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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49화 (149/200)

[149] 149화.

“같이 가서 말해 줄까?”

“아닙니다. 어차피 관계없는 일이시잖아요. 그러고 보니 교장 선생님도 돈 많으신데 왜 저한테만 그러실까요.”

“그건 나는 교장이고 유 선생은 기간제니까. 의심을 하는 거지. 끄나풀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고. 그런 것이 아닐까?”

끄나풀이라.

결정권이 나에게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나 스스로가 끄나풀이 될 수가 있겠는가.

생각을 해도 한참을 잘못 생각했네.

“알겠습니다. 일단 가서 대화를 나눠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냥 순수하게 제가 일을 잘하니깐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요.”

“네가 무슨 일을 했다고 잘하고 말고를 판단해.”

그에게 인사를 하고 교무실로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박성현 부장과 임선욱 부장 모두 교무실 입구 쪽에 같이 서 있었다.

그리고 교장실에서 나오는 나를 보자마자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보고 그냥 오라고 해도 될 일인데.

부담을 가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뭔가 다른 생각이 있어 그렇게 한 건지…….

부장 회의가 오늘 아침이었으니 아마 내가 교장실로 불려 간 이유를 예상했으리라.

“유 선생, 이야기 좀 하지?”

“네, 그렇잖아도 제가 먼저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회의실로 가자고.”

표정을 살폈지만 읽기 어려웠다.

이 두 명이 어디에서 일하나 왔더라…….

기억을 되짚었으나 떠오르지 않아 답답했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더라면 미리 신상 정보를 좀 봐 뒀을 텐데.

하긴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었겠지.

40 중반의 나이대로 보아 분명 경력이 많을 것이고, 학교 경력이 많은 분들을 우선해서 각 부서 부장 선생님으로 배치했을 것이니 학교 출신들이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 사이 회의실에 도착했다.

본부 교무실 바로 위층이었다.

“커피 한 잔 타 줄까?”

“아닙니다. 많이 마셨습니다.”

“알겠어. 나는 한 잔 마실 거고, 임 부장은?”

“저도 한 잔 타 주세요.”

말투로 보아 박성현 부장이 임선욱 부장보다 나이가 많은 듯 했다.

뭐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회의실은 내년부터 다시 늘어날 선생님들을 위해 꽤 큰 규모로 만들어졌다.

최대 60명이 회의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

의자들은 학생용과 동일했다.

이 말은 곧 학생용이 교사용만큼 좋다는 의미지.

개교를 하고 몇 번의 회의가 있었기에 익숙한 곳이지만 단 몇 명만 여기에 따로 있어 본 적은 없었다.

부장 회의나 교과 회의를 제외하고는 별로 쓸 일이 없는데, 영어과의 경우에는 수가 많지 않아 회의는 교과 교실에서 소박하게 진행했다.

“교장 선생님께 말씀 들었겠지만, 유현덕 선생이 축제를 준비해 주면 어떨까 싶어서 말이야.”

“네,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혹시 왜 저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나는 될 수 있는 한 조심스레 말했다.

아직 그들의 의도를 모르기에…….

사실 내가 걱정하는 일은 아닐지도 몰랐다.

단순히 내가 그걸 맡아 주면 좋겠다고 하는 이유?

그건 역시 아니겠지.

“왜 유현덕 선생에게 축제 업무를 부탁하는지 궁금한 거야?”

“네.”

방금 말한 걸 되묻는다?

내가 우려하는 이유가 아니라면 바로 말했을 텐데.

“우리도 유 선생에게 묻고 싶네, 그러면. 유현덕 선생이 S 아카데미 대표였다며? 거기에다 우리 학교 설립에도 S 아카데미 입김이 들어간 건 다들 아는 사실이고.”

“어디서 들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거짓은 아니지.

어차피 기자 회견장에서 터뜨린 이상 숨길 생각은 없다.

“사실입니다. S 아카데미 대표였단 것도 맞고, 에듀파티 재단 기획도 제가 한 건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과 축제를 저에게 맡기시는 건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

“그것 둘은 관계가 없어. 우리가 묻고 싶은 게 바로 그거야. 유현덕 선생이 우리 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들어온 것과 이전에 그런 일을 했다는 것과의 관계.”

무슨 말을 이렇게 돌려서 하는지.

어? 내가 하는 방식과 비슷하려나?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들이 나에게 묻는 것은 기간제 교사로서 내 과거와 관계없이 열심히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같이 들렸다.

일단은 그렇게 들리는데 속은 뭐가 있는지.

아니, 이제까지 내가 사람들을 너무 의심하고 살았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전생의 나는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아무런 자의식 없이 시키는 모든 것을 하는 건 아니었지.

하지만 학교 일이 원래 업무의 범주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학생들의 단체 봉사 활동을 진행하는 경우 계획은 담당 부서에서 만들지만 실행은 사실상 학년부에서 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기간제의 경우 인원이 필요한 웬만한 일에는 다 동원되는 것이 현실.

굳이 기간제라 시킨다기보다는 젊으니까 하게 되는 거다.

거기에 특별히 불만은 없었다.

그리고 만약 여기 있는 두 명의 부장이 그런 이유로 내게 축제 업무를 넘기는 제안을 한 거라면 이렇게 내가 나설 이유도 없는 것이고.

“하지만 업무 담당자는 김유현 선생님이시잖아요?”

“그렇긴 하지. 근데 김 선생은 이번에 첫 학교라 불안하기도 해서.”

일을 더 맡는 것에는 불만이 없었다.

다 그렇게들 하는 거니깐.

과도한 부분만 아니라면 말이지.

하지만 그러면 업무 분장 때 애초부터 나에게 이걸 줬으면 좋았을 것 아닌가.

그리고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이제까지 커피 타 달란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임선욱 부장이 입을 열었다.

“학교가 만약 유 선생 거라면 김유현 선생은 누구에게 보고를 해야 하지? 축제는 예산도 많이 책정된 부분이라 예민할 텐데 말이지.”

학교가 내 거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학교가 제 거라니요?”

“재단 기획도 자네가 했고, 실질적으로 학교 설립에 들어간 돈도 S 아카데미에서 번 것으로 일부분 부담했겠지.”

“하고 싶으신 말씀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깐 부장님들께서는 은성 고등학교가 전부 제가 부담해서 지었으니 학교 일과 관련해서 제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근데 축제 기획은 왜 저에게 넘기신 겁니까?”

나도 내가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래도 저 긴 말을 하는데 그들은 내 말을 끊지는 않았다.

그냥 흥미로운 표정으로 쳐다볼 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박성현 부장은 앞에 놔 둔 커피를 홀짝거렸고, 임선욱 부장은 그냥 빤히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언제쯤 속내를 말할까.

“허허.”

허허?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해? 사실이면 우린 주인을 무는 개가 되는 거고 사실이 아니라면 그냥 그렇다고 말해 주면 될 것을.”

“그리고 우리말이 완전히 사실이었다면 굉장히 당당하게 나왔겠지? 으흠…….”

뭐야?

갑자기 분위기가 풀어졌다.

생각해 보니 축제 업무 하나 나에게 넘긴다고 해서 부장급 선생님들이 이 정도로 무게 잡고 불러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재단이니 S 아카데미니 하는 부분도 필요 없는 말들이었고.

하지만 무엇 때문에 이들이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은 이야기를 꺼낸 건지 알지 못했다.

나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들이 서로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하아.

그나저나 그 말이 맞긴 하네.

내가 이러려고 내 돈 들여 학교 지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최대한 내 존재에 대해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정교사도 아니고 기간제로 숨어 근무하겠다고 했던 건데.

“특이하긴 하네. 이런 사람이 성공하는 건가? 숨길 거라 생각했는데 숨기지도 않고.”

“그거야 이미 기자 회견 때 교장 선생님께서 다 말씀하셔서 숨길 것도 없었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근데 도대체 왜…….”

“분위기 잡고 이야기 꺼내서 미안해. 장난한 건 아니야. 오너와 장난칠 만큼 우린 간이 크진 않지. 사실 연락을 하나 받았어.”

“연락이요?”

“응. 돈을 주겠다고 하더라고. 자기네들이 원하는 대로 그림이 그려지면 말이야.”

돈이라.

그런데 축제 업무를 나에게 맡기는 걸로 무슨 그림을 그리고 말고 할 게 있겠는가.

뭔가 다른 내막이 보였다.

뭔지는 모르지만 다른 것이 있었을 거다.

그나저나 이것도 익숙한 일인데?

언제였더라.

꽤나 오래 전 이야기였던 것 같다.

신성 학원 초창기에 있었던 일.

유환 선생님이 성공 대입학원에서 컨텍을 받고 나까지 꼬셔 가려고 했었지.

그리고 결국 우리에게 걸려서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하고 말이지.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더니만 이런 계략도 반복되는 것인가.

“저한테 업무를 더 주면 돈을 준다고 하진 않았을 거고, 뭘 원하던가요?”

“응? 아직 그쪽 제안 거절했다고 하지 않았어, 유 선생.”

그러면서 능글맞은 미소를 보이는 박성현 부장.

돈은 나에게 받아 보겠다는 건가?

설마, 학교에 근무하면서 그런 걸 생각하리라고는…….

생각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었다.

다행히도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임선욱 부장이 끊었다.

“부장님, 너무 가지 마셔요. 유 선생에게 오해만 잔뜩 받습니다. 그냥 털어놓자고 제가 그랬는데 막기까지 하시고선…….”

“이 사람아, 자네만 빠져나가려고? 흐흐. 연락받은 건 자네가 먼저였어! 그러고 나서 바로 보고 안 하고 나한테 쪼르르 와서 어떻게 하냐고 물어본 사람이.”

“선배님!”

둘은 선후배 사이인가 보다.

그렇지 않다면 이제 만난 지 한 달 되었는데 이리 편히 지낼 수는 없겠지.

실제로 전반적인 교무실 분위기는 매우 사무적이었다.

아직 서로에 대한 탐색전이 진행 중이기에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그나저나 연락은 임선욱 부장에게 먼저 간 건가?

“됐어. 그건 그렇고. 아무튼 유 선생, 어떻게 할 거야?”

“임선욱 부장님께서만 연락을 받으신 건가요?”

“아니, 아마 부장급들 전부 연락 받았을 것 같은데? 교장, 교감 선생님들만 빼고 말이지.”

“전부요?”

숨기려고 했다면 이리 연락을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예 대놓고 돈 장난을 치려고 하는 자가 도대체 나에게 뭘 원하는 걸까.

은성 고등학교와는 관계가 없는 일에 자꾸 학교가 엮어 들어간다.

내 업이려나?

다시 살아 돌아온 대가?

어쨌든 이제까지 이겨내지 못한 시련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전생에서도 마찬가지.

끔찍할 만큼이나 무미건조한 삶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겠지.

적어도 난 그때나 지금이나 겪어 내고 버틸 수 있는 문제를 만난다.

하지만 이번에는 통…….

전부에게 연락이 갔다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각자에게 제시한 것이 다를 수 있으니깐.

“몰라. 일단 나랑 임 부장이 받은 건 자네에게 축제 업무를 넘겨주란 제안이야. 그리고 하나 더 있긴 하고.”

“뭔데요, 그건?”

“어차피 이 근방에 학교 축제 열 만한 곳은 우리 학교 강당과 진성 대학뿐이야. 우리 학교 말고 진성 대학이 홀이 크니깐 거기서 여는 쪽으로 유도해 달라고 했어.”

보안이 철저한 은성 고등학교가 아니라 외부에서 축제를 한다…….

얼핏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외부 축제 시 뭔가 일을 꾸며서 그걸로 축제 기획자인 나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걸까?

아마 박성현 부장과 임선욱 부장 모두 지금 내 생각과 비슷한 판단을 했으리라.

그리고 위험하단 생각도…….

임선욱 부장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유 선생, 궁금한 거 하나 물어봐도 돼?”

“네? 네. 말씀하십쇼.”

“당신은 근데 진짜 무슨 생각으로 자신이 세운 학교에 기간제로 들어 온 거야?”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다.

기간제 교사로 들어온 사람에게 왜 들어왔냐고 물어보다니.

이건 전생에서도 가끔 듣는 질문이긴 했다.

답도 뻔했지, 그때만 하더라도.

‘선생님께서 선생님 하시는 이유와 비슷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그냥 지나가는 듯 묻는 질문이 아닐 수도 있다.

흔히 교사는 성직이니 뭐니 하지만, 사실 내 생활이 보장이 안 된다면 성직처럼 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생활 보장은 확실하다.

대출도 특별히 없고, 이건 S 아카데미도 마찬가지.

궁금하겠지.

도대체 무슨 대의를 가지고 정교사도 아닌 기간제 교사로, 그것도 자기가 설립에 깊이 관여한 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했는지.

거기에 이 질문의 의도를 하나 덧붙인다면, ‘당신이 우리와 같은 길을 걷는 교사가 맞는가?’일 것이다.

“일단 제가 세운 건 아니고요. 학교에 대한 애정은 제가 관여를 했으니 누구보다 크지 않을까요? 그리고 아이들 가르치고 싶다는데 사교육, 공교육이 따로 있겠습니까. 사교육에선 해 볼 것 다 해 봤으니 근본적인 부분으로 들어가고 싶어요.”

“근본적인 부분?”

“네. 어떻게 하면 아이들 꿈을 다시 되살릴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죠.”

사교육으로는 불가능한 영역.

아니, 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런 부분까지 사교육이 손을 댄다면 공교육은 말 그대로 무너질 수도 있겠지.

직장인의 직장 같은 곳이 되면 안 된다.

매일매일 무미건조하게 출퇴근을 하는…….

꿈이라.

내 입으로 말해 놓고 민망스러운 기분이 들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쁘진 않았다.

‘꿈을 찾아 주자!’

이제부터 이게 내 슬로건이다!

“몽상가 오랜만에 보네. 허허. 이젠 학교에서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건만…….”

“그러게 말입니다. 하아.”

한숨까지 내쉴 건 없잖은가.

그들은 내 시선을 그제야 의식했는지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젊을 때 가질 수 있는 생각이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

“선생님들이 해 주셔야죠. 저는 군대도 안 다녀온 기간제일 뿐 입니다.”

“그리고 이사진도 움직이는 실세지. 뭐라고 하더라 이런 걸?”

아, 젠장.

임선욱 부장의 입에서 가장 우려했던 표현이 나온다.

“공식적인 것이 아니니깐, 비선…….”

“얼른 대책을 마련하죠!”

다행히 적당할 때 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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