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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45화 (145/200)

[145] 145화.

웅성거리는 소리.

그럴 만도 했다.

듣도 보도 못 한 대안 학교 하나가 학생을 보호하겠답시고 언론을 상대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다니.

법적 조치라고 해 봐야 별것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미 웅성거리는 기자들의 표정은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듯 했다.

예상 시나리오 1.

각 언론사에서 우리의 뜻대로 따라 다음 날까지 정정기사를 올린다.

수진이나 준일이의 사건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겠지만, 보통은 끝이 좋지 않은 학교 폭력 사건에서 올바르게 해결된 이정표 같은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첫날의 충격을 딛고 은성 고등학교의 새로운 교육 실현에 전념하면 되겠지.

이건 최적의 상황이다.

예상 시나리오 2.

한성일보와 이래섭 기자의 신문사에서는 우리 제안을 따를 것이다.

하지만 여기 와 있는 기자들 숫자만 백이 넘는 듯 보인다.

이런 좁은 국가에 이렇게 수많은 언론이 있다는 것이 놀랍지만, 너무 다양한 목소리는 이럴 때는 독이 될 수도 있다.

다양한 소리 중 다수가 만약 기존의 기사에 집중한다면, 그리고 학교가 가해자를 보호한다는 식으로 재차 기사를 작성한다면 우리 입장에서도 길고 피곤한 싸움이 된다.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는 놓았으나, 만약에라도 맨 처음 기사의 내용이 누군가의 제보에 의한 것이며 그 제보자가 힘이 있는 정치권 인사나 재계 인사라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누군지 좀 알아보려고 해 봐야 해당 기자랑 연락이 통 닿질 않으니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잘 끝내 주셨네요, 대표님.”

대충 상황이 정리되고 이래섭 기자가 다가와 말했다.

내가 이걸 준비하며 계산에 넣지 않았던 부분이 바로 어떻게 끝내야 할지였는데, 역시나 그쪽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이긴 했다.

오광필 할아버지가 일어났다 앉았다를 서너 번 반복하고, 기자들 몇은 질문을 하겠다고 손들고 소리를 질러 대는데 아주 시장통도 이런 시장통이 없었다.

사실 질문이랄 것도 별것 없었다.

학생에 대한 학교의 입장이나, 또는 기자회견이 끝나고 각 언론사로 발송될 이메일의 내용 같은 걸 물어보면 좋겠는데 하나같이 “왜 S 아카데미 운영을 그만두고 학교로 들어갔느냐.” “오브라이언과는 무슨 관계냐.” 이런 질문들.

그나마 조금 흥미로웠던 것은 맥스스쿨의 강재훈 전 대표에 대해 물어본 사람이 있단 거였다.

이것도 은성 고등학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질문이었지만.

“자신이 무너뜨린 학원의 수장을 어떻게 산하 학원에 장으로 채용하셨나요? 더욱이 아들인 강민호 씨에게 공격까지 당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대목에서 하마터면 얼굴을 찌푸릴 뻔했으나 다행히 별 내색 없이 잘 넘어갔던 것 같다.

이미도 원장의 안색도 좋진 않았지만 잘 컨트롤하고 있는 듯 했고.

“강재훈 원장님께서는 지금의 맥스스쿨을 밑바닥부터 올려놓으신 분입니다. 그분의 경험을 썩히기 아까웠습니다. 그리고 강민호 씨 이야기는 이미 돌아가셨으니 더 이상 거론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뭐, 기자들이 이해를 하건 말건 관계는 없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내린 결정이니.

아무튼 뜬금없이 강재훈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와 잠깐 놀라기는 했다.

성공 대입학원 원장으로 모신 후에는 별문제 없이 잘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나는 따로 그를 만난 적이 거의 없었다.

이미도 원장은 어떨까.

생각해보면 조규만 사건에 이은 굉장히 큰일이었는데.

“자, 이것으로 회견을 마치겠습니다. 기자님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몇몇 기자들이 손을 들었지만 질문은 더 이상 받지 않았다.

내가 정체를 드러냄으로 조금은 관심을 이쪽으로 돌리기를 원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번 회견의 목적은 아이들이었다.

흙탕물이 가만히 가라앉기를 기다리거나, 또는 어차피 뿌옇게 변한 물에 필터를 끼워 한 바퀴 순환을 시키거나였다.

“이제는 다시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는 건가요?”

“아, 수진 아버님. 네. 어차피 요구한 것이 이뤄지는지 보려면 내일까지는 기다려야 하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 법적 부분 좀 검토 부탁드리겠습니다. 무리한 부탁은 아니겠죠?”

“물론 아닙니다. 요즘은 일도 많지 않아서요.”

딸 일이 언론에 거론되니 다른 일이 손에 잡히겠는가.

오늘 처음 얼굴을 본 사람이지만 많이 수척해 보였다.

참, 어제도 입학식에서 지나가며 봤으려나.

한 명씩 악수를 하고, 아까 타고 왔던 버스로 걸어갔다.

김미연 부회장이 내 쪽으로 다가왔던 건 그때였다.

“어딘지 알았어요.”

“네?”

“어디서 이번 일을 시작한 건지 알았다고요.”

기다리던 소식인가?

개교에 딱 맞춰 터진 기사.

입학생 명단을 받은 건 바로 며칠 전이었다.

그런데 각 반 담임 선생님들이 입학한 아이들에 대해 파악하기도 이전에 기사가 떴지.

그녀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누군데요?”

“감당이 될지 모르겠어요. 유현덕 선생님?”

“감당은 해 봐야 아는 거죠. 누구죠?”

감당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

누군가가 일부러 이런 일을 터뜨린 것이리라.

하긴, 그걸 계속 의심하고는 있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서 역습도 불가능했고.

그래도 그녀라면 웬만한 인물에 대해서는 이런 표정을 짓고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지 않을 텐데.

“그럼 뭐……. 이건 비밀입니다. 방금 전 저희 쪽으로 전화 한 통이 들어왔어요. 주광진 기자가 연락을 해 왔어요.”

그녀는 ‘주광진’이라는 이름을 거의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회견은 끝났지만 아직 상당수의 기자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김미연과 같이 온 경호원들이 주변을 통제하고는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크게 말할 내용은 아니리라.

그녀가 내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주변에서는 이 모습을 보고 또다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으나, 그녀는 개의치 않고 거의 내 귀에 닿을 정도로 다가와 말했다.

“곽한영.”

역시나.

몇 달 전의 만남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설마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움직일까 생각했다.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적은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은데, 딱히 내가 그에게 잘못한 것도 없었다.

싹수를 잘라 버리는 걸까.

도대체 이제 막 시골에 문을 연 대안 학교 하나가 그에게 어떤 의미이기에.

“그리고 한 명 더 있어요.”

“그 사람 말고요?”

“네. 정확히 말하자면 한 사람이 움직인 게 아니라 회사가 움직인 거지만요.”

“회사요?”

“혹시 퓨처 금융투자라고 아세요?”

퓨처 금융투자…….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는데.

앞서 가던 이미도 원장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나도 그녀의 그런 반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의결권은 없었지만 어쨌든 현, 전 맥스스쿨의 최대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금융투자업체.

강재훈 전대표 시절부터 상당량의 투자를 했고, 맥스스쿨의 주식시장 상장 이후에도 차익 실현에 나서지 않고 지분을 가지고 있는 업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분 중 일부를 이미도 원장이 회수하기는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나보다 더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곳.

“네…….”

그런데 아직 그 업체가 은성 고등학교와 무슨 관계인지를 알 수 없었다.

아니, 학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맥스스쿨이야 이미 상장된 상황에서 내가 개입했던 것이고, S 아카데미는 퓨처 금융투자와 연결고리가 없다.

은성 고등학교는 심지어 S 아카데미와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데…….

멈춰 섰던 이미도 원장이 뒤를 돌아봤다.

“유미진 씨가 거기 이사에요.”

“네? 유미진은 또 누군데요, 원장님?”

“강재훈 원장 전 부인.”

강민호의 엄마였구나.

실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강민호 사건 이후 그녀는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남편은 본인이 밀어냈지만, 자식은 달랐겠지.

그런 자식이 결국 자신의 가정을 박살내 버렸다고 믿는 사내를 찾아가 죽이려고 했다.

그 전에 이미 현역 국회의원이었던 조규만과 그의 전 보좌관을 살인했고.

끝은 비참했다.

아들 강민호는 죽고, 남편 강재훈은 곧바로는 아니지만 훗날 아들을 죽인 사람의 밑에 들어갔다.

나는 강재훈 원장을 내 아래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외부의 시선은 다를 것이다.

그런 그녀에 대해 내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건 강재훈 전 대표를 성공 대입학원 원장으로 모실 때였다.

“사모님은…….”

“나도 모르지. 그래도 그녀 주변 사람들이 가끔씩 연락을 해 와서 회복하고 있단 건 종종 들었는데, 지금은 그 연락도 끊겼네.”

이게 전부였다.

“근데 그 사람이 왜?”

“복수겠지…….”

“거기 이름이 그래서 나온 거군요. 저도 듣고 나서 도대체 무슨 금융투자 회사가 이런 일에 연루가 되어 있다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 곽한영 의원이면 몰라도 말이죠.”

복수라면 쉽게 끝나지 않으려나.

그럼 곽한영 의원은 또 뭔가.

“주 기자님은 뭐라고 하신 건데요? 그 둘이 왜 같이 이름이 거론된 거죠?”

“나머지는 차에 들어가서 말씀하시죠.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김미연 부회장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그럴 만했다.

경호원들이 최대한 접근을 막고는 있으나 소리는 막히지 않는다.

슬쩍 서로 눈빛을 교환한 우리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차는 멀지 않았던 만큼 숨이 차거나 할 일은 없었다.

“유현덕 선생이 경영에서는 손을 뗀다고 해서 이런 이야기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사실 강재훈 원장님과 몇 번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차 문이 닫히자마자 이미도 원장이 말했다.

강재훈 원장은 그녀의 친아버지.

그녀가 워낙 어렸을 때 헤어졌기에 서로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있었다.

나와 김미연 부회장은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듣고 있었다.

이미도 원장이 이렇게 나서서 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기에 상황을 아직 못 들은 오광필 할아버지와 주현필도 뒤쪽 앉은 자리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유미진 씨가 소유하고 있던 맥스스쿨 지분을 전량 시장에다 팔았거든. 그녀도 어쨌든 대주주였고, 블록딜(유가증권 시장에서 다량의 주식을 한꺼번에 팔 경우 주가의 변동이 크기에 큰손끼리 넘겨받기를 약속하고 매매하는 것) 같은 거로 우리가 받을 리도 없었으니 그냥 판 것 같아. 처음에는 그냥 차익이 크니깐 판 건가 했는데, 얼마 뒤 퓨처 금융투자 주주총회가 열리고 그쪽 대주주 중 한 명으로 들어갔어.”

“퓨처 금융투자가 뭔데요, 도대체? 그냥 은행 같은 곳 아니에요?”

“대부업체라고 보면 돼요. 질이 썩 좋지 않은 곳일 텐데.”

김미연 부회장이 끼어들었다.

“좋지 않은 곳이요?”

“과거에는 조직 폭력배와 연관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어.”

“조폭? 그런 곳이랑 왜 맥스스쿨이…….”

“사업을 확장하다 보면 돈을 빌려야 하는데 빌릴 곳이 없을 때가 있나 봐. 아무래도 맥스스쿨이 온라인 강의 사업을 처음 크게 벌린 곳이니 장비나 이런 것을 구하려면 돈이 크게 들었겠지. 그리고 사실 재무구조도 처음에는 썩 좋진 않았어. 현금 흐름이 그다지…….”

이미도 원장이 맥스스쿨을 운영한 것도 이제 몇 년이나 지났다.

원래 창업주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다음 경영자의 눈에 보이는 법이다.

강재훈 대표가 놓쳤던 것, 부실하게 만들어 둔 것을 이미도 원장이 많이 손을 봤었다.

그나저나 맥스스쿨의 최대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조폭과도 연관이 있는 회사였다니…….

“그리고…….”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여기까지 말을 해야 하나 싶은, 뭔가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유미진 씨가 원래 그쪽이랑 과거부터 관계가 조금 있었나 봐.”

“그쪽이면 어딘데요?”

“이한일, 퓨처 금융투자 회장이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무슨 관계요?”

“내연 관계 같은…….”

“네?”

개막장.

혹시 강민호도 사실은 이민호였던 것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미도 원장의 표정이 왠지 묘했다.

순간의 내 생각을 어떻게 읽은 것인지는 모른다.

나중에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겠지.

“그리고 하나 더 있죠.”

이번에는 김미연 부회장이 한마디 더 던졌다.

“이한일 회장과 곽한영 의원이 어릴 적 친구였다는 사실. 거기에 무소속 국회의원 당선에는 이한일 회장의 도움이 상당히 컸다는 소문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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