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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57화 (157/200)

[157] 157화.

밤늦은 시각인데다 나는 바로 다음 날 수업이 있었기에 은성 고등학교로 내려와야 했다.

강재훈 원장의 상태도 다행히 병원에서 이동해도 별문제 없다는 말을 들었다.

지원재 실장이 끌고 온 차를 타고 우리는 고속도로를 달려 은성 고등학교에 도착했다.

“참! 연락은 드렸어요?”

“어디 말씀이십니까?”

왜 이제야 연락할 생각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그냥 이한일만 만나고 온 거라면 아마 일이 끝나자마자 연락을 했겠는데, 맥스스쿨 건이 걸려 버렸고 김승주 회장까지 등장하는 바람에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질 못했다.

“오광필 할아버지요. 기다리고 계실 텐데…….”

정말 몇 시간이나 지나서 이 생각이 떠올랐는지.

지원재는 내 당황한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는 분명 멀끔한 호감형 인상을 가지고 있긴 하나, 환하게 웃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사람은 보통 조금 조심해야 하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오랜 친구를 만난 기분도 동시에 드는 것은 왜일까.

그는 자신의 휴대폰을 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휴대폰도 학교에다 두고 가셨다더군요. 에듀파티 이사회가 소집되어 있던 상황이라 수시로 연락을 드려 놨습니다. 그쪽에서는 유 대표님 괜찮으신 것과 지금 현 상황 대략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그리로 가고 있단 것도요.”

정말 그의 휴대폰 통화 목록에는 이사진들 연락처가 거의 10분 간격으로 찍혀 있었다.

그 와중에 익숙한 번호…….

“이건…….”

“참, 저도 깜빡 했습니다. 이사님은 아니시지만 어쨌든 김윤지 양이 상황 끝나면 곧바로 연락 달라고 하셨…….”

“그걸 지금 말씀해 주시면 어떡해요!”

큰일 났다.

아니, 큰일은 이제 날지도 모르겠다.

나는 급히 운전 중인 지원재 실장에게 전화 한 통 하겠다는 사인을 보내고는 김윤지에게 통화를 걸었다.

지금 시각은 새벽 1시.

은성 고등학교까지는 아직 한 시간 남짓 더 내려가야 한다.

-뚜루루.

보통 여자들은 통화 대기음을 노래 같은 거로 하지 않나?

하지만 그녀의 휴대폰은 커리어 우먼 느낌의 그녀답게 원래 설정된 음 그대로였다.

-네, 실장님.

“여보세요?”

-유현덕? 야!

휴대폰 밖까지 소리가 흘러나올 정도로 큰 외침이었다.

귀가 찢어졌나 싶어 잠시 휴대폰을 귀에서 뗐는데, 옆에서 지원재 실장이 실실 웃고 있었다.

그리고 강재훈 원장도 헛기침을…….

“아, 누나. 하하.”

-너 정신 나갔어? 왜 거길 따라가?

“잘 해결되었어요. 아, 해결은 아직 다 된 건 아닌가? 학교에는 별일 없었어요? 축제는 잘 끝났고요?”

-축제가 문제야, 지금? 너도 맞았다며? 개새끼들…….

“별거 아녀요. 누나……. 울어요?”

정확하진 않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약간 이상하게 들렸다.

그리고 ‘울어요?’라는 내 말에 실실 웃던 지원재 실장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역시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는 긴장하기 마련이려나.

아무리 지원재 실장처럼 목석같은 사람도.

하지만 다시 한 번 귀가 떨어질 뻔…….

-아냐!

약간 흐느낀 것이 맞는 것 같다.

저 말을 끝으로 또다시 한동안 휴대폰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니.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 가기를 기다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만을 위해 살았던 전생, 그리고 나만을 위해 살고 있는 현생에서 나는 무엇을 정말 이뤄 냈는지.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분들이 나를 위해 이제껏 노력해 오신 것들을 나는 어디에다 보답을 해야 하는 것인지.

전생에서 봤던 두 분의 고난,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분들의 삶이 괴롭기는 했으나 불행하진 않았던 것 같다.

분명 삶의 어느 시점까지는 내가 전생에서 살아왔던 것처럼 희망 없는 삶을 사셨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희망이란 단어가 성공이란 단어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나름의 희망을 찾으셨던 것이 아닐까.

‘나’라는 희망을…….

그분들이 이뤄 낸 것은 ‘나’라는 자식이었다.

그럼 과연 ‘나’는 뭘 이뤄 낸 걸까.

언제라도 원하는 대로 마음껏 쓸 수 있는 돈?

믿을 수 있는 동료들?

-다시는 그러지 마. 나랑 인연 끊고 싶지 않으면…….

숨을 고르던 그녀가 다시 말을 했다.

아직 감정을 추스르지는 못한 것 같았다.

아마 그녀와 나 사이에 있었던 과거 많은 일들 때문에 걱정이 더 심했겠지.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

나를 신경 써 주는 사람.

“알겠어요. 걱정했어요?”

-걱정되지! 장난하냐?

“아…….”

말은 여전히 조금 거칠다.

평소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 내려가고 있어요. 내일 전화할 걸 그랬네.”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뭘 내일 전화해? 연락도 없이 그냥 왔으면 죽었을 걸?

그리고 저쪽 편에서 누군가가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얼핏 들린 목소리로 보아 오광필 할아버지와 주현필인 듯.

-잠깐만, 교장 선생님 바꿔 드릴게.

무슨 이런 일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닌데 다들 호들갑인가 싶기도 했지만, 막상 내가 위험에 빠지는 걸 나 외의 다른 사람이 더 걱정을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 이야기는 들었네. 큰일은 없었다며?

강재훈 원장이 큰일을 당했지.

나는 혹여 뒷자리에 앉아 있는 그가 들을까 봐 창문 쪽으로 살짝 몸을 기울였다.

“네. 별일 없었습니다.”

-주현필이 난리 났어.

이 이야기도 지원재 실장이 먼저 전해 줬나?

“네?”

-퓨처 금융투잔가 뭔가 하는 회사에다 맥스스쿨 넘긴다고 했다며?

말은 차보다 빠르다.

“아…….”

-나야 뭐 나름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하곤 있지만, 그래도 너무 막 결정한 것 아냐?

“결정한 것 아녀요. 저는 설득만 해 보겠다고 했어요.”

-설득?

“네. 자세한 것은 가서 말씀 드릴께요. 말 그대로 설득이에요. 제가 제 것도 아닌 걸 어떻게 넘기고 말고 하겠습니까.”

어차피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쪽에서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 이 정도로만 알고 있어도 되리라.

지원재 실장은 차 속도를 조금 더 높였다.

이미 시간이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선생님, 어젠 어떻게 되신 거예요? 그리고 코는 왜. 크큭.”

전날부터 오늘 아침까지 너무 많은 일이 있었기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그리고 멀쩡한 것으로 생각됐던 코가 아침이 되자 코주부인 양 부어올랐다.

급한 마음에 거대한 반창고를 코에 붙여 약간 가리기는 했으나, 여학생들의 예민한 감각은 피할 수 없었다.

“몰라. 자다가 어디 부딪힌 것 같아.”

그냥 이렇게 얼버무리고 다니긴 했지만 상당히 민망했다.

다 큰 어른이 어디 가서 싸우고 다닌다는 소문이 날 법한 일이었고.

정확히 말하지만 나는 싸운 건 아니다. 얻어맞은 거지.

일방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니 참 비참했다.

물론 정말로 ‘비참’이란 단어를 쓸 정도로 기분이 안 좋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다 커서 어디 가서 맞고나 다니고.

“너는 왜 반격을 안 하냐?”

이게 새벽에 상황을 보고받은 주현필의 첫 반응이었다.

그러게.

왜 반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누군가를 때려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사회 분위기는 무거웠다.

사실 에듀파티 이사진 중에 맥스스쿨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은 현재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밖에는 없다.

강재훈 원장은 이미 그 자리에서 김승주 회장과의 대화를 함께 들었고.

예상했던 것보다는 주현필은 침착했다.

그도 나이를 든 것일까.

젊었을 적 혈기왕성한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때였다면 아마 책상을 뒤집어엎었을지도 모르겠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해?”

이게 그의 말 전부였다.

그리고 이미도 원장과의 기나긴 대화가 이어졌고.

“위험한 사람이라면 굳이 부딪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규만 의원 때랑 상황이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이미도 원장님을 ‘설득’해 보겠다고 했으니 원장님께서 반대하시면 없는 일로 될 겁니다.”

“강재훈 원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그녀는 먼저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강재훈 원장의 생각을 물었다.

부녀지간이지만 워낙 따로 떨어져 산 기간이 긴 두 사람.

어색하지만 그래도 불편한 사이는 아니었다.

사실 이한일이란 사람의 위험성을 판단함에 있어 강재훈 원장만큼 제대로 의견을 내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가 맥스스쿨을 운영할 때 퓨처 금융투자가 맥스스쿨의 지분을 상당량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한일과 강재훈 원장 사이에 뭔가 과거가 있었을 확률이 컸으리라 판단했겠지.

강재훈 원장은 이미 나의 생각에 동의를 했다.

그는 천천히 이한일이란 사람의 배경, 그리고 퓨처 금융투자라는 회사의 정체를 설명했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나도 이때 처음 듣는 것들이 많았는데, 예상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말 그대로 ‘대부업체’ 성격의 금융 기업이며, 개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보다는 자금이 부족한 소규모 회사들에게 빌려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알기로는 국내 굴지 대기업들조차 현금 유동성이 떨어질 때면 퓨처 금융투자에게 일시적이나마 돈을 빌릴 때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대기업들.

아마 김승주 회장이 이한일과 안면이 있는 듯해 보였던 것, 그리고 일개 금융업체 회장이 대기업 회장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 것도 한성 그룹과 퓨처 금융투자 사이에 뭔가 거래가 있던 적이 있기 때문이리라.

강재훈 원장은 이한일과 그의 회사에 대해 이 정도로 설명을 마치고, 곧바로 그들이 대출을 상환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소문에 나오는 사채업자들의 무용담처럼 사람을 땅에 목만 나오도록 묻고 협박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런 방식으로 얻어 낼 수 있는 돈이 크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방식을 약간 바꿔 기업 자체를 담보로 잡아 대출을 못 갚을 경우 기업을 통째로 처분한다고 했다.

이 부분만 보자면 위험할 것은 없어 보이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음 내용이다.

만약 담보로 잡아 둔 기업의 가치가 대출금보다 작다는 판단이 들 경우, 기업은 그대로 살려 둔 채로 온갖 불법적인 일들을 시켜 자금을 회수한다.

불법적인 일에는 물론 기업 사기와 같은 것들이 포함되고.

이 과정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기업들, 그리고 그 기업들을 이끌던 운영진도 많다고 한다.

자살의 경우도…….

“그만해 주세요. 이한일 회장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겠어요.”

이미도 원장이 이 대목에서 끊었다.

맥스스쿨 입장에서는 차라리 이미도 원장 체제로 전환되었을 때 퓨처 금융투자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 옳았다.

온라인 사교육 시장을 개척한 상황이라 현금 흐름이 나쁘지 않았고, 충분히 대출금을 갚을 여력도 있었다.

하지만 그 제안을 전달받은 퓨처 금융투자는 화끈하게도 대출금에 대한 이자를 더 이상 받지 않겠으니 그냥 유지해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맞다.

부탁이었다.

부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올가미였다.

“그러니깐 유현덕 선생님 판단처럼 위험한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강재훈 원장님도?”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하네. 일어날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않으신단 말씀은…….”

“이한일이 아무리 그런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방식으로 이쪽에 압박을 가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야. 유 대표가 가용할 수 있는 현금도 꽤 되고, 거기에 한성 그룹까지 발을 걸쳐 놓은 상황이니 함부로 어떻게 하지는 못할 걸세.”

하지만 여지는 있다.

사업적, 또는 대출금을 가지고 장난치지는 못할지 몰라도,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김승주 회장 말처럼 돈이 많고 힘이 있다고 해서 목숨도 여러 개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위험 부담.

그만한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이미도 원장은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결국 현재의 맥스스쿨은 그녀가 운영하고 있는 것이기에 모두들 그녀의 결단을 기다렸다.

이 시점에서 이 자리에 김미연 부회장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요한 인물을 너무 늦게까지(이미 조금만 더 있으면 동이 틀 시간이었다.) 붙잡아 둔 것 같아 미안해질 찰나, 그녀가 나를 보고 씩 웃었다.

분위기상 소리를 내서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나를 보고 손짓으로 Okay 사인을 살짝 보여 줬다.

김승주 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도 역시나 이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 자신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걸까.

아니, 사실 그녀야말로 교육 사업가로서의 내 능력을 먼저부터 알아본 사람이었다.

어쨌든, 잠시 뒤 이미도 원장이 입을 열었다.

긴 이야기가 시작될까, 아니면 짧게 끝을 낼 것인가 궁금했는데, 그녀의 선언은 예상을 훌쩍 넘게 짧았다.

“알겠어요.”

그리고 이어진 정적.

어색함, 안도감, 아쉬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미도 원장이 다시 한 번 말을 했다.

“유 대표 감을 다시 한 번 믿어 보도록 하죠.”

“그럼…….”

“대신 가격은 충분히 받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이한일 회장이 큰 이익을 못 얻게요. 혹여 맥스스쿨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게 될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이익이 상당히 클 테니까요.”

이게 이미도 원장의 스타일이었다.

나를 뽑을 때부터 맥스스쿨 인수 문제, 그리고 그 외의 큰 결단이 필요할 때 내리는 통 큰 결정들.

“좋아! 그러면 끝난 건가? 유현덕이 앞으로 잘해야겠어. 이 일에 학교 일도 소홀히 하면 안 되니 말이야.”

오광필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말처럼 시원시원한 끝맺음이었다.

물론 이제 시작인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꽉 막혔던 수로가 뻥 뚫리듯, 이미도 원장의 결단에 답답했던 회의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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