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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41화 (141/200)

[141] 141화.

학교는 시끄러웠다.

보통의 학교 폭력 사건은 학생들끼리의 싸움이나 따돌림, 괴롭힘으로 인한 사건들이다.

하지만 이번 문제는 그중에서도 가장 예민할 수 있는 성 관련 사건.

직접적인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아니었다.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하지만 일단 이런 문제에서 ‘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아주 골치가 아파진다.

장규천 선생은 이런 일을 많이 겪어 본 나름 학폭 전문가였다.

“수진 아버님, 이 일이 얼마나 큰 건지는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학교에서는 아버님 생각과 수진이의 생각을 최대한 반영해서 처리할 예정입니다.”

장규천 선생은 지금 사건의 피해자인 이수진 학생의 부친과 통화중이었다.

첫 통화는 아니고 몇 번의 연락이 오갔으나, 예상했던 대로 합의는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 이들이 합의하기를 바라고 의중을 물어보는 건 아니었다.

다만 장규천 선생 개인적으로 그간 겪었던 여러 사건과 비교했을 때, 이번 사건의 가해자로 꼽힌 네 명의 학생 모두가 초범인 점, 그리고 학교생활에 있어 큰 문제가 없었던 점이 강한 처벌을 내리기에는 걸리는 부분이었다.

“성인이라면 당연히 초범이고 뭐고 재판으로 넘어가야죠. 하지만 학생들이잖습니까. 가해 학생들이 이전에도 여러 문제가 있었고 이번 사건이 처음이 아니라면야 당연히 제 생각에도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려야 하겠지만,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첫 일탈, 또는 실수라고 판단이 들어서요.”

다시 한 번 고성이 전화기를 통해 귀로 전달됐다.

하지만 이런 건 익숙한지 그는 담담하게 상대방이 하는 말을 전부 귀담아 들었다.

학교에서는 이미 네 명의 가해 학생들에게 징계 의결을 내릴 예정이었다.

중요한 건 이게 학교 밖으로 나가느냐 아니면 학교 안에서 끝나느냐였다.

안에서 해결한다면 진심이 담긴 사과와 교내 징계로 끝날 것이고, 밖으로 나간다면 교내 징계에 재판까지 학생들이 겪어야 했다.

피해 학생인 이수진의 부친은 변호사였다.

따라서 본인이 익숙한 법정에서 일을 처리하고 싶어 했다.

물론 학폭 사안이든, 또는 성인 간의 폭력 사건이든 간에 피해자의 의견이 우선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든 가해자든 사건의 내막과 서로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는 상태에서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수진이의 부친에게 막무가내로 가해 학생들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일이 터지면 외부의 시선은 학교가 명성이나 기타 알 수 없는 목적을 위해 사건을 무마시키려 한다고들 생각하지만, 실상은 가해 학생들에게 가장 짜증나게 되는 사람들이 바로 학폭 담당 교사들, 그리고 관리자들이다.

첫 연락부터 딱 세 번만 설득할 기회를 달라고 했고, 이번이 그 마지막 기회인 세 번째 통화였다.

그리고 만약 오늘도 해결이 나지 않는다면, 그때는 수진 학생의 부친이 원하는 대로 학교 차원에서의 설득은 끝나는 것이었다.

“수진이요? 네. 네, 맞습니다. 수진이와는 대화를 여러 번 했습니다만, 아버님도 이야기 해 보셨으니 아시겠죠. 수진이는 아버님께서 완강하시다고 하고 있습니다. 네. 당연히 아버님 앞에서는 직접 그렇게 말하기가 어렵겠죠. 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드디어 한 시간이 넘는 통화가 끝났다.

이로써 그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을 마무리 지은 것이다.

이수진의 부친은 다음 날 결정을 내리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이제 정규천 선생에게 남은 건 기다리는 일뿐.

어려웠다.

세상사가 쉬운 일은 없다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괘씸한 녀석들을 옹호하는 척하는 건 정말 곤욕이었다.

사정이 어찌 되었든, 그리고 초범이든 아니든 간에 관계없이 PC방에서 여성의 사진을 몰래 여러 장 촬영한 건 잘못이었다.

만약 자신의 딸이 그런 일을 당했더라면 자신 또한 방금 전까지 전화기로 고함을 질러 대는 피해자 부친처럼 행동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의 징계로 끝나는 것과 달리, 재판 과정을 겪는 건 아직 고등학교도 가지 않은 애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물론 자신의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올바른 삶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학생들의 인생이 여기에서 결정이 나 버릴 수도 있다.

“아직도 완강하신가요?”

“네? 네, 교감 선생님. 어쩔 수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일단 내일 결정 내리고 연락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보통 이런 일이 일어나면 교사들 대부분의 관심도 집중된다.

그가 교무실에서 오랫동안 통화를 하는 걸 지나가며 봤던 교감 선생님이 통화가 끝나자마자 그의 자리까지 찾아와 물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걸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한 거죠. 너무 고심하지 마세요.”

이미 학교에서도 이 건이 재판까지 갈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학부모라도 재판 운운할 수는 있겠지만, 이번 상황에서는 피해 학생의 아버지가 변호사다.

그래도 교감, 교장 선생님의 판단은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피해 학생 이름이 수진이죠? 그 아이는 좀 어때요?”

“어제도 상담 선생님께서 따로 이야기를 나눠 봤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좀 놀라기도 하고 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합니다. 다만…….”

“다만?”

“아무래도 소문이 다 난 상태라 학급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한 것 같다고 담임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사실 처벌도 처벌이지만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학교 폭력 사건은 그 자체의 처리보다도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이 예측하기 어렵다.

“그게 걱정이었건만……. 어차피 그렇게 된 거라면 학부모님 원하시는 대로 해 드려야죠.”

“네, 알겠습니다. 학교 오시면 말씀드리고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합의를 해 보겠다고 수진 학생의 부모가 찾아왔다.

피해자가 합의하겠다고 하는 것이 이상할지 모르지만, 사실 가해자 측 학부모들은 계속 합의를 부탁하고 직접 피해자 측과 연락도 주고받고 있었다.

“저는 돈은 필요 없습니다만,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진심은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다행히도 재판까지는 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변수의 연속인 게 학교다.

워낙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보니 한 학생이 거기에 걸려 버린 것.

그 학생이 바로 이준일이었다.

장규천 선생이 확인한 바로는 이 친구는 직접 사진을 촬영하진 않았다.

단지 그 자리에 친구라는 그 녀석들과 같이 있었고, 그 친구들이 공유한 사진을 받아 들고 있던 것뿐.

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인생을 뒤집을 수도 있는 이 소용돌이에 휩쓸렸는데 다른 녀석들과 다르게 거기에서 빠져나올 힘이 없었다.

이런 경우가 가장 안타까웠다.

물론 어려운 삶을 살았다고 해서 죄가 용서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회가 있어도 잡지 못하는 건 슬픈 일이었다.

결국 네 명의 사건 관련 학생들 중 셋이 합의하고 준일이는 재판에 넘어갔다.

결과야 초범이고 학교생활도 잘못된 건 없었으니 성인 범죄자처럼 교도소에 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학교 내에서의 인식, 그리고 생활 기록부 상의 기록은 어쩔 수 없었다.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일어난 일이다.

“야, 이수진, 이것 좀 제대로 해.”

“무슨 말이야? 할 거 다 했잖아.”

“하긴 뭘 했다고 그러냐? 우리만 개고생하고 제출했는데. 왜 그렇게 쳐다 봐?”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왜? 나도 찌르려고? 해 보던지. 아빠 변호사라며?”

아이들이 못된 것은 아니다.

굳이 그런 사건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분위기는 대상을 돌아가며 으레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건수가 있는 것과 없는 건 다르다.

재판 후 준일이가 학교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 또한 주변의 달라진 시선을 느꼈다.

사건이 일부 합의되며 계속 학교생활을 하던 나머지 셋은 그를 챙겨 줄 수도 없었고, 챙겨 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의외로 단순하게 돌아간다.

개인의 물리적 힘으로 구분되는 강자와 약자는 부모의 경제력, 그리고 사회적 입지로 재편된다.

그리고 이준일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이건 특이하게도 이수진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가다가 벌어지는 최악의 상황.

“쟤는 돈 벌라고 그랬나?”

“아빠가 합의금 천만 원씩 받아 냈다며? 사진 몇 장으로 많이도 버네.”

주변의 수군거림.

폭력은 새로운 폭력으로 변질됐고, 평범했던 학교에는 이상한 분위기가 돌았다.

한두 명의 주관적인 속삭임이 사실이 되어 그녀를 공격했다.

이때가 바로 장규천 선생이 느꼈던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때이다.

“그만 좀 해라.”

학교로 돌아온 뒤 거의 쥐죽은 듯 살던 준일이 수진이에 대해 수군거리는 소리에 반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사건을 같이 겪었던 녀석들의 멸시.

“뭐야, 이 새끼야. 너는 왜 그래? 너야말로 가장 손해 봤잖아?”

“맞아. 넌 가만이나 있어, 끼어들지 말고.”

준일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몇 차례 그들 사이의 날선 대화가 이어지더니 결국 그가 폭발했다.

“병신들아, 우리가 잘못해서 니들은 돈으로 해결하고 나는 재판받고 온 거잖아. 근데 니들이 쟤를 그렇게 또 대하면…….”

말을 끝마치기 전 준일은 쓰러졌다.

‘병신’이라는 단어에 욱한 한 명이 그의 코를 주먹으로 내리친 것이었다.

준일은 반격하지 않았다.

어차피 해결할 수도 없는 사고를 하나 더 만들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코가 깨져 피투성이가 되고 나서야 공격은 멈췄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지만 마침 복도를 지나가던 장규천 선생이 이를 발견하고 뛰어 들어왔다.

* * *

“그래서 다시 친구가 된 거야?”

헐, 이건 그대로 이해하긴 어려웠다.

중학교에서 근무한 적은 전생에도 없긴 했지만 고등학교보다 아이들이 철이 들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힘들다고 하던데.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아서라고만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건 그냥 그 시절 누구나 가지는 객기가 엄청 안 좋게 드러난 경우가 아닐까.

아무튼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게 아니라 그녀의 입장에서 겪은 일과 들은 일을 종합해서 말한 거라 복잡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준일이와 수진이가 지금은 관계가 괜찮다는 것.

“그래도 우리 학교에는 어떻게 같이 오게 된 건데?”

“아버지가 준일이 관련한 학폭 다시 터졌을 때 학교로 와서 준일이 편들어 주셨어요. 그간 제가 학교에서 힘들다고 말씀드려도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하셨거든요. 근데 마침 그 일이 생긴 거죠. 그러고 나서 같은 학교로 갔으면 좋겠다고 준일이랑 준일이 부모님께 말씀드렸죠, 제가.”

맘고생깨나 했을 것 같은데 생글생글 웃으며 남 말하듯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녀가 신기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뉴스에 나온 것만 보고는 큰일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그렇구나. 장규천 선생님?”

“네. 그분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런데 뉴스 뜬 것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그렇지. 몰랐던 일인데 우리 학교에 둘 다 입학했다는 건……. 걱정했어. 혹시라도 아직 이겨 내지 못한 일인데 같이 들어왔을까 봐.”

“괜찮아요, 저는. 준일이는 어때요? 다른 반이라…….”

“괜찮을 거야, 그 녀석도. 아까 또 울었다고 하더라고.”

“울보네요. 좀 신경 써 주세요. 아빠한테 연락하시면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기자들 참 나쁘네요.”

“그게 그 사람들 일이니까.”

대략적인 사정은 그녀를 통해 듣고, 그녀의 이야기에서 나온 장규천 선생님께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거기에 준일이와 한 번 대화를 나눠 보고, 수진이의 아버님께도 연락을 드려 보면 어떨까 싶었다.

우리 학교에 차라리 둘 모두 들어와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일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입장의 학생 모두의 내용을 종합할 필요가 있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다행이었던 건 아이들의 문제가 그래도 해결된 상황이라는 것.

가장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대중으로부터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입장이 바로 피해자 입장인데, 그 부분을 확인한 건 컸다.

이제 착착 대처 계획을 진행하기만 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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