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142화.
내가 유현덕이다
우선 점심시간이 끝나고 교무실에 와 있던 강현민 선생님을 찾았다.
개학 첫날부터 벌어진 사태로 많이 피곤해 보였다.
원래도 개학일은 방학 중 쌓인 일들과 학생 관리로 정신이 없는데 이날은 거기에 큰일 하나가 더 터졌으니 그랬겠지.
분명 지금은 비슷한 또래지만 내 입장에서는 한참 젊은 교사다.
그와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긴 했으나, 동시에 약간은 안쓰럽기도 했다.
“선생님?”
조용히 그의 옆으로 다가가 손바닥을 얼굴에 대고 있는 그에게 슬쩍 물었다.
“네?”
잠든 건 아니었지만 안색이 썩 좋지는 못했다.
그래도 내가 가져온 소식은 그에게는 위안이 되지 않을까.
나는 천천히 수진이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내가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이런 일은 말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수진이의 경우 사건 마무리 이후에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준일이가 큰 힘이 되어준 것 같긴 하지만.
성인이라면 봉합하기 어려운 상처가 아이들이라 오히려 치유가 빨랐던 것일까.
“그래도 당시 피해자 입장에서는 준일이는 완전히 용서받은 것 같아요. 다행인 거죠.”
일부러 맨 마지막에 덧붙인 이 말을 듣자 그제야 조금은 표정이 풀어졌다.
“그렇네요. 아까는 미안했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네? 아닙니다. 하하. 일이 너무 커질 것 같아 저도 긴장해서 실수가 많았을 것 같아요. 제가 죄송하죠, 주제넘게 나서서요.”
멋쩍게 이렇게 얼버무리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데 그가 주변을 두어 번 살펴보더니 아무도 우리 대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걸 확인하고는 “근데 도대체 그 좋은 일 놔두시고 왜 학교에 들어오신 겁니까?” 하고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뭘 놔둬요?”
“에이, 왜 이러십니까.”
그가 아주 나에게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거의 귓가에 속삭이듯…….
“선생님께서 S 아카데미 유현덕 대표시라면서요.”
원래 학교란 데가 비밀이 없는 곳이기는 하다. 아까 전화 통화 건도 있으니 알아볼 사람은 이미 알아봤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 빠른데.
아무래도 현지훈 선생님이나 다른 S 아카데미 출신 선생님들이 식사 시간에 그에게 귀띔을 준 것 같았다.
몰래 몰래 숨어 지낼 계획은 이미 끝났구나.
“쉿, 비밀입니다. 학교가 좋아요, 저는.”
일부러 조심스레 말하는 척.
어차피 알 사람들은 아는 것이고, 그가 알았다면 다른 선생님들도 알게 되겠지만 일부러 떠들고 다닐 필요는 없다.
그 사실이 내가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것에 영향은 없으니.
그건 그렇고 장규천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 봐야 했다.
나는 학생부도 아니고 뭣도 아닌지라 내가 직접 연락하기엔 좀 그랬기에 강현민에게 사정을 말하고 방금 들은 이야기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아까의 날선 분위기를 완전히 감추고 마치 다른 사람인 양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사이 오광필 할아버지와 수진이의 담임 선생님께 가서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한 후 수진이의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는 이미 상황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들 몇이 그쪽으로도 전화를 해 본 모양이었다.
그리고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정보가 이렇게 새 나가면 어떡합니까? 학교면 애들 관련한 일은 기자들이 모르게 해야죠!
우리도 몰랐던 걸 어떡하랴.
분위기를 보아하니 원래 다녔던 중학교에서 새어 나간 소식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불난 집에 부채질은…….
-말씀 좀 해 보셔요. 듣고만 있으려고 전화하신 건 아니잖습니까?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에도 매우 화를 잘 냈다고 들었건만, 역시나였다.
과연 이 사람과 대화가 될까 싶으면서도 준일이를 용서한 모습을 보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물론 내가 그에게 뭘 설득하거나 하려는 건 아니었다.
현재의 상황, 그리고 앞으로 학교의 대처 방안 등을 논의할 생각이었다.
“진정하셔요, 아버님. 저희도 오늘 기사가 뜨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게다가 생활기록부 상으로 그런 예민한 내용을 확인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요. 오늘이 입학식이잖습니까.”
-그러니까요. 아까 수진이 데리고 입학식 참석하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기자들에게 전화가 오고……. 아무튼 어떻게 하려고 하십니까? 뭔가 대책은 만들고 계시겠죠?
“일단 그 부분 때문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사실 저희 은성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학생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는 취할…….”
-2차 피해는 이미 발생한 겁니다. 앞으로 어쩌실 겁니까?
“내일 중으로 학교의 입장을 교장 선생님께서 정리해서 인터뷰를 하실 겁니다. 그리고 가해 학생, 그러니깐 준일이도 개인적으로 인터뷰를 할 거고요.”
-우리 아이는요?
“교장 선생님 인터뷰 때 언급할 예정입니다. 물론 이름은 말하지 않고 말이죠. 과거 사건은 이미 아이들 사이에서는 용서가 되고 마무리 지은 일인데 이걸 다시 기사화한 기자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는 내용이 들어갈 겁니다. 그리고…….”
여기가 우리가 할 일이겠지.
수진이의 아버님께 지금 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통화를 하고 있기도 하지만, 하나 부탁할 내용도 있었다.
참 거지같은 일이긴 한데, 이런 일은 당사자나 그 가족이 직접 나서 주는 것이 효과가 크다.
아무리 학교에서 이렇다 저렇다 떠들어 봤자 언론, 그리고 그 언론을 보는 사람들은 이미 답을 정해 놓고 생각한다.
생각하면 사람이란 자신들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비이성적인 행동을 많이 한다.
우리는 어떤 사안에 대해 근거를 보고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미리 판단을 내리고 근거를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아버님께서 법조인이시라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혹 법적으로 기사에 문제가 없는지, 그리고 만약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언론과 접촉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법적으로는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도의적으로는 분명 문제가 있는 기사.
아마 수진이 아버님은 이미 직접 나설 생각일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의 사건 처리 과정을 돌이켜보면 충분히 그럴 사람이었다.
과거 사건이기에 사건 자체에 대해 학교에서 나서기는 어렵다.
오광필 할아버지와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사건의 직접적 당사자가 아닌 이상, 우리가 건드릴 수 있는 건 기사 자체에 대한 비판과 학생 보호 문제.
2차 피해에 대한 부분은 준일이와 수진이의 학부모들이 나서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화기에서는 잠시 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가만히 기다리는데 오광필 할아버지가 슬쩍 지나가며 나를 툭 쳤다.
나는 손짓으로 ‘지금 통화중’이라는 사인을 보내고, 그는 가던 길을 계속 가 교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뒤.
-알겠습니다. 일단 저도 준일이 부모님과 통화를 해 봐야겠네요.
“네.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버님.”
아마 뭔가 움직이겠지.
그 동안 우리는 우리대로 다시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도 학교의 일상적인 일과를 해 나가면서.
* * *
밤 10시.
입학식이 있고, 학생들 대부분이 기숙사로 들어간 시간이다.
첫날인지라 교사 숙소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이미 퇴근했고, 지금 학교에 남아 있는 건 기숙사 사감 선생님들, 그리고 나와 오광필 할아버지, 김윤지뿐이었다.
“네 인생은 왜 그러냐.”
김윤지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예민한 학교 내 사건은 원래 교사들끼리도 쉬쉬하는 분위기이지만, 나나 김윤지, 그리고 오광필 할아버지까지 그런 걸 숨기는 사이는 아니었다.
안다고 하더라도 학생에게 뭔가 불이익이 가거나 할 사람들도 아니고.
“내 인생도 이 녀석이 망가뜨려 놨어.”
“죄송해요, 할아버지.”
“죄송하기는……. 항상 일을 끌어들이나.”
오광필 할아버지는 은성 고등학교 교장 직을 부탁받았을 때 완강히 거부했었다.
하지만 거듭된 내 설득에 넘어가 첫날을 교장 선생님으로 보내는데, 하필이면 이날 일이 터진 것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건 우리가 직접 관련된 일은 아닐 수도 있었다.
강현민이 처음에 했던 말대로 그냥 가만히 놔둬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일.
하지만 그렇게 해서 만약에라도 학교 분위기가 흐트러지면 어쩔 것인가.
아이들은 새 학교, 고등학생 생활에 나름의 기대를 가지고 입학했을 텐데.
“어쩌겠어요, 그래도. 우리 애들인데.”
“난 내 애들이라고 한 적 없다.”
“할아버지도 참, 어차피 이미 발 담그셨으면 협조 좀 해 주셔요.”
첫날 밤이 지나고 있다.
우리가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곳은 내가 개인적으로 아마 가장 좋아할 것만 같았던 장소였다.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끝내고 난 뒤, 학교 뒤편에 있는 여기 오면 까만 밤하늘에 별들이 무수히 뿌려져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날씨도 도와주질 않았다.
“구름이 엄청 많구먼.”
많은 대화를 하진 않았다.
이미 첫날의 여파로 셋 모두 지쳐 있었다.
김윤지는 김윤지 대로 각 학생들의 방을 배정하고 확인을 하느라 피곤해 보였다.
하긴, 이건 내가 전생에 학교에서만 수년 동안 근무를 하면서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다.
학교 안팎에서 사고가 나면 사고가 나지, 과거의 사고가 언론에 터지면서 학부모에게 연락이 쏟아지고 해명해야 하는 상황이라.
누군가가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알아야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현재 일을 마무리 짓기 전에는 부차적인 문제이리라.
그때 구름이 살짝 걷히고 달빛이 쏟아졌다.
“오. 달빛이 있으니 그래도 뭐가 좀 보이는구먼.”
효과는 확실했다.
도심지에서 떨어진 산속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밤의 모습과는 다르다.
칠흑 같은 어둠이라는 표현을 들어 보았는가.
학교 자체를 밝히는 가로등, 그리고 각 방에서 나오는 불빛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빛이 없다.
달빛이 뭐가 대단 하겠냐마는, 있을 때는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다 없어지면 빈자리를 크게 느끼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리고 그때 뭔가 하나가 달빛처럼 떠올랐다.
이걸 떠올랐다고 표현을 해야 하나?
아무튼 오늘 하루 종일 우리를 고민에 빠뜨렸던 사건 또한 어찌 보면 구름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
정치인들이 흔히 쓰는 방법인데…….
“오늘 기사 몇 명이나 봤을까요?”
“어? 모르지, 뭐. 그걸 어떻게 알아? 우리도 학부모들 전화 받고서야 알았는데.”
“내일 저도 인터뷰 진행할까요?”
“네가 왜? 언론 관심 또 받고 싶어? 재산 수백억인 사교육 경영자가 대안 학교 기간제 교사로 근무를 시작했단 뉴스 돌면…….”
오광필 할아버지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효과는 확실하겠지.
어쩌면 오늘 입학식 때 이 주목을 받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조용히 숨어 지내며 대안 학교에서 다양한 교육을 진행해 보겠다는 생각은 내 욕심이 아니었을까.
근데 애들 입학식인데 내가 왜 주목을 받아야 하는가.
그러려고 학교에 다시 들어온 것도 아니고.
아무튼 시간의 문제일 뿐, 어차피 언론의 주목은 언젠가는 받게 되어 있다.
시작점이 좋지 않은 내용이었기에, 그 시기가 조금 빨라진 것일 뿐이었다.
“대놓고 좀 까게요. 이래섭 기자님이 조금 불편해질 수도 있으시겠는데요? 저 혼자 말고 몇 명 더 부를까요?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심장 좀 쫄깃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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