큼이나 복잡하고 깊은 생각이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왜 항상 영화냐.
“자꾸 그러면 텃밭 간다?”
“텃밭? 헐.”
노작 교육이라고 했었나.
분명 교육학을 공부할 때 나오는 내용이었는데.
노동을 하며 자기 자신을 키우는 그런…….
뭐든 클 때는 고통이 뒤따른다.
그것이 신체적 고통이든, 정신적 고통이든.
그래도 그게 성장이라는 것이겠지.
“책 보자, 얼른!”
“네.”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수업 분위기가 그렇게 막 들뜰 필요는 없지.
이 정도가 딱 적당하다.
사고가 터져서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는 이상 말이다.
하지만…….
“유 선생, 어제 얘기 들었어?”
“네? 무슨 이야기요?”
“아, 아직 못 들었구나. 하긴, 교장 선생님께서도 유 선생 지금 정신없을 거라고 하셔서 아마 오전 지나고 오후 쯤에 학생부에서 연락 올 거야.”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한다.
“학생부요? 왜요? 애들 문제 있었어요?”
하지만 조회 때의 분위기로 봐서는 별문제는 없어 보였다.
다들 내 상태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 그랬던 걸까.
보이는 것과는 달리 통증은 전혀 없었지만, 거울로 내 모습을 보고 나 자신도 놀랐다.
눈 아래로 시퍼렇게 멍든 모습.
어께 부위에도 벌겋게 부어올랐다.
역시나 전혀 아프진 않았다.
“응. 눈은 괜찮은 거야?”
애들 문제는 사실 학교에서 허구한 날 벌어지는 일이다.
근데 얼굴이 이렇게 되는 일은 거의 볼 일이 없는 일이지.
“네. 괜찮아요. 자다가 어디 부딪혔나…….”
“학교 폭력 건 신고 들어간 것이 있었어. 교육청으로 곧바로 들어갔다고 하더라고.”
“학폭이요?”
“응. 심각하진 않은 것 같아. 예전처럼 대놓고 때리고 금품 뺏고 하는 일은 요즘 확실히 줄어들었으니까. 그런데…….”
“그런데?”
“따돌림 사건이지 뭐. 교육청에서 연락 왔는데 내용 보니 큰 건 아니었던 것 같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감사합니다!”
학교 폭력 문제는 크든 작든 언제라도 엄청 큰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문제는 학생 간 문제에서 교사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나는 곧바로 학생부 학폭 담당 선생님께 갔다.
“선생님, 어제 저희 반 신고 들어온 것 있다면서요?”
“아, 네. 심각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애들 불러서 조사도 하는 중입니다.”
어쩐지.
아침부터 우리 반 아이들이 교무실에 들락날락하는 게 뭔가 있긴 했었나 보다.
“뭔데요?”
“재준이라고 아시죠?”
유재준.
나랑 같은 성씨를 가진 학생이다.
우리 반이면서 굉장히 조용한 성격이기에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아 지켜보던 학생.
“알죠. 재준이가 당한 건가요?”
“아뇨. 그게 조금 의아하긴 해요. 재준이가 가해자로 지목된 상황이에요.”
“네?”
“재준이에게 따돌림을 당했다고…….”
따돌림을 당하면 당했지 할 친구는 아닌데.
“확인해 보셨어요, 그래서?”
“네. 재준이 불러서 물어봤고, 사실 신고자는 익명인지라 누군지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겠죠. 재준이는 뭐라고 하나요?”
“당연히 그런 일 없다고 펄쩍 뛰죠. 그래서 혹시 모르니 친구들 대할 때 좀 친근하게 대하는 게 좋겠다고 말만 했습니다.”
이쯤에서 왜 담임인 내가 아니라 학교 폭력 담당 교사가 학생 상담을 하고 일 처리를 진행하는지 궁금할지도 모른다.
자, 일반적으로 학급 내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담임교사가 처리한다.
학년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은 학년 부장이 처리하고.
하지만 학교 폭력과 관련된 일에는 학급 내 일이라고 하더라도 담임교사가 나설 자리가 별로 없다.
이건 법원과 비교하면 조금 잘 이해될 것이다.
예컨대, 벌어진 사건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행동의 경중을 따져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가해자와 피해자 중 어느 누구와 친밀한 사이라면?
공정한 판결도 어렵고, 판결에 대해 양 측이 인정하기도 어려워진다.
그러면 담임교사는?
담임교사도 사람인지라 그렇게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할지라도 어느 누구에게 유리한 식으로 일을 처리할 여지가 있다.
따라서 학교 폭력, 특히나 따돌림 문제 같은 것은 업무 담당자가 따로 있어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안을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뒷짐 지고 옆집 불구경하듯 하는 건 아니고.
“일단은 그럼 모르는 거네요. 어떻게 된 일인지?”
“네. 연락 준 교육청에서도 신고한 학생이 누군지는 알려 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당연히 그렇겠죠. 그걸 또 막 알려 주고 하면 신고의 의미가 없는 걸요.”
일단은 재준이를 불러 따로 대화를 나눠 보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했다.
혹 내가 파악하지 못한 어떤 이면의 사건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 이미 들었구먼? 별 탈 없이 처리해 줘. 알아서 잘하겠지만 말이야. 애들 일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오광필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는 이 말을 툭 던지고 지나갔다.
그 또한 거의 밤을 샜기 때문에 매우 피곤해 보였다.
나는 다음 교시 수업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우리 반 교실로 가 재준이를 상담실로 데려왔다.
“재준아…….”
“선생님, 저 진짜 그런 일 없어요. 아시잖아요, 저 애들이랑 말도 잘 안 섞는 거.”
내가 무슨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그가 말을 쏟아 냈다.
오전부터 학폭 담당 선생님께 불려 갔으니 흥분할 만도 했다.
정말로 아무 일이 없었을까?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
내가 판단할 문제도 아니고…….
“응?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해? 난 그냥 이름만 불렀는데.”
“아, 왕따 시켰다고 부르신 거잖아요.”
“그거 때문에 부르긴 했지. 그런데 아무 말도 안 했잖아, 아직.”
이럴 때는 차라리 어른과 대화를 하는 게 편하다.
재준이는 입을 닫아 버렸다.
물론 일단 진정시키려면 뭔가를 계속 쏟아 내며 흥분시키는 것보다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낫다.
“재준아?”
“…….”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조차 하지 않는 녀석.
“요즘 학교생활은 어때? 밥은 먹을 만해?”
“네?”
뜬금없이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을까.
그가 푹 숙였던 고개를 들고 나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바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의 감정에 대한 나의 반응에 아마도 그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어른들은 다 똑같아.’ 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어쨌든 성공이다.
“밥 먹을 만하냐고. 집 밥이랑은 다른데다 맛도 별로 없었을 거 아냐. 입맛에 맞춘 것이 아니라 영양 기준이니깐.”
실제로 은성 고등학교 식단은 조금 과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철저히 건강식이었다.
아마 아이들은 무슨 절간에 들어온 기분일 것이다.
고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는데, 일반 학교처럼 자주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기숙학교이기 때문에 소화에 최대한 신경을 쓴 건강을 위한 식단.
이건 내가 제안한 건 아니었다.
누가 제안했지? 누군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건강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모토에는 동의했으나,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확실히 ‘몸에 좋은 것은 맛이 있기 힘들다’랄까?
“그냥 먹을 만해요.”
이런 성격.
요즘 아이들은 의사 표현이 확실해서 싫으면 싫다는 말을 하는데 이 친구는 분명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다시 한 번 내가 이제까지 봐 왔던 재준이의 모습이 어느 정도 맞는 것인지 확인하는 질문.
“다행이네. 나는 진짜 맛없던데.”
그는 나의 이런 반응에 대답 없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자신이 피해를 입으면 입었지 가해자로 지목된 것에 대해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너 누가 신고한지 감도 안 잡히지?”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우리 반 애들 중 하나겠죠. 따돌림은 제가 당하면 당했지 한 적은 없어요.”
“나도 알아. 그러니깐 물어보는 거야. 너 우리 반에 친구는 있냐?”
“네? 무슨 말씀을…….”
“속 터놓고 이런 대화 할 수 있는 친구 있냐고.”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는 유재준 이 학생은 철저히 우리 반에서 겉돌고 있는 아이다.
“너 선생님 중에서도 친한 선생님 없지?”
역시나 대답도 하지 않는다.
조금 답답한 성격.
특별히 남에게 피해를 주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과 어울리지도 못한다.
“무슨 일 있으면 나 찾아오지 마. 알겠지?”
“네?”
뜬금없이 들리겠지.
아마 처음부터 찾아올 생각도 아예 없었을 것이다.
그럼 거기에다 대고 왜 내가 다시 한 번 이렇게 말을 했냐고?
“그냥 쪽지에 적어서 교무실 내 자리에 금고 만들어 둘 테니 거기다 넣고 가. 알겠어?”
나는 일종의 ‘유현덕 상담 센터’를 만들 생각인 것이다.
직접 얼굴을 대고 말을 하기 어려워하는 녀석들만을 위한.
물론 우리 학교에 상담 선생님이 계시기는 하다.
실제로 여학생들은 상담실을 무슨 아지트처럼 이용하는 편이었고.
남학생의 경우에는 보건실을 종종 그렇게 사용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상담실조차도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학생들이 많이 사용했기에 정작 상담이 필요한 소극적이고 조용한 녀석들은 거의 가질 않는다는 점.
공식적인 상담함이 있지 않냐고?
있긴 하다.
어느 학교에나 있지.
하지만 그건 보통 학년 교무실 바로 밖에 위치해 있고, 학년 교무실 주변 복도는 언제나 학생들과 교사들로 붐비는 곳이다.
거기에다 이 친구가 뭔가 걱정거리나 상담 받고 싶은 내용을 써서 넣는다고?
못 넣는다.
“누가 신고한지는 몰라. 그리고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너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따돌리고 있었을 수도 있어. 따돌림 받았다는 감정이 생긴다면 꼭 따돌리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따돌림 당한 거야.”
“하지만!”
“내 말을 끝까지 들어 봐. 네 얘기는 계속 들어 줄 테니까. 이번 일은 정말로 누군가가 그렇게 느껴서 그런 신고를 했는지,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장난인지는 아직 몰라. 그것보다 중요한 건, 만약 네가 정말로 이런 신고가 들어갈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리고 만약 그렇다 할지라도 누군가가 너의 어떤 행동에 대해 그렇게 느꼈을 수는 없을까 판단하는 거야. 그런데 문제는 그걸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단 거지.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이번 일로 네가 문제가 생길 일은 없어. 어차피 신고 내용도 구체적이지 않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거야. 스스로의 하루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와 다른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 내용을 적어서 나에게 주고 가 줘. 혹시라도 조만간 피해자라는 학생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깐 그때 큰 도움이 될 거야.”
정말로 도움이 될까.
학교 폭력 사안에 대해 학생과의 상담 기록은 학교 입장에서 훌륭한 핑계 거리가 된다.
해당 학생에 대해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과 나름의 노력을 다했다는 것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그럼 이건 나만을 위한 방책?
그건 아니었다.
사안이 명확하다면 이런 일은 형식적인 절차밖에 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안이 불명확하다면, 혹 재준이가 가해자로 지목되기는 했으나 정작 피해자일 수도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빨리 지금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관계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눠 보는 것이다.
“해 줄 수 있겠지, 그 정도는? 어떻게 생각해?”
“억울한 거 풀어 주실 수 있으면 그 정도는 해 봐야죠.”
사실 나도 재준이가 지금 처한 상황이 억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교내에서 일반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고 곧바로 교육청에 신고로 올라간 거라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시점은 이미 조금 지나 버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 소심한 성격의 재준이가 가해자라면 그건 그것대로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겠지만, 어쩌면 신고 자체가 가해 행위였을 수도 있다는 걱정?
섣불리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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