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148화.
“준일! 어! 선생님, 안녕하세요.”
뒤를 돌아보니 수진이였다.
우리 반 아이들은 아니지만 수진이나 준일이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중이다.
딱히 그를 못 믿거나 해서는 아니었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잘 회복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담임인 강현민 선생님은 준일이에 대한 상담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나에게도 그 일에 대해 가끔 신경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어디 가? 아직 자습 시간 아니야?”
“바람 좀 쐬러 나왔죠. 흐흐. 준일이랑 선생님은 요즘 자주 같이 보이시네요?”
자주 같이 보인다는 말은 우리 둘이 같이 있는 걸 유심히 지켜봤단 말이렷다.
“너, 준일이한테 관심 있냐?”
“네?”
“선생님!”
야간 자율 학습 시간.
시내에 있는 학교에선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밖에 돌아다니는 걸 허용하지 못한다.
허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맞다.
부적절한 외부 환경에 노출될 위험도 있고, 사고라도 난다면 굉장히 일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성 고등학교는 그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건물에서 나와 봐야 주변은 전부 산.
놀러 갈래야 갈 곳도 없고 놀 것도 없다.
거기에다 혹시 모를 외부로부터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담으로 빙 둘러친 공간.
숨을 곳은 있겠지만 나갈 곳은 교문 하나뿐이다.
나간다 하더라도 가장 근처에 있는 읍내는 차로 20분 거리.
쉽게 나갈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학교생활은 좀 어때? 그때 그 이야기 물어보고 하는 친구들 없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었다.
과거의 사건 자체는 아이들이 스스로 회복한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관심은 현재 일어나는 일이다.
일은 이미 과거에 끝났지만 그에 대한 소문은 수그러들지언정 끝이 나진 않는다.
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준일이의 표정은 어두웠다.
하지만 오늘은 수진이가 같이 있다는 점이 단둘이 상담할 때와의 차이겠지.
“물어보죠! 그래도 뭐, 다 끝난 일이라고 하고 있어요. 지금은 잘 지내는데 왜 그 기사가 떴는지 모르겠다고도 하고요.”
준일이에게 물었지만 수진이가 대답했다.
내가 원하는 그림이기도 했다.
준일이야 당연히 가해자 입장이다 보니 훌훌 털기가 어려우리라.
용서는 가해자가 받길 원한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피해자의 마음과 결심에 달려 있는 일.
나는 준일이가 그걸 알아 줬으면 했다.
“그래? 잘하고 있네. 미안한 마음과 태도는 평생 가져가야 할 거야. 용서를 받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 그래도 그걸 만약 받았다면, 정말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제대로 살아야 해.”
나는 일부러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준일이를 보지 않고 수진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차피 내가 어딜 보고 있든지 준일이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이번 일에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수진이는 당당한 입장.
용서를 해 주는 입장이기에 내 말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있다.
“야, 그나저나 너희 둘이 되게 잘 어울려.”
“아이 참! 저 갈래요!”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수진이가 돌아서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준일이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고.
나는 씩 웃으며 준일이를 팔꿈치로 툭 쳤다.
“너 자신에게도 용서를 구하는 입장에서 우리 텃밭이나 갈까?”
어이없어하는 표정.
하지만 이내 그도 웃었다.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 떠들다 걸린 학생, 책상 서랍에 폰을 두고 몰래 사용하다 걸리는 학생들에게 나는 으레 텃밭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애들이 지어 준 별명이 ‘농부’였다.
나쁘지는 않았다.
학교 선생님들이야 일전의 기자 회견으로 인해 내가 S 아카데미를 만들고, 맥스스쿨에도 지분이 있는 자산가란 걸 알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안다고 하더라도 큰 관심은 없었겠지.
전생과 비교했을 때,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야,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지. 너야 그거 다 치렀지만 그래도 너 자신에 대한 죗값은 평생을 두고 갚아야 해. 이런 생각은 안 해 봤지? 자, 그럼 텃밭으로 시작하자!”
“지금요?”
내가 들어도 궤변 같은 소리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순수하다.
딱 필요한 내용만을 받아들이는 시기.
아마 준일이는 ‘텃밭으로 시작하자!’라는 말과 ‘죗값을 치러야지’ 부분만 이해했을 것이다.
“응. 텃밭 가꾸는데 해가 뜨고 안 뜨고 가 중요하냐? 어차피 너 자습도 안 할 거잖아.”
은성 고등학교 개교 이래 몇 주간 텃밭 공간을 신경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조수 한 명이 생겼다.
감자와 고구마를 한쪽 구석에 심어 놨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
해는 이미 진 상태.
그리고 주위는 산밖에 없기에 빛이라고는 학교 교실에서 새어 나오는 것과 학교 주변을 밝혀 놓기 위해 설치한 가로등밖에 없다.
어둠 속에 홀로 빛을 내는 학교.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삶이지만, 그래도 약간의 빛이라도 보내 줄 수 있는, 길을 조금이나마 비춰 줄 수 있는 그런 학교를 만들 수 있을까.
나도 모른다.
확신이 드는 것도 아니고.
단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향해,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앞으로 걸어가는 일뿐.
우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텃밭으로 걸어갔다.
펜스 옆에 기대어 놓은 쟁기 하나를 집어 들자 준일이가 ‘정말요? 장난이 아니라?’ 이런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야, 빨리 안 집어 들어? 더 늦기 전에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갈고 갈 거야!”
야밤의 노동이 시작되었다.
* * *
“유현덕 선생님! 교장 선생님이 찾으셨어요.”
“네? 왜요?”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던 4월.
입학 시즌도 이미 지난 지 오래고 학교는 안정기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곧 일선 학교들에서는 중간고사 준비가 시작되고, 대략 2주간의 시험 출제 기간 뒤 시험이 실시된다.
은성 고등학교도 다르지 않다.
내부 메신저로 시험 시간표가 공지되고, 각 교과 선생님들은 시험 문제를 출제한다.
오늘 아침에 나도 그 메시지를 받았다.
개교 후 첫 시험.
게다가 학교에서의 경험이 없는 교사가 많기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그래도 나름 학원가를 거치며 연습 문제, 예상 문제를 만들어 봤던 분들이기에 어수선함은 잠깐이고 다시 일하는 모드로 돌입했다.
“저야 모르죠. 그냥 들어오면 잠깐 교장실로 오라고 전해 달라고만 하셨어요.”
요즘 오광필 할아버지가 할 일은 특별히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둘이 머릴 맞댈 일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학교의 일상적인 업무는 계속 진행 중.
그리고 나는 그런 부분에서는 철저히 평교사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오광필 할아버지 또한 특별히 나를 찾는 일이 없었고.
생각해 보니 준일이, 수진이 사건이 있었던 개교 직후 며칠 빼고는 따로 그를 만난 적이 없었다.
똑똑.
수업이 없을 때는 행정 업무 처리를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한숨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건 아니었다.
곧바로 교장실로 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교장 선생님, 유현덕입니다.”
“어! 어서 들어와. 일로 앉지!”
반갑게 맞아 주는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좋지 않은 일은 아닌 듯 했다.
하긴, 학교에 좋지 않은 일이 뭐가 있겠는가.
고작 해 봐야 학교 폭력 건이나 신문 기사…….
여러 가지가 있을 수는 있겠구나.
모처럼 아무 일도 없는 한 달을 보내면서 뭔가 나도 느슨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이런 것이 정말 내가 바랐던 삶이 아닌지.
“학교 축제를 기획하는 걸 자네가 해 보면 어떨까 싶어.”
“네? 축제요?”
정말 뜬금없는 부탁이었다.
뭔가 중대한 사안이 있어서 불렀겠거니 했건만.
하지만 할아버지의 표정은 정말 진지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 같이 있었다면, 웃긴 장면이었으리라.
평소엔 그냥 동네 할아버지 같으신 분이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 있고, 새파랗게 젊은 청년은 ‘이게 뭔 소리더냐’ 하는 표정으로 반대편에 앉아 있다.
아마 보통의 회사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 아닐까.
오광필 할아버지 연배 정도면 부사장급은 되어야 회사에 계속 남아 계실 테고, 내 나이면 대리 급? 신입사원 급일 텐데.
그나저나 축제는 다른 선생님께서 담당이다.
“축제면 김유현 선생님 담당 아니셔요?”
김유현 교사.
현재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게 나보다 젊은 선생님이다.
전에도 잠시 언급했던 적이 있지만 은성 고등학교는 일반 학교의 150% 월급을 준다.
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건 산골 생활에 적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수한 선생님들을 모셔 오려는 인센티브.
그것과 김유현 선생님이 나보다 젊은 선생님인 것과는 무슨 관계가 있냐 싶겠지.
사범대학 출신이 아니라면 잘 모른다.
보통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기간제나 사립 학교를 지원하는 경우는 드물다.
잘 된다면 곧바로 임용시험을 통과하여 공립 학교로 가길 원하지.
잘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길게는 4년 정도, 또는 그 이상 동안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사립 학교의 이미지는 대학생 입장에서 썩 좋지 않아서 고려 사항엘 넣지 않는다.
그렇기에 에듀파티 재단 은성 고등학교 임용시험 공지를 냈을 때도 대학 졸업반 학생이 지원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다.
총 다섯 명 안쪽.
나머지 수십 장의 이력서와 자소서는 현직 학교 기간제 선생님들과 몇몇 S 아카데미, 맥스스쿨의 강사들이었다.
김유현 선생님은 그럼 어떻게 오게 되었냐고?
나도 모른다.
내가 아는 바로는 몇 되지 않는 졸업반 학생 중 실제로 1차 시험장에 들어온 사람이 김유현 선생님뿐이었다는 것.
그나저나 그녀의 이미지로는 남에게 일을 미루거나 할 사람이 아닌데…….
“그렇긴 한데, 김유현 선생님 말고 부장 회의에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야. 신생 학교인 만큼 좀 큰 행사 같은 걸 기획하고 경험한 사람이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부장 회의요? 뭐, 시키신다면야 해야 하겠지만, 저도 학교 행사 해 본 적은 없잖습니까.”
“나도 말은 해 봤는데, 부장 선생님들 입장도 이해가 돼서 말이지. 시키면 할 거면 그냥 이번엔 유 선생이 해 줘.”
음, 담당 업무가 아니더라도 맡아서 하는 경우는 종종 겪어 봤다.
이건 굳이 학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깐.
하지만 김유현 선생님이 직접 일을 미룬 것이 아니라 부장 선생님들이 내 이야길 꺼냈다는 말을 듣고 보니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표현을 달리 해야 할까?
꺼림칙하다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우려했던 일이 터지려는 분위기?
“할게요, 그러면. 그런데 이걸 김유현 선생님께서 부탁하거나 한 게 아니고 부장 선생님들이 제안하신 거예요?”
재차 확인이 필요했다.
그리고 우려하던 상황이라면 다잡을 필요가 있었다.
“응. 김유현 선생은 이거 아직 몰라. 대학 졸업하자마자 일 맡으니 힘들어한다는 소린 나왔지만, 그것만 이유는 아닌 것 같고.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래도 유 선생이 우리 학교 설립에 깊이 관여가 되어 있으니 그런 눈치를 보는 것 같긴 해, 내가 봐도. 이건 좋게 말한 거고, 제대로 말하자면 ‘불편한’ 거지.”
이미 답변이 나온 질문을 다시 물어보자, 오광필 할아버지도 그 의도를 바로 알아채고 아예 답을 해 버렸다.
어차피 빙빙 돌아 말해도 결국 이걸로 결론이 날 것을 알았겠지.
사실 개교 직전, 나는 그냥 기간제로 근무하다가 군 입대를 하겠다는 말을 들은 그는 걱정을 하긴 했었다.
“그게 되겠어? 다들 눈이 있고 귀가 있는데, 설립자나 마찬가지인 사람이 기간제 교사로 근무를 하겠다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오광필 할아버지에게 나는 “그러니깐 제가 그 사람인 걸 숨기면 되죠!”라고 별 고심 없이 내뱉었었다.
그리고 그 호기로웠던 대답은 준일, 수진이 사건이 터지면서 완전히 무너졌지.
개교 이틀 만에 학교 선생님들이 전부 알게 됐던 것이었다.
“우려하던 일이 터진 거네요.”
“그렇지. 그러니깐 내가 뭐랬어. 그냥 드러내고 좀 편하게 업무 분장 받고 하라고 했잖아.”
“편하게 있을 거면 그냥 다 때려치우고 돈 들고 놀고먹고 하지 학교에 또 들어오겠습니까.”
“그것도 마찬가지지.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어.”
아무튼 이런 농담 같은 소리를 계속 이어나가느라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든지 간에 설립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려면 각자의 구성원이 자신의 위치에서 역할을 맡아 줘야 한다.
내가 은성 고등학교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학교의 행정과 교육 과정을 직접적으로 내 마음대로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일이 아니다.
그걸 원했다면 차라리 내가 교장이나 교감 직을 맡고 말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나의 역할은 큰 틀에서는 오광필 할아버지와 함께 학교의 방향을 잡는 일이고, 작은 틀에서는 기간제 교사로서 내게 주어진 학급을 잘 이끌고 업무들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
“에휴.”
“젊은 놈이 한 숨은…….”
“저 때문에 부장 회의 소집되면 그것대로 웃기겠죠? 흐흐.”
“미쳤냐? 아예 그냥 네가 교장 해. 나야말로 좀 쉬고 싶은데 이게 뭐냐. 네 눈치 보고, 새파랗게 젊은 선생들 눈치 보고.”
앞에 말한 ‘미쳤냐’는 농담이겠지만, 뒤에 따라 나온 말들은 진심이 담긴 듯했다.
복잡하게 꼬인 듯하지만 결국 이번 일은 이제까지의 사건들과 다르게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함께 걸어가야 할 사람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이해시키는 것.
하지만 이게 더 어려울 것 같기도 했다.
적은 붙어서 이기면 되지만, 동지를 이해시키는 건 어떻게 해야 하나…….
“알겠습니다. 제가 한 분씩 찾아봬야 할 것 같네요.”
“전부 찾아가지 않아도 돼. 보니깐 박성현 부장과 임선욱 부장이 가장 불편해하는 것 같으니깐.”
“두 분이군요. 알겠습니다.”
박성현 부장 선생님과 임선욱 선생님이라…….
둘 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했다.
근데 내가 지금 당장 은성 고등학교 안에서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선생님이 있기는 할까.
전생의 내가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하고, 자리가 없으면 다른 학교로 나가야 하는 기간제 교사로 생활을 하면서 다른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소원했다면, 지금은 조금 다른 의미로 소원해진 것 같았다.
여기에서 나는 언제라도 떠날 사람, 또는 기간이 되면 떠날 사람으로 생각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몇몇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한 괴짜 자산가 같은 이미지가 아닐까.
아마 나는 그렇게 찍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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