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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51화 (151/200)

[151] 151화.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

마치 내가 도망가리라고 생각한 것처럼 뛰어오는 남자들.

솔직히 말하자면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다.

죽었다 살아난다 할지라도 무서운 건 무서운 것이다.

그 누가 당당하게 이런 상황에서 ‘나는 두려움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학교였다.

그리고 나는 교사였고.

아이들이 위험해지는 상황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건 나였으니.

내가 도망가지 않는 한 애들은 건들지 않을 것이다.

“저, 저. 유현덕…….”

오광필 할아버지도 말을 잇지 못했다.

계속해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에 몸이 움찔거리지만, 그래도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두려워하냐고?

잘못한 게 없으니 두려운 것이다.

차라리 그런 일이라도 있다면 해결 방법이나 찾겠는데…….

“할아버지, 혹시 저 사람들이 저 데려가면, 저 좀 찾아주세요.”

“그게 무…… 무슨 소리야?”

“뭘 하려는지 는 모르겠지만 일단 하자는 대로 해야 할 것 같아요. 보안요원들 좀 불러 주시고요.”

보안요원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쉽게 끌려가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소방차 소리가 들릴 정도니 불이 난 지는 꽤 지났을 것이고, 그동안 이쪽 요원들이 먼저 출발했다면 돌아오는 데도 그만큼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제 지척이다.

제일 앞서 달리던 남자가 속도를 줄였다.

달리기는 시작했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왔기에 숨이 찰 정도로 급히 달려오진 않았던 것 같다.

“유현덕 선생님.”

의외로 공손한 말투.

하지만 위압감이 있었다.

“네. 접니다만, 누구십니까?”

“도망가질 않으시는군요?”

“도망갈 곳이 있습니까?”

“허허. 여유도 넘치고. 어쨌든 저희와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

누군지 묻는데 밝히지를 않는다.

아니 혹시 내 질문을 잊은 건가?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었을까?

“어디로 말입니까?”

“가 보시면 압니다.”

이렇게 대답하며 오광필 할아버지를 슬쩍 쳐다봤다.

어디인지, 누가 불렀는지를 알려주기 싫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단순히 ‘얘 좀 데려가겠습니다’ 하는 눈빛이었을까.

달리 방법은 없겠지.

학교에서 이들과 싸울 수도 없고 말이다.

주현필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혹시나 좋게 대화를 해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저항하는 건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처음 보는 남자들이 우르르 강당으로 들어와 이쪽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이러고 오래 있어 봐야 좋을 건 없겠지.

“저 다녀올게요.”

“잠깐, 당신들 누구쇼? 이거 너무한 거 아니오?”

“교장 선생님이신가요? 어차피 축제 기간이고 잠시 모시는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 그럼.”

그가 옆에 서 있던 다른 사내에게 눈짓을 하자 두 명이 내 양옆으로 섰다.

팔을 끌고 가려는가.

애들 앞에서?

퓨처 금융투자의 이한일이나 유미진, 아니면 곽한영 의원이려나.

하긴 곽한영은 나를 이렇게 데려갈 이유가 없다.

어쨌든 애들 앞이다.

여기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 줘야 좋을 건 없기에 나는 조심스레 잠시 붙잡혀 있던 양팔을 빼고 스스로 강당 문으로 걸어갔다.

조규만이 그랬던 것처럼 무슨 창고 같은 곳이나 갈 줄 알았건만, 이번에 온 곳은 그런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장소였다.

“반갑습니다. 오시는 길에 불편한 건 없었나요?”

이렇게 말하며 한 손을 내미는 중년의 남자.

날 데리러 왔던 남자들만큼 덩치가 좋거나 키가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다부진 몸과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가 들어왔음에도 아무 말 없이 나를 뚫어져라 째려보고 있는 유미진이 있었다.

건물은 의외로 아예 대놓고 이곳이 어딘지를 말해 주는 그런 건물이었다.

‘퓨처 금융투자조합’

이름은 그럴 듯하지.

하지만 나는 이미 이 사람들은 단순한 금융업계 종사자가 아님은 알고 있었다.

지하 주차장으로 차가 미끄러지듯 내려갈 때만 하더라도 ‘여기 들어갔다가 살아서 나오지 못하려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날 데리러 온 남자들은 나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생각해 보면 내가 여기에서 도망쳐 봐야 어디로 도망치겠나 싶기도 했고.

“처음 뵙겠습니다. 유현덕입니다. 사모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더라.

주주총회 때였던 것 같다.

그때만 하더라도 인사 정도는 나눴겠지만, 강민호가 죽고 나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겠지.

“아직 이야기를 나눌 기분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얼굴은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이쪽으로 앉죠.”

주먹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이라기에 굉장히 거칠게 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첫인상은 상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렇다고 정반대라고 할 수도 없긴 했지만.

교양 있어 보이는 말투와 몸짓, 하지만 분명 눈빛은 굉장히 날카로웠다.

“조금 불편하게 모셔서 죄송합니다, 일단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 불편한 이야기가 오가겠죠.”

“허허. 강단 있는 분이시군요. 보통은 저 친구들이 데려오면 굉장히 위축되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게 목적이지 않을까.

위축시켜서 제대로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아마 그런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삥을 뜯어 왔겠지.

어쨌든 이들이 나를 왜 데려왔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말을 길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우리가 맥스스쿨 지분을 상당량 가지고 있는 건 아시죠?”

역시나 바로 일 이야기.

그런데 맥스스쿨 지분 문제가 거론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S 아카데미야 지원재 실장이 나를 대신해서 운영하는 상황이지만, 맥스스쿨의 이미도 원장은 나를 대신에서 운영하는 건 아니었다.

대주주 중 한 명일 뿐이지.

“많이 빼셨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아직 많이 가지고 계시겠죠.”

“빼 봐야 작은 돈입니다. 그건 그렇고, 유현덕 대표는 맥스스쿨의 경영과는 관계가 전혀 없으신 건가요?”

관계가 있고 없고가 그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라 그냥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단단한 체격.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리라.

정치판이나 경제계나 과거에는 이런 사람들과 관계가 없는 경우는 별로 없었겠지.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권력은 결국 돈과 물리적 힘, 그리고 머리에서 나온다는 건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는 내 대답을 잠시 기다리는가 싶더니 문가에 서 있는 두 명의 남자 중 한 명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태균아.”

“네, 회장님.”

호칭은 ‘회장’.

“그분 모셔 와.”

나와 대화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말투였다.

역시나 예의바른 듯 들리는 그의 말투는 과거 음지의 조직세계에서 양지의 사업으로 넘어온 사람의 허울뿐인 가면일까?

지금도 사실 말이 금융투자사지, 알고 있기로는 대부업과 유사한 방식으로 회사가 운영된다고 들었다.

강재훈은 어쩌다가…….

아니, 유미진과의 관계를 보면 강재훈은 결국 이 사람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돈이 필요해서 빌렸을 수도 있지만, 필요하지 않은 돈도 종종 대출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테니.

이한일의 지시를 받은 남자는 다시 한 번 90도로 숙여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그분’이라면 누굴까.

“자, 대화를 해 보려고 모셔왔으니 대화를 해 보셔야죠. 그래야 서로 좋습니다. 굳이 험한 모습을 볼 필요도 없고요. 사업 아닙니까, 사업.”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무엇 때문에 저를 여기로 이렇게 데려온 건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슨 대화를 말씀하십니까.”

살짝 떨려왔다.

아무리 당당한 것처럼 말은 하고 있어도 이런 자리는 항상 불편했다.

김승주 회장을 만날 때도 약간은 이랬던 것 같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들이다.

“맥스스쿨을 다시 가져오려고 합니다. 유 대표가 여기 유미진 이사에게서 뺏어간 것을요.”

역시나 이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역시나’이면서 동시에 ‘이걸로?’라는 의문도 들었다.

회사 하나 가져가는 거라면 굳이 이런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게다가 나는 이미 이들도 알고 있듯이 그쪽 일에서는 손을 뗀 상태.

물론 내 지분이 주총 때 힘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이미도 원장의 뒤통수를 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시다시피 저는 그쪽 일에서는 손을 뗐습니다. 지금은 그냥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고요. 그런데도 저를 굳이 찾으신 건…….”

“유 대표 도움이 필요하니 이렇게 모신 겁니다.”

퓨처 금융투자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지분만으로 뒤집기는 어렵겠다는 의미.

나를 협박해서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뜻일까.

그나저나 모시다니.

이렇게 어께 떡 벌어진 남자들을 잔뜩 보내 강제로 데려왔는데 어떻게 모신다는 표현을 쓰는가, 자꾸.

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타이밍이 딱 맞군요. 자, 우리가 만난 것이……. 5분 정도 됐나요? 처음으로 기회를 드립니다. 저와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유미진이 있는데 나와 손을 잡겠다는 말을 하는 이한일이었다.

그녀는 절대로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인데.

다음으로 든 생각은 내가 그의 제안을 받을 정도로 그가 뭔가를 잡고 있다는 점.

뭔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걸 깨닫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나는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아니, 잡을 생각도 없었다.

협박으로 이뤄지는 협의는 협의가 아니다.

그냥 협박일 뿐이지.

대화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

“회장님, 모셔올까요?”

“그래. ‘모셔’ 오지.”

그는 ‘모셔’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리고 ‘태균’이라고 불렸던 사내가 다시 문밖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었다.

“어?”

나는 이 말밖에는 하지 못했다.

왜 이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유미진과 이한일이 나를 상대로 누군가를 데려와 협박을 한다면 ‘그’가 가장 유력했다.

“자, 이제 다시 대화를 해 볼까요. 보기 전에 믿고 손을 잡으셨다면 가격이 쌌겠지만, 이제 조금 가격이 올랐습니다.”

“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요!”

“어쩌겠나. 유현덕인데. 그냥 교사라고 보기도 어려운 사람 아닌가. 너무 흥분하지 말고, 지금 지원재 실장이 곧바로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잔뜩 흥분한 주현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의 뒤로 힘을 이기지 못한 의자가 내동댕이쳐졌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갑작스런 움직임에 의자가 땅에 떨어지며 큰 소리가 났기 때문에 다들 깜짝 놀랐으나, 딱히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은성 고등학교 이사회 회의실.

학교 축제 막바지에 일어난 사고로 인해 이 자리에 이들이 모인 건 밤이 다 되어서였다.

방금 자리에서 일어난 주현필이 회의실 입구 쪽으로 걸어가자 오광필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어디 가려고?”

“찾아야죠. 유현덕 찾아와야죠. 지원재 실장 혼자서 되겠습니까?”

“별일이야 있겠어? 해코지할 거였다면 그렇게 대놓고 데리러 오지도 않았을 거고. 학교 사방에 CCTV가 쫙 깔려 있는데 말이야.”

“여기로 가면 됩니까?”

학교로 찾아와 유현덕을 데리고 간 사내들은 오광필에게 명함 한 장을 줬다.

퓨처 금융투자.

이렇게 대놓고 자신들을 밝힌 상황이라 오광필은 유현덕에게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일단 잠시 미뤄 두었고.

단, 논의는 해야 할 일이기에 이사회를 소집하고 이들을 부른 것이었다.

“저희 쪽도 사람 보내 두었습니다. 주현필 이사님께서 직접 가지는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차라리 지금은 여기에서 소식을 기다려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사진에는 한성 그룹 부회장 김미연도 와 있었다.

“그나저나 아이들 상황은…….”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 워낙 떠들썩한 분위기라 그 모습 본 학생들도 별로 없고, 물어보는 학생들에게는 학교 일 때문에 잠깐 나갔다고 했으니까.”

“하아…….”

주현필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자꾸만 이런 일이 유현덕에게 일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이미도 원장과 신성 학원을 키우기 위해 아등바등하던 시절.

그때만 하더라도 유현덕은 그냥 여느 대학생 강사들과 다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교장 선생님, 저는 가 봐야 하겠습니다.”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김윤지가 말했다.

그녀는 그녀대로 한동안 조용했던 그녀와 유현덕의 인생에 뭔가 다시 닥칠 거라는 걸 느끼는 중이었다.

‘학교라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역시나 안일한 생각이었다.

그나마 축제 시간에도 기숙사에 들락날락거리는 학생들 때문에 기숙사에 남아 있었기에 유현덕이 낯선 사람들과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그랬기에 그녀는 이곳에 있던 것이었다.

아마 그 자리에 그녀도 있었다면 무슨 짓을 해서든지 막았을 것이다.

오광필은 김윤지를 잠시 보고 있었다.

자신이 말리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주현필이야 성격상 그가 간다면 괜히 일이 더 커질 우려도 있었기에 막았지만, 김윤지와 유현덕은 다른 관계였다.

하지만 그녀가 그곳에 간들 뭘 할 수 있을까.

삐비빅. 삐비빅.

오광필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을 때, 김윤지의 휴대폰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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