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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56화 (156/200)

[156] 156화.

사업가로서의 마지막 선택

“너무 쉽게 말하는 것 아냐? 그래도 유 대표나 이미도 원장, 멀리 보자면 여기 강재훈 원장님께서 굉장히 공을 들여 지금의 맥스스쿨을 만들었는데.”

김승주 회장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했다.

하지만 아마 한 번은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었겠지.

전에도 주현필과 이미도 원장과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꽤 오래 전 일인데, 일군 학원을 마치 상품처럼 사고 팔 수 있느냐는 문제.

일반적인 경우라면 당연히 지키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맥스스쿨은 아마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재훈 원장의 상태를 보고 깨달았다.

이한일이란 사람은 합법적인 틀 안에서 경쟁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조규만과 유사하려나?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훨씬 위험했다.

조규만이야 학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

성정이 고약해서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짓들을 저질렀지만, 그래도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한일은 다르다.

그의 과거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그가 평생동안 일군 퓨처 금융투자란 회사는 원래 동네의 작은 전당포였다고 한다.

말 그대로 돈이 급한 사람에게 돈 이상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을 받고 일정 금액을 빌려주는 일.

지금은?

퓨처 금융투자는 웬만한 제3금융권 업체들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이걸 정말 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출을 해 주고 이자를 받아 자본을 늘리는 것으로만 이뤄 낼 수 있었을까.

“회장님께서 먼저 말씀을 좀 해 주셔야 저도 확신이 들 것 같아요. 제가 이한일 회장과 싸운다면 승산은 어떨 거라고 보시나요?”

승산이 없지는 않겠지.

하지만 출혈도 클 것이다.

단순히 자본적인 출혈이라면 충분히 다퉈 볼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외의 피해라면…….

김승주 회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동시에 강재훈 원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서로 무언의 사인을 주고받는 듯해 보이지만, 사실 그냥 같은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지 서로 뭔가 통하거나 한 건 아니리라.

“승산…….”

“유 대표?”

김승주 회장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강재훈이 나를 불렀다.

얼굴은 퉁퉁 부어 지나가다 마주치면 누군지도 못 알아볼 정도였지만, 그래도 정신은 온전한 것 같았다.

눈빛은 그가 맥스스쿨의 수장으로 처음 나를 만났을 때의 그 눈빛 그대로였다.

물론 그 만남은 썩 좋진 않았지만…….

“네, 원장님.”

“자네 능력은 내가 직접 겪어 봐서 잘 알지만, 솔직히 이한일은 조금 어려울 것 같네. 그 사람은…….”

“보통의 사업가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렇지.”

사업가 대 사업가, 사업 대 사업이라면 혹 전생의 경험이 내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을 높여 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물리적인 변수들이 작용한다면?

예컨대 아무리 내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일부 안다고 하고, 그에 따른 자본적 이익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칼 한 번 맞으면 죽는다.

그리고 아마 이한일은 거기까지도 갈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는 일.

김승주 회장은 특별한 말없이 그냥 인상만 구기고 있다.

그와 이한일 사이에도 뭔가 과거가 있어 보이지만, 먼저 말하기 전에는 물어볼 수 없겠지.

지금 필요한 것은 승산에 대한 그의 판단이다.

강재훈은 이미 어려울 거라 말했고, 지원재 실장은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김승주 회장은…….

“이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위험한 일이라고 해 두고 싶네.”

역시나.

위험한 일이리라.

“사업적으로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다른…….”

“내가 회사가 수십 개고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몸은 일반인들과 똑같잖나. 아무리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입고 살아도 사람 몸은 다르지 않네.”

“경쟁을 할 수 없다면 결국 원하는 걸 들어주는 수밖에 없겠죠.”

“그렇다고 그걸 그냥 냉큼 줘 버리는 사람이 어디 있나?”

냉큼 줘 버리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방금 본인 입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분명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가 지금의 맥스스쿨이 만들어진 것인데, 이걸 돈으로 환산하는 건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내가 직접 운영을 해 본 회사가 아닌지라 내가 나서서 이걸 판다고 하는 건 오만한 짓이고.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어차피 목숨이 없으면 회사고 돈이고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넘겨준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충분한 금액으로…….”

“그래도!”

“난 이해하네.”

나와 김승주 회장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강재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야말로 이번 일에 대해 가장 속 쓰릴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다.

마음은 좋지 않겠지.

나에게 뺏겼던 것은 그래도 원래 자신이 의도했던 대로 자신의 딸에게 갔으니 뺏겼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에는 분명 뺏기는 건 맞는 말.

“이한일이라면 유 대표 자네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다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일세.”

“저도 원장님 상태 보고 깨달았습니다.”

“그렇지.”

“최대한 합당한 가격 받아 내겠습니다. 이미도 원장님께 연락을 먼저 드리고 협의를 해야 맞겠지만, 설득하는 건 이제 해도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그리고 이렇게 쉽게 넘겨주는 이유가 있긴 했다.

이건 사실 도박이기도 한 것이, 이번에 맥스스쿨이 이한일의 손에 들어가면 그걸 과거처럼 유미진이 운영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럼 아마도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이 되거나, 또는 머리가 조금 더 돌아간다면 대형 학원장 중 한 명을 전문 경영자로 내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맥스스쿨은 강재훈과 이미도 원장이 가장 잘 안다.

전생의 기억을 또 다시 써먹는달까?

학원의 성공 여부는 학원 자체의 마케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큰 건 강사들의 네임 밸류다.

그런데 네임 밸류가 어느 정도 확보된 강사들이 운영자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까?

이미 이미도 원장도 한 번 겪은 일이었다.

강사들의 반란.

그리고 조금 더 과거로 가 보자면 강재훈 원장이 물러나게 된 것도 학원 지분을 들고 있던 일타 강사들의 마음을 우리가 움직였기 때문이었고.

이 판이 웃기는 것이, 내부에서 지키는 것보다 외부에서 흔드는 것이 더 쉽다는 점이었다.

맥스스쿨이라는 명칭은 껍데기다.

중요한 것은 알맹이고, 그 알맹이가 바로 강사며, 강사들은 아직 우리 편이라는 확신.

“다른 거 하나 새로 하면 되죠, 뭐. 흐흐. 아마 이미도 원장 나가고 퓨처 금융투자가 운영한다고 하면 크게 흔들릴 겁니다.”

“강사들 말인가?”

“네. 강재훈 원장님께서도 한 번 데이신 부분이죠. 물론 원장님의 입지가 당시에도 확고했다면 제가 이기기 어려울 수도 있었을 겁니다. 유미진 사모님 덕이 컸죠, 아무래도. 지금 퓨처 금융투자에 사모님께서 계신다는 소문만 돌아도 아마…….”

“모사꾼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하나. 강 원장님께서는 유현덕 대표 말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하십니까?”

김승주 회장의 목소리가 조금 풀어졌다.

강재훈 원장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눈을 잠시 감았다.

우리는 숨죽이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의 말이 나의 결정에 있어서 어떤 구속력을 가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 보다는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 좋지 않겠는가.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왜 초조하게 느끼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 계획이 말처럼 쉽게 진행될지는 모르는 상황.

나도 김승주 회장, 그리고 강재훈 원장의 조언이 필요했다.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성공 여부는 확신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한일이란 사람은 자기 물건이 흔들리는 걸 그냥 두고 볼 인물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나쁘지 않습니다.”

“일단 얻는 건 우리 쪽이고, 잃는 건 그쪽이 될 겁니다.”

“방금 유 대표 말은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뭐, 어차피 제가 뭐라 한들 자기 맘대로 할 사람이긴 하지만요.”

“허어. 뭐, 강 원장님께서 그렇게 판단하신다면야, 저는 외부 사람이니…….”

김승주 회장에게는 판단을 내려 달란 것보다도 조언을 받을 필요가 있어 그의 앞에서 이런 말을 다 꺼냈던 것이었다.

“회장님께서는 이한일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리라 생각하시나요?”

“으흠. 글쎄 나도 모르겠네. 혹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는 걸 깨달으면 복수심에 불타게 되어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질 수도 있긴 하지. 그런데 자네 말대로라면 거래 아닌가. 약간의 행패는 부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자네 계획대로라면 그를 속이는 건 아니니…….”

“주지 않겠다고 할 경우 생길 피해에 비한다면…….”

“자네 생각이 낫지. 단, 너무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럴 생각은 없었다.

지분이야 현재 주식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에 따르면 될 일이고, 그걸 100% 인정해서 받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주현필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원래 대주주 간의 주식 매매에서는 약간의 할인율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위험함을 안다면 이미도 원장도 이에 동의할 거라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그게 제가 듣고 싶었던 조언이었습니다.”

“자네 정말 학교에서 그거 계속할 건가?”

“네?”

응? 무슨 뜬금없는 소릴.

“학교에서 계속 일할 거냐고?”

“아, 그럼요. 사업에서 손 뗐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지금 보니 손을 뗄 사람이 아닌데? 자네 거기 말고 우리 기획실로 들어오는 건 어때? 이사 자리 하나 다시 줄 테니. 연봉도……. 그래! 내가 통 크게 최고급 대우를 해 주겠어!”

솔깃한 제안……이 아니었다.

글쎄, 왜일까?

전생이었다면 정말 좋은 기회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만족을 얻기 어려우리라.

자리, 지위, 돈…….

수백억이 생겨 봐야 쓰지도 못할 돈인데 왜 그리 얽매여 살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김승주 이 사람, 얼굴 표정을 보니 진심이다.

“아, 하하. 에이. 아닙니다.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요.”

“무슨 소리야? 사업은 결국 장사야. 경영학, 경제학 전공 허구한 날 해 봤자 감이 없으면 말아먹는 게 이 일이고.”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리고 회장님 밑으로 들어가는 게 사업인가요, 뭐.”

“왜 굳이 그렇게 교육 쪽에 목을 매는 건데?”

“교육요?”

“학원도 그렇고, 결국 학교도 본인이 주도해서 세우고 말이야. 그거 하고 싶으면 한성에서 이사 자리 하면서 해도 돼.”

이 사람, 말을 끊지를 않는다.

이 이야기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데.

“저, 그런데 여기에서 그런 이야기를 계속하시기에는 조금…….”

그제야 어색해하며 웃고 있는 강재훈을 봤다.

그는 머쓱한 듯 손으로 몇 없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나중에 그럼 이 이야기는 더 해 보자고.”

“학교에 계속 있을 겁니다.”

“나중에 말이야. 내려갈 때는 알아서 내려갈 수 있지? 아니면 차 한 대 보내 줘?”

“아닙니다. 실장님, 차 가지고 오셨죠?”

지원재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아무튼 별로 좋지 못한 일로 보게 됐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좋구먼. 강재훈 원장님, 처음 뵀지만 조만간 한 번 더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응?

강재훈 원장과 그는 별다른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는 않았다.

만렙 장사꾼의 넉살인가?

아니면 정말 뭔가 할 이야기가 더 있어서 그러는 것일까.

아무튼 그의 인사를 들은 강재훈은 억지로 다시 몸을 일으켰다.

지원재 실장이 옆에서 도와주었다.

얼굴을 집중적으로 맞았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몸이 원래 성치 않았던 듯싶었다.

나이도 나이인 만큼.

생각해 보면 오광필 할아버지가 건강한 거고, 원래 저 나이쯤 되면 여기저기 몸이 무너지는 곳이 생길 것이다.

“유 대표, 조만간 자네도 같이 한 번 보자고. 미연이도 함께 말이지. 음……. 그나저나 자네 아직 김윤지 양과는 만나는 사이인가?”

“아…….”

대답하지 못했다.

만나는 것인지 단순히 썸만 타는 것인지 나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사이에 진전이 있을 기회마다 뭔가 일들이 하나씩 크게 터졌었다.

이번 일로 또 다시 얼마 동안 거리는 좁혀지지 않을는지…….

“하하. 아냐 아냐.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 다음에 보자고!”

그렇게 그는 갑작스러운 등장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병원 밖으로 사라졌다.

그의 뒤를 따라 병실에 같이 있던 경호원들 넷도 우리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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