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152화.
“여보세요? 아, 오랜만이네요, 선생님. 저, 그런데 죄송한데 지금 전화를 받기가 어려워서요.”
다들 달리 할 말도 없었기에 김윤지의 통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물론 대놓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냥 침울한 표정, 무표정, 흥분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딱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이미 할 수 있는 일은 김미연 부회장이 해 둔 상태였고, 조금 있으면 그녀가 보낸 한성 그룹 관계자들이 퓨처 금융투자 본사에 도착할 것이었다.
“네? 뭐라고요?”
하지만 그녀의 놀란 목소리에 다들 엿듣는 모습을 감추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오광필의 휴대폰도 울렸다.
역시나 나이가 많기에 젊은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어색한 동작으로 주섬주섬 품안에서 폰을 꺼내든 오광필은, 곧바로 받지 않고 상대방을 확인했다.
꽤나 오랜 시간을 들여서.
옆에 있던 주현필만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어? 지원재 실장인데?”
“저기, 이미도 원장님은 지금 오시는 중인가요?”
오광필이 말을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김윤지가 한손에는 휴대폰을 그대로 든 채로 말했다.
주현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미도 원장도 연락을 받았지만, 그녀는 맥스스쿨 본사에 있었기에 여기까지 오기 너무 멀었다.
어차피 바로 근방에 퓨처 금융투자 본사가 위치해 있으므로 필요하면 바로 그리로 가면 될 일이었고.
오광필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지금 잘 가고 있어? 어…… 어?”
“강재훈 원장님도 오늘 출근을 하지 않으셨다는 연락일 거예요.”
이쯤에서 강재훈 원장과 김윤지의 관계를 한 번 따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사실 둘이 무슨 특별한 사이는 아니었다.
이미도와 강재훈처럼 부녀지간도 아니었고.
다만 김윤지가 조규만에게 받아 운영하던 성공 대입학원을 유현덕이 인수했고, 그걸 다시 강재훈 원장에게 맡긴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기존의 강사들은 김윤지 원장과 유현덕을 잘 알고 있었고, 그쪽에서 현재 S 아카데미의 지원재 실장과 김윤지에게 연락을 준 것이었다.
아무튼 따지는 것에 별 의미는 없지만, 간발의 차이로 김윤지가 그 소식을 먼저 전달받은 것이다.
“어. 그래요. 방금 윤지 씨도 연락을 받았어. 이미도 원장? 알겠어. 그쪽은 내가 연락을 하도록 하지. 얼마나 걸려, 그나저나?”
김윤지는 알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끊고 오광필의 통화를 듣고 있었다.
휴대폰 건너편에서 지원재는 30분 이내로 도착할 것 같다는 말을 하고 끊었다.
“윤지 양도 조금 기다려 봐. 어차피 여기서 거기까지 가려면 족히 두 시간은 잡아야 하고. 지원재 실장 거의 도착했다고 하니 소식을 기다려 보자고. 김미연 부회장도 사람 보냈다고 하니깐 곧 뭔가 들려올 거고. 내 생각엔 험한 일을 하려고 했으면 그렇게 자기를 드러내진 않았을 것 같아.”
⁂
“강재훈 원장님!”
그는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모셔 온다고 표현은 했지만 두 명의 거한에 양 팔을 붙잡혀 끌려온 상태.
피떡이 되어 있는 사람의 모습.
정말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몸에 힘은 하나도 없는 듯했고, 집중적으로 얼굴만 맞은 것인지 많이 부어 있었다.
“야, 너무 세게 다루지 말랬잖아!”
“죄송합니다, 회장님. 5분 정도였는데 저항이 거세서…….”
그의 말마따나 데리고 온 사내 한 명의 정장도 여기 저기 뜯어진 상태였다.
“에휴. 아무튼 대충 상황은 아시겠죠? 유 대표, 아니, 유 선생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이리 다칠 수도 있고, 아무 일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강재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이한일이 이렇게 말하고 나서야 그에게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정말 끔찍한 건, 유미진의 얼굴에는 심지어 미소가 서려 있었다는 것.
아무리 썩 좋지 못한 부부사이였다고는 해도 오랫동안 같이 산 사람인데…….
생각을 해야 했다.
이런 일을 처음 겪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사람이 실제로 얻어맞은 모습을 보는 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양팔을 붙잡힌 채로 젖은 빨래처럼 늘어져 있는 그를 잠시 봤다.
“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습니까?”
놀란 것인지 긴장한 것인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이한일은 웃지는 않았다.
다만 마치 자주 있는 일인 양 편안한 표정.
“아, 다친 것 말인가요? 허허. 그건 저항을 워낙 심하게 하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여기 오는 것 까지는 수월했는데 유 선생 앞에 가야 한다고 하니 절대로 못 간다고 했거든요. 보기보단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을 겁니다.”
“보기보단…….”
“걱정하지 마, 적어도 죽진 않으니…….”
‘죽는다’ 라는 말에서 유미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역시나 그녀가 여기에 있는 것, 그리고 이한일이 이런 일을 꾸민 것은 강민호의 죽음과 관련이 있겠지.
어쨌든 그래도 강재훈은 강민호의 아버지가 아닌가.
어떻게 이렇게…….
“장난…… 하십니까?”
일반적으로라면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도 지금 저기 늘어져 있는 강재훈처럼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입밖으로 나온 말은 이것.
‘장난 하느냐는 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재훈의 몸이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그와 거의 동시에 강재훈을 붙잡고 있던 남자 하나가 내 뺨을 후려쳤다.
어찌나 무거운 스윙이었던지 뺨만 돌아간 것이 아니라 나또한 강재훈처럼 바닥에 나 뒹굴 정도였다.
“이 싸가지 없는 새끼가!”
이렇게 소리 지르면서.
내가 이런 식으로 얻어맞은 것이 언제였더라?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최근이라고 치면 강민호와 엎치락 뒤치락 하며 싸울 때였던 것 같은데.
김윤지와 함께 갔던 산장에서 말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히 마비가 되어 통증을 못 느끼는 줄 알았다.
그리고 아마 내가 나뒹구는 모습을 보고 있던 이한일이나 유미진, 나를 직접 때린 이 처음 보는 아저씨고 마찬가지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얼빠진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
‘너는 이런 식으로 죽진 않아.’
머릿속에 떠오른 이 한마디.
실로 오랜만에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죽음에 대해, 그리고 죽을 위기 상황에서 초연하게 대처하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내가 한 번 죽었던 몸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다 보니 자꾸 내가 내 스스로 위험한 상황에 걸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하지만 다시 죽은 적은 없었다.
아니, 사실 있긴 했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갔을 때 말이다.
기억은 다시 되찾았으나 아직도 영 나 자신으로 느껴지진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할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뜬금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죽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제야 이한일이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챘던 것 같다.
“멀쩡한 것 같은데?”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몸에서 힘이 솟는 그런 기분?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뭐랄까, 두려움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두려워한다.
방금 전까지 나의 온몸이 떨리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붙기 전까지는 누가 강한지 결정되지 않는다.
두려움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감정일 뿐, 막상 두려워하던 미래가 현실이 되면 감정만큼 두려울 일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야, 제대로 안 하냐? 너무 살살한 것 아냐?”
이한일이 나를 방금 때린 남자에게 말했다.
실수인 것처럼.
하지만 그의 실수가 아니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충격을 거의 받지 않았다.
그냥 바닥에 쓰러지면서 느껴진 카펫의 감촉만 뜬금없이 느꼈을 뿐이었다.
아무튼 이한일이 그렇게 말하자 강재훈의 다른 쪽 팔을 붙잡고 있던 남자가 나에게 몸을 날렸다.
굳이 뭘 몸을 날린다는 표현까지 하느냐 싶겠지만, 그게 내가 본 모습인걸 어쩌겠는가.
그만큼 이한일의 권위는 이들에게 절대적이란 의미였다.
막 일어선 나에게 그 남자가 이번에는 주먹을 휘둘렀다.
사무실 안이라 굳이 달릴 공간이 나오지는 않았기에 돌진하는 힘이 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피할 생각조차 하질 못했는데, 그만큼 방금 전의 충격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마치…….
퍽!
아, 또다시 몸이 붕 뜨는 기분.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아픔도,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얼굴에 주먹이 닿았다는 느낌 정도.
어쨌든 ‘아프지 않다’와 ‘맞지 않았다’는 엄연히 다른 표현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몸에 붙은 먼지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 둘의 표정이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변했다.
그러고는 나와 이한일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어라?”
“허허. 이거, 이거. 놀라운 걸?”
그는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사실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고.
그냥 나도 모르던 나 자신을 발견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내가 알던 내 몸이 아니랄까?
이렇게 혼자 생각할 시간은 오래 주어지지 않았다.
이한일이 책상 옆에 우산꽂이에 꽂혀 있던 골프채를 들었다.
이번엔 골프채로 맞는 거냐.
하지만 방금 전까지처럼 몸 대 몸으로 붙는 것이 아니라면 한 방에 이 세상을 뜰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손바닥과 주먹은 피하지 않고 골프채는 피하냐고 묻지 말라.
직접 눈앞에서 골프채가 붕 소리를 내며 날아오는데 안 피하고 버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어쨌든 나는 이번 것은 가까스로 피했다.
그것도 완전히 피한 건 아니었고, 어께 윗부분을 살짝 스친 정도.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허공을 가로지른 골프채는 이한일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유미진의 얼굴 근처로 궤적을 그렸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고(어차피 골프채가 그녀를 살짝 빗겨가는 상황이었다), 곧바로 소리를 질렀다.
방 안의 사람들은 그제야 이성의 끈을 다시 잡은 듯했다.
“뭐하는 거예요!”
“어이쿠. 미안, 미안. 이거 워낙 신기해서.”
미친 인간.
신기하다고 골프채를 사람 머리를 향해 휘두르는 인간이 어디 있는가.
이한일은 저렇게 말하면서도 유미진 쪽을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뚫어져라 나의 반응만을 확인하는 듯 했다.
뺨 한 대, 죽빵 한 대, 그리고 골프채로 어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까지 총 세 대를 맞는 동안 내 몸 어디에서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쾅!
닫힌 문이 벌컥 열리며 반대쪽 벽을 쿵 하고 쳤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고, 불쾌해하고, 반가워하는 갖가지의 표정들이 방 안의 사람들의 얼굴에 스쳤다.
먼저 다섯 명의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들어오고, 뒤따라 반가운, 하지만 예상하지는 못했던 얼굴이 보였다.
“그만하시죠, 이 회장!”
“허허. 이렇게 직접 여기까지 행차하실 줄은……. 오랜만에 뵙습니다, 김 회장님.”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예상했던 반가운 얼굴도 보였다.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평소의 모습과는 달라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멀쩡했다.
나는 쓰러져 있는 강재훈을 쳐다봤다.
이한일의 말과는 달게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지원재 실장은 바로 내 의중을 파악하고 강재훈에게로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