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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54화 (154/200)

[154] 154화.

어리둥절한 그를 보고 이한일이 말했다.

“강재훈 원장 정도로 손을 봐 주려고 했는데, 역시 젊어서 신체가 튼튼한 건지 모르겠네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유 대표도 맞았어?”

“바닥에 쓰러져 있었잖습니까. 맞았죠. 근데 정말로 괜찮습니다.”

다시 한 번 어께를 돌렸지만 정말 어떤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기 있는 걸로 맞았는데…….”

“뭐? 골프채? 이 사람이. 사람 죽어 그러다. 요즘은 돈 가지고 해결도 안 돼!”

“사람 죽게 놔두지는 않죠, 제가.”

이렇게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동안, 나는 이 논의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걸까 생각하고 있었다.

퓨처 금융투자는 지금 맥스스쿨의 경영권을 가져오려고 하고 있다.

지난번처럼 유미진이 다시 전면에 나설지, 아니면 다른 전문 경영인 같은 사람이 나설지는 모른다.

어찌되었건 기존에 사교육 시장에 있던 사람이 아닌 한, 이쪽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현재 시장은 맥스스쿨과 S 아카데미로 양분된 상태에서 다른 대형 학원들이 도전장을 내고 성장하는 상황이다.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점점 초창기의 수익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전생을 떠올려 보자.

매년 새로운 온라인 교육 업체가 생겨나고 문을 닫는다.

맥스스쿨의 시총도 상장 시기의 반 토막 아래로 내려가고.

살기 위해서 업체를 분할하여 수능시험 대비 학원, 공무원 시험 대비 학원으로 나눈다.

물론 그런 상황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고 S 아카데미 산하에 공무원 시험 대비 학원, 자격증 시험 학원을 만들어 두긴 했지만, 결국 이쪽은 시장이 커지는 만큼 수능시험처럼 수험생을 끌어 모으기 어렵다.

맥스스쿨 하나만으로는 수능시험 전문으로 가려고 했지만, 만약 그게 잘 되지 않는다면 지금 그쪽에 모든 것을 걸어 둔 이미도 원장에게 타격이 크겠지.

“조건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조건이요?”

“네. 맥스스쿨을 회장님 손에 들어가도록 만들어 드리는데 조건은 어떻게 되는지요?”

내가 생각해도 당돌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을 떠올리면 일어나서 욕지기를 퍼붓는다 하더라도 남들이 이해해 줄 상황이니 밀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그럼 손을 잡는 건가?”

“손을 잡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원하시는 것을 얻게 해 드린다는 거죠.”

“그럼 공짜는 어떤가?”

“장사하시는 분께서 공짜를 논하십니까. 이미도 원장과 제가 가진 지분 전량을 시장가에서 일정 부분 할인하여 팔겠습니다.”

“뭐? 유 대표. 생각 좀 하고 결정하지? 전량을 매도한다고?”

김승주 회장도 ‘전량’이라는 말에는 놀란 것처럼 보였다.

이게 방금 고심하고 꺼낸 나름의 승부수였다.

아마 김승주 회장은 일단 내가 이한일에게 적당히 보조를 맞춰 주고 큰 탈 없이 일이 해결되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게 깔끔하지 않겠습니까. 괜히 지분 가지고 있어 봐야 강재훈 원장님처럼 저에게 당할 여지도 있고요. 차라리 경영권을 확실하게 만들어 드리려면 이게 좋을 겁니다.”

“그래도……. 이미도 원장이 동의를 하겠어?”

김승주 회장은 이미도 원장을 직접 만난 적은 없다.

아마 김미연 부회장에게 그런 사람이 있다는 정도만 들어서 알고 있겠지.

동의?

동의는 이제 구해야 하는 거다.

일단 확실한 건 이게 그녀에게 특별히 해가 되지 않는 조건을 만들어 두는 것.

“쉽게 하진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저 또한 이미도 원장님 편에 서야 할 거고요.”

“강재훈 꼴을 보고서도 그리 결정하시려고요?”

이한일이 약간은 비웃듯 말했다.

확실히 강재훈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다만, 방금 막 지원재 실장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겉으로 상처는 많지만 그래도 건강에 문제는 특별히 없는 상태라고.

축 늘어져 있던 것은 탈진으로 인한 것이고, 병원에서 수액을 맞으며 조금 있다가 조금 전 막 깨어났다고 했다.

시간이 별로 지나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는 것을 듣고 있다 보니 생각보단 조금 흘렀다.

“사모님께서만 승낙해 주시면 되는 것 아닌가요? 어차피 이 일이 아무런 이유 없이 준비된 건 아닐 테니까요.”

정곡을 찌르는 말.

하지만 이한일이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말이기도 했다.

“그럴 리가! 잘못 보셨군요.”

“아, 사모님께서 회장님을 조종한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혹여라도…….”

“재밌네, 이 친구는 아직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서 나만 노려보던 그녀가 입을 정말 오랜만에 열었다.

예전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맥스스쿨을 뺏어 온 주주총회에서 인사를 나눴을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듯 보였다.

그때는 그냥 돈 많은 강남 아주머니처럼 느껴졌고, 실제로 대하는 데 어려운 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뭐랄까, 왜 이런 말도 있잖은가.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그 말이 딱 들어맞을 법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내가 당신을 무너뜨리려고 했다면 이렇게 했겠어? 그냥 어디다 묻어 버리지.”

서늘했다.

같은 말이라도 다른 사람, 예컨대 주현필이 그랬다면 농담으로 받아들였겠지만, 아마 이건 진심이었을 것이다.

“자자, 나는 내 사업적 판단으로 맥스스쿨을 가지겠다고 마음먹은 거고, 당연히 오랫동안 잘 키워 준 이미도 원장에게도 합당한 보상을 해 줘야지. 그건 걱정 말게나.”

그리고 나는 이한일이 이렇게 말하는 동안 유미진과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물론 티는 나지 않게 말이다.

이한일 같은 부류의 사람들(물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은 과거 했다는 일로 미루어 보아 남성적인 성격일 가능성이 컸다.

재밌는 것은, 밖에서 그런 사람일수록 가정에서의 모습은 정반대를 띠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뭐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관계는 없지.

어쨌든 자존심 강한 남자는 여자에게 휘둘리기 싫어한다는 걸 건드렸으니, 일이 잘 풀리든 풀리지 않든 기다리면 될 것이었다.

“이미도 원장에게 왜 그렇게 해 줘야 하는데요?”

유미진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이한일은 그녀의 이 말에 곧바로 대답하진 않았다.

다만 난감한, 하지만 서서히 흥분하는 듯 얼굴이 붉어졌다.

“이건 이한일 회장님께도 나쁠 일이 아닙니다. 어차피 경영을 위해서 취득한 지분이기에 경영권을 잃으면 지분을 더 이상 들고 있을 이유가 사라집니다. 나중에 한 번 붙으려는 것이 아니라면요.”

“그렇지! 이거 학교 선생이 왜 이런 것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 허허.”

김승주 회장이 덧붙였다.

요지는 이거였다.

“만약 이미도 원장이 자신의 지분을 시장에 뿌려 버리면 지금 퓨처 금융투자가 들고 있는 지분 가격이 엄청나게 내려갈 겁니다. 주식이란 것이 내려갈 때는 순식간에 내려가지만, 다시 올라오는 건 상당히 느리거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지.

적절한 가격으로 이한일에게 지분을 넘기려는 이유 말이다.

아무튼 돈 문제가 나오자 유미진도 입을 다물었다.

한 번 크게 데인 적이 있는 사람이라 섣불리 이런 일까지 참견하고 나서기는 어려웠으리라.

이한일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잠깐 보더니 내 쪽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설득은 그럼 유 대표가 해 주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기다리시면 좋은 소식 들려 드리겠습니다.”

우리 편에게 좋은 소식, 아니 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소식이다.

아마 그에게 있어서는 향후 몇 년간 뼈저린 후회를 할 수도 있겠지.

아니, 사실 그가 괜찮은 경영자를 그 자리에 앉혀 놓고 S 아카데미와 경쟁을 벌이는 구도를 만들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적당한 가격을 받고 넘기는 건 나쁜 조건은 아니리라.

그렇지 않는다면 좀 전 강재훈의 모습처럼 되는 사람이 내 주변에 또 생길 수도 있고.

어쨌든 방금 전에 나를 골프채로 때린 사람에게 어떻게 이렇게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고 협상을 하냐고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이런 일을 겪으면 당연히 겁에 질리거나 흥분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할 텐데, 이때는 나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차분한 감정이 유지됐다.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넘겨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이미 죽은 상황을 겪고 다시 돌아온 입장이라 그랬던 걸까.

정확히 뭔지는 나도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떨면 떨수록 적이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나는 떨지 않고 있었다.

“그나저나, 정말 괜찮습니까?”

“뭐가요?”

“내가 사람 한두 번 건드려 본 것도 아니고……. 그 정도였으면 어께 나갔을 정돈데…….”

제대로 맞았다면 머리통이 날아갔을 거다.

하지만 정말로 아무 고통도 없었다.

“이건 지분 금액 조금 더 쳐 주시는 걸로 퉁 치겠습니다.”

“허허. 이거, 이거. 일단 이미도 원장과 대화나 얼른 해서 연락을 주시죠.”

그 일을 천연덕스럽게 묻는 그도 참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걸 또 별일 아닌 양 대답하는 나도 남들이 본다면 정말 이상한 녀석이리라.

김승주 회장은 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눈빛을 나에게 보냈지만, 사실 그와 직접 만난 것은 단 한 번밖에 없었기에 그런 친밀함이 오히려 되게 어색했다.

나는 입모양으로 ‘나중에요’라는 말을 소리 없이 했다.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마냥 어려웠던 사람과 이런 자리에서 조금 친해진 것 같기도 했다.

그것도 다른 편이 아니라서 더욱 다행이기도 했고.

“그럼 이걸로 된 건가? 이거 바쁜 사람들이 왜 쓸데없는 일에 이리 모여서 시간을 낭비한 건지, 원.”

“시간도 많이 늦었군요. 회장님이야 알아서 잘 가실 거고, 유 대표는 우리가 모셔다 드리죠.”

미쳤냐, 이 사람아?

당신들 차 타고 왔다가 골프채에 얻어맞았는데 다시 당신들 차 타고 가라고?

“아닙니다. 저는……. 김승주 회장님 차 얻어 타고 가겠습니다. 저 때문에 여기까지 와 주셨는걸요.”

“허락을 받는 게 아니라 통보구먼?”

응?

오광필 할아버지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나이가 들면 다들 성격이 비슷한 구석이 생긴다더니만.

“안 태워 주실 건가요?”

“유 대표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굳이 부탁한다면 태워 줘야지, 뭐. 김 기사!”

“네, 회장님.”

경호원인 줄 알았던 사람들 중 한 명이 기사였던 것 같다.

그가 대답과 동시에 워낙 빠르게 우리 쪽으로 다가와 이한일 쪽 사람들이 일순 긴장한 듯 보였다.

이런 걸 보면 내심 김승주 회장이나 이한일은 서로 썩 친한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과거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서로 든 나이만큼이나 긴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았다.

“차 대기시켜. 우리 가도 되겠지, 이한일 회장?”

“물론이죠. 제가 어찌 회장님을 막겠습니까.”

“언제라도 막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잖아, 자네는. 아무튼 이렇게 물리적으로 부딪히는 일은 좀 피했으면 하네.”

“허허. 유 대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유미진은 아무 말 없이 김승주 회장에게만 꾸벅 목례를 했다.

그리고 아마 내가 생각한 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더 분해하지 않을까.

그러면 서리가 두어 번 더 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올 때는 거의 끌려오다시피 들어왔지만 그래도 나갈 때는 당당했다.

“무슨 생각으로 지분 전체를 넘기겠다고 한 거야? 이미도 원장과는 대화도 없이?”

“아, 말씀드리고 생각을 여쭙고 싶었는데 자리가 자리인지라 짧은 생각으로 판단을 먼저 했습니다, 회장님. 그건 그렇고 회장님께서 직접 와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꿈에도 몰랐다.

대기업 회장이란 사람이 이리 가벼운 일에 직접 움직인다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아니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런 사람들은 아방궁 같은 곳에 꼭꼭 숨어서 밖의 모든 일을 손가락으로 지시하는 모습이라고 상상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첫 만남에서의 불편함과 어려움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 어려웠던 만남.

이 사람이 그때 그 사람과 동일인인가.

“응? 유 대표, 자넨 우리 한성의 파트너야. 전에는 임원도 했었고. 우릴 뭘로 보는 건가?”

이 말에 오히려 이제까지 편안해 졌던 분위기가 다시 진중해졌다.

“자넨 자네 자신을 조금 아낄 필요가 있어. 얘기 듣자 하니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며, 여길? 제 정신이야?”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돈, 정치, 어께는 항상 같이 다녀. 게다가 퓨처 금융투자가 그쪽에서 성장한 대부업체란 건 알고 있잖아?”

학생을 가르치는 듯한 말투.

아니, 부하 직원에게 하는 말투이려나?

그래도 상당히 신사적이었다.

정말 부하 임직원이었다면 이렇게 대하지 않았을 수도…….

그리고 다음 이어진 말이 정곡을 찔렀다.

어쩌면 나도 계속 그렇게 간단히 생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전생에서처럼 나 하나만 챙기면 되는 입장으로…….

“거기에 사업 손 뗐다는 사람이 왜 거길 지발로 기어 들어가고 그래? 학교에서 근무하겠다고 했으면 학교에서 그냥 버티고 있으면 우리 사람들 와서 막았을 거 아냐?”

“그건…….”

“자네가 그런 성격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어. 하지만 그러다 진짜 골로 가는 수가 있어. 자네 하나 죽고 끝나는 게 아니야. 자네와 함께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도 같이 무너지는 거야. 알아들어?”

‘같이 무너진다’.

꼭 가정을 꾸려야만 책임이 생기는 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역할에 맞는 의무와 책임을 가진다.

전생의 나.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이 전부였던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책임만 지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가족은 아니지만 동료들이 있다.

나 하나에게 문제가 생기면 나 하나로 끝나는 상태가 아니다.

내가 무너지면 같이 무너진다.

“그나저나 어디까지 태워 달라는 거야? 혹시 은성 고등학교까지 태워 달란 말은 아니겠지?”

“병원으로 가 봐야죠. 강재훈 원장님 좀 뵙고 가야겠습니다. 아까는 그쪽 차 타기 싫어서 이렇게 둘러댔지만 이제 혼자 갈 수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속 좁은 사람처럼 보여? 거기 어디야? 김 기사, 아까 어디 병원으로 갔는지 들었었지?”

우리는 지원재 실장과 강재훈이 있는 병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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